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율려(律呂)로 춤추는 살의 노래
---이순화의 시세계
장옥관(시인)
1.
인연이라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지금껏 시집 해설이나 발문을 거의 쓰지 않았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희준 시집(『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2020.)이 유일한 경우다. 시인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기꺼이 발문을 자청한 것이다. 이번엔 ‘유학산’이 인연이 되었다. 발문 청탁이 왔을 때, 유학산 자락에 사는 시인이라는 말에 두말없이 덜컥 승낙하고 말았다. 누대에 걸친 조상의 묘소가 자리 잡은 유학산은 내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유년시절 그 산을 마주보며 자랐고 성장해 얻은 직장이 그 너머였다. 죽어서 묻힐 장소도 그곳이다. 인근에 있는 인동이 내 본관이기도 하다. 일찍 부모를 여읜 내게 그 땅은 살붙이 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한미한 양반의 씨족 부락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감시망 속에 성장했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이순화 시 이해의 단초가 “뒷마당”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세 번째로 펴내는 작품집인데, 특이한 점은 세 권의 시집이 모두 하나의 덩굴로 엮여 있다는 것이다. “덩굴 숲”, “뒷마당”, “뱀”, “벌레”, “장닭”, “바람”, “바다”, “달”, “우주”, “춤” 같은 시어가 거듭 나오고, 시적 지향점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첫 시집에 「덩굴 숲 이야기」를 수록했는데 이번 시집에도 「덩굴 숲」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시 구절도 거듭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2시집에 “저릿저릿 / 젖줄 도는 소리 / 하늘은 저렇게 많은 새끼들 먹이고도 남을 큰 젖통을 달고 있다”(「여름」)란 구절은 이번 시집에서 “얘야 발바닥이 가렵구나/ 젖가슴이 저릿저릿 하는구나”(「덩굴 숲」)로 나타나고, 2시집의 “저놈의 장닭 구구구 마당을 구르는 천둥소리”(「한낮」)는 이번 시집에서 “저 놈의 장닭 // 마당을 구르는 뇌성 / 구-구 / 지렁이 목덜미 물고 늘어지는”(「저 놈, 햇살이」) 구절로 변용된다.
시집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시 세계의 매듭을 짓는 게 통상적 경우다. 그런데 이순화의 경우, 첫 시집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덩굴처럼 거듭 확장한다. 어쩌면 동어반복이나 자기 복제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겠지만, 이순화 시인의 경우는 달리 봐야 한다. 작품의 완결성이나 형식적 미학을 추구하기보다는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열정을 받아내는 도구로써 시를 생각하는 듯하다. 그 때문에 “당집을 나온 스물둘 당고모”(「저건 필시」)의 주술적인 음성과 “나를 버려줘 참혹하게 / 통쾌하게 손 놔줘”(「백이십억 년의 고독」)와 같은 날것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는 시인의 격렬한 언술을 따라가면 독자들은 저절로 시인의 몸이 되어 텍스트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개성적인 면모를 깊이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뒷마당”으로 들어가야 한다.
2.
첫 시집에서 이번 시집까지 이어지는 관심사는 뒷마당이다. “하루의 낮이 앞마당이라면 하루의 밤은 뒷마당이라 이름 짓겠다. 눅눅한 뒷마당이 궁금했다. 산수 좋아 절에 드는 날에는 번듯한 대웅전을 두고 먼저 뒷마당부터 돌아가 살폈다. 그게 내 일과가 되었다.” 이번 시집에 적힌 시인의 말이다. 시인에게 뒤안은 “증조할머니가 있고 증조할머니의 증조할머니가 있고 증조할머니의 증증…… 소리 없는 증조할머니들이 꽃잎처럼 날리”(「명랑한 뒤안」)는 공간이다. 또한 그곳은 “염천 사루비아 자지러지게 피어오르고 뜨거운 앞마당 가로질러 뒷마당으로 사라진 뱀, 할머니가 데려간 그 길다란 뱀이 뒤안서 가족 이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공간이며 “증조모를 둔 증조모의 증증…… 얼굴도 없는 증조모들이 흩날려덮는”(「같은 시」) 공간이다.
