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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드디어 우영우 변호사(이하 ‘우영우’)는 정규직이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를 안고 정규직 변호사로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나서게 된 우변님께 같은 자폐당사자로서 진정한 축하메시지를 보낸다.
자폐인이 정규직이 될 확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0.9%로 시작된 전국 시청률이 17.5%로 급상승하는 등 자폐를 둘러싼 클리셰를 뒤집은 접근 또한 일반신경인에게는 매력적이었겠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철수한 사이 우영우는 다음 변론을 하러 법무법인 한바다에서 계속 일하고 있을 것이고, 그 이야기가 공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시즌 2가 올 때까지 한국 자폐인에 대한 관심이 꺼지거나 시즌 2가 다시 자폐인의 삶을 왜곡할 가능성 모두 estas를 비롯한 자폐인 당사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Ⅱ. ‘우영우’의 의의
우리는 우선 〈우영우〉가 자폐인을 가시화한 것에 감사를 표한다. 〈우영우〉가 한국사회에 자폐당사자의 현실을 일부나마 깨우쳤을 뿐만이 아니라 자폐를 사회공론장 어젠다 안으로 끌고 들어 온 공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이 중에서도 소위 ‘고기능’ 자폐당사자와 함께 성인 자폐당사자의 존재를 상기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크나큰 일이라고할 수 있다.
또한 〈우영우〉가 자폐와 지적장애를 분리한 의의 또한 크다. 지금까지의 한국 콘텐츠에서는 그동안 지적 장애를 가진 자폐당사자가 전형적인 ‘발달장애인’ 캐릭터로서 자폐인을 대표해 왔다.
이로 인해 두 장애의 이미지가 섞이면서 발달장애인 이데올로기 또한 강화되었다. 그러한 ‘발달장애인 캐릭터’의 클리셰를 확실히 깨버린 시도도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우영우가 성인기 여성 자폐 캐릭터였다는 점 또한 긍정적이다. 그동안 자폐는 ‘주로 남자, 어린이의 문제’로만 표상되었다. estas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현재 최소 6천여 명 이상의 자폐여성이 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더 많은 미인식 자폐당사자들이 사회에서 고투하고 있는 현실을 〈우영우〉는 증명해 내었다. 그리고 성인 자폐인은 남녀를 떠나 〈우영우〉 이전에도 존재했었고 그러한 사실을 2013년부터 estas가 존재함으로써 증명해 온 것이다.
끝으로 이번 방영을 계기로 자폐인 당사자와 그 관계자들이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자폐 특성의 내용이나 그 다양성 등 실제로 알려져야 할 내용이 이번 방영을 계기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도 감사하다.
이번 방영을 계기로 자폐인의 실제 모습을 보여준 estas 바깥의 다른 자폐당사자 및 가족, 전문가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Ⅲ. 〈우영우〉의 한계
〈우영우〉 제작과정은 자폐 특성의 주체인 자폐당사자와 신경다양인에 대한 무시의 연속이었다. 에이스토리와 ENA 등 관계자 어느 쪽도 신경다양인단체들의 감수를 받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소통조차 하지 않았다.
estas의 성명서를 계기로 ‘아스퍼거 증후군’이 사라진 것은 제작사측의 일방적 대응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이 와중에 작중 일반신경인들이 사용하는 차별적인 용어들마저 동시에 정리된 것은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
다행히 〈우영우〉는 사회의 이슈와 다양성 문제에 접근하며 한국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타깃에 충실한 문화콘텐츠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정작 자폐당사자의 삶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만들어져 당사자들에게 불편한 콘텐츠가 되었다. 자폐당사자에게 불편한 콘텐츠가 그대로 노출됐으며, 3화의 자폐 투사 방식에서 보듯이 자폐인 인권 관점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드러났다.
우선 우영우가 드라마 내에서 나타난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있다. 가령 우영우가 반복적인 문어체로만 말하고, 손을 반복해서 움직이는 등의 자기자극행동을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고, estas는 이 부분에 대한 총의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인지 자폐당사자의 경우 우영우나 〈굿닥터〉의 박시온(주원)보다는 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 검사(조승우)나 블리자드의 컴퓨터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시메트라에 더 가깝지는 않은지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
그리고 우영우 변호사의 설정도 당사자들마저 환상이라고 지적할 정도로 비현실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폐인이 인문사회과학, 이공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과에 진학하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교대들이 등록 자폐당사자의 지원자격조차 부인하는 사례를 감안하면,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및 변호사시험 응시는 불가능에 가깝다 할 것이다.
