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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화대종주 코스에 따라 '화엄사 → 연기암 → 무넹기 → 노고단 대피소 → 노고단 고개 → 피아골 삼거리 → 노루목 삼거리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연하천 대피소 → 삼각고지 → 벽소령 대피소 → 세석 대피소(1박) → 장터목 대피소 → 천왕봉 → 치발목 대피소 → 새재 삼거리 → 유평 → 삼장분소'의 45.6km 구간을 1박 2일, 23.8시간(국립공원공단 기준)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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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국립공원
1967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등 3개 도, 5개 시군에 걸쳐 483.022㎢의 가장 넓은 면적을 지닌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둘레가 320여km나 되는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동과 서, 영남과 호남이 서로 만나는 지리산은 단순히 크다, 깊다, 넓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 국립공원공단
지리산 종주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의 주 능선 산행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그 범위가 3도 5개 군 15개 면에 걸쳐 있으며 4백 84㎢ (1억 3천만 평)으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지리산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활처럼 굽은 25.5㎞의 주 능선은 노고단, 반야봉, 토끼봉, 칠선봉, 촛대봉, 천왕봉 등 1천 5백m 이상의 봉우리만도 16개나 이어진다.
이 주 능선 산행을 지리산 종주라 한다. 등정, 하산 거리까지 합치면 보통 50km~60km가 넘으며 2박 3일에 20~25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지리산 종주는 아마추어 등산인에게는 "진짜 산꾼"의 경지에 올라서는 관문 같은 코스다.
웬만큼 산에 다닌 산악인이라도 인내를 갖고 산행해야 할 만큼 자신과 싸움이 필요한 코스다. 그런 만큼 지리산 종주는 평소에는 하기 어렵다. 여름 휴가철에 가장 인기를 끄는 여름 산행코스다.
지리산 종주의 의미
지리산의 전체적 윤곽을 파악할 수 있다.
지리산은 그 규모가 광대하여 등산코스도 수십 개에 이르러 한 번의 산행으로는 지리산의 극히 일부만을 다녀온다. 여러 번의 산행을 하더라도 주 능선을 종주하지 않고는 지리산의 윤곽을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지리산 종주는 지리산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산행이다.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친다.
전문 등산인은 "산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려면 지리산 종주를 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지리산 종주 산행이 주는 인상이 다른 산에 비해 강렬할 뿐 아니라 등산의 묘미에 흠뻑 젖을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1천 5백m가 넘는 봉우리만도 16개에 20여 개 이상의 봉우리를 한 번의 산행으로 넘는다. 그러다 보면 등산에 대한 자신감도 가질 수 있다.
지리산 종주 코스는 우리나라 산의 종주 코스 중 가장 긴 코스이다. 한두 번 산에 다니다 보면 산을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종주 산행을 하게 된다. 종주 산행 중 가장 길고 자신과 인내의 싸움이 필요한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 가히 산꾼이라 할 만하다. - 한국의 산하
다른 등산객, 산꾼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나, 종주의 꽃 하면 지리산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이어 달리는 화대종주를 꼽는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 3학년 여름 방학 때 2박 3일 보이스카우트 잼버리로 지리산에 처음 오른 후 현재까지 정확히 몇 번이나 올랐는지 기억이 없으나, 최소 70은 넘는 거 같다. 당시 2박을 어디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대피소가 아니라 산장이라 불리던 장터목과 벽소령이 아니었을까? 장터목이 아니라 세석인가? 어쨌든 그 이후 매년 많으면 너덧 번, 적으면 한 번 지리산을 방문했다. 물론 그 대부분이 야영이나 산장에서 1박이나 2박 하는 종주였다. 하지만, 종주의 꽃이라 생각하는 한번에 달리는 화대종주만은 안 했다. 못했나?
