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기다리는 어떤 아버지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아!
아직도 나는 그 날을 기억한다! 인사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채, 커다란 가방을 손에 들고 네가 총총히 집을 떠나가던 그날을...
이 아빠 엄마와 형, 우리 네 식구가 가졌던 아늑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그리고 또 아무 부러울것 없이 다 가지고 누렸던 풍족함과 안정을 무겁고 부담스러운 제재와 지루함으로 몰아 부치며, 자유를 향해 떠나겠노라고 유산을 받아 쥔 채 바람처럼 집을 나서는 너의 모습은 내겐 충격 그 자체였다!
내 사랑이 정말 그렇게도 네게 아무 의미없는 것이었더냐?... 정말 나의 사랑이 그렇게도 너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느껴졌더냐?... 따뜻한 가정과 함께 나누던 그 사랑스럽던 교제들이 진정으로 너를 숨막히게 하는 구속으로 여겨지더냐?... 그렇게 차가운 얼굴이 되어서 이 애비의 손을 뿌리치고 떠날 만큼?...
네가 떠난 뒤로 뒷 숲에서 노래하던 구구새의 노래 소리는 슬픈 흐느낌으로 변하고, 정원의 흐드러진 꽃들의 화려한 빛깔도 의미없는 퇴색함으로 이 애비에게는 다가온다.
함께 대화를 즐기며 가지던 주말저녁 식사 때가 오면, 그리고 식탁 가득히 차려진 맛있는 음식, 그 중에서도 네가 좋아하던 음식이 상위에 올려진 것을 보면, 나는 슬며시 수저를 놓고 멀리 네가 떠난 산등성이를 바라다 본다. 눈가에 이슬이 맺혔는지, 산등성이 고갯길이 흐려져 뿌옇게 보이고, 방금이라도 네가 “아버지!”하고 부르며 나타날 것만 같아 귀를 곧추 세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고 지내는지...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도 문을 열어 놓고 잠든다. 새벽에라도 혹시 네가 돌아왔다가 잠긴 문을 보면 두드릴 용기가 없어서 다시 돌아갈까봐... 그동안, 수 많은 날들 동안 뒤척이며 밤을 지샜다만, 내가 자꾸 그러면 네 엄마가 더 신경을 써서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이제는 네 엄마 곁에서 잠든 척하다가 네 엄마를 재워 놓고는 슬며시 빠져나와 새벽녘이 될 때까지 별을 세며 너를 기다리곤 한다.
너 생각나니? 네가 어렸을 때 이 아버지와 함께 별을 세며 하던 말 말이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아빠를 모시고 별나라를 여행시켜 드리겠다고 하던...아무리 세어도 끝이 없는 별을 세다가 내 품에 살며시 잠든 너를 안고 오던 감촉이 아직도 팔에 느껴지는구나! 그 별은 아직도 높이 떠서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내 팔이 허전한거냐?... 너도 혹시 저 별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젯밤에는 꿈을 꾸었다. “아버지!” 하고 부르며 네가 들어서는데, 어찌나 그 미소가 아름답던지!... 너를 번쩍 안으려는데, 깨니 꿈이었다. 잠깐이라도 네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포근했는지... 그러나 한편으로 얼마나 더 허전하던지!...
얘야! 베고 자는 배개는 편안하니? 너는 유난히 푹신한 베개를 좋아했지!... 아직도 네 방에는 네가 좋아 하던 책, 모아 놓은 그림들, 그리고 네가 베고 잠들던 푹신한 베개가 주인을 기다리며 덩그마니 놓여 있다.
아들아!
오늘도 네 방에 들어와 네가 떠난 뒤로 언제나 그랬듯이 불을 켜 놓는다. 그리고 네가 없는 책상을 행여 먼지라도 앉을까 손으로 쓸며 마음 속으로 기원해 본다. 네가 어서 속히 돌아 오기를... 그리고 돌아오면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그냥 옛날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거라고... 너는 영원히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네가 돌아오기를 매일 손꼽아 기다리는,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