물론 해외에는 헤일리 모스 등 자폐인 변호사가 있으니 이론상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지만 학자나 의사와 달리 변호사의 경우 헤일리 모스처럼 단독 기사처리 된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를 자칫 일상적인 가능성으로 착각하는 오류는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다행히 〈우영우〉는 15화의 프로그래머와 16화의 ‘우영우 동생’처럼 미인지 자폐당사자의 존재를 노출하였으나 제작진은 이들을 ‘비자폐인’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우영우〉는 판타지’란 말을 계기로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자폐인 부모의 호소만 강조되어 온 그동안의 언론보도를 감안할 때 이러한 사회적 감수성 부재가 미인식 자폐당사자와 신경다양인의 낙인찍기 효과를 강화할 것을 우려한다.
마지막으로 〈우영우〉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자폐 인식이 더욱 나빠져가고 있는 것은 분노할만하다.
대표적으로 특정 유튜브채널이 패러디 영상을 올린 이후 문제지적이 이어지자 해명글이라는 것에서 ‘자폐증상’이라는 단어를 반복한 일도 잊을 수 없다. 특히 자폐에 대한 혐오발언의 양도 그 수위도 점차 높아져가고 있다. 〈우영우〉가 자폐에 대한 물리적 인식을 제고했지만, 실제 질적 인식 제고로 이어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Ⅳ. 생각해 볼 점
자폐인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합법화’되고, ‘사회적 존재 면허’가 부여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엔나 선언에서 '인권의 불가분성'이 천명된 바와 같이, 인권은 '모든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자폐당사자의 권리를 논의하기 위한 ‘계기’가 이제야 생긴 샘이다. 그렇다면 그 ‘계기’를 시점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과제에 답해 나가야 한다.
우려할 만한 것은 이러한 '계기'가 흥밋거리로만 소비되는 경우이다. 예컨대 〈우영우〉방영을 계기로 쏟아진 패러디물중 상당수가 우영우의 모습을 따라하는데 집중했으며, 일부 작품은 자폐를 비하하기까지 이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장애 특성으로서만 소비된다는 점도 문제이다. 물론 우영우와 동그라미의 인사와 같이 밈을 따라하는 정도라거나 신경다양성을 조명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마냥 웃고 즐길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당사자의 인권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영우〉를 통해 자폐당사자의 현실이 이중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은 통탄할만한 일이다.
우영우와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닌 '전형적' 자폐당사자의 삶에 대한 주목도 이뤄져야 하지만, 동시에 우영우와 비슷한 상황에서 등록에서 배제된 신경다양인을 소위 '패션 자폐'니 '패션 ADHD'니 하며 몰아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소위 '저인지' '최중증' 자폐당사자의 삶과 진단을 거부당한 자폐당사자, 진단을 거부한 자폐당사자와 신경다양인의 삶 모두에 동일한 인권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우영우〉 하나를 봤다고 자폐인을 다 이해했다는 잘못된 판단을 대중들이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자폐는 그 당사자의 특성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영우씨의 재현 방식을 자폐특성의 본질로 오해해서는 안 되겠다. 실제로 자폐당사자들은 언론에서 ‘우영우 변호사 한 사람이 자폐인을 대표하지 않으며, 우영우 변호사는 그 중 한 명일뿐’이라고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자폐인 당사자들, 그리고 관계자들이 일제히 지적하는 것은 결국 다름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우영우 변호사만이 아닌, ‘우리 옆의 우영우’와 함께 있자는 것이다.
자폐스러운 사람들이 더이상 정부와 국민이 원하듯이 치료의 대상도, 돌봄의 대상도, 사회적 격리대상도 아닌, 신경다양적 소통 방식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이 점에서 〈우영우〉의 막이 내린 뒤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일과 말해야 할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Ⅴ. 나가며: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은 여기, 차별받고 있다
8월 24-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장애인권리위원회(CRPD)의 대한민국 국가심의에 estas 대표단이 함께 참여하였다.
이번에 estas는 CRPD에 단독으로 자폐대안보고서를 제출하는 한편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와 함께 한국신경다양성연대를 구성, 별도의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우리가 지적한 부분이 최종견해에 반영되기도 했다.
불행히도 분량이 많아 삭제된 내역이 많았던 이번 보고서 작성과정은 자폐인과 신경다양인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우영우〉가 없었다면, 이 때 estas가 주목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작년에 썼던 성명서가 트위터를 통해 증명받는 바람에 estas 단위로도, 회원 단위로도 여러 매체를 응대하면서 자폐인의 존재, 실제 삶 등을 여러 매체와 방법으로 증언하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여러 매체에서 estas가 잊지 않고 중심점을 잡아 이야기한 결론은 하나였다. 한국사회 곳곳에 자폐당사자와 신경다양인이 있으니 그들의 삶을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이 진정으로 얼마나 주목받았는지는 의문스럽다. 레거시 언론들은 〈우영우〉를 계기로 자신들이 가진 자폐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우리에게 투영했으며, 우리의 주장은 지속적으로 무시당했다.
