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대 명산의 산방 산행자료 >
백암산 741 m. 전남 장성군 북하면 전북 순창군 복흥면 |
|
|
전북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입암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741m로, 내장산, 입암산(1,107m)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다. 백학봉·사자봉 등의 봉우리는 기암괴석으로, 산세가 험준하나 웅장하다. 이곳에 비자나무숲·굴거리나무숲이 각각 천연기념물 제153호와 91호로 지정되어 있어 유명하다. 산 기슭에는 대한불교조계종 18교구 본사인 백양사가 있다. 632년(무왕 33)에 여환이 창건하여 백암사라고 부르다가, 조선 선조 때 환양이 중창하고 백양사라 고쳐 불렀다. 환양이 백학봉 아래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고 있을 때 백양 한 마리가 이를 듣고 깨우침을 얻고 눈물을 흘렸고, 이에 사찰의 이름이 백양사로 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극락전과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와 제43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예로부터 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백양사의 비자나무숲과 벚꽃나무를 두고 생긴 말이다. 산행은 산세에 비해 등산로가 순탄한 편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고, 거리도 짧아 당일에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은 백암산을 등산하는 코스와 내장산 자락의 내장사까지 횡단하는 코스가 있다. 백암산에 오르는 코스는 백양사와 청류암에서 각각 시작할 수 있다. 백양사에서 약사암, 영천굴을 거쳐 백학봉에 오른 다음 정상에 도착한다. 영천굴에서 백학봉까지는 급경사의 산길이지만 백학봉에서 정상까지의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기 쉽다. 정상에서 운문암을 거쳐 백양사로 하산하면 약 10㎞ 거리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청류암에서 시작하면 사자봉, 상왕봉을 거쳐 백학봉에 오른 후 정상에 도착하여 백양사로 하산하면 약 14㎞ 거리이며,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내장사까지의 횡단 코스는 백양사에서 출발하여 약사암을 지나 백학봉에 이어 정상에 오른 다음 순창새재, 소죽엄재, 까치봉, 신선봉을 지나 내장사에 도착한다. 이 코스는 16.5㎞ 거리로,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양사에서 곡두재, 덕흥, 화양저수지, 화양리, 유군치를 거쳐 내장사로 가는 10.4㎞ 거리의 코스도 있다. 백암산에서 입암산으로 연결되는 코스는 백양사를 출발하여 금강폭포, 운문암터를 지나 정상에 오르고 몽계폭포, 남창골을 거쳐 입암산성에 도착한다. 입안산성은 입암산 기슭에 쌓은 둘레 5㎞의 산성으로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뻗다가 호남평야에서 솟아 오른 의 명산으로 국립공원내장산 남부 지구에 속한 백암산은 전남 장성군 북하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 위치한 높이 741m(주봉 상왕봉) 절경은 결코 내장산에 뒤지지 않는다. 백학봉과 상왕봉, 사자봉 등의 기암괴석이 곳곳에 널려 있다. 가을 단풍철이라면 산행은 백양사를 출발, 약수동계곡으로 올랐다가 최고봉인 상왕을 거쳐 학바위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는다. 약수동계곡의 단풍 터널 속을 뚫고 나가는 기분과 역광에 비친 학바위 주변의 단풍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비자나무 숲과 회색줄무늬 다람쥐가 유명한 이곳산 기슭에는 대한불교조계종 18교구 본사인 대사찰 백양사가 있다. 백양사라는 이름은 환양선사가 설법을 할 때 흰양이 듣고 깨우침을 얻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예로부터 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백양사의 비자나무 숲과 벚꽃나무를 두고 생긴 말이다. 산행등기점인 백양사까지는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걸어야 하는데, 길 양편으로 나무가 울창하고, 가을에는 단풍도 아름답다. 