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바라는 바가 소박했기 때문이다
결혼 10주년, 아내와 함께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프라하로 다시 여행을 갔다. 우리가 묵던 호텔 근처에 자주 가던 커피숍이 있었다. 사장이 혼자 운영하는 커피숍으로,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작은 커피숍인데 커피가 맛있어서 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같은 요식업을 하는 나의 시선에서 봤을 때 '주문을 좀 더 빨리 받고 회전율을 높이면 수익을 휠씬 많이 얻을 수 있을 텐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커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커피나무가 사는 지역의 환경이 어떤지, 그 커피가 세계대회에서 몇 등을 했는지, 무슨 맛이 나는지 등등. 커피를 내리는 동안 한참 얘기한다. 심지어 커피를 내어주고도 계속 얘기한다.
희한한 것은 기다리는 사람들도 당연하다는듯 그 대화를 들으며 웃으며 기다린다는 점이다. 오직 나만 안달이 나서 '아니 왜 빨리 주문을 안 받고 계속 얘기만 하는 거야?'라며 조바심을 냈다. 계산하는 과정도 우리나라보다 세 배 정도는 오래 걸린다. 카드를 주고받고, 영수증을 확인하고, 현금인 경우 거스름돈을 내어주는 동작도 엄청 느리게 보인다. 내 눈에는. 그야말로 복장이 터진다.
이제 끝인가 싶지만, 사장은 그 손님이 커피를 들고 문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인사를 나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라. 내일 또 보자. 내일은 한 시간 늦게 문을 연다 등등. 그 손님이 완전히 사라지면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그다음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다. 기다리는 사람도 재촉하는 법이 없다. 단 한 번도.
이런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포털사이트에서 '체코'를 키워드로 검색했다. 국가별 GDP 47위(대한민국 13위), 1인당 GDP 순위 37위(대한민국 29위).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산다. 그런데 대체 왜 돈을 더 빨리 벌려고 애쓰지 않을까? 왜 회전율을 높이지 않고 손님과 계속 대화를 나눌까? 이런 내게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는 문장이 바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안에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의 삶이 편안했던 것은 바라는 바가 소박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1] 167쪽
그래 이거다. '바라는 바가 소박했기 때문'이다. 내가 체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답답함을 느꼈던 건 나도 모르는 사이 '돈을 빨리 많이 버는 게 좋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박'의 의미는 꿈이 작다는 게 아니다. 체념하고 포기했다는 뜻도 아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그 커피숍 사장님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하루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중이었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자신이 만든 커피에 자부심을 품었으며, 손님들과 함께하는 시간 자체를 즐거워했다.
우리는 보통 '일해서 번 돈으로 나중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나중에 행복한 시간은 없다.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 일을 그만 두고 돈을 쓰기만 하라는 거예요?'라고 물을 수 있다. 아니다. 일에서 행복을 찾으면 지금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일을 하며 살기 때 문이다. 사고방식만 바꾸면 일하면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나는 2005년에 개그맨 문천식과 함께 대학로에서 <아트>라는 연극 무대에 섰다. 그 당시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천식이에게 말했다.
"천식아, 지금 우리는 이 친구들보다 돈을 30배는 많이 버는데, 왜 저 친구들이 우리보다 훨씬 행복해 보일까?"
당시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100만 원을 못 버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나와 문천식은 밤무대와 행사 등으로 월 3,000만 원은 족히 벌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 나와 같은 소속사에 배우 진선규가 속해 있다. 진선규에게는 영화로 유명해지고 돈을 얼마든지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그는 돈을 좇지 않았다. 돈보다 연기 자체를 즐겼다. 유명해지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송강호, 황정민, 김윤석 모두 그랬을 것이다.
돈을 좇지 않는 게 바라는 바가 소박하다는 말은 아니다. 돈을 좇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위대하다는 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그 당시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돈을 좇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바라는 바가 너무 크다. 특히 돈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1억 원이라는 돈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의 꿈이 수백억 자산가고 건물주다. 바라는 바가 너무 크다. 아니 크다기보다 비현실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1인당 GDP가 3만 4,100달러다(2024년 상반기 기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700만 원 정도다. 그런테 자기는 수백억 자산가가 될 거라 믿는다. 4,700만 원과 수백억 원은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그 차이에서 상실감이 발생한다. 이 돈의 차이만큼 우리는 행복 하지 못하다.
다시 말하지만 꿈을 작게 가지라는 말이 아니다. 꿈을 정확하게 가지라는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바라는 바가 소박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했고, 이 말은 곧 '바라는 바가 정확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얼마짜리 인간인가?'를 아는 삶이다.
내가 남보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이라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게 아니다. 자기 그릇에 맞는 만큼 벌면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통해 남을 위할 수 있는 시간을 살 수 있는 삶, 그게 행복한 삶이다.
자,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가? 얼마를 벌려고 목표 삼았는가?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가? 그 많은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쓸 것인가? 지금 행복한가? 지금 얼마를 벌고 있는가? 그 돈을 벌면서 행복한가?
플루타르코스가 말하는 '바라는 바가 소박한 삶'을 느끼려면 대학로에 가봐라. 무대 위에 있는 배우들의 얼굴을 보라. 돈을 뛰어넘어 열정으로 가득한 그 얼굴들을 보라. 그들처럼 돈보다 소중한 그 무엇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결국 나중에 돈이 저절로 따라온다.
부디 이 선순환의 철학을 자기 삶에 장착하기 바란다. 나 역시 이번 체코 여행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계기로 다시 한번 돈에 대한 철학을 바로 세웠다. 자칫 흔들릴 뻔했던 내 삶을 바로잡아본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고명환 지음
첫댓글 바라는 바가 소박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