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임말이 아님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문 체육대회를 참가하여 여러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에 대해 묻게 된다. 나에 대해 이런 자리에 말해두면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되어 한 번 정리를 해본다.
부모님 슬하의 2남 1녀 중에 장남이다. 당감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거의 범생이었다. 조용한 성격에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고 할 수 있다. 축구를 좋아하여 열심히 공을 찼다. 기억에 남아 있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의 중학교, 부산 동고를 다닐 때도 거의 같았다.
부산대학교 교육학과를 가려다가 실패하고 재수하여 동아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 때에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당감2동의 옛날 천일극장 앞에 살았기에 부산서면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의 신자가 되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1996년에 목사가 되었다.
1994년에 결혼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하는 여성과. 아내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석사이고 외국 연수도 다녀왔다. 얼마 간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현재 아들은 대학교 1학년이고 딸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나와 아내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다. 같은 신앙인인데도 어떤 사안이든지 의견이 달라서 끊임없이 싸웠다.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면 벌써 이혼을 했을 것이다. 법원에도 몇 차례 갔고 이혼장 접수도 하였다.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니다.
부산, 밀양, 울산, 김포, 부평(인천) 등을 다니며 목회를 하였다. 안성에서도 얼마 간 살았다. 얼마나 자주 이사를 했든지, 아들은 거친 초등학교가 10개이다. 그런데도 구김 없이 잘 자란 아들 딸이 너무 대견하고 고맙다.
부평에서 사역을 할 때에 교단에서 제명을 당했다. 교단에서 따르는 신학의 어떤 부분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어려움이 닥쳤다. 개척교회를 하고 있었는데, 후원이 중단되었다. 아내와 의견도 맞지 않아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정의 경제적인 면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안성에 살면서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수발들었다. 부산에 내려와서 온종합병원의 병원목사로 1년 정도 사역하였다. 제명 건이 불거져서 그만두었다. 그 후로 건강용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였고 보험설계사로 일하였다. 지금도 코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하는 주업은 의료쇼핑몰인 ㈜병원가자에서 의료복지 관련 일이다. 회원- 개인회원과 기업회원으로 구분-들이 좀 더 나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병원의 입장에서는 환자를 더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고. 이번에 티비유니온이라는 회사와 협약을 맺고 건강복지카드를 만들게 되어 그것을 판매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나는 지금의 기독교가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와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사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 마음이 내가 쓴 책 출판에 담겨 있다.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회복, 닫힌 성경 열기, 신천지의 과대망상, 십일조는 다른 복음이다. 개인 출판사를 통한 것이다 보니 판매는 거의 안 되고 있다. 글을 많이 적는 나는 사고가 매우 논리적이다.
우리 사회가 사람 사는 세상 곧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인권, 복지, 생태. 현재에 이 가치들은 퇴보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치들이 더 온전해지기를 소망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이다. 생계가 현재의 내겐 가장 큰 문제이다.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금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병원가자 일을 하기 전에는 풀타임으로 했다. 저녁 7시쯤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지금은 8시부터 새벽 1시 30분까지 한다. 동문회 체육대회 때에 술을 마시지 않고 후의 뒷풀이에 함께 하지 못한 이유이다. 기술이 없는 목사이었다 보니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며 살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씁쓸하다. 내가 가장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한 일에 매진하며 살아야 함으로 인한 씁쓸함이다. 그래도 내 앞에 놓인 삶에 충실하면서 감사와 즐거움을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대충은 나를 알린 것 같다. 아, 범생에 목사인 내가 잡기엔 능하다. 공으로 하는 운동들, 특히 당구를 좋아하고 즐긴다. 과할 정도이다. 지금은 거의 안하지만 인터넷 바둑도 좋아한다.
지금은 ㈜병원가지 일에 온힘을 쏟아 미래의 생계 문제 준비까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동창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얼굴도 보이지 않다가 이제 나타나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첫댓글 사람답게 사는 세상, 목사님께서 그리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경 중심의
목회 현장에서 마음껏 글쓰시고 말씀을 선포하실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