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방송 매체
프로그램(개인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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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국에서 뉴스 매체는 재량권을 발휘했고 존중 받았다.
그들은 고유한 도덕적 책임을 반영했으며 전반적으로 온전하다고 여겨졌다.
사견을 섞는 것은 주요 신문의 논설멘에 한했다.
하지만 현 시대에 뉴스 보도의 암시적 객관성은 의심받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가속되었다.
논쟁은 일차적으로 이른바 자유주의자와 보수파 사이에서 벌어졌고,
여기에 왜곡된 편파적 비난이 가세했다
그 논쟁에는 상대적으로 양편이 있기 때문에, 양편은 물론 상대방에 대해 편견을 본다.
따라서 측정 수준들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할 때 유익하다.
고찰을 통해 그리고 여태껏 보고된 연구 데이터를 통해서 볼때,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관찰 결과 및 도출된 의견에서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듯하다.
편향은 에고 주조 및 그와 관련된 뇌 생리의 귀결일 뿐이다.
그래서 보도하는 측이 자신이 공감하거나 지지하는 바를 진술한다면 온전성은 유지될 수 있다.
선정이라는 단순한 행위가 이미 편집 기능이며,
선택한 장면을 1초 더 비춰 주는 것만으로 논쟁의 이쪽이나 저쪽 당사자를 강조해 줄 수 있다.
예컨대, '가해자'와 '피해자'는 사람의 관찰 지점이 어디냐에 달려 있다.
보다 심각한 오도하는 왜곡은, '공정해' 보이려는 순진한 시도의 귀결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뒤틀린 극단적 관점이 과도하게 조명되어
걸맞지 않은 중요성이나 의의를 부여받고,
그래서 그런 관점이 내재적 미덕보다는 주로 그 논쟁적 본성의 귀결로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판자들에 따르면" 이라는 반복되는 구절은 대개 가짜이고,
'비판자'라는 이들은 '익명'이다.(혹은 십중팔구 가상의 인물이거나)
일 인해 대중은 '비판자'들이 사회의 의미 있는 부분을 대표하다고 잘못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들은 인구의 아주 낮은 비육을 대표할 뿐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불균형하다기보다는 왜곡된 제출을 나타낸다.
그러한 현상은 세계 여론을 오도하며 심각한 계산 착오를 낳는다.
방송 뉴스는 전반적으로 청취자의 규모가 축소되었는데,
그것은 또한 편향 스캔들의 결과이기도 하다.
대중은 다른 뉴스원(인터넷 등)으로 돌아섰지만 케이블 뉴스는 크게 약진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폭스 뉴스인데,
특히 빌 오라일리의 '오라일리 팩터' 프로그램은 엄청나게 많은 펜을 확보하고 있다 (매주 14,000통의 이메일이 쇄도한다.)
오라일리는 온전성의 지표와도 같다.
그는 온전치 못한 것을 간파해 내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대략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오라일리가 어떤 공인이나 '대의'를 싫어하면 그것은 200 이하로 측정된다.
(의식 측정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하게도)
대신에, 그가 의견을 달리한다 해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거의 항상 200 이상으로 측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극좌 해설가들이 선호하는 인물은 200 이하로 측정되고,
그들이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인물은 200 이상으로 측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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