햇빛이 주재하는 낮의 세계가 아버지의 법이 주관하는 이성의 영역이라면 달빛이 내리는 밤의 세계는 어머니의 본능이 들끓는 무의식적 공간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해를 앞세우고 산이 오고 있다
종갓집 들어서는 집안 어른같이
마을 인사 나서는 장년같이
차례상 앞으로 다가앉는 공손한 자손같이
높은 산이 오고 있다
한 사람 뒤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층층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끄트머리 내가
굽이굽이 둥근 능선 그리며
수굿이 장엄하게
한 세계가 오고 있다
―「산이 오고 있다」 부분
샤먼의 뜨거운 피를 가진 시인이 가부장적 체제가 강고한 삶의 질서를 어찌 쉽게 견딜 수 있었으랴. 지난 시집을 들춰본다. “곰작거리다 / 눈 떠 보니 / 나를 지켜보고 있는 / 이렇게 큰 눈동자 / 내가 눈동자 속에 갇혀있다…(중략)…멀리 산릉선 / 바람에 쓸리는 쓸쓸한 별자리까지 / 꼼짝없이 눈동자 속에 갇혀 내 꿈도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 이렇게 / 이렇게 큰 눈동자”(「그믐」)라는 구절이 나온다. 큰 눈동자는 곧 초자아를 일컬을 테다.
먹구름은 먼 산 정수리 휘감아내리고 우렛소리는 일곱 살 내 뒤를 쫓아 열 스물 마흔 골짝으로 회초리 들고
무릎 아래 풀벌레 소리는 졸졸 하염없는
아버지 광막한 天網 속에서 날 꺼내주오
오늘은 뒤뜰로 돌아가 쑥부쟁이 묵은 꽃대를 자르고 오동나무 썩은 밑동 베어내고 장독대 호박덩굴 둘둘 말아 거두겠습니다
이제 길고 긴 어둠을 기다리나니 아버지 지붕 위 붉은 수탁은 쫒아주시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 광막한 시간 속에 날 꺼내주오
긴 머리칼 하얀 손 차디찬 내 심장을 이 끝없는 천망 속에서 꺼내주오
―「아버지 망막한 천망天網 속에서 날 꺼내주오」 전문
시인은 “뒤뜰로 돌아가 쑥부쟁이 묵은 꽃대를 자르고 오동나무 썩은 밑동 베어내고 장독대 호박덩굴 둘둘 말아 거두”어 드릴 테니 “지붕 위 붉은 수탁”을 쫒아주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 광막한 시간 속에” 갇힌 자신을 꺼내달라고 주문한다. 아버지의 법이 지배하는 천망에 갇힌 “긴 머리칼 하얀 손 차디찬 내 심장을” 꺼내달라는 것이다.
이 낮의 세계를 견딜 수 없어 시인은 “마침내 둥근 방을 버리고 집을 나”온다. 하지만 밤의 공간인 뒷마당은 “가시덩굴이 칭칭 감고” 검은 구멍을 빠져나온 구렁이가 유혹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둥근 방”을 탈출한다. 그리하여 “평화를 두고 송곳으로 두꺼운 살갗을 후벼파는 고통은 황홀했다”(「인형의 집을 나와서」)고 말한다. 그것은 “영혼의 뒷마당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골담초가 노랗게 익어가는 잎새달
엄마는 드디어 문을 닫아걸었고
영혼의 뒷마당으로 들어서는 문을 알아낸 거야
사월이 노랗게 익어가는
내 늑골 속 비비새는
비비 비비 울고
―「뒷마당」 부분
“영혼의 뒷마당으로 들어서는 문을 알아낸” 엄마는 시인이면서 또한 할머니. 누대에 걸쳐 아버지의 법에 지배당했던 뒷마당에 젖줄을 댄 여성들이다. 곧 에로스적 본능을 스스로 억제하고 자유를 저당 잡힌 영혼들이다.