백양사에 이르면 사찰앞의 계단식 정원과 계곡물이 눈길을 끌고, 정원의 연못에서 조망되는 쌍계루, 백학봉 등이 어울린 풍광이 아름답다.산행길은 5백미터쯤 오르면, 약사암과 영천굴로 가는 갈림길인데, 두길 모두 백학봉에 갈수 있으나, 약사암을 경유하여 영천굴을 갈수 있으므로 약사암으로 접어드는 것이 좋다. 두 길은 모두 급경사길인데 백학봉 아래에 있는 약사암에 이르러, 오른쪽 암벽아래의 길로 가면 영천굴이다. 이굴은 깊지는 않지만 암벽아래에서 솟구치는 석간수가 신비롭기 그지없다.영천굴을 지나면 급경사 오름길이 주능선까지 이어진다. 반면에 전망은 오름길을 더 갈수록 좋아지며, 특히 백학봉의 가파른 바위암벽이 눈앞에서 장관을 이룬다. 약1시간쯤 땀을 흠뻑 흘리며 오름길을 가면, 주능선이 나오고, 왼편의 철사사다리를 따라 가면 학바위에 다다른다. 학바위에 올라서면 말굽형을 이룬 백암산의 산세가 한눈에 조망된다. 백학봉에서 상황봉(정상)에 이르는 주능선 길은 경사가 완만하며, 오르내림을 거듭하며, 떨깔나무숲을 걷노라면 소나무와 어우러진 전망대가 간혹 나온다. 상황봉(정상) 또한 백학봉처럼 조망이 좋다. 학바위를 비롯한 백암산의 전경이 눈앞에 닥아오고, 저멀리 내장산의 연봉들도 보인다. 상왕봉 정상에서 소죽엄재, 까치봉, 신선봉을 거쳐 내장사로 하산하는 길은 약 8시간이 소요된다. 또 다른 하산길은 남서쪽 안부를 거쳐 운문암계곡으로 가는 길이 있다. 5백미터쯤 내려가면 안부에 이르며, 사거리 길목에서 왼쪽의 급한 내림길을 따라 한참가면 운문암이 나온다. 운문암은 최근 불사를 한 구도처이며,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 방장스님이 조석하고 잇는 것이다. 암자앞이 툭트여 금방 명당자리임을 느낄 수 있다. 백양사에서 운문암까지는 차도가 나있지만 기복이 심하여 사륜구동차만 진입할 수 있으며, 또 일반차량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차도를 따라 내려가면 골짜기의 수원이 많아지며, 멋진 암반지대도 있고 비자나무숲도 지나며, 약1시간이 면 백양사에 다다른다.정상인 상왕봉 남서쪽 안부에서 운문암으로 가지않고, 곧장 능선을 따라 사자봉을 오른 뒤 능선을 따라 가다가 청류암 계곡을 거쳐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있으며, 소요시간은 같다.
제 1코스 (4시간20분) 백양사⇒백학봉⇒구암사⇒덕흥리
제 2코스 (4시간) 백양사⇒운문암⇒상왕봉⇒백학봉⇒학바위
제 3코스 (원점회귀코스10km,5시간) 백양사⇒약사암⇒영천굴⇒백학봉⇒상왕봉⇒운문암⇒백양사
제 4코스( 횡단코스16.5km,8시간) 백양사⇒약사암⇒백학봉⇒상왕봉⇒순창새재⇒소죽엄재⇒까치봉⇒신선봉⇒내장사
제 5코스 (원점회귀코스 4시간) 주차장⇒청류동골⇒사자봉⇒상왕봉⇒백학봉⇒학바위⇒백양사⇒주차장
도로정보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I.C에서 1번 국도로 진입 ⇒11km 백양사
대중교통 강남고속버스터미널⇒장성행 고속버스(3시간 30분) 정읍⇒사거리터미널 직행버스 이용/ 30분 간격/ 35분 소요 광주⇒사거리경유-백양사행 직행버스/ 40분 간격/ 1시간소요 광주⇒백양사행 직행버스/ 40~50분 간격/ 1시간20분소요 장성에서 백양사 ( 사거리 경유 ) / 20~30분 간격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백암산 동쪽 기슭에 가람을 배치한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선사에 의해 청건된 고찰이다. 처음에는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정토사,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운문암, 약사암, 영천암, 청류암 등 8개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 경내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 43호인 대웅전과 가장 오래된 건물인 지방유형문화재 제 32호 극락보전,지방유형문화재 제 44호 사천왕문, 지방유형문화재 제 56호 비림등이 있다.
입암산성 입암산 주위에 쌓은 총연장 5천208m의 성으로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급경사를 이룬 천연의 요새지이다. 이 산성은 백제 때의 산성으로 고려 고종 43년(1256년)에 송군비 장군이 이곳에서 몽골군을 무찔렀고 임진왜란 때는 왜적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윤진 장군을 비롯한 우국지사들이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곳이기도 하다.
