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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 16. 야곱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마 1: 16. 야곱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
1] 야곱(<영> Jacob <히> 야아코브 <헬> 야코브)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요셉의 아버지(마 1: 15-16. 참조. 눅 3: 23).
2] 요셉(<영> Joseph <히> 요세프, 야호세프 - 여호와여 더하여 주소서, 여호와여 번성케 하소서)
마리아의 남편이며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호적을 하기 위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갔으며, 그 곳에서 애굽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그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에 관한 자료는 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앞부분에 나타나 있으며, 마가복음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는 두 번 언급되어 있다. (요 1: 45. 6: 42, '요셉의 아들 예수').
일반적으로 요셉은 예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요셉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수님의 족보에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나타나 있다. (마 1: 2-16. 눅 3: 23-38).
유월절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점으로 미루어 보아 요셉은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것 같다(눅 2: 41).
3]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요셉의 왕족 혈통은 밝혀졌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의 아버지 요셉을 헬리의 아들로 보고 있다(눅 3: 23). 이 난제에 대해 초대교회 전승들은
(1) 맛단에게 야곱과 헬리, 두 아들이 있었다.
야곱은 외딸 마리아를, 헬리는 요셉을 각각 낳았다.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함으로써 요셉이 야곱의 법적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Chagig).
(2) 자손 없이 죽은 야곱의 혈통을 잇기 위해
동생 헬리가 형수를 취하여 요셉을 낳게 했다고 한다(Eusephus).
이러한 설들 중에 첫 번째 견해가 더욱 환영받고 있다(Carr). 이로 보건대 누가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으며, 마태는 예수의 왕통에 관심을 둔 것으로 이해된다.
마태 족보는 예수의 법적 부친으로서 요셉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혈연적으로는 요셉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다윗 혈통의 왕통을 합법적으로 이어받고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면서도 자손이 아닌 신비한 진리가 존재한다. (22: 41-46 참조).
4] 마리아(<영> Mary <헬> 마리암, 마리아, <히> 아람 미르얌)
예수의 어머니, 요셉의 아내(마 1: 16).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목수인 요셉과 정혼. 요셉과 결혼하기 전에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눅 1: 26-28, 참조. 마 1: 18).
그 후 친척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엘리사벳은 천사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눅 1: 39-45).
마리아는 요셉과 함께 여행 하였다. 로마의 아구스도 황제가 내린 인구 조사령 때문이었다(2: 1-7). 40일 후에 율법대로 마리아의 정결 예식을 행하기 위하여 아기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2: 22-24. 참조. 레 12장).
헤롯의 영아 살해 사건을 피하여 애굽으로 건너갔던 때가 이 일 후였을 것이다. (참조. 마 2: 16-18).
애굽에서 돌아온 후 마리아의 가족은 나사렛에 거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이었다(마 2: 19-23, 참조. 눅 2: 39). 예수님이 열두 살 되셨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유월절 기간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에 그들은 예수님이 같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급히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으며, 사흘 만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였다(2: 41-47). 마리아의 책망에 예수님의 대답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일깨워주었다(2: 49).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부모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실 일(또한 그 일이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2: 35)에 대하여 많이 들어왔으며 관심도 있었다(2: 19, 51). 그러나 많은 의문도 있었다(참조. 2: 33, 50). 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지자, 예수님이 마리아의 사생아였다는 소문이 퍼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주석가도 있다. (참조. 요 8: 41).
성전 사건 이후에는 요셉이 성경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리아는 과부가 되었던 것 같다. (참조. 요 6: 42). 마리아는 예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처음으로 이적을 행하도록 유도하였다(요 2: 1-11).
예수님은 얼마 동안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것 같다(2: 12). 후에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마 3: 21) 예수님을 찾으러 온 적이 있었다. (마 12: 46, 막 3: 31-32, 눅 8: 19). 가족들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자기의 가족들로부터 자신을 분리 시켰다. (막 3: 33-35, 참조. 눅 11: 27-28).