연신 허리 구부리며 할머니는 두 번째 남자 꾀 내듯
휘파람 쉬쉬 불었고
할머니 동그랗게 오므린 입 구멍이 뱀 구멍처럼 깊고 캄캄해서
엄마는 공손하게 입 막고 웃었다
(중략)
대낮이었다 한밤중에 휘파람 불면 뱀이 몰려든다며
할머니는 나를 돌아봤다 눈구멍이
회반죽 욱여넣은 것처럼 냉엄했다
―「여름 마당-늙은 여자」 부분
“뒷마당”은 본능적 무의식의 공간인데, 그곳에선 “입 구멍이 뱀 구멍처럼 깊고 캄캄”하지만, “가시덩굴 칭칭 감고”도 꽃을 피우려는 욕망을 꺾을 수 없다. 거기에서 “꽃망울 벙글어 / 피톨 미쳐 날뛰는 소리”를 듣는다. 또한 “몸에 퍼런 물” 흘러 “덩굴 숲 우거지”고 “울컥, 헛구역질 시퍼런 달빛 쏟아”(「덩굴 숲」)낸다. 아버지가 ”불길하다며 도끼 들고 백일홍 꽃그늘 찍어내”자 “꽃그늘 없는 뒷마당은 비명처럼 넓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매일같이 가시를 낳았고 가시는 / 무럭무럭 자랐다 / 아름다운 가시 / 엄마는 가시를 끌어안고 손톱 깊이 / 밀어 넣었다 마침내 // 뒷마당은 영원한 밤으로 우거졌고 / 축축하게 젖은 가시덩굴 속에서 나는 / 휘파람 쉬쉬 불렀다”(「여름 마당-휘파람 소리」)고 말한다.
3.
관능이 넘쳐나는 뒷마당의 덩굴 숲에서 시인은 고통과 더불어 황홀을 경험하지만 초자아인 “큰 눈동자”의 손아귀를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다. 무의식적 본능은 상징적 아버지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축축한 뒤뜰 뱀 구멍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
못 볼 걸 본 거지
당신 휘파람 불며 푸른 장화를 신고
소리쟁이 풀을 한 아름씩 베어내고
악머구리 끓듯 퍼런 냄새가 뒤뜰을 뒤덮었지
뒤뜰은 터질 듯 터질 듯 배가 불거져서
못 볼 걸 본 거야
누가 자꾸 내 발목 칭칭 감는 거야
바람도 없는데 시퍼런 바람이 바람은 갓 태어났을 때는 연둣빛이랬어 반짝반짝 빛나는, 어른 돼 퍼렇게 독 오른 거라고 당신 푸른 장화 시퍼렇게 풀독 오른 것처럼 그렇다고 파충류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바람이 파충류라니
뒤뜰을 돌아 나오는 바람 소리
우물 옆에서 처마 밑에서 창살에
어리는 저 서늘한 소리
―「소리쟁이 풀꽃」 전문
푸른 장화를 신은 당신은 휘파람 불며 “소리쟁이 풀을 한 아름씩 베어내고” 뒤뜰에는 “악머구리 끓듯 퍼런 냄새가” 뒤덮는다.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시각과 청각, 후각과 촉각이 뒤범벅된 공감각적 이미지. 근접 감각의 이미지가 강렬한 느낌을 전해준다. 놀라운 건 바람을 파충류로 인식하는 점. 시인은 자신의 발목을 칭칭 감는 파충류가 바람이라고 말한다. 뱀을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숨결을”(「영등할망-소금기 배어나는 해안은 위험해) 담은 생명의 존재로 여긴다. 뱀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우리는 서정주의 「화사(花蛇)」에서 이미 보았다. 미당의 「화사」에는 대상과 주체가 떨어져 있지만 이순화의 “뱀”은 주체와 한층 밀착되어 있다. 낮과 밤, 꽃과 뱀의 양가적 요소를 하나로 잇는 것은 산기슭에 지은 덩굴 숲에 숨어들어 한 마리 벌레가 되는 꿈을 꾸는 일. 벌레가 된다는 건 “새로 태어나는” 일이다. “밤마다 손톱을 깎”아 하얀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손톱이 애벌레처럼 고물거리고 // 새로 태어나는 거”(「아물지 않게 아무렇게」)라고 말한다.