국립공원내장산 남부관리사무소 (061-392-7288) 광주 종합터미널 : 062) 360-8331 장성터미널 : 061)393-2660 사거리터미널 061)392-8900
| |
백암산 741m |
위치: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
코스: 백양사-약사암-학바위-백학봉-상왕봉-안부-약수동계곡-백양사 청류동골-청류암-사자봉-상왕봉-백학봉-학바위-약사암-백양사 |
|
교통편:광주-정읍:(10분배차)백양사정류장서 하차 정읍-광주:(10분배차 첫차 6시40분, 막차 오후 9시50분)백양사서 하차 숙박: 백양사집단시설지구관리사무소:0685-92-7288 |
문화재와 볼거리: 백양사, 비자림, 백학봉의 단풍 |
백암산 741m |
위치: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
교통편:백양사역에서 백양사행 버스 수시출발 숙박: 가인 민박촌(매표소에서 600m정도 올라온 뒤 좌회전, 다리를 건너 청류동골로 들어가면 가인동 민박촌이 있다), 금강여관(061-392-7445(약수리))
|
문화재와 볼거리:백양사(백제무왕 33년 여환선사가 창건), 백양사 극락보전, 백양사 대웅전, 백양사사천왕문, 백양사 소요대사부도(이상 지방문화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153호), 장성호
|
코스:백양사 -계곡 -백학봉길 -약사암 -전망대 -백학봉 -722봉 -상왕봉 -운문암 -백양사 |
산행: 백암산 742m
사진:백학봉 아래 전망대에서 둘러본 학바위 주변암봉들.
백암산은 백학봉으로 불리는 대단애가 산과 절(백양사)을 찾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산이다. 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멀리서 봐도 뇌리에 강한 각인을 새기게 되는 백학봉은 단풍철에 더욱 빛을 발한다. 백양사로 들어가면서 붉게 물든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봉우리위의 푸른하늘과 함께 대단애가 대조되어 빛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국내에서 몇 안되는 압도적인 단애이며 그 높이는 대단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체험해본 사람들만이 그 웅대함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직벽 또는 오버행의 느낌을 주는 백학봉아래를 지나가면서 위로 올려다보면 대암벽이 자신의 머리위로 기울어져옴을 느끼고 질겁을 한다. 북한산의 인수봉이나 노적봉의 잘 알려진 측면은 대체로 슬랩형 바위로서 안정감이 먼저 오기 때문에 거대할 뿐 위압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잘은 모르지만 인수봉의 북벽이나 서벽은 오버행을 이루고 있어서 위에서 말한 위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백학봉은 대뜸 깎아지른 직벽으로 그를 찾아 땀흘리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위협을 느끼게 만든다.
사진:백학봉 아래 전망대에서 둘러본 학바위 주변암봉들(북쪽). 뒤의 봉우리는 상왕봉.
그런데 한번도 산을 올라가보지 않은 듯한 아주머니도 백학봉을 오른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오른다. 계곡바닥에서 백학봉 정상까지는 약 600여m는 될성싶은 높이다. 이만한 코스 같으면 무슨 산책 코스정도로 생각할 코스는 아닌데도 왜 본격적인 등산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일까? 백양사를 찾았으면 그에 걸맞는 희생을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옛날 종철스님을 만나려면 3천배를 해야했던 것처럼 말이다. 30일은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인터체인지에서 내려와 장성호를 끼고 북하에 도달한 다음 백양사로 올라가는데 벌써 차가 게걸음을 한다. 평일이고 뭐고 단풍철에는 이렇게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이 내장산과 백암산이다. 일년내내 한두번 산에 갈까 말까한 사람도 가을철에 산을 찾는다. 그것이 풍습이라면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습관은 아닐 것이다. 가을엔 단풍에 물든 산을 찾아 계절이 오고 감을 체험하고 그것을 삶의 행로에 하나의 지침으로 삼는다. 아마 이런 생각에 옛날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산을 찾았을 것이 확실하다. 세월이 가고 계절이 달라진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의미이고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삶의 지혜일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오늘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삶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백양사로 들어가는 길가의 단풍나무는 띄엄띄엄 물들어 있다. 한꺼번에 물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붉게 물든 가지위로 하늘을 보거나 가까워지는 백암산을 보거나 길가의 연못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푸르고 흰 배경으로 본 진홍의 잎새는 더욱 찬란해 보이기 때문이다. 