1989년 1월인가 2월인가, 대학 동기들과 졸업을 앞두고 백무동에서 출발해 화엄사로 내려가는 종주에 나섰다가, 장터목 산장에서 동기 하나와 침낭을 이중으로 하고 그 안에 같이 들어가 껴안고 잤을 정도로 주웠다. 해서 다음날 화엄사까지 달리는 걸 포기하고 천왕봉에 오른 후 대원사로 하산했었다. 당시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의 구간에서 기억에 남는 거라곤 지루하다는 거밖에 없다. 해서 이후 천왕봉에서 대원사 방향으로의 하산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이를 먹어가고, 지리산은 봉우리든 계곡이든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가 되니, 슬슬 화대종주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1박으로는 무리라, 2박 3일이다.
생각만 있었지 실행 계획은 세우지도 않고 있다가, 길소와 둘이 달리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정이 생겨 포기했다. 그리고 안내산악회라는 걸 알게 되고, 그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무박으로 화대를 달리는 산꾼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극기 훈련의 하나로 하는 산행을 극도로 혐오하고, 무박 산행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하지 말자는 주의라, 무박 화대종주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다만 시간 계획을 참고하기 위해 안내산악회의 산행 계획을 몇 번 검토하기는 했다. 그러다 2022년 우연히 안내산악회도 무박만이 아니라, 무박으로 시작해 대피소에서 1박 하는 화대종주도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말인즉 첫날 심야 버스로 서울을 떠나, 새벽에 화엄사에서 산행을 시작해 세석 피소에서 1박하고 다음날 대원사로 하산하는 산행이다.
정확히 원하는 화대종주다. 해서 각 안내산악회 계획을 주시했다. 물론 숙박! 그리고 안내산악회 두 곳이 9월 3주 차에 진행하는 걸 발견했다. 대기업 안내산악회는 28인승 버스로 수요일 심야 출발 목요일 세석에서 1박 하는 계획, 가격으로 승부하는 산악회는 44인승 버스로 금요일 심야 출발 토요일 같은 세석에서 자는 계획이다. 당연히 회비는 44인승 버스가 28인승의 반 정도다. 버스의 좌석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라, 가격이 싼 44인승 버스를 탈 생각이었으나, 산행 일이 등산방 정기산행과 겹쳐, 그 두 배를 지급하고 28인승 버스를 신청했다. 출발이 일주일 정도 남은 현재 두 산악회 다 성원을 채웠고, 28인승 버스는 4명의 대기자까지 있다. 물론 대피소 예약은 승객이 하는 거라, 예약이 개시되는 날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다가 재빨리 예약에 성공했으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현재도 152명이 신청할 수 있다. 물론 토요일은 진작에 마감!
이렇게 해서 9월 13일 심야에 서울에서 출발해 1박 2일 화대를 달리게 됐다. 그리고 1년 한 번 있는 기회를 잡은 거라, 비 때문에 취소되는 일이 없기를 빌며, 기상청 중기예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산행 일주일 전부터 지리산이 걸쳐 있는 3개 도에 산행 일인 14일부터 16일까지 비가 보이기 시작했다. 중기예보가 아니라 산악날씨에 공개되는 사흘 전까지 기다려 봐야 하나, 그때 취소하면 산악회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빠른 산꾼은 중기예보를 보고 강행 여부를 결정한다. 하루만 비가 내리면, 어떻게 강행해 볼 수도 있으나, 산행 내내 비라, 포기 여부를 고민하다가, 등산객의 취소가 늘어나 자동 취소가 될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들어, 조용히 지켜만 봤다. 물론 자동 취소가 되지 않는 대피소는 불이익을 당하기 전 취소했다. 예상대로 취소자가 속출하더니, 출발 하루 전인 9월 12일 오후에 산악회로부터 취소한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참고로 금요일 심야 출발 안내산악회 또한 비의 영향으로 취소자가 속출해 성원 미달로 취소됐다.