새로 태어난 시인은 내면의 불덩어리를 식히기 위해 “영등할망”을 어깨에 앉히고 “해명(海鳴) 우는 바다의 캄캄한 목구멍 속”을 걷는다. “중세의 목구멍 속”을 지나 “망자들이 깨어나는 시간”을 걸어 “여관방 까무룩한 전등불 아래 / 불길한 해명을 베고 누워”(「붉은 달」) 밤의 서늘한 심장에 매달아 놓은 불덩일 바라본다. “천 개의 태양이 뜬 밤”에 남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소식 없”어 “꽃들은 하루가 멀게 하혈하고” “어두운 바다 끓고 있는 수프 속에는 무뇌증 아가들이 동동” 떠 있다. 그때 비로소 “고아가 되어” 자유를 얻는다. 그래서 “나를 버려줘 참혹하게/ 통쾌하게 손 놔줘”(「백이십억 년의 고독」)라고 외친다.
이 같은 역설적 발상은 “어디로 가나 푹푹 빠져드는” 밤의 어둠에 “달을 매어놓고” 가시를 키우는 일로 이어진다. “가시를 키우는 일은 불경하고 황홀한 일”이며 그것은 “차가운 심장에 알전구를 켜”는 일이다. “어둠으로 이어진 이런 벼랑 같은 밤”에 “붉은 가시를 깊이 / 더 깊이 밀어 넣”으면 “불결하게 순결하게 더없이 황홀하게” “붉은 알전구를” 켠다. “정맥 속에는 검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 뇌수는 검은 물로 출렁거리고 / 검은 달 아래 헛구역질”하는 밤을 견뎌 새벽을 맞이하면, “순결하게 황홀하게 서럽고 통쾌하게”(「검은 새가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쁜 가시를 낳을 거라고 말한다. 부정적 이미지인 뱀을 긍정적 바람으로 바꾸듯이 가시를 긍정적 존재로 바꾸는 전도된 상상이다.
산기슭의 덩굴 숲에서 하루라도 밤하늘을 보지 못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시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즐겨 읽는다는 시인은 밤마다 대우주의 공간에 자신을 펼쳐놓는다. 그때 우주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낀다. 파도와 바람과 별, 대자연과 내면의 열정이 어우러져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춤사위가 그것이다. 그럴 때 시인은 “명랑한 뒤안”에서 “쓸쓸하다는 말 대신에 /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우리 춤춰요」 춤을 추자고 권유한다. 상상해본다, 유학산 자락에 지어놓은 “덩굴 숲”에서 매일 밤 대우주의 회전무(回轉舞)에 맞춰 맨발로 춤추는 아프로디테. “큰 눈동자”의 속박에서 벗어난 “뒷마당”의 검은 밤, 차가운 심장에 잉걸불을 지피고 황홀하게 아프게 추는 춤. 타오르는 불꽃 한 자락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몸짓, 우주의 율려로 춤추는 살의 노래를 듣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
이리 슬픈 노래 들어보셨나요
나는 당신의 기타줄
나는 당신의 악보
고개 들어 나를 퉁겨봐요
강물은 출렁출렁 춤추고
산맥은 넌출넌출 두 팔 흔들고
아침 햇살은 관목숲 조율공
바람은 공중에 조율사
나는 당신의 아름다운 기타줄
나는 당신의 슬픈 악보
나는 커튼 새로 스미는 달빛
나는 들창문을 두드리는 찬비
자 고개 들어 나를 퉁겨봐요
심장은 쿵덕쿵덕 춤추고
바람은 훨훨 두 팔 흔들고
나는 당신의 손끝에서만 울리는 기타줄
나는 당신 영혼을 훑고 가는 눈물 속에 악보
저 하늘의 별들도 잘그랑잘그랑
기타줄을 울리고 있는 걸요
우리는 저마다의 기타줄
고개 들어 우리의 기타줄을 울려봐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
이리 신나고 슬픈 노래 들어보셨나요
―「우리는 저마다의 기타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