연못을 지나 절앞 공터에 이르기 주위의 단풍나무를 비롯한 주위의 울창한 나무들에 단풍이 들어 이곳 백양사의 찬란한 가을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공터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여기서 백양사로 들어가든가 아니면 산으로 올라가든가 해야 한다. 백학봉으로 해서 상왕봉을 거쳐 백양계곡으로 내려온 경험으로는 백양계곡으로 들어가서 상왕봉을 먼저 오른다음 능선을 따라 722m봉에 이른 뒤 백학봉으로 내려오는 것이 훨씬 쉬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럴 경우 늦은 오후가 될 가능성이 있어서 사진을 찍기에는 불안하다. 그래서 백학봉을 먼저 오르기로 한다. 계곡을 조금 올라가면 비자나무 숲이 나온다. 비자나무숲은 백양사일대를 비롯한 남도의 명물이다. 잎은 침엽이고 전나무와 같은 분위기의 나무로 난대성 늘푸른 나무다. 둥치는 곧게 자라고 가지가 많은데 가지는 둥치에서 45도의 각도로 벌어져서 위로 뻗는다. 그래서 수형이 아름답다. 단풍이 휩쓸고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도 눈에 띄지 않는 활엽수의 숲속에서 홀로 청청히 여름의 절개를 지키고 있다. 백양사일대의 숲속이 비자나무의 북쪽 한계지대에 해당된다고 한다. 비자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1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자나무 숲을 지나 평탄한 숲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급경사 계단길이 나온다. 백학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산길을 내려오던 중년산꾼이 친절하게 일러준다. 이 길이 조금 가면 나오는 큰길보다 더 빨리 올라갈 수 있는 길이라고.
사진:학바위 아래서 위로 쳐다보다
사실 백학봉을 오르기전에는 백학봉을 직접 오르는 길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높은 단애를 이룬 암면에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그러나 올라가면서보면 멀리서 보기에 하나의 암면으로 보이던 바위는 중첩되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어서 한 고비를 오르면 끝으머리에 전망대가 있곤 했다. 그 전망대에는 어김없이 추락주의라는 팻말이 서 있다. 그런 곳이 줄잡아 대여섯군데는 되었던 것 같다. 백학봉이라 부르는 거벽은 하나의 바위로 되어 있지만 백학봉 암벽의 발치에는 그러한 다면적 암괴를 이루고 있어서 그 사이로 길이 나 있었던 것이다. 20분쯤 오르니 약사암이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암벽 밑이다. 약사암 앞의 전망대 아래는 단애를 이루고 있다. 이 단애와 약사암뒤의 단애가 겹치면 하나의 암벽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약사암 뒤쪽 거벽위에 전망대가 있다. 약사암 전망대에서 단풍나무 가지 옆으로 백양사의 당우들이 정연하게 단풍의 바다속에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백학봉 정상에서 순창군 복흥면의 들판을 바라보다.
거찰의 면모가 확연하다. 백양사를 지난 계곡은 약수천 계곡을 따라 장성호쪽으로 틔어있다. 약사암 뒤로 돌아가면 암벽아래쪽이 함몰하여 사람 스무남은 명이 들어 앉을 정도의 굴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굴입구를 막아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두고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을 마시고 있다. 표주박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간에 있는 국내의 어떤 절과 마찬가지로 백양사는 곳곳에서 확장공사를 벌이고 있다. 약사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약사암은 단청칠은 물론 문짝도 달지 않은 새로 지은 절이었고 약사암 앞에 높은 축대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이 백학봉의 경관을 훼손시키는 일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멀리서 보면 암벽인줄 알았더니 올라와 보니 콘크리트벽이더라 라면 보는 사람은 얼마나 큰 실망을 안고 돌아갈 것인가.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절을 지어도 주위의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인데 종교적인 논리로 밀어붙이다 보면 절은 남고 산은 망가지는 꼴이 아닐는지. 약사암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급경사를 올라가면 영천굴이 나온다. 역시 거벽아래 함몰한 굴을 이룬 지역으로 이곳은 약사암 뒤쪽굴보다 훨씬 깊고 넓어 안쪽에 부처님 석상(입상)을 안치하여 절간을 연상케 한다. 계단을 올라가게 되어있는데 영천은 계단아래에 있으나 물이 말랐다. 계단위에 올라가면 절간 마루 끝부분에 마루바닥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물을 받는 샘이 있다. 