이 사건 이후부터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마리아의 모습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가 예수님의 실제적인 제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시 마리아가 등장한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그녀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요 19: 25-27).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은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자들과 함께 있었다. (행 1: 14).
로마 가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로마 가톨릭은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였으며, 그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머니(헬. 데오토코스)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녀를 그리스도인과 하나님 사이의 첫 번째 중보자라고 본다.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동정녀 설의 근거는 마 1: 18-23, 눅 1: 31-35, 갈 4: 4이다.
자기가 주의 계집종이라는 그녀의 믿음이(눅 1: 38) 처녀로 지내게 했다는 주장은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주장을 로마 가톨릭에서 교리화 시켰다. 따라서 예수님의 동생들(마 12: 46, 13: 55, 요 2: 12, 7: 3-5,10, 행 1: 14, 고전 9: 5, 갈 1: 19)은 예수님이 태어난 후 마리아에게서 낳은 아들들이 아니라(눅 2: 7. 참조. 1: 25), 예수님의 사촌들이거나 요셉의 전처소생들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로마 가톨릭의 주장이다.
마리아는 무죄하신 예수님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그녀 역시 죄가 있을 수 없다고 로마 가톨릭에서는 믿어왔다. 그래서 특별 은총에 의한 마리아의 무죄성이 교리화되었으며(이 교리는 1439년 이전부터 주장), 마리아 자신도 무염시태에 의하여 출생되었다고(이 교리는 1483년에 교황의 인가를 받았으며 1854년에 공포)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교리에 따른다면 예수님의 무죄는 어머니에게서 기인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심지어 마리아의 육신까지도 신격화시켜, 이 땅에서 썩지 않고 하늘로 올려졌다고 가르친다(이 교리는 4세기 초기부터 나타났다. 1950년 교황에 의하여 공포). 더구나 로마 가톨릭교회의 내세에 관한 교리에서 마리아는 유일무이하고도 절대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 이유는 그녀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순종의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눅 1: 38을 로마 가톨릭에서는 순종의 최고 모델로 제시한다).
이러한 이유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마리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라고 로마 가톨릭은 믿고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연합에 근거하여, 마리아는 인류의 중보자라는 독특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열린 바티칸 제2 공의회 이후부터 로마 가톨릭에서도 마리아의 신격화에 대한 생각이 약간씩 축소화되고 있다. 물론 마리아는 구원사 가운데서 은혜를 받은 자로서 또는 여자 중에 복이 있는 자로서(눅 1: 28. 42)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던 믿음의 여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녀를 신격화시킬 만한 근거는 성경에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5] 마리아에게서 나시니라.
'요셉'이 예수를 '낳고'로 기록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란 단정 어구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생식적 노력을 배제하는 동시에 예수의 '처녀 탄생'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처녀 탄생을 반박하는 자료로 활용되는 '시내 시리아 사본'(Sinaitic Syriac Version)에 기술된 '처녀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는 기록은 단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태가 기술한 족보 전체에 걸쳐 '...를 낳고'의 형식, 즉 '인간의 성적 결합을 통해 낳았다'라는 동사 '겐나오'(*)로 일관 되어 오다가 여기서는 그 사용이 그친다.
대신 '나시니라'라는 뜻의 '에겐네대'(*), 곧 능동태인 '겐나오'와는 달리 수동태 동사로서 인간이 낳은 것이 아니라 인간은 단지 출생의 도구 역할을 했을 뿐임을 강조한 말로 전환되고 있다.
이 동사의 주어는 분명 예수 자신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육체적으로는 '성령으로 잉태'한 여인(18절) 마리아에게서 '나시니라'라고 말해지고 있다.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합법적인 후손임을 확보해 놓은 것처럼 그리스도가 인간의 혈통(씨)을 의지하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력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마리아'란 이름은 '높여진 자'란 뜻의 히브리어 '미리암'(*)의 헬라식 음역이라고도 하고, '괴롭다', '쓰다'는 뜻의 '마라'(*)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룻 1: 20). 하여튼 어떤 것이 되었든지 예수 수태(受胎)의 전후 상황과 조화가 되는 이름임이 틀림없다.
