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북아일랜드 신-구도교…. 앞서 기술한 나라 뒤에 공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종교 분쟁’이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이후 접경지대인 카슈미르 지역에서 일어나는 영유권 분쟁과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며 발발된 분쟁, 북아일랜드 내 구도교와 신도교 간에 일어난 분쟁들은 ‘종교’를 말미암아 일어났다. ‘믿음’이라는 단어 아래 일어난 분쟁은 근세기의 십자군전쟁, 백년전쟁, 삼십년전쟁으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듯 세계사적으로 종교가 분쟁이나 전쟁 등 인류의 행복을 파괴하는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의 종교는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구원과 사랑, 관용, 자비, 평화 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교적 믿음이 커질수록 영적, 인류애적, 정치적으로 성숙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종교적 믿음의 크기와 영적 성숙이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역사는 경험적 사실로 보여준다. 믿음이 커질수록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성 또한 커지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과를 가져온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믿음’의 문제이다. 믿음은 종교를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다.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왜 믿느냐의 문제는 종교의 성격과 개인의 신행상활과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불교와 종교심리학,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고, 종교들 속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규명한 책이 발간됐다. 밝은사람들 연구소(소장 박찬욱)가 기획하고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비교종교학)·월암 스님(용성선원 선원장)·권명수 교수(한신대 신학과)·석길암 교수(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정준영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 불교학과)가 집필한 <믿음, 디딤돌인가 걸림돌인가>(운주사 펴냄)가 그것이다.
먼저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믿음’을 해석한 정준영 교수는 초기불교경전을 살펴봄으로써 믿음의 종류와 의미, 믿음과 깨달음의 관계, 믿음과 성인 성취 및 열반의 관계를 밝힌다. 그는 초기불교의 믿음은 붓다를 무비판적으로 맹신하는 ‘감성적 믿음’이 아니라 체험과 검증, 합리적 판단 등에 근거한 ‘이성적 믿음’이라고 주장한다.
석길암 교수는 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믿음을 풀이했다. 그는 <화엄경>과 <대승기신론>을 통해 믿음과 이해와 실천과 깨달음의 관계를 분석하며, 이해하고 믿는 이성적 방식과 믿고 이해하는 감성적 방식이 둘 다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선불교의 믿음관을 다루는 월암 스님은 수행과 깨달음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선불교 역시 ‘견성이 성불(見性成佛)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전제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스님은 신심과 발심이 없이는 수행과 깨달음이 이뤄질 수 없다고 보고 이에 내포된 믿음의 내용을 심성론과 수증론의 입장에서 천착한다.
종교심리학에서의 믿음의 문제를 고찰하는 권명수 교수는 믿음에 대한 두 가지 견해인 제임스 파울러의 ‘단계론(믿음의 연속적 발달)’과 제임스 로더의 ‘변형이론(믿음의 질적 변형)’에 대해 소개하고 비교·분석하며 양자 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한편 오강남 교수는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믿음을 바라본다. 오 교수는 믿음을 ‘표층 믿음’과 ‘심층 믿음’으로 나눠 고찰하고, 종교의 본질과 믿음의 참 의미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표층 신앙에서 심층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결론을 맺는다.
10월 16일 조계사 경내에서 열린 출판간담회에서 오강남 교수(왼쪽)와 월암 스님(오른쪽)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 교수는 지난 10월 16일 열린 출판간담회에서 “초기단계의 이성을 활용하기 이전의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면 오히려 믿음의 걸림돌이 된다”며 “영적인 통찰과 이성적인 반성에 의해 생기는 믿음이 개인과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암 스님도 “기복과 욕망, 번뇌 확장을 위해 도구화된 믿음보다 정법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불립문자를 주장하는 ‘선’도 ‘마음이 부처다. 사람이 부처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실천수행을 하는 것”이라며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분야별 불교의 프리즘과 불교 외부의 시각으로 ‘믿음’을 조명한 이 책은 종교적 성숙과 영적 성숙을 가능케 하는 믿음의 대상과 그것을 성취하는 메커니즘을 찾아 올바로 나가는 기준점을 잡는데 유효한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300쪽,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