마시고 남은 물은 비치해둔 항아리에 담아야 한다. 영천굴을 내려오면서 보면 양옆으로 단애가 솟아 있고 시야가 좁아진 앞으로 백양사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것이 마치 금산(남해)에서 본 어떤 광경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곳 백암산의 바위와 경관은 금산의 것보다 훨씬 크고 장대하다. 급경사 바위에 걸친 철제사다리를 올라가면 약사암 뒤쪽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백학봉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지점으로 백학봉의 측면을 바라보기에 아주 좋은 전망대다. 북서쪽으로 보면 대단애 뒤쪽에 상왕봉이 솟아있는 것이 보이고 남동쪽으로 보면 꼭대기에 나무를 이고 있는 암봉이 단애를 거느리고 솟아있다. 백양사로 들어오면서 본 일개봉이었던 인상이 이곳에 오면 달라진다. 여러개의 봉우리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가운데 하늘을 찌르고 있는 높은 봉우리가 백학봉의 단애다. 전망대를 지나 암벽 앞에 이런 길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무도 꽤 많은 밋밋한 산복길을 올라가 턱위에 올라서면 다시 전망대가 있고 예의 "추락주의"팻말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장성호가 보이고 장성에서 담양에 이르는 불태산, 병풍산, 용구산능선이 꽤 우람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백학봉 중간지점에서 백학봉의 페이스를 바라보는 것이 이곳 조망의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직벽을 이룬 듯이 보이거나 생각되던 백학봉 남서방향 암벽은 통이 큰 몇개의 대석주를 붙박아 놓은듯이 우람하고 그 석주위에는 소나무가 서너그루씩 얹혀있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석주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석주와 석주사이에는 굴곡이 있어 그렇게 봐도 큰 오해는 아니다. 이제 백학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대암벽 아래로 난 숲길을 올라간다. 엄청난 높이의 록페이스는 남서방향으로 기울어진 듯이 보이기도 하고 비스듬히 넘어지는 환상이 들기도 한다. 이만한 대암벽 아래를 걸어가는 인간은 자신이 개미인지 인간인지 모를 참담한 기분마저 느낀다면 그는 백학봉에서 괜찮은 경험을 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백학봉의 대암벽은 암괴가 아닌 문자그대로 직벽이다. 새가 앉을 자리조차 없어 보이는 민자 암벽이다.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스카이라인은 자꾸 보는 사람을 향하여 무너져 내리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암벽 아래로 길이 있다는 것이 희한하다. 드디어 안부에 도착하면 오른쪽으로 다시 전망대가 나타나고 "추락주의" 팻말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전망대로 가서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흥미가 반감됐을 정도로 피로가 몰려온다. 계단형 오르막 길을 올라가지 못해 서너걸음 올라가다가 쉬고 또 올라가고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필자도 남방셔츠가 완전히 젖다시피 땀범벅이다. 이제부터는 록페이스의 뒤통수에 해당되는 부분의 급경사를 올라간다. 10여분 올라가면 왼쪽으로 전망대일 것으로 보이는 추락주의지점이 있다. 그곳이 아마 백양사 대웅전 앞쪽에서 보면 백학봉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수리지점에 해당될 것이다. 그 위에 올라갈 기운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산길이다. 그리고 정수리 지점에서 백학봉 정상까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이쯤 올라오면 과연 백학봉을 올라온 것일까 의심이 갈 정도로 주위의 풍경은 달라져 있다. 바위가 있어도 곧추 선 것은 없고 모두 드러누운 바위이고 그것도 바위주위는 흙으로 되어있고 울창한 활엽수 숲을 이루고 있다. 단지 동쪽 순창군쪽으로 산중턱에 한두군데 단애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722m봉을 거쳐 상왕봉으로 가는 길에는 암봉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암봉도 스카이라인을 이룬 부분은 둔중하기가 황소 잔등같다. 그러나 계곡쪽을 바라보는 방향은 높은 단애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백학봉의 흉내를 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높이는 20미터에서 30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제법 길쭉하게 병풍을 치듯 솟아 있어서 숲사이로 보이는데도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상왕봉까지 가는 사이에는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2,3개되고 주위의 조망이 시원하여 지루하지는 않다. 