안내산악회를 이용한 숙박 화대종주는 내년을 기약해야 하나,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고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잘라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교통편 때문에 화대종주는 힘드나 성대종주는 시간만 잘 맞추면 가능해, 9월 15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추석 연휴인 10일 1일 세석대피소에 2자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성삼재행 시외버스도 예매했다. 한 자리는 흥수를 고려한 걸로 그 친구가 동의한 건 아니나, 일단 예매하고, 의사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일정이 안 된다면 취소하면 그만이다. 예상대로 동의해 9월 30일 22시 55분 심야버스로 성삼재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주행이 우리를 화엄사 앞에 내려주고, 대원사에서 픽업해 주겠다고 자청한 덕에 성대종주에서 다시 화대종주를 바뀌었다. 그 과정에는 반야 낙조 산행과 관련된, 글로 쓰기에는 긴 해프닝도 있다. 그렇게 결론이 나고, 가장 먼저 동서울발 성삼재행 심야 버스를 취소했다.
첫날은 새벽 2시경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에서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연하천에서 김밥이나 주먹밥으로 점심을, 세석평전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빠르면, 17시경 세석평전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둘째 날은 세석평전을 출발해 장터목에서 해장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치발목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으면, 16시경 대원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햇반을 제외한 나머지는 준비해 들고 가고 햇반은 길목의 대피소에서 살 예정이나, 지리산의 모든 대피소가 만원이라, 여유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 일단 대피소를 믿고 간다. 고로 서울에서 22시경 출발하면 되지만, 임시산악회를 운영 중인 주행이 와이프와 2박 3일 남도 여행을 하기로 해, 30일 15시경 출발해 18시경 구례에 도착해 간단하게 한잔하기로 했다. 우리야 심야 차량에서 시달리지 않고, 몇 시간이라도 편히 잔 후 산행을 시작할 수 있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다.
2 – 1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 보온을 위한 패딩 조끼와 이불 대용 침낭 내피. 만약에 대비한 침낭 외피 등을 배낭에 넣으려고 보니, 평소 가지고 다니던 당일 산행용 배낭에는 다 들어가지 않는다. 해서 창고에 처박아 뒀던 좀 큰 배낭을 꺼내 먹거리가 든 디팩과 버너, 코펠, 가스 등이 든 디팩 두 개와 위의 짐을 넣고 나니, 배낭이 묵직해 무게를 재봤다. 7.5kg에 불과한데, 10kg이 넘게 느껴진다. 3시에 산악회 운영자 주행의 집에서 가까운 낙성대역에서 만나기로 해, 2시 10분경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려고 보니, 갑작스러운 폭우다. 해서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서, 2시 58분경 낙성대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가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화창하기만 하다. 어쨌든 우산이라는 짐이 하나 늘었다. 그나마 다행은 주행의 차에 두고 산에 오르면 된다는 사실!
3시 조금 넘어 기다리고 있던 주행의 차에 타고 구례로 달려, 7시경 예약한 펜션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행이 방을 확인하러 간 사이 우리는 차에서 먹거리와 조리 도구를 꺼내 펜션 마당의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주행이 펜션 계산대에서 주인과 얘기를 나누는 거 같더니, 어딘가로 전화한다. 분위기로 봐서는 예약에 문제가 있어 보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가 우리에게 다가와 처음에는 9월 30일로 예약했는데, 침대방에서 온돌방으로 변경하면서 실수로 날짜도 변경하는 바람에 10월 1일로 예약했다고 한다. 이 펜션에는 빈방이 없어 급하게 주변의 모텔을 예약했단다. 문제는 모텔에서는 캠핑 장비를 가지고 저녁을 만들어 먹을 수 없다는 건데, 다행히 펜션 주인장이 펜션 마당에 잇는 식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에 준비한 고기와 술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추석 다음 날 저녁이라, 보름달과 다름없는 떠오는 만월을 구경하며, 술을 마셨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모텔까지 운전해야 하는 주행은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는 거. 해서 모텔에서 2차를 하기로 하고, 남은 고기를 잘 싸서 넣은 후, 라면과 밥으로 입가심하고, 짐을 정리해 모텔로 향했다. 모텔에서 싸 온 고기와 빨갱이, 맥주 등으로 2차를 하고, 다음 날 새벽 산행을 위해 11시경 잠자리에 들어, 2시 30분경 기상해, 산행 준비를 마치고, 화엄사로 향해,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지점까지 올라갔다. 비록 3시간 반 정도밖에 못 잤으나, 흔들리고 시끄러운 차가 아니라, 조용한 모텔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어, 화대종주를 하기에는 최상의 몸 상태다.
