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아들 생일날>/구연식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자연의 악 조건에서도 모체의 태반(胎盤) 속에서 신이 내린 시간과 과정을 본능적 학습으로 익혀 완전한 생명의 탄생은 가히 축복의 대상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탄생은 문화와 환경이 달라도 지구촌 어디에서나 의식의 개념은 가장 숭고하게 치러졌다.
우리 민족은 벼농사의 문화가 기본이어서 출산문화도 벼농사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 옛날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는 정갈한 지푸라기 한 줌을 윗목에 깔고 태어난 아기를 그 위에 잠깐 눕혀 놓고 삼신(産神) 할머니께 감사를 드렸다. 가장 좋은 목화솜을 골라 무명실로 짠 땀 흡수가 잘 되고 부드러운 배냇저고리를 산달에 맞춰 장만하여 탄생의 아기에 입혔다.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는 지푸라기로 왼손 새끼줄을 꼬아서 사내는 숯과 빨간 고추를, 계집아이 경우는 작은 생솔 가지와 숯을 꽂아서 금줄을 엮어 대문에 세 이레 동안 달아 놓았다. 전염병 환자나 최근 불미스러운 행사에 다녀온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여 산모와 갓난아이의 건강과 안정을 지켰다. 신생아의 태반도 마당 한 가운데를 깨끗하게 쓸고 벼의 겉껍데기 왕겨를 정성 들여 수북하게 모아 놓고 태반을 서서히 태워서 훗날 태아의 건강 상비약으로 대비했다. 산모는 산후 후유증으로 모든 삭신이 늘어난다고 하여 오뉴월에도 바깥출입을 세이레 동안 금지하며, 방에서 찜질 치료로 산후 조리를 받게 하고 미역국과 쌀밥으로 몸보신을 시켰다. 이 모든 것은 의료시설과 영양공급이 어려웠던 시절에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손수 정성 들여 지었던 농산물과 주위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물리치료 방법 등으로 최선을 다하며 오직 아기 점지 신인 삼신(産神) 할머니께 가호를 기원했던 풍습이었다.
오늘은 큰아들이 태어난 날이다. 벌써 40대 중반이 되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와 산부인과 병원은 대략 500여 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날 간밤에는 축복이라도 하는 듯이 흰 눈이 온 도시에 소복이 내려 잠재워 주었다. 낮 12시경 병원에서 아내 출산 소식이 왔다. 나는 실내화 차림으로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눈길을 달려가 병원에 도착했다. 평소에도 몸이 약한 아내는 바다를 떠나 멀고 험난한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을 낳고 만신창이 된 연어 어미처럼 축 처진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래도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과 위안으로 산후통을 버티는 것 같았다. 아들은 찌푸리듯 살포시 가물가물 눈을 뜨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눈시울이 금방 촉촉해짐을 느꼈다. 이 세상을 다 얻은 기쁨이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살며시 잡고 "수고했어!" 라고 하니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다.
나는 교직에서 아내는 체신관서에서 맞벌이 부부였다. 그 뒤에 딸아이를 더 낳아 3남매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가 어려워도 아이들 키우는 재미로 모든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어느 때는 셋방살이할 때 사정이 여의찮아 방에다 적당한 음식만 넣어주고 밖에서 열쇠를 잠근 때도 있었다. 눈치를 챈 아이들은 문을 두드리거나 유리창에 앉아서 골목으로 사라지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 울부짖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총총걸음으로 가슴을 쥐어짜며 출근할 때도 많았다. 유리창에 갇혀서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엄마 아빠로 착각하면서 지쳤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퇴근하여 돌아와 보니 모두 다 울다 지쳐서 온 방에 다 오물을 싸놓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가마솥의 밥물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순간 울다 지친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같이 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모두 다 결혼하여 손자들을 안겨주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키울 때 그런저런 일 때문에 아이들의 생일날만은 결혼 후에도 최선을 다해서 챙겨주고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들은 심한 독감이 들어서 음식도 들지 못하고 잠도 설치는 모양이다. 아내는 안타까워서 안절부절못했다. 자녀가 성장하면 결혼을 시킨다. 결혼의 이유 중 하나는 부모가 한평생 같이 살 수 없어서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배우자를 맺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녀들의 생일잔치는 사위와 며느리에게 의존하면서, 그래도 아내는 늘 상 성이 안 찬 표정이 보인다.
예년 같으면 며칠 전부터 생일날 행사로 여러 번 전화가 오고 갔을 테지만, 올해는 아들 자신이 독감 때문에 부모한테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의 불효 스러움인지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만 날아온다. 아들의 생일 축하 행사는 생략했거나 아들 식구끼리 약소하게 치러졌다고 짐작된다. 날씨마저 온종일 햇빛 한 점 없이 찌뿌둥하고 쌀쌀하여 불편한 심정을 더욱 들쑤신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액땜 처방인지 3년 전에는 아들 자신 외에는 어느 식구 하나도 아들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도 좋은 일을 위한 액땜으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렇게 마음이 쉽게 돌려지지 않는다. 시골 같으면 아들 사는 집을 동네 마실 가는척하면서 울 넘어서 동정을 살펴볼 수도 있을 텐데 멍청한 콘크리트로 똘똘 뭉친 아파트라 궁금하다. 아들도 이제는 분가하여 나름의 가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러려니 체념하고 살아야겠다. 오늘따라 45여 년 전 아들과 아내가 아른거려 아직은 마음이 허락지 않는 이유가 야속하다. (2023.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