숲사이로 보이는 백학봉의 뒤통수에 해당되는 육산부분은 그 뒤쪽의 우람한 암벽을 예상하게 하는 것은 백양계곡쪽으로 도집봉쪽 산사면을 배경으로 암벽의 아웃라인의 일부가 보이는 것으로 짐작이 가능할 뿐이다. 상왕봉에 오면 백두대간의 영취산(남덕유산 남쪽)에서 시작되어 장안산, 마이산, 경각산, 묵방산, 고당산을 거쳐온 호남정맥이 내장산에 이르러 장군봉, 신선봉을 솟구치고 서진하다가 순창새재에서 남진하여 상왕봉에 이르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왕봉에서는 백학봉을 거쳐 동남쪽의 곡두재, 밀재, 추월산으로 이어진다. 이 능선은 전남북의 도계이기도 하며 판소리 가락이 틀려진다는 전라좌도와 우도의 경계이기다. 상왕봉에서 남서로 방향을 틀어 30분가량 걸어내려오면 안부가 나오고 여기서 운문암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산길이다. 안부에서 북서방향으로 내려가면 몽계폭포가 나온다. 이길로 내려가면 몽계폭포를 지나 전남대 수련원에 닿을 수 있다. 즉 남창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안부에서 운문암으로 내려오는 길은 단풍이 절정에 달한 곳이었다. 정상능선이 이미 만추의 풍광을 보여주었다면 이곳은 단풍이 한창인 곳이었다. 해가 상왕봉-백학봉 능선 스카이라인 바로 아래에 산그림자를 드리운 터라 계곡은 어둑어둑해졌지만 단풍은 오히려 은은한 빛을 발한다. 조금 내려오면 산길은 계단으로 변하여 더욱 편해지고 드디어 운문암으로 들어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사람이 없는 호젓한 산길..좌우를 둘러봐도 울창한 활엽수림대의 키큰 나무는 황색, 또는 황갈색, 중간키 정도의 단풍나무는 진홍색으로 온통 물들어 있는 저녁 어스름속에 불을 밝힌 단풍나무 천개아래로 낙엽이 수북히 떨어진 편안한 길을 터덜터덜 걸어내려올 때 사실 산꾼으로서 더 바랄 것은 없었다. 가을이 무르녹고 있는 백양계곡은 백학봉-상왕봉 능선의 길이에 비해서는 비교적 짧은 게 오히려 불만이었다. 청류암 갈림길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백양사까지가 2.6km였다. 이때가 5시 20분쯤 되었다. 30분이상 걸어내려오니 이른 오후 백학봉으로 올라가던 길이 왼쪽으로 보인다. 다리를 지나 비자나무숲속으로 들어섰을 때는 어둑어둑해졌다. 그때 백학봉 아래쪽에서 "야호"라고 외치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백학봉 산행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가 시간대중 없이 아마추어도 막무가내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어서 늦은 가을에는 해가 지자 곧 어둠이 오는 통에 애를 먹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아닌지...백양사 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어두워졌는데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고 플래시를 번쩍거린다. 매표소 옆 주차장까지 오니6시 20분이 가까워 온다. 1시 20분쯤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5시간이 걸린 셈이다. 여기에는 촬영시간이 적어도 1시간이상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저녁 식사는 주차장을 제공해준 식당(매표소 건너편-오른쪽)에서 된장찌개를 먹었다. 조그마한 접시에 고추장에 살짝 묻혀내온 당귀나물이 입안에 가득히 향기를 발한다.
사진: 백암산의 코스안내판.
|
백양사(白羊寺)
|
국립공원관리공단자료제공,백양사 설경, 박규영 |
<이명> 정토사(淨土寺)
<위치>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번지 백암산(白巖山)에 있다.
<소속>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연혁> 632년(백제 무왕 33)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양사라고 했다. 1034년(고려 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라고 이름을 바꿨다. 그 뒤 인정(印定)이 중창하고, 1350년 각진(覺眞) 국사 복구(復丘)가 3창했다. 그러나 그 뒤 환양(喚羊)이 주석하면서 매일 <법화경>을 독송하니 환양이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일이 많아, 그는 1574년(선조 7) 이 절을 중건하면서 절 이름을 다시 백양사라고 했다. 1786년(정조 10) 환성(喚惺)이 중건했고, 1864년(고종 1) 도암(道巖)이 중건했다. 이어 1917년 만암 종헌(曼庵 宗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헌은 30년 가까이 이 절에 주석하면서 불사에 진력하는 한편, 강원을 개설하여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이 절은 일제강점기의 31본산시대에는 본산이었으며, 현재는 말사 26개소를 관장하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약사암과 영천굴(靈泉窟), 1351년 창건한 청류암(淸流庵), 1981년 창건한 물외암(物外庵), 천진암(天眞庵) 등이 있다. 그러나 고려 때 복구가 창건한 운문암(雲門庵) 등 많은 암자들은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탔다.