2 – 2
3시 21분 차량으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화엄사 대웅전 옆 삼천교 앞에서 삼각대를 이용해 대장정을 시작하는 인증을 남겼다. 이후 주행은 차를 가지고 모텔로 돌아가고, 3시 26분 흥수와 둘이 화대종주의 첫 번째 목표인 무넹기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하동바위나 칠선계곡으로 올라, 노고단으로 향할 때면 무넹기에서 화엄사로 내려가거나, 피아골로 내려갔다. 급경사의 피아골 하산 길도 쉽지 않으나, 무넹기에서 화엄사로 내려가는 너덜은 학을 뗄 정도여서, 오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아, 지금까지 한 번도 오른 적은 없다. 해서 늘 한 번은 올라야지 벼르고 있었다. 당연히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달리는 화대종주를 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라, 이번 한 번의 산행으로 달성하는 여러 목표 중 하나가 무넹기까지 오르는 거다.
무넹기를 오르며 생각하니, 등산 앱은 삼천교에 도착하는 순간 가동했는데, 시작점의 고도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등산 앱 기동 10분이 지났고, 삼천교를 떠난 5초 후! 사실 오늘 천왕봉까지 가는 게 아니라, 고도는 별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늘 해오던 거라, 캡처도 했다. 247.5m로 생각보다 높다. 노고단이 1,500m가 넘고, 세석까지 이어지는 봉우리 중 가장 높은 영신봉이 1,652m니, 최소 1,400m 이상 고로를 높여야 한다. 올리는 고도만 놓고 보면 종주 첫날 다 올리고, 둘째 날은 1,915m의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고도를 낮춰야 하니,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며, 위로 올라, 3시 41분 용소 쉼터를 지나, 3시 57분 시어나무 쉼터를 통과했다.
칠흑 같은 새벽어둠을 뚫고 가는 거라, 보이는 게 없어 그저 랜턴 빛에 의지해 앞서가는 흥수의 뒤만 따라가다, 3시 59분 임도에 도착했다. 화엄사에서 연기암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물론 이 도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나, 여기까지 차를 타고 오는 건 화대종주의 의미를 희석한다는 생각이 들어, 등산로를 따라 올라왔다. 연기암까지는 몇 년 전 올라왔었기에 오르는 것만 놓고 보면 여기서부터 무넹기까지가 초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연기암 삼거리를 떠나, 4시 13분 참샘터에 도착해 물을 마시려고 보니, 마시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어 그냥 통과하고, 4시 43분 국수등을 지났다. 그리고 쉼 없이 계속 올라가자, 4시 55분 등산 앱이 중재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줘 그걸 캡처했다. 그 지점에서 2분을 더 올라간 4시 57분 중재에 도착했다
5시 17분 신선들의 집합처 집선대를 통과하고, 5시 21분 신선들을 위한 쉼터라 생각되는 집선대 쉽터를 지났다. 무넹기까지 남은 거리는 1km! 그리고 5시 33분 해발 고도 1,022m 지점에 있는 이정표를 통과했다. 여기서부터 해발 1,000m가 넘어, 둘째 날 유평으로 가는 중간 어느 지점까지는 그 이상의 고도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위로 오르자, 5시 46분 등산 앱이 코재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11분이 지난 5시 57분 코재에 도착했다. 코재 도착 기념으로 인증을 남기고 5분가량 오르자, 등산 앱이 다시 무넹기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기쁜 마음으로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 6시 6분 도착했다. 이번 산행의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으로, 삼천교에서 3시 26분에 떠났으니, 무넹기까지 2시간 40분이 걸렸다.
