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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史官의 심정, 공정한 척도尺度
김미숙의 평론 <생태적 감수성과 긍정적 세계관>을 읽고
권대근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문학연구단체인 다스림부산동인회(회장 김정애)가 2024년 5월 6일 제15회 문학세미나를 에세이문예사 세미나실에서 오전 10시부터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김미숙 평론가가 발제자로 나서 문학평론 <생태적 감수성과 긍정적 세계관>을 발표한다. 수필평론은 수필이란 이름의 글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이다. 김미숙 평론가는 날카로운 시각과 객관적 정신, 합리적인 판단력. 깊은 성찰, 그리고 공정한 저울질을 통해 수필다운 수필, 진정한 수필을 잘 밝혀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발제문은 수필가 한상렬의 수필 <끌물설>을 구조주의 방법론으로 분석한 평론으로 색다른 구성미, 생태적 감수성, 그리고 긍정적 세계관이란 세 가지 층위에서 수필문학의 특성을 공정하게 저울질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 <지구일보> <대한기자신문> 보도 중에서
Ⅰ. 로그인
수필평론가란 심미적 취향을 가진 문학평론가로서 수필평론을 전문적으로 분석 평가하는 사람을 말한다. 수필평론이란 수필 작품의 문학적가치와 문학적 성취도, 또는 문학적 효과를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비평하여 논하고 수필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작가의 가치관 세계관 혹은 독자나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치밀하게 따지고 밝혀내며, 창의적인 해석의 비평행위를 말한다. 여기에 더하여 수필 작품에 있어서의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이나 아쉬운 부분, 잘못된 부분 등을 객관적 합리적 논리적 기준이나 근거로 세세히 밝혀 지적하고 때로는 언어적 질타도 가함으로써 차후 그 작가의 문학적 성장을 돕고 다른 작가들이나 독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역할도 한다.
수필평론을 쓰는 사람이라면 옛날에 사초를 쓰던 사관과도 같은, 아주 공정하고도 객관적이며 진리와 진실을 밝혀 내려는 정신과 자세를 갖추어야 한는 것이다. 중국 후한 초의 역사가 반고의 <한서>는 사마천의 <사기>에 이어지는 중꾸의 대표적 정사로 유명하다. 더욱이 120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정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뛰어난 책으로서 그 기술체계는 역대 정사의 기준이 되어 왔다. 그래서 한서를 완성시킨 반고는 흔히 사마천과 비견된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사로 손꼽힌다. 사마천 또한 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시종일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궁형의 치욕도 감수하였다.
Ⅱ -1 내시경으로 본 내적 풍경
<회남자>에 ‘성인은 밖을 따라 안을 안다’는 말이 있다. 성인은 표면에 나타난 것만 보고도 그 숨겨진 내부의 것을 알아낸다는 뜻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능한 수필평론가라면 수필작품의 표면에 나타난 것만 보고도 그 숨겨진 속뜻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한 채 수필평론을 쓴다면 그것은 마치 수박의 껍질만 볼 줄 알았지 그 속의 숨겨져 있는 속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과도 같아서 제대로 된 수필평론이 될 수 없다. 때문에 평론가는 쓰기 전에 작품 속에서 그려져 있는 세세한 풍경에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 김미숙은 이번 평론에서 환자의 위에 내시경을 넣고 그 위 안에 있는 작은 종기까지도 찾아내는 내과의사처럼 작품 속 언어들, 나열된 소재의 의미를 온전히 잘 파악해내고 있다. 원래 수필을 읽는 쾌미는 내적인 풍경을 음미하는 데서 오는 법이다.
