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했던 관상가들 김선구
조선시대 탁월한 영의정의 한사람인 오리 이원익 대감은 키가 너무 작아서 볼품이 없었다. 중국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 뒤꿈치가 한 치 높은 짚신을 신고 나갔다. 중국의 사신이 그를 보고서 “키가 한 치만 낮았어도 일국의 재상감인데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한다. 무엇을 어떻게 보고 평가했는지는 모른다. 본인만이 알고 있는 관상술의 비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원군의 책사 중 박유붕이란 관상술사가 있었다. 백운학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관상가였다. 그는 대원군의 둘째아들 명덕도령이 장차 왕이 될 것임을 예견했다. 뿐만 아니라 내방객의 얼굴과 행동을 보고 성격과 특기를 알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만경 두씨와 혼인하였는데 처가에서 임진왜란 때 이여송의 책사였던 두사충의 풍수서와 관상서를 입수하여 공부하였다. 비술이 담긴 책을 통하여 관상술을 익힌 셈이다. 그럼에도 훗날 대원군이 몰락할 것은 예견하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그의 최후는 비참하였다고 한다.
나는 대학에서 동물심사기술을 배웠다. 동물의 외모는 신체구조를 표현하고 있고, 신체구조는 생리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동물의 외모를 통하여 건강상태나 능력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우수한 동물의 선발기준을 학문적으로 정립시켰다. 동물들의 골격상태를 보고 성장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고, 체형을 보고 고기생산능력을, 유방의 모습을 보고 젖 생산능력을 예측 할 수 있다. 이것도 동물을 대상으로 한 관상술의 한 분야인 셈이다. 학문이지만 오랜 경험을 통하여서만 그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관상술이란 원래 사람의 외모적 특징을 가지고 능력과 운명을 판단하는 기술을 말한다. 사람을 보는 안목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진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예쁜 얼굴을 보면 호감이 간다. 가냘픈 모습을 보면 동정심이 가고, 흉측한 모습을 보면 몸서리가 인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관상가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타고난 기질이나 훈련의 결과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을 접하다보면 사람을 보는 안목이 생기고 용인술을 터득하게 된다. 그래서 경륜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관상술은 알게 모르게 많이 응용하고 있다.
명의는 신체의 병을 치료하는 의술뿐만 아니고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 출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환자를 긍휼하게 여기는 심성(心性)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환자의 모습에서 그 마음을 읽어내는 심안(心眼)이 열려 있어야 할 것이다. 심안이 열려 있다면 그는 위대한 관상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안을 여는 일! 그것은 타고난 능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오랜 수행과 수양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며칠 전 태백산 부석사를 탐방하였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사찰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특히 유명하다. 무량수전 앞에서 먼 산을 바라보면 겹쳐진 능선들이 그림보다 더 곱게 펼쳐져 있다. 수필가 최순우 님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적고 있다. 기둥의 높이와 굵기, 지붕추녀의 곡선과 조화, 문지방과 문창살의 형상까지 관찰하고 부처님의 마음을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낸 모습이라고 찬탄하고 있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사물을 대하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자연을 보는 탁월한 관상가의의 눈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생각의 폭을 넓혀보면 보면 풍수지리도 자연을 상대로 한 관상술의 한 방편이란 생각에 미친다. 부석사 절터를 점지한 의상대사 또한 탁월한 관상가의 눈길과 마음의 소유자였다고 보여 졌다. 사람을 보고 심성을 살피는 것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여 자연의 형상들을 살피는 것과는 서로 상통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조선의 창업을 도왔던 무학대사는 풍수에 능하였다. 경복궁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정도전과의 논쟁이 유명한 일화로 후세에 까지 전해지고 있다. 자기를 보고 쥐새끼처럼 보인다는 이성계의 조롱에 무학대사의 대답은 부처의 눈에는 모두가 부처님으로 보일 뿐이라 하였다. 이 말의 이면에는 쥐새끼의 눈에는 쥐새끼만 보인다는 조롱이 담겨있다. 해학과 지혜가 넘치는 답변이다. 뛰어난 관상가의 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사명대사가 묘향산에 주석하고 있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를 찾아갔다. 스승의 방으로 들어서려고 한 발짝을 내딛는 순간 서산대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의 손안에 잡혀있는 새 한 마리를 들어 보이며 “내가 이 새를 죽이려 하는가? 아니면 날려 보내려 하는가?” 그에 대한 사명대사의 대답은 “내가 내 디딘 이발이 방으로 들어가기 위함인가? 아니면 되돌아가기 위함인가?”였다. 질문 내용에 집착하면 답이 없다. 서산대사가 질문한 뜻은 사명대사의 기지를 시험해보고자 함이었다. 스승의 심중을 간파한 사명대사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런 형태의 대화를 선문답이라 한다. 선문답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이들이야 말로 위대한 관상가들이라 할 것이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물의 속성을 세밀히 간파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관상술이 아닌가! 나도 좀 더 뛰어난 관상술사가 되고 싶은 마음인데... . 내 눈에는 먼 하늘하래 떠 있는 흰 구름만 보일 뿐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