여기서부터 천왕봉까지는 수없이 오르고 내린 구간이라,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산행이나, 화대종주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시 가야 한다. 무넹기를 떠나, 대피소 직전 만나는 아니, 앞으로 하산할 때 외에는 볼 수 없는 우렁찬 계곡을 기록으로 남기고 아침을 먹기 위해 노고단 대피소로 향했다. 그리고 6시 20분 대피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대피소가 없다. 정확히는 기존 대피소는 철거하고 옆에 다시 짓고 있다. 상태로 봐서는 완공이 얼마 안 남아 보였지만. 과거 대피소 정문 앞에 서 있던 마고상이 안 보인다. 설마 없애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대피소를 다시 짓더라도 취사는 할 수 있게 조치하는데, 취사장도 안 보인다. 산행 전 산악날씨를 보고 추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바람이 더 차,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해서 위로 올라가며 보니, 오른쪽으로 컨테이너 건물이 보인다. 아마 저게 취사장일 거로 생각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맞다. 취사장이다!
먼저 도착한 두 팀이 자리를 잡은 컨테이너 건물의 임시 취사장에는 문이 없어 바람이 드나들기는 하나, 아예 벽이 없는 거보다는 환경이 나아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한 누룽지를 끓여 같이 가져온 반찬과 가볍게 배를 채웠다. 대략 30분 정도 아침을 먹고, 노고단고개로 가는 지름길을 대피소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막고 있었으나, 무시하고 금줄을 넘어 지름길로 고개로 향했다. 그런데, 금줄을 넘으며 보니, 역시 한국 산꾼은 경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길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고개로 향해 올라가자, 7시 9분 등산 앱이 노고단고개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역시 고개 쪽에도 금줄로 막아 놨으나,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일은 없어, 다시 그걸 넘어, 7시 12분 고개에 도착했다. 오랜만의 노고단고개라 뭐 달라진 게 없나, 주변을 둘러보고, 기록으로도 남긴 후 7시 13분 고개를 떠나, 본격적인 지리산 주 능선 종주를 시작했다.
노고단고개를 떠나 오늘 밤 숙소인 세석대피소로 향하며, 오른쪽의 왕시루봉 가는 길을 유심히 찾아봤는데, 지난번과는 달리 명확한 길이 있다. 이 또한 산꾼이 만들었을 거다. 당연히 그 위치를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하자, 7시 52분 등산 앱이 돼지령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1분을 더 간 7시 53분경 돼지령에 도착했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길을 재촉해, 8시 3분 피아골 삼거리를 통과해 임걸령으로 향하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진다. 기상하자마자 볼일을 보기는 했으나, 시원하지는 않았는데, 누룽지를 먹은 덕인지 신호가 온다. 그 신호는 나만이 아니라 흥수도 마찬가지라 그가 먼저 가자고 해 임걸령 직전 숲으로 들어가 땅을 파고 볼일을 봤는데, 흥수는 작은 것만 보고 말아, 괜찮은지 확인했다. 노고단고개를 떠난 후 친구의 상태가 평소와 달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작은 걸 보고 나니 괜찮다고 해 흔적을 깨끗이 파묻고 떠났다.
