이경영과 김민종. 두 남자는 각별한 우정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두 남자의 우정이 올해로 13년이란 나이테를 입었다.
그 시간동안 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누며 살아온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 사랑에 대한' 토크박스. (글 오성택/사진 최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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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끝낸 사람들이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들었다. 따뜻하게 대지를 데워주던 태양이 힘을 잃은 사이, 싸늘해진 바람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종종걸음으로 차량을 향해 이동하는 배우들에게 교복차림의 인근 중고교생들이 흰종이를 앞다투어
내밀었다. 순식간에 배우를 둘러싼 모양새가 마치 모이를 향해 둘러선 병아리, 그것이었다. 얼추 사인을 마친 김민종이
먼저 자신의 밴승용차에 올랐다. 뒤이어 같은 소란을 겪은 이경영이 김민종의 차량에 올랐다. 저녁식사를 위해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할 참이었다. 소란 가운데 기자도 그 차량에 동승했다. 차량은 이내 떠나지 않았다. 아직 차량에 오르지
않은 스태프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두 사람이 오른 차량을 둘러싼 20여명의 오빠부대들은 연신 '꺄악꺄악'
환호성을 질러댔다. 환호성 사이사이 '의리?의리?'하는 연호가 들렸다. 차창문을 연 김민종이 그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다시한번 '꺄악~'소리가 차량 주위에 솟았다. "이젠 저 소리가 저를 부르는 소리가 돼버렸어요." (웃음)
그 모습을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경영이 웃음기 담긴 얼굴로 바라보았다. 영화 개봉을 보름여 앞두고 새 영화에 출연하는
강행군 중이지만 모처럼 만난 '동생'과의 자리가 흐뭇한 기색이다.
[토크1장]
이경영 : 평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한 일은 진정한 친구 셋을 갖는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건 거의 불가능하다더군요.
두명을 갖는게 최상인데, 한명만 있더라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해요. 그런면에서 민종이는 저한테 진정한 우정이라 말할
수 있는 친구죠.
김민종 : (웃으며) 쑥쓰럽게...
이경영 : 처음 만났을 때,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첫눈에 호감을 느꼈어요. 예의 바르고 똘망똘망한게(웃음) 꼭 막내동생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민종이가 '비오는 날 수채화'에 나온 절 보고는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었다고 하더라구요.
김민종 : 인연인 셈이죠. 그 영화를 보고 '아 저사람 한번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는데, 다다음 날인가? 캐스팅 제의가
왔어요. 감독님과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와? 형이 그 옆자리에 떠억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영화가 '있쟎아요~...'였어요.
이경영 : 그때 너는 삼룡이 같았고 나는 팽팽했는데, 13년이라.. 세월이 나는 백발로, 너는 여전히 삼룡이로 뒀네? 하하하!
김민종 : 형이랑은 닮은데가 많았어요. 아마 그래서 끌렸나봐요. 뭐랄까, 마음이 여려요. 그래서 남을 오래 미워하지
못해요.(웃음) 서로 공통점이 많다보니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지금까지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이경영 : 처음엔 귀엽기만 하더니 이젠 오히려 형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하하. 모르는 사이 많이 닮아가면서 말을
안 해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무슨 생각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일년에 딱 하루를 만나도, 364일
동안 만나지 못한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죠. 며칠 전에도 불쑥 전화가 와서 '이경영, 이놈아!'하더군요. 설악산
암자에 가서 제 영화 '몽중인' 잘되게 해달라고 봉축하고 산꼭대기에서 삼겹살에 소주 먹다가 내 생각이 났다며, 하하.
동생이면서도 그렇게 사는 모습 보면 부럽기도 하고, 세상 욕심에 찌들어 사무실에 박혀 있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고... 절 많이 가르쳐요.
김민종 : 사실 형은 제 큰 누나보다 한 살 아래예요. 큰 누나는 저한테 굉장히 어른이거든요. 저한테 연기에서, 인생에서
스승과 같죠. 제가 하이틴 배우 이미지에 매여 있을 때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에 강간범 캐스팅이 들어왔어요.
내심 별로 내켜하지 않고 있는데 형이 '배우가 되고 싶으면 꼭 해봐야 할 역할이야, 임마!'하더라구요. 나중에야 형
판단이 옳았다는 걸 알았죠.
