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로 가는 현대교회들
황 부일목사
현대교회들의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다원주의와 인본주의로 흘러가는데 있습니다.
인본주의란 말은 세상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사상적 휴머니즘으로서 그럴싸한 이론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에 들어오고 신앙에 접목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원래 인본주의는 중세때 한 계몽운동으로서 인문주의와 같은 것인데 인문주의는 당시 모든 권세를 휘두른 로마 카톨릭교회의 권위나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을 해방 시키고 인간적 교양과 인간의 존엄을 세워 가자는데서 출발한 운동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잘못된 교황중심의 로마 카톨릭에서 벗어나자는 주의도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인본주의 사상은 하나님 중심주의와는 본질이 전혀 다른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 이후 인본주의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각 분야 곳곳에서 박애나 인권이나 인륜을 사회에 이바지 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들에 들어온 인본주의는 교묘하게도 하나님을 통한 인간중심주의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인간중심의 실현의 목표나 과정이된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의 모든 상태가 인간에게 잘 맞아야 하고 또한 그렇게 맞추어 신앙생활을 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교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열심히 주를 찾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여러 가지 행사와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이미 현대교회 중심에는 근본적으로 인간 중심이 바탕이 되어 진정한 하나님 중심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들 중심에 맞는 하나님 중심을 만들고 하나님을 이용할 뿐인 것입니다.
현대교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인간을 위해 창조하셨다고 믿으며 인간이 그 안에서 잘 살고 잘 누리도록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에수님도 인간을 위해 오셨고 인간의 모든 문제나 형편이나 운명적 현실이나 미래의 상태를 해결해주고 간절한 기대대로 이루어 주는 분으로 보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대교회의 신앙은 인본주의 신앙으로서 개인주의 신앙과 공동체주의 신앙으로 분류는 될 뿐 하나같이 자기 욕망이나 인간의 의를 기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현대교회들은 회중의 감동을 위해 모든 순서나 시스템이 바뀌었고 세상문화,철학,이념 풍숩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 거리낌 없이 끌어 들이고 찬양은 모인 사람들의 역동적 감흥을 주기위해 세속의 음악까지 도입 지극히 감정적이거나 콘서트장처럼 요란해 졌고 기도는 자기들 기대실현을 위해 부르짖는 주문이나 공동 선언문 같이 되었고 봉사도 전도나 설교도 자기기대의 성취나 상급이나 더 나가서 사회나 민족국가 세계인류 공동체로서의 이상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들어온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통한 자기요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교인들이나 보이는 것으로 크고자 하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을 하려는데 하나님을 구할 뿐인 것입니다. 이런 현대교회들의 분명한 특징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복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권 중심의 신앙은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을 통해 인간이고 세상기대 뿐인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인본주의의 원리적 근원을 살펴보면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탄의 미혹된 말에 넘어가 그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따 먹은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영생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깨고 사탄의 미옥을 따라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생각함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인본주의 의도의 결과는 죄와 사망을 가져오게 했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늘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악한 존재인 육체가 된 것 입니다. (창 6:3, 8:21)
이런 원리에 대해 사도바울은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은 사탄에 지배받으며 세상물속을 쫓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었다고 증거합니다.(엡 2:1-3)
하나님 없이 인간끼리 잘살고 원하는 대로 누리고 좋은 세상을 조성하는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이상으로 삼는 것이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으로 실현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동방의 시날 평지로 옮기워서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성과 대로 쌓아 대 꼭대기로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다고 했습니다. (창 11:1-9)
이것이 당시 인류가 추구한 인본주의의 실재입니다. 그들은 드높은 문화를 세우려 했고 인간끼리의 굳건한 공동체를 협력하여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끼리의 이상세계를 추구한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며 세워가는 세상은 이상세계가 될 수 없습니다. 인류가 그런 인본주의를 구상하고 추구하면 할수록 세상은 혼잡하고 혼란스러워져 가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죄와 사망이 들어오고 그 형벌의 삶을 살아가는 현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본질상 죄로 저주받은 진노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엡2:3)
오늘날 신으로부터 해방을 목적으로 삼는 인본주의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로 들어오게 된 것은 신을 통한 도움이나 은혜로 인본주의를 실현해 보려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통한 모든 자기기대나 실현이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된 의도 없습니다. 자신들의 의나 꿈이나 비전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본주의로 가는 현대교회들의 공통점은 비전이라는 용어를 유행처럼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본주의로 가는 현대 교회들은 가칭 교회이거나 아니면 복음의 정통성이 없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와 같은 병들거나 타락한 교회인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의 유대교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었지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를 세우려고 열심 했다고 했는데(롬10:2-3) 오늘날 인본주의로 가는 현대교회가 바로 그런것입니다.
첫댓글 가슴으로 애통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