임시 화장실을 떠나자마자 등산 앱이 임걸령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 시각이 8시 10분이다. 그런데, 막상 임걸령 도착 시각은 8시 17분으로 7분 후다. 아니, 7분 동안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50m 거리에 불과하다고? 이 등산 앱도 미덥지 못하다. 임걸령에 도착했으니, 당연히 물맛을 보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자, 8시 27분 등산 앱이 날라리봉 반경 50m 내란다. 매번 지리산 종주할 때마다 등산 앱이 날라리봉이라고 알려주는데, 정상석이나 이정표 등의 표지가 있는 게 아니라 정확한 위치는 아직도 모른다. 뭐 그러려니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자, 이번에는 노루목이다. 날라리봉에서 20분 거리로 현재 시각 8시 47분이다. 그리고 1분 후인 8시 28분 노루목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삼거리로 좌회전하면 반야봉이다. 노루목에 왔으니, 그냥 갈 수 없어,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왕시루봉 능선과 불무장등 능선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노루목을 떠나 삼도봉으로 향하며 우기에는 석간수가 흐르는 암벽 밑에 물이 있나 확인했다. 없다. 최근에 비가 내리지 않았나? 어쨌든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계속 가니, 다시 반야봉 삼거리다. 그리고 9시 3분 묘향암 갈림길을 통과했다. 그 갈림길에서 6분가량 전진한 9시 9분 등산 앱이 삼도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주기는 하나, 실제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가봐야 안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가, 9시 11분에 도착했다. 이 구간은 그나마 등산 앱의 정보가 양호하다. 삼도봉에는 꽤 많은 등산객이 삼각 표지를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다. 그런데, 노루목에서 만났던 등산객도 보인다. 그들의 배낭에 잘 아는 안내산악회 명패가 달려있어 유심히 봤다. 어쨌든 삼도봉에 왔으니, 먼저 노고단과 반야봉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후 흥수를 데리고 진정한 삼도봉 정상으로 가 주변을 경치를 감상하고 역시 사진으로 남겼다.
기록할 건 기록하고 다시 삼각 표지가 있는 정상으로 돌아와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미련 없이 삼도봉을 떠나 화개재로 향해, 9시 42분 등산 앱이 화개재 반경 50m 내라고 음성을 알려주는 위치를 통과해, 1분 후인 9시 43분경 화개재에 도착했다. 화개재에서야 딱히 할 일도 없어, 이정표만 사진으로 남기고 마의 토끼봉으로 향해, 10시 18분경 도착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가장 힘든 구간을 토끼봉이라 칭하나, 사실은 토끼봉이 아니라, 화개재에서 연하천에 이르는 전 구간으로 통칭 토끼봉으로 부르고 있다. 그건 그렇고, 토끼봉 도착 몇 분 전에 울려야 하는 등산 앱이 도착할 때까지 전혀 반응이 없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모든 봉우리가 인증 대상은 아닐 거로 생각하고 계속 갔으나, 다음 날 천왕봉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럼, 뭐가 문제가 있는 거라, 산행이 끝난 후 이 등산 앱도 폐기할 예정이었다..
토끼봉을 떠나, 힘겹게 명선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라섰으나, 정상석이나 이정표 등 어떠한 표지도 없고, 와중에 등산 앱마저 침묵이라,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어, 기록도 못 남기고, 그저 연하천 0.4km 이정표만 사진 찍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으며 신이 나서 연하천으로 향해 11시 43분 도착했다. 대피소에는 생각보다 많은 등산객이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 점심을 먹거나 준비하고 있어, 빈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흥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등산화 양말을 벗어 발을 자유롭게 했다. 그리고 흥수가 도착하자, 저녁에 먹으려고 준비한 훈제 오리를 조금 꺼내, 코펠로 익혀 기름을 추출하고 그 기름에 대피소에서 산 햇반과 흥수가 준비한 볶음 재료를 같이 넣고 밥을 볶았다. 처음 계획 주먹밥을 만드는 거였으나, 의사 전달에 문제가 있어, 볶음밥 재료를 사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쨌든 밥을 준비하는 동안 복통이 해결되지 않은 흥수는 공단 요원에게 비상약이 있는지 묻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당연히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해 그러면 하산하자고 권했다.