[토크2장]
이경영 : (김민종은)예의가 바르고, 주변에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쪽 생활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늘 한결같아요. 하지만 딱 두 번 제가 때린적이 있어요. 한번은 제가 술이 무척 취했을 때였는데 이놈이 형노릇을 하려
드는 거예요. '형, 이제 그만 갑시다!'하면서 강제로 저를 일으켜 세우더라구요. 그래서 술김에 주먹으로 턱을 쾅!
때렸죠. 순간 '턱에 금갔갔겠구나'싶을 정도로 꽤 세게 때렸는데, 나중에 보니까 멀쩡하더라구. 하하. 또한번은
민종이가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무척 힘들어했어요. 참 잘 참는 성격인데,감독을 포함해 셋이 술자리를 하다가 이놈이
쌓였던걸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서 손바닥으로 세대인가? 때렸어요.
김민종 : 형 손 좀 보세요. 굉장히 두껍죠? 통뼈라 꼭 쇳덩어리로 때리는것 같아요. 한대 맞으면 퍽~하고 날아
간다니까요. 하하.
이경영 : 감독한테 일종의 시위였던 셈이죠. 아무튼 다음날, 감독이 촬영도 작파하고 낮술 마시면서 민종이한테 정식으로
사과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때리기까지 했지만 한번에 저한테 대든적이 없어요. 딱한번 성질 낸 적은 있는데, 이거 얘기
해야 하나? 영화 '가을여행'(1991년작)촬영할 때였는데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어느날 아침 제가
촬영하자고 깨우는데...
김민종 : 아! 그얘긴 하지마.
이경영 : (웃으며) 일어나서는 내내 투덜거리고 삐치더라구요. '야, 너왜그래?'하고 물어도 대답을 안해요. 알고 보니까..
김민종 : 제발, 하지 말라니까.
이경영 : 쟤가 달콤한 꿈을 깬 거예요. 그때 민종이가 좋아하던 여배우가 있었는데, 그 여배우가 꿈에 나타나서 막
달콤한 로맨스를 즐기려던 찰나였던 거죠. 그걸 제가 깨웠으니... 하하하!
김민종 : 형이랑 영화하면 무척 즐거워요. '개같은 날의 오후' '삼인조'때가 특히 기억나요. 특히 '개같은 날의 오후'
촬영할 때, 우리 둘이 멍청한 도둑으로 나왔쟎아요? 저희 신이 안걸리면 둘이서 팬티만 입고 까불고 장난치고...
본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그런 모습을 보고 감독도 배꼽잡고 뒹굴었죠. 그런데 막상 촬영 들어갈 때면 이러는 거예요.
'두사람, 그냥 대본대로 갑시다' 하하하!
이경영 : 말 나온김에 하나 더. 그렇게 한창 몰려다닐 때 강남에서 술을 마셨어요. 둘다 술이 어지간히 취했는데,
제가 차에 올라 몇미터도 안간 상태에서 단속에 걸렸어요. 꼼짝없이 면허취소를 당하게 생겼는데, 민종이가 단속
경찰관을 딱 막고 서더니 '형, 잠깐 가만히 있어봐'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자기차에 가서 스프레이 통을 하나 가져와서
그걸 입에다 뿌리라고 하더군요. 급하니까 그걸 입에 확 뿌렸죠. 그리고 음주 측정기를 불었는데, 단속 수치 이하로
나온 거예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구취 제거제가 아니라 차안에 뿌리는 '곰팡이 제거제'더라구요.
김민종 : 하하하! 그거 알아? 내가 다알고 준거야! (두사람은 잠시 가벼운 몸싸움을 벌였다)
[토크3장]
이경영 : 함께 영화하면서 제일 기분 좋았을 땐 '귀천도' 때였어요.
김민종 : (끄덕끄덕)
이경영 : 지금 분위기 같았으면 아마 엄청났을 거예요. 개봉 첫날 극장 앞에서 종로 큰길까지 관객들이 줄을 쫙 서
있는데, 그 기분 말로는 다 표현 못하죠. 그런데, 주제가였던 '귀천도애가'가 표절시비 붙으면서 그냥 팍 내려간 거죠.
김민종 : 그때 지방에서 공연 마치고 헬기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통화를 했는데 '월요일까지 매진'이라는 거예요.
마음까지 하늘을 나는 것 같았죠.