<문화재> 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 소요대사부도(逍遙大師浮屠;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 등이 있다.
관 리 소 : 백양사 (061-392-7502)
내장산 국립공원 남부관리사무소 (061-392-7288)
개 요 : 내장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632년)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좌우에 맑고 찬 계곡물이 흘러내려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 가을 단풍을 비롯하여
일년내내 변화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천왕문과 소요대사
부도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도열하듯 서있는 숲길을 지나 백양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쌍계루가 눈에 띈다. 앞에는 계곡을 막아 만든 연못, 뒤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어
못물에 어른거리는 쌍계루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 같다. 쌍계루를 지나면 대웅전과 극락보전,
부도탑이 나온다. 백양사는 창건 당시 백암사였다가 고려 때 정토사로 바뀌었다. 조선 선조
때 환양조사가 불경을 읽을 때마다 흰 양이 설법을 들었다해서 백양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도 많이 배출했다. 일제 때 2대
교정(종정)을 지낸 환응, 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 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 등 근래에 와서
종정을 지낸 고승만도 5명이나 된다.
등산로쪽으로 올라가면 암자가 많다. 약사암과 운문암, 천진암 등은 경관도 뛰어나다.
절 입구에서 20분 거리인 약사암은 전망대 격으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절 경내와 맞은 편에는 난대성의 늘푸른나무인 비자나무 5,000그루가 군락을 이뤄, 천연
기념물 제 15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차장에서 절로 오르는 0.5km 구간에 우거진 수백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거목들과 비자림은 산림욕 하기에 더없이 좋다.
등산코스 : 1) 백양사(2.5km)-백학봉(0.7km)-구암사(2.5km)-덕흥리(5.7km)
2) 백양사(2.5km)-운문암(1.5km)-상왕봉(2km)-백학봉(1.3km)-학바위(1.5km)
3) 백양사(2.5km)-백학봉(0.7km)-입암산성(2.0km) |
현지교통 : 1) 정읍-사거리터미널 직행버스 이용/30분 간격/35분 소요
2) 광주-사거리경유-백양사행 직행버스/40분 간격/1시간소요
(사거리터미널에서 백양사 입구까지 20분 소요)
광주 - 백양사행 직행버스/40∼50분 간격/1시간20분소요
도로안내 : 1)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I.C에서 1번 국도로 진입 - 담양방면(9.4km)
- 북하면 소재지에서 16번 군도를 따라 조금 가면 왼편에 백양주유소가 나오는데
주유소 맞은편 길을 따라 3km 정도 가면 백양사가 나온다. 안내 표지판이 잘 돼 있어
찾기 쉽다.
2) 내장사 버스터미널 옆으로 나있는 삼거리 - 추령고개 - 복흥 3거리 - 백양관광호텔
우회전 - 백양사 (12.5km)
3) 장성읍에서 1번국도를 따라 정읍쪽으로 20.2km가도 역시 북하면 소재지
(이후는 위의 호남고속도로 이용시 방법과 같음)
현지숙박 : 업소명 전화번호 객실수 소재지
………………………………………………………………………………
뉴 백양 관광호텔 061-392-0651~5 57 북하면
호텔 백운각 061-392-7531 30 북하면
(민 박) 백양사 매표소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가인마을이 있다.
20여가구가 민박
* 민박문의 : 061-392-7740 (한봉운)
문 화 재 : 백양사 대웅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백양사 사천왕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
극락보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소요대사부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
비자나무 (천연기념물 153호)
향토음식 : 벌꿀로 만든 꿀술이 별식이다.
꿀과 소주를 적당히 섞어 삭힌 것으로 피로 회복에 좋다.
명 산 품 : 벌꿀과 솔잎차가 유명하다. 백암산 일대에서 토종꿀이 난다. 청류암에 있던 스님들이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마시기 시작한 것이 속가에 퍼져 명산품이 되었다.
정보제공자 : 1) 515-850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52-1
국립공원 내장산 남부관리사무소 한상식 님
2) 515-800 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 1061-2.
