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우암 송시열 사적공원(尤庵 宋時烈 史蹟公園) 탐방..,"
(우암 송시열 사적공원 설명판)
(우암 사적공원 안내도)
(남간정사 전경)~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
"사적공원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입니다.
우암 송시열이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익히던 것으로 그의 사후에는
유림들이 목판을 새겨 송자대전(宋子大全)을 펴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남간정사 연지)
"남간정사 안에 자리한 조그만한 연지(蓮池)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의 붉은 꽃들이 연지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기국정 : 杞菊亭)
"기국정(杞菊亭)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소제동 소제방죽 옆에 세웠던 건물이며,
선생은 소제에 연꽃을 심고 건물 주변에는 국화와 구기자를 심었는데, 연꽃은 군자를,
국화는 세상을 피하여 사는 것을, 구기자는 가족의 단란함을 각각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암 선생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학문을 논하며 지냈는데,
선비들이 구기자와 국화의 무성함을 보고 건물 이름을 기국정(杞菊亭)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남간정사 연못)
"남간정사는 후면의 샘물과 대청마루 밑으로 흐르는 물,
동쪽 계곡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이 만나 아담한 연못을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남간정사 : 南澗精舍)~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조선 숙종 떄인 1683년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홍농동에 세운 서재 능인암 아래에 건립한 서당(書堂)으로
만년에 후학들을 강론했던 곳입니다."
"*남간(南澗)* 은 *양지 바른곳에 흐르는 개울* 을 뜻하는데,
주자(朱子)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주자의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남간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전체 8칸의 규모로
가운데 4칸은 대청마루이고 서측 2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단은 자연지반 위에 돌을 깔아 구축하였으며 대청마루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모두 토단 위에 초석을 얹어 놓았습니다."
(연못 가운데 섬)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하나 두었는데, 이는 신선이 사는
봉래산을 의미하는 전통 조경의 정형이기도 합니다."
(사당 남간사 : 祠堂 南澗祠)
"남간정사 후면에 있는 사당(祠堂)으로 유생들이 사당을 짓고
주자, 우암 송시열, 석곡 송상민, 수암 권상하를 배향하였습니다.
"현재는 우암 사적공원 조성시 새로지어진 남간사에서
제향을 지냄에 따랄 별다른 용도없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남간정사에서 바라본 기국정)
(사적공원으로 가는 길)
"사적공원 입구에 있는 남간정사를 둘러보고 서원 남간사(南澗祠)로 가는 길입니다.
사적공원이 너무 넓다 보니 길들도 잘 정돈되어 있어 탐방하기에 좋았습니다."
(유물관 : 遺物館)
"남간사 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는 유물관입니다.
유물관 안에는 우암 송시열에 관한 여러가지의 자료들이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 진상 : 尤庵 宋時烈 先生 眞像)
(남간사 홍살문)
"홍살문은 *능(陵), 원(園), 묘(廟), 궁전 관아* 등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쭉 박은 형태로
경의(敬意)를 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문입니다."
(남간사 가는 길)
(남간사 외삼문~~명정문 : 明正門)
"이곳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이 강학하시던 곳입니다.
선생은 흥농촌(興農村)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能仁菴)이라 하였고 숙종 9년 능인암 아래에
남간정사(南澗精舍)를 지었으며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었습니다.
그리고 학문을 대성하였습니다."
"우암 선생 사후에 사림과 후손이 남간사(南澗祠)를 건립하여
*송시열, 권상하, 송상민을 배향하고 제향을 받들어 왔습니다."
(동재~~명숙각 : 明淑閣)
"*모든 일을 명확하게 하고 마음을 밝고 맑게 하라* 는 뜻으로
유생(儒生)들의 공부방이며 생활 공간입니다."
(서재~~인함각 : 忍含閣)
"*모든괴로움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는 뜻으로
유생(儒生)들의 공부방이며 생활 공간입니다."
(강당~~이직당 : 以直堂)
"명정문으로 들어가 정면에 보이는 건물로 *마음을 곧게 쓰는 집* 이라는
뜻의 강당(講堂)으로 우암 선생의 직(곧을 직 : 直)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동무~~견뢰재 : 堅牢齋)
"우암 선생의 마지막 교훈을 받들고 선현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라는 뜻이며 유생(선비)들의 공부방입니다."
(서무~~심결재 : 審決齋)
"*매사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라* 는 뜻이며
유생(선비)들의 공부방입니다."
(남간사 내삼문~~입도문 :立道門)
(남간사 : 南澗祠)
"사적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수암 권상하(遂菴 權尙夏), 석곡 송상민(石谷 宋尙敏)*
세분을 모시는 사당(祠堂)으로 매년 봄. 가을에 제향을 지내고 있습니다."
(장판각 가는 길)
(장판각 : 藏板閣)~유형문화재 제1호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과 일대기 등을 모아 놓은 *송자대전판(宋子大全板)* 의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서원에서 덕포루 가는 길)
(덕포루 : 德布樓)
(송우암 수명유허비각 : 宋尤庵 受命遺墟碑閣)
"우암 송시열은 정계은퇴 후 화양동 은거 생활 중 왕세자 책봉 반대 상소를 했다가
제주에 유배 안치되었고 국문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오는 도중에
이곳 정읍에서 사사(賜死) 되었습니다.
(우암 송시열 묘소 가는 길)
(우암 송시열 묘~~신도비와 재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의 신도비와 묘소가 있습니다."
(재실 : 齋室)
(송우암 신도비각 : 宋尤庵 神道碑閣)
"신도비는 묘소 아래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의 비각 안에
정조 어필로 정조 3년(1779)에 세운 것이며, 국난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비각에서 묘소 가는 길)
(묘지 입구)
(우암 송시열 묘 : 尤庵 宋時烈 墓)~~괴산군 청천면 청천리
"송시열 선생의 묘는 본래 수원 무봉산에 있었으나 영조 33년(1757)에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며, 묘소에는 2기의 묘비와 문인석과 망부석 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청 풍 명 월~~우암 송시열 사적공원 탐방.......................................................................,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