이 수필의 형식적 면에서의 새로운 또 한 가지는 각각의 개별 제재마다 제목 앞에 ‘#’이란 특수 보호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원래 ‘#’이란 부호는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연주할 때 음을 반음 올려 내는 것으로 반올림을 뜻하는 음악 기호이다. 온음과 온음 사이에 존재하여, 음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역할처럼 작가가 표현한 ‘#’은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의 삶이 반올림되어 한 단계 더 즐겁고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일 것이리라. 또 다른 추측으로는 시나리오의 장면 번호 S#(scenc number)처럼 어떤 장면이 바뀌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부호를 사용함으로써 수필의 제재가 바뀌고 작가의 내면 풍경이 바뀌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다. 어느 쪽으로 추측을 하더라도 옴니버식 구성과 ‘#’부호의 사용은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며, 수필의 형식을 확대하는 신선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 <Ⅱ, 색다른 구성미> 중에서
수필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배열하여 문학적 방식으로 제시되면 소설 이상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김미숙이 다룬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다. 문학적 장치로서 서사전략은 수필의 잡문성 시비를 해결해주는 하나의 길잡이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미숙 평론가가 <Ⅱ, 색다른 구성미>에서 ‘수필의 문학성은 구조에서 나온다. 수필의 문학성이란 한편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만들어가는 구조적인 형상화에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마음속에 투영된 감정이나 정서가 세련되게 문학적으로 표현될 때 가능하다. 한상렬의 「끝물설設」은 여타의 작품과는 다르게 옴니버스식 구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한 바와 같이 수필은 구조나 구성에서 문학적 성패가 결정된다. 문학 텍스트는 플롯에 의해 조직되는 표면구조 surface structure와 그 표면구조 아래 스토리에 의해 추상되는 심층구조 deep structure가 유기적으로 구축한 미적 통일체이다.
한상렬은 토막토막의 생각을 엮는 조직법을 활용하여 그 사이사이에 문학성을 생성하고 증폭시킬 수 있는 복합구성intricate plot으로 수필을 제작했다. 구성의 종류는 사람에 따라 분류기준에 따라 다르나, 김미숙은 이런 복합구성을 옴니버스 구성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런 기법의 삽입과정을 거치면서, 이야기의 배열질서는 미적으로 변형되고 보다 예술성이 풍부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창조된다. 수필서사에서도 허구적 서사와 동일한 이야기의 조직원리가 동원될 수 있다. 시간적 공간적 논리적 구성은 단조로움을 안겨주는 한계가 있다. 한상렬은 이런 수필구성의 단순성을 넘어서기 위해 소재로서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배열하는 과정을 통하여 서사적 의미와 가치를 극대화시킨다. 김미숙은 이러한 이야기의 미적 변형과 배열방식에 대한 작가의 미적 의도를 잘 밝혀내었다.
따라서 인간의 경험은 의미 있는 사건으로 구성되며, 인간의 서사 행위는 그것에 대한 이해와 해석으로부터 발생한다. 이런 점에서 서사 행위는 그것에 인간 경험을 줄거리로 조직하면서 의미의 세계를 구성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서사는 인간의 사고 구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그것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호모 폴리티쿠스, 호모 이코노미쿠스, 호모 파베르 등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려는 수많은 명칭들이 있지만, 작가는 호모 로퀜스, 언어적 인간이다. 옴니버스 구조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며 진실의 문학, 수필 속에 내재되어 있는 ‘감수성과 세계관’의 본질을 김미숙 작가는 특정한 구조 네트워크 속에서 ‘노련한 작가의 구성전략이 돋보인다’는 분석평가를 통해 참신하게 해석해내었다.
Ⅱ -2 청진기로 본 작가의 숨결
수필평론가는 작품 속에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감지 능력도 좋아야 하고, 내적인 소리를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늘상 열려 있어야 한다. 영적인 귀가 레이더처럼 예민하고 또한 그 감지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위해서는 수필평론가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도 요구된다. 김미숙 평론가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문학평론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에세이문예 문학평론가로 등단하고, 사)국제pen한국본부 회원으로서 23년 제2회 권대근문학창작지원금 100만원 수혜자로 선정된 바 있으며, 게간 에세이문예에 수준 높은 수필평론을 발표하면서 수필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녀는 수필에서 울려나오는 좋은 소리나 아름다운 소리는 무엇이며 이와는 반대로 나쁜 소리나 아름답지 못한 소리는 무엇인지도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나아가서 수필 작품의 깊은 속에서 풍겨나오는 좋은 향기나 나쁜 악취까지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생태계의 고통을 이해하고 염려하는 작가만의 생태적 감수성을 감지할 수 있다. ’옥상 정원에 가꾸어 놓은 채소들이 불볕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여름나기가 어려운 건 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온몸을 털로 무장한 우리 집 강아지 복실이는 그렇다하고 면도한 듯한 복순이 마저 더위를 참지 못하고 헉헉거린다.‘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활동으로 시작된 지구온난화의 현상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에게 얼마나 가혹한 고통인지를 알려준다. 결국 인간의 이기적인 활동으로 시작된 지구온난화는 식물과 동물에게도 해를 끼치고 인간의 먹거리에도 영향을 주고, 지구의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여 결국엔 인간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그 모든 고통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메시지를 보낸다.
