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안경내에 있는 휴형문화유산은 모두 유명하다. 별도 설명없이 사진만 올린다.
불국사 상징 같은 구조물, 여러 부분이 국보이며 보물이다.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가구식 석축(보물) 등이다.
연화교蓮花橋 와 칠보교七寶橋/ 국보
위 8단이 칠보교. 아래 10단이 연화교이다. 연화교 계단마다 연화문양이 그려져 있다.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만든 것으로 여긴다.
계단을 올라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이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표현이다.
가구식 석축(架構式石築) / 보물, 범영루
석축은 경내를 다듬기 위해 쌓았다.
범영루는 경전을 보관하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북이 있다.
청운교靑雲橋 와 백운교白雲橋 / 국보
위 16단 청운교는 청년을 상징, 아래 18단 백운교는 머리가 휜 노인을 상징.
자하문은 넘으면 대웅전이 나온다.
자하문, 도깨비상은 벽사의 의미이다.
자하문, 이 문양의 의미는 모르겠다.
불국사 당간지주 / 경북 유형문화유산
왼편은 통일신라 때, 오른편은 후대 어느 시기에 만든 것으로 여긴다. 쌍당간은 은한 것은 아니다.
다보탑 多寶塔 / 국보
대웅전 중심에서 동탑이며 높이 10.29m 특수한 이형탑이다.
석가탑과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1925년쯤에 일제가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탑에 4마리 사자상이 있었는데 3마리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일제가 강탈하였을 가능성이 100%이며 다행히 한 마리는 남았다.
경북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보물)도 4마리 사자상이 있었는데 2마리는 국립대구박물관, 2마리는 일본에 있다.
석탑에 사자상이 함께 있는 것은 간혹 있다. 네 모퉁이 한 마리씩 네 마리가 있는 경우는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위는 팔각이다. 팔정도를 의미하겠다.
아래는 사각이다. 사성제를 의미하겠다.
석탑은 만든 시기, 어떻게 이런 석탑을 상상하고 만들었을까?
이런 형식의 석탑은 다보탑이 유일하다. 그때 이를 만든 장인의 생각을 알고 싶다.
정교하고 화려한 석탑이다.
1916년 이전의 다보탑 모습(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 / 불국사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옴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釋迦塔) / 국보
높이는 10.29m,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 줄여서 ‘석가탑’이라 한다.
1966년 9월,도굴꾼이 탑을 손상시켜 12월에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의 사리함을 넣었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였다. 여러가지 사리용기과 유물을 찾아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었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한다.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의 머리장식을 본따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이는 부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도 한다.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지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다.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이 전설은 삼국유사에 있다. 아사녀가 몸을 던진 연못인 '영지'는 불국사와 가까운 곳에 있다.
강륜부가 없어도 아름다운 탑이다.
내가 본 삼층석탑 가운데 가장 균형미, 조화가 뛰어난 탑이다. 화려한 다보탑도 예쁘지만 이 탑은 아름답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이는 부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런 양식은 처음 본다.
1916년의 석가탑 모습
대웅전 앞 석등
신라석등의 양식발달사에서 전형양식(典型樣式)을 충실히 보여준다.
신라 수도였던 경주에 전하는 대표적인 석등이며, 전체 8각형의 평면구도를 한다.
신라석등 발달사상 제2기, 즉 8세기 중반에 만든 것으로 불국사 극락전 앞 석등과 함께 현 위치에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석등.
사리탑(舍利塔) / 보물
「불국사사적기(佛國寺事蹟記)」에 기록한 '광학부도(光學浮屠)'가 곧 이 사리탑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다.
현재로서는 여래의 사리탑인지 승려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둥으로 나누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하여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추녀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다.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여긴다.
1905년 어느 일본인이 도쿄 우에노(上野)공원으로 불법으로 옮겼다가 1933년에 반환하였다.
특이한 사리탑(또는 부도)이다. 탑신(몸돌) 네 면에 보살상이나 부처상을 조각한 것은 내 기억엔 처음이다.
위와 아래는 장구 모양이며 가운데는 구름을 형상한 것으로 생동감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