6]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의 제 2명(Second name)으로서 예수께서 메시아의 직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드러낸 명칭이다(1, 21절 참조).
7] 족보에 대한 신뢰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의 법적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다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법적 부친인 요셉으로부터 올라가면서 요셉, 헬리, 맛단, 레위로 이어지고, 또한 레사에게서 스룹바벨로, 또한 나단에게서 다윗으로 이어 올라간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족보들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아마 다음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오늘날도 더러 그러하지만, 옛 시대에는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일이 있었다. 그 한 예로 사도행전 1: 23이다. 거기 보면 가룟 유다 대신에 사도 후보에 올랐던 자 중에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었다. 그러므로 이름은 달라도 같은 사람인 경우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 옛 시대에는 빈번히 양자(養子)나 수혼(嫂婚, Levirate marriage)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혼은 혼선 같아 보이는 족보를 설명해 줄 수 있다.
셋째로, 어떤 이들의 추측대로,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중요한 인물은 요셉이 아니고 마리아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두 족보 간 차이의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두 개의 족보가 다 진실하고 정확함을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 저자의 진실성을 믿고 성경의 권위성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태의 증언이 참되다고 믿는다.
성경의 한 부분을 부정하면 그 나머지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한 부분을 믿으면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다 믿고, 그대로 다 소망하고, 그대로 다 행해야 한다.
사실, 이럴 때에만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소망과 위로와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불신앙은 모든 영적 복을 가로막는다. 성경을 믿는 자가 되자.
8] 고난의 역사 ( 1: 12-16 )
(1) 암흑의 시대
① 포로시대
여고냐(여호야긴)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간 것은 제2차 포로 때로서(B.C.597)로부터 9년후의 일이다. 2차 포로때에 여고냐와 왕자, 관원, 중요 인물들 3,023명이 사로잡혀 갔다.
* 렘 52: 28-30 –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또다시 시드기야 왕 때에 시드기야 왕을 비롯하여 832명이 사로잡혀 갔는데, 그것이 제3차 포로 때로서(B.C. 586) 이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불타 버렸다.
* 왕하 25: 8-12 –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그로부터 5년 후인 B.C. 581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745명을 다시 사로잡아 갔는데 이것이 제4차 포로였다. (렘 52: 30)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전후 25년간 4차에 걸쳐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유대의 역사는 제3차 포로 때, 즉 B.C. 586년부터 539년까지 바벨론 왕국에 속하여 그 후 B.C. 539년부터 323년까지 바사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② 귀환과 성전 재건
바사 왕 고레스는 대 유대인 정책에 있어서 매우 관대하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도록 조처했다.
* 스 1: 1-2 –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룹바벨(12절)은 약 5만 명의 동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제1차 포로귀환) 이 해가 B.C. 537년으로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바벨론 포로 70년이 된 해였다. (1차 포로: 606)
스룹바벨의 영도 아래 성전 재건에 지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제사장 여호수아(예수아), 선지자 학개, 스가랴, 그리고 서기관 에스라 등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귀환한 그 이듬해부터 (B.C. 536) 성전 재건에 착수하여 성전지대를 놓았으나 포로 기간 중, 유다에와서 살게 된 이방인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 스 4: 1-24 –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11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12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15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16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17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18 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19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20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21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22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2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24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16년 후인 B.C. 520년에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었다.
* 스 5: 1- 6: 12 –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13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14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15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16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6: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규빗으로 하고 4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5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 은 그릇들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 안 각기 제자리에 둘지니라. 하였더라. 11 내가 또 명령을 내리노니 누구를 막론하고 이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의 집은 이로 말미암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12 만일 왕들이나 백성이 이 명령을 변조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을 헐진대 그 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지어다 하였더라.
이 제2 성전이 준공된 것은 B.C. 516년이었다.
