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교육부서)말씀일기 본문은 시편 86편 11-17절인데
어제 시편 86편을 통째로 올려서
오늘은 교회전체 말씀일기 본문인 아가서 6장을 정리해서 올려 보겠습니다.
1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2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3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1절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라미여인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네가 사랑하는 임이 어디있냐
우리가 같이 찾아줄까’ 하며 조롱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란 신부가 찾는 신랑입니다.
이 신랑이 자기 동산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동산 가운데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동산’은 ‘신부’를 말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부를 때도 이렇게 불렀고(4:12,15),
신부가 자신을 말할 때도 동산이라고 합니다(4:16).
또 신랑이 신부를 부르면서도 자신을 동산이라고 합니다(5:1).
그러므로 신부는 신랑을 ‘자기 안’에서 찾았습니다.
자기 안에서 사랑하는 임을 찾았다는 말이
이미 자기 안에 사랑하는 임이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임이 자기 안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신부는 아무리 신랑을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10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하면 ‘나는 임의 것, 임은 나의 것’입니다.
신랑이 이미 신부와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상처입고 겉옷을 빼앗긴 술람미여인이 신랑을 찾아 나섰는데
그 신랑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바로 자기 안에 계심을 발견하고서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합니다.
상호소속이 되었습니다. ‘상호연합’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 됨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계십니다.
요한복음 17:20~26절.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 전체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십자가 지기 전에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을 위해 하신 기도입니다.
아버지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가서의 내용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도입니다.
이 하나 됨을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아버지께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 버림받음으로 죄인들과 연합이 되어
그들의 죄를 속하시고
성도들과 그리스도가 한 몸을 이루어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적용하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요한일서 4:13~16절.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심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찾아서
자신과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는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거함을 알게 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 안에 하나님도 거하십니다.
이런 사랑을 아가서가 미리 예언하고
그 예언을 십자가로 이루셔서
우리에게 그 하나 됨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 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음을 알게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 됨에 죄인을 참여시키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로 확정되었습니다.
이 사랑이 임한 자는 세상이 작게 보이며
그 십자가의 사랑이 크게 보입니다.
오늘도 이 사랑 안에 거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분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이 위협이 되겠습니까?
오늘도 두려움 없이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