이경영 : 공식집계가 22만인데, 그땐 지금처럼 관객수 집계가 정확하지가 않았어요. 저희가 직접 팬 사인회를 갖고
관람할때엔 극장안 객석이 다차고 통로에까지 앉았는데 집계는 절반 정도 입장한 걸로 나오더군요. 정말 힘이 쭉
빠졌어요. (잠시 말이 없다가) 아! 그때 동아마라톤에서도 우리 '귀천도'식구들이 참여했는데, 정말 웃겨 죽을
뻔했어요. 민종이 때문에.
김민종 : 전날 다들 새벽까지 술을 먹고 경기에 참가했는데, 경영이 형이랑 다른 사람들은 메인 스타디움 한바퀴만
돌고는 쏙 빠졌어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박수 치고 '파이팅!'외치고 하니까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더라구요.
속에서는 뭐가 막 올라 왔지만...
이경영 : 저는 그때 메인 스타디움 한바퀴 돌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김민종 : 억지로 올라오는 걸 누르고 뛰다가 관중이 안보이면 '웩~'하고 토하고, 또 관중이 보이면 뛰고...
5킬로미터를 뛰었는데 참가자 중에 제가 꼴지였어요. 그래도 박수는 제일 많이 받았죠. 하하!
이경영 : 그런 자세를 참 좋아해요. 시간이 지나도, 민종이는 늘 한결같아요. 사람이 처음 가졌던 마음을 지키기가
참 어려운데, 민종이는 늘 그대로예요. 말로만 '의리'가 아니라 행동도 한결같으니까 의본무언!
김민종 :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여자가 없는거야. (웃음)
이경영 : 맞아, 여자와는 그런게 힘든거 같아. 처음 마음을 지키기가 말이지. 일단 신체구조가 달라서 그런것도 있는거
같애. 육체적 욕망이 다른걸 다 압도하는게 아닐까? 내 생각엔. 그래서 사랑은 끝나면 아프지. 하지만 우정과 의리에는
그런건 없잖아.
김민종 : .....
이경영 : 그건 그렇고, (앞자리에 앉은 영화사 여직원에게) 왜 말만하고 우리 여자 소개 안 시켜줘? 혹시 민종이만
소개시켜 준거 아냐? (웃기만 하자) 나하고 민종이는 차원이 달라. 민종이는 결혼도 안했지만 난 이미 겪어본 사람이란
말이야. 내가 훨씬 외로워!
김민종 : 푸하하!
두 사람의 우정은 연예인들 사이에서 부러워할 사람이 많을 정도로 돈독하다. 얼마 전부터는 이들의 '의본무언'(義本無言)
패밀리에 윤다훈, 김보성이 합류했다. 윤다훈의 표현에 의하면 '맥주보다는 소주를,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는'사이란다.
그 중심에 이경영과 김민종이 있다. 지난 13년을 기쁠 때, 힘들 때 늘 의지가 되어온...
이경영 : 원래 이번 '몽중인'보다 먼저 만들려고 했던 영화가 있어요. 무협영화인데, 이미 시나리오를 만화가에게 넘겨
놓은 상태입니다. 전에 '귀천도'할때는 조바심 때문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엔 배우 김민종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멋진 모습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어요. 출연하겠다고만 한다면.(웃음)
김민종 : (대답을 바로 않고) 형, 저번에 '몽중인'에 내 신 촬영한곳 말이야. 거기 참 예쁘더라. 별장 같은 집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우리나라에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몰랐어.
이경영 : 그렇지? 재벌들이 팔라고해도 안 판 땅이라더라. 내가 그곳 사람을 알아. 언제 한번 가자.
김민종 : 진짜지? 약속한 거다?
1시간 남짓 달린 차량이 목적지인 식당에 도착했다. 두사람의 가식 없는 대화를 들으며 여러번 허리를 꺽어가며
웃었지만 아쉽게도 내려야 했다. 헤어지기 전, 김민종을 따로 만났다. 친구처럼 웃고 떠들면서도 '형' 이경영에
대해서는 '따로 말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얼굴에 대고 말하기가 쑥쓰러워요. (웃음) 형은 감성이 여리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악의가 없어요. 잔잔한 호수 같기도 하고, 시인 같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또 굉장히 개구쟁이고.
그렇지만 정말 '형'이에요. 전 형보다는 다혈질이라 안 좋은 감정이 바로 드러나는데, 형은 그걸 다 소화해요.
그래서 형한테 늘 배워요."
두 분의 오랜 우정이 참 아름답져. 세월이 갈 수록 그 빛을 더 발하는 거 같아여. 두분 모두 서로 기뻐해 줄 일이
많으셨음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