우영우가 현재의 상태에서는 판타지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제2, 3의 우영우가 배출되는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논의의 계기로 삼았어야 했던 상황에서 오히려 우영우와 같은 자폐당사자가 한국에는 없음(?)이 강조되었다.
〈우영우〉에 대한 평가를 삼간다고 전제하고 나간 촬영이 ‘〈우영우〉 리액션’이 되기도 했다. 세바다의 인터뷰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돌아본다면, 〈우영우〉 제작사가 우리 단체들과 최소한의 연락이라도 취했다면 이렇게까지 분노하지는 않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것은 신경다양당사자와의 성실한 대화가 아니라 자폐연관단체를 통한 협력상생에 불과했다. ESG경영 관점에서도 올바른 대처라 볼 수 없다. 정작 콘텐츠의 주체가 되어야 할 자폐당사자와 콘텐츠 창작자들이 〈우영우〉를 통해 이용만 당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한편으로 estas는 뜻이 맞는다면 다른 장애유형의 집단과 비장애인, 시민사회와 문제해결에 연대할 수 있음을 밝힌 바 있다.
estas는 다양한 ‘발달장애계’ ‘자폐계’ ‘신경다양성 집단’ 등 유관 및 연대 세력과 협력하여 이번 방영을 계기로 더 많은 활동, 특히 국회 등 정치권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정치·사회적 자조운동’을 확대전개할 것이다.
그래서 최근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주축으로 결성된 ‘발달장애 문제 연구’에 집중한 의원 모임 ‘다함께’가 그 ‘정치·사회적 자조운동’ 의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회에서의 협력 대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우리 estas는 자폐인 당사자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존중만은 확실하게 요구한다. 그것이 우영우 변호사에게도 미안하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종영 이후의 한국사회가 화면 너머에, 당신 옆에, 자폐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사회가 들어줄 것을 분명하게 바란다.
estas는 자폐를 다룬 문화콘텐츠인 〈우영우〉가 높은 성적을 받아 종영하게 된 것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다만 이제 자폐당사자 없이 텍스트가 완성되었으니 그에 합당한 자폐당사자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제 Project O3이 한국의 자폐당사자가 담론을 생산할 수 없다는 차별과 편견을 깨게 될 것이다. estas는 〈우영우〉를 계기로 자폐특성 및 신경다양성이 사회의 일시적 의사공감(pseudo-empathy) 대상에서 벗어나 한국사회의 공론장에 포함되도록 자폐당사자의 파수꾼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다.
Ⅵ. 보론: 만약에 시즌 2가 진정 계획된다면
제작사인 에이스토리가 종영 직후 〈우영우〉 시즌 2와 함께 다양한 OSMU 콘텐츠 기획 추진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작품의 흥행에 따른 속편 제작은 통상의 문화콘텐츠 현실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일이지만, estas를 포함한 신경다양인들은 해당 계획에 우려와 반대의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원칙상 추진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을 강행하겠다면 몇가지 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시아의 〈뮤직〉이 자폐당사자들에게 비난을 받은 근본적인 이유인 비자폐당사자 출연을 통한 문화적 전유(appropriation)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현재의 출연진을 유지하더라도 시즌 1의 10화에서의 시도처럼 당사자 배우의 단역 및 조연 출연이 더 늘어나야만 하며, 이를 위해 다양성이 존중된 통합교육 등의 환경 조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최소한 이 드라마를 자폐당사자들은 전혀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고쳐야 하겠다. 현재 수많은 자폐당사자와 신경다양인들이 드라마 평가를 위해 상당한 불편함을 참아가며 이 드라마를 보고 있다.
해외 당사자들이 〈우영우〉 시청을 꺼리는 점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해외에서와 같이 당사자 대상 상영과 피드백의 기회는 줘야 했던 것이 아닌가?
따라서 적어도 다수의 자폐당사자 및 신경다양당사자와 적극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식으로 감수 역할로서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미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별나도 괜찮아〉는 시즌 1에서 자폐인의 의견 반영과 참여가 저조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시즌 2 이후 시나리오 개입, 단역배우 참여, 제작 스태프 참여를 허용하며 자폐인의 참여를 촉진한 선례를 에이스토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시즌 2를 비롯해 예고된 각종 후속 콘텐츠가 ‘더 나은 모습’으로 되돌아 올 것인지 우리는 계속 지켜볼 것임을 밝힌다. 다만 주연배우들의 입장과 사정도 있으니 에이스토리가 주장한 2024년 시즌 2 방영은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