③ 선지자의 예언이 단절된 시대
선지자 말라기를 마지막으로 유다에는 예언 활동이 끊어졌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게 된 어두운 시기가 약 400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동안 유다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B.C. 323-166), 약 100년간의 마카비 독립 활동 시대를 거쳐 (B.C. 166-63) 로마에게 정복된 것이 B.C. 63년이고,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B.C. 4년에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 땅에 탄생하게 되었다.
여고냐 – 스룹바벨 -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본문의 족보는 유다 왕국이 멸망 당한 후 580여 년의 긴 암흑시대를 지나 역사와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나타내고 있다.
(2) 고난의 역사가 갖는 의미
① 역사의 원인
본문의 배경이 된 유다의 역사는 사로잡힘(포로)과 정복당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 신 28: 45-46 – 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그들은 우상 숭배를 했기 때문이다.
* 왕하 17: 6-12 – 6 호세아 제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아세라 상을 세우고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 대하 36: 20-21 – 20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이러한 원인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격노케 한 죄악으로, 그 결과는 수치와 고통과 자유의 상실이었다.
* 스 5: 12 -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 스 9: 7 -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왕국이 멸망하고, 사로잡히고, 정복당한 이 처절한 비극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긴' 죄악 때문이었다.
* 사 1: 4 –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은 사람을 징계하신다. 그러나 이 징계에는 깊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다.
② 징계의 의미
범죄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원천적으로 사랑에 기인한다. 인간은 수치를 당할 때 분발하게 되고 고통 속에서 연단되고 정화되어 가며, 자유가 상실되었을 때 비로소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바벨론 포로 기간 중, 유대인들은 깊이 참회하였다. 그들은 곳곳에 회당을 세우고 그들이 멀리했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율법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로기간 중 유대 백성들은 '율법의 백성'이 되었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의 포로 기간이 차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신앙을 부흥시킬 수 있었다.
총독 스룹바벨, 제사장 여호수아, 선지자 학개, 스가랴 그리고 서기관 에스라, 행정가 느혜미야 등의 유능한 민족 구심체들이 이때에 활약을 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의 소원이던 성전이 재건되고, 예루살렘 성은 수축 되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열심히 율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시작된 신앙부흥은 100년이 못 가서 위선적인 외식 종교들로 인하여 다시 타락하였다.
* 말 1: 1-14 – 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 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 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선지자 말라기 이후 400년간 하나님은 이 백성들에 대하여 침묵하시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렸으며, 유다 백성들은 어둠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 역사의 어둠과 하나님의 침묵은 이 400년 동안에 위대한 빛과 결정적인 구속 역사를 준비하신 것이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이다. 빛은 어둠 속에서 창조되는 것이며(창 1: 2-3), 위대한 생명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 잉태된다.
* 창 1: 2-3 –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3) 메시야의 도래
① 그리스도의 진정한 족보
우리는 본문이 보여주는 족보의 마지막 의미를 찾아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분은 요셉이라는 족보상의 아버지를 두었지만 요셉이 그의 실제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인간적인 아버지가 없으시며, 남자의 씨가 없이 탄생하신 진정한 여자의 후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족보는 엄밀히 말해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아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하여 본문의 족보가 그리스도의 족보임을 선언했을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신화나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실제 2천년 전에 이 땅에 존재하셨던 실존 인물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그가 유대의 전통적인 혈통을 타고 탄생하신 분임을 증거 한다. 주님은 신화나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분은 2천년 전 이 땅에 살아계신 분이셨다.
우리는 그분을 믿되 죽은 예수가 아닌 산 예수, 유대인의 왕으로 나셔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그분을 믿어야 한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성령에 의한 것이다. (마 1: 18-20) 예수 그리스도의 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 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음으로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 히 7: 15-17 –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보내심을 받음으로써 선지자가 되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모든 육신의 혈통을 초월한다.
* 요 1: 12-13 –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분은 변화되었다.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분에 걸맞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가마귀와 백로가 함께 할 수 없듯이, 우리는 세상과 함께 할 수 없으며, 세상과 짝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에 알맞게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예수의 족보는 우리에게 여기까지 강조하고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