장성군청 문화관광과 공영갑 님
(061-390-7254 / 전송 061-390-7577)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http://www.buddhapia.com |
백양사 풍경
살짝 얼은 계곡
쌍계루(雙溪樓)
쌍계루(雙溪樓)는 절의 성보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식이며 백양사의 본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누각은 1370년에 붕괴된 이후 1377년에 복구되었으며 이 과정에 정도전, 이색 등이 기문을 남겼다. 특히 1381년에 작성된 이색의 '백암산정토사쌍계루기'에 따르면 이 곳에서 두 계곡의 물이 합쳐지므로 '쌍계루'라 이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백양사 홈페이지
지붕위의 눈이 녹다 만 대웅전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
극락보전(極樂寶殿)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1574년(선조 7) 승려 환응이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따르면 백양사 극락전불 양계서의‘문정왕후빈향축열서(文定王后賓香祝列書)’라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건물을 짓는 데 문정왕후가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판에 극락보전(極樂寶殿)이라고 씌어 있는데, 이 글씨는 동국진체라 여겨진다. 극락보전 안에 봉안된 후불탱화도 진경풍속화의 사실성을 가진 우수한 탱화이다. 이로 보아 조선 영조 · 정조 때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화기(畵記)에 '건륭 사십 몇 년'이라 손상된 채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건륭 40년대인 1775년에서 1784년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기본구조는 낮은 석조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으로 처리한 원기둥을 세웠다. 구조양식은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안쪽이 3출목, 바깥쪽이 2출목인 다포양식을 취하고 있다. 가구(架構)는 2고주 7량의 구조를 하고 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양쪽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단색으로 담담하게 처리하였다. 외부에서 보면 창호는 정면 가운데 칸에 빗살 3분합문을, 양옆 칸에 정자(井字)살 3분합문을 달았다. 맞배지붕이면서도 다포집으로 가구를 한 절충식 건물이다. 출처 / 백양사 홈페이지
백양사 유래
백양사는 1400여년전 백제시대의 고찰로 유구한 역사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이름이 높으며 또한 산내 10여개 암자 중 유서 깊은 운문암은 고려시대 때부터 납자들의 정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만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들이 그러하듯 백양사 역시 창건과 연혁을 전하는 자료가 충분하게 전하지 않는데다 정토사(淨土寺)· 백암사(白巖寺) 등의 다른 이름으로도 존재했던 사찰이기 때문에 그 역사에 관한 서술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백양사가 언제 창건되었으며, 그 창건주가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다음의 자료를 검토해 본다.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고려말 1337년(우왕 3)에 지었다는 '백암산정토사교루기(白巖山淨土寺橋樓記)'의 일부 내용을 보면, 오직 이 산은 장성군 북쪽 30리에 있는데 그 이름을 백암(白巖)이라 하였으며 암석이 모두 흰 색깔이라서 그렇게 이름 하였다한다. 석벽은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중첩하여 맑고 기이하며 웅장한 모습이 실로 이 지역의 명승지가 될 만하므로 신라 때의 어떤 이승(異僧)이 처음으로 절을 짓고 살면서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로 하였다.
중국 송나라 경평 연간(423~424)에 이르러 정토선원(淨土禪院)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그 문도인 중연선사가 이를 이어 전당과 문무, 방장실, 요사 등 80여 칸을 다시 지었다. 중연선사의 문도가 차례로 전해 오다가 일린(一麟)스님이 그 사찰을 주관하여 처음의 법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실린 '백암산정토산교루기'는 백양사의 창건 내용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이며 여기서 백양사 창건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창건은 신라 때 이루어졌고 창건주는 법명은 알 수 없지만, '이승'이라고 표현된 점으로 보아 상당한 이적행(異蹟行)을 해온 승려일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백양사의 창건 때 이름은 '백암사'였으며, 창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선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또한 창건 이후 중연선사와 일린스님에 의해 백양사의 법맥이 계속 이어져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정도전이 지은 이 자료의 모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가는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특히 백암사에서 정토선원으로 사찰명이 바뀌는 시기가 중국 남송시대인 5세기 초반이라고 서술한 부분은 시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대상이다. 이 시기는 신라의 불교 공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이며, 더욱이 그 같은 상태에서 신라 스님이 백제 영토에 들어와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양사의 창건주가 신라 스님이었다는 점 그리고 백암사와 정토선원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임에 분명하다. 극렬한 배불론자였던 정도전의 '백암산정토사교루기'가 백양사 창건을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사실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기도 하다. 또 이 기록은 이후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오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 내용이 좀 더 구체화된다.
일반적으로 통하는 백양사의 유래는 백양사는 백제 무왕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명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였고, 1034년 중연선사가 크게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백암산 산행 풍경
백암산 정상
홍련암~사자봉~백암산~백학봉~약사암~백양사~주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