- <Ⅲ. 생태적 감수성> 중에서
작가는 이러한 병듦과 늙어 가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깊은 사색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성찰로 담담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밀검사 결과 ’녹내장‘이란 안 질환을 미리 짐작이나 한 듯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얀 머리 터럭이며, 주름진 얼굴이 가득하다‘는 표현으로 자신이 늙어 가는 과정을 그 모습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래 꽃이든 과일이든 아니 사람에 이르기까지 끝이 있게 마련이요‘ 라고 서술하여 안질환이나 늙음을 그냥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그러니 슬퍼할 일도 아니리라. 지금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예서 무엇을 더 바라랴‘ 비움의 사유로 흘러가는 시간을, 인생을, 더 정확히 말하면 늙어감에 대한 불안함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수필 문학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노 작가의 품격과 비움에서 오는 여유로운 철학을 느낄 수 있어 이 작품을 읽는 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 울림과 감동의 세계로 나아 가게 한다.
- <Ⅳ. 긍정적 세계관> 중에서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대왕은 약관의 나이 20세에 왕위에 올라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엄청난 소유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제국의 대왕이면서도 호사를 멀리하고 절도의 덕을 간직한 인물이었다. 33살이란 한창 나이에 열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내가 죽거든 관 양쪽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 밖으로 내 두 손을 내놓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도록 하라는 유언을 맘겼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일 것이다. 그리고 수필은 이 같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해명을 위하여 노력해왔다. 한상렬은 수필가로서, 또 수필평론가로서 많은 수필을 쓰고 평론을 써왔다. 김미숙 평론가는 생태적인 감수성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쓴 이 수필의 의도와 성격을 <생태성 감수성과 긍정적 세계관>으로 양분해서 정확히 관통하는 평론을 써내었다. 이 지점에서 큰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모름지기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자아를 희망적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 융은 “인간의 삶은 모든 예술품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희귀한 예술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다. 나는 목적을 지향하는 삶이 목적이 없는 삶보다 더 낫고, 더 풍요롭고, 더 건강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에 역행해서 가는 것보다 시간과 더불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관찰하였다.”라고 했다. 인간의 삶이 가장 고귀하고 희귀한 예술품이라는 융의 견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삶을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그 삶은 분명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삶을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자의 삶에 대해 예술품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복원된 삶을 담아내는 한상렬의 수필이야말로 진정한 예술품이란 사실이다. 김미숙 평론가는 작품선택 또한 탁월했다고 하겠다.
Ⅲ. 로그아웃
물이나 거울이 맑고 깨끗하지 못하고 잔뜩 흐려져 있으면 사물을 제대로 비추어 내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맑고 깨끗하지 못한 마음, 혼탁한 마음이나 흐려진 정신 상태로는 수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속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기 마련이다. 따라서 수필 평론을 쓸 때는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을 읽거나 평론을 쓰기에 앞서 우선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자기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올바른 수필 읽기가 좋은 수필평론을 낳는다는 것을 김미숙 평론가는 잘 알고 있는 둣하다. 김미숙 평론가는 이 수필평론에서 자신의 마음이 공정함과 객관성을 잃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비우고 균형을 잘 잡고 있어 마치 사초를 쓰는 사관 같아 보인다.
<삼국촉지>를 보면 물과 거울은 능히 사물을 비추건만 원망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물과 거울은 아무런 사심도 없이 어떤 물건이나 사람 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비추어 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반발하거나 원망하지 못한다는 뜻이듯이, 김미숙 평론가도 바로 이러한 물과 거울 같이 사심 없고 공정하게 수필 작품을 다시 비춰주는 역할을 잘 해내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감동의 요건 두 가지, 대상에 대한 애정과 디테일함을 완벽하게 잘 갖춘 평론이라 하겠다. 이는 대상 작품을 대충 읽지 않고 제대로 읽어내었다는 뜻이다. 이 점은 비단 오늘 훌륭하게 발제를 마친 김미숙 평론가뿐만 아니라 수필평론을 공부하고 있는 예비 평론가들도 다시금 가슴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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