상태로 봐서는 바로 하산할 상황이었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화대종주라는 걸 잘 아는 친구라, 하산하자는 말은 못 하고, 조금만 더 가보자고 고집을 부려, 그럼 세석이 아니라 일단 벽소령에서 자기로 하고, 먼저 벽소령에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13자리가 있어, 바로 세석 대피소로 전화해 환자가 있어 벽소령 대피소에 자야 할 거 같은데 변경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빈자리가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와 13자리가 빈 걸 확인했다고 하자, 바로 변경해 줬다. 덕분에 환자를 데리고 거의 10km에 이르는 세석까지 가지 않아도 됐다. 문제는 3.6km 거리의 벽소령까지는 잘 갈 수 있느냐지만, 어쨌든 12시 38분 연하천 대피소를 떠나 벽소령 대피소로 향했다. 일단 벽소령에서 푹 쉰 후, 다음날 상태를 보고, 1. 의신이나 음정으로 바로 하산, 2.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하산, 3. 예정대로 대원사까지 달리는 것 중에서 선택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화대종주를 목표로 한 산행이나, 화엄사에서 무넹기를 생각보다 빨리 오른 것과 예정에 없던 지리 10경 중 벽소명월(碧宵明月)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 어디로 하산하든 상관이 없었다.
세석 대피소를 목표로 시작한 첫날 산행에서 6.3km가량 준 벽소령 대피소로 목적지가 변했고, 아직 1시도 안 된 시간에, 환자까지 있어 가능하면 서두르지 않고 유유자적 벽소령으로 향했다. 물론 전망대가 있으면 거기에 올라, 주변 절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기며. 해서 12시 50분 음정마을 삼거리, 통칭 삼각고지를 지나, 13시 29분 형제봉에 도착해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주 능선 위의 장터목 대피소의 모습도. 이후 노닥거리며 벽소령으로 향해, 2시 20분경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 동영상을 찍으며 전진해 14시 22분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는 따뜻한 햇볕 아래, 일행마다 식탁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늦은 점심을 먹거나, 간식을 먹고 있다, 아니면 준비하고 있거나.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도 몇 보이나 그 이유를 몰랐다.
빈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흥수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변 등산객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러다 우연히 몇 사람의 대화를 듣고 노루목에서부터 품고 있던 궁금증을 해소했다. 예상대로 안내산악회의 1무 1박 3일의 지리산 종주 산행 팀이다. 그중 한 명이 인솔 대장이다. 그리고 대부분 참여자가 벽소령에서 1박 하기로 한 거 같다. 해서 인솔 대장이 벽소령에 도착하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좀 있으니, 흥수가 도착해 먼저 요원에게 가 비상약이 있는지 물었으나 없어, 안내산악회의 인솔 대장에게 물어봤으나, 역시 없다. 해서 내가 요원에게 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으나, 3시부터 입장이라는 말에 환자 때문이라고 하니, 중앙 홀에서 기다리라고 해, 대피소 중앙홀로 들어갔다. 그런데 중앙홀이라고 특별한 게 없어 다시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다가 3시에 체크인을 하고 자리를 배정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 흥수는 침낭을, 나는 침낭 내피를 꺼내 옷을 입은 그대로 그 속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온풍기가 동작할 거로 생각했는데, 조용해 건너편 침상을 보니, 개인 자리 머리맡 벽에 무언가 번쩍거리는 게 보여 내 쪽을 보니, 역시 같은 게 있다. 개인 난방 시스템이다. 아니?! 대피소가 이렇게 좋아졌단 말이냐 감탄하며, 개인 난방 시스템을 켰다. 그리고 조작 버튼 몇 개를 조작해 보고, 온도가 아니라, 시간을 조절하는 거라는 걸 확인하고 잠을 청했다. 그사이 아프고 피곤한 흥수는 벌써 코를 골고 있다. 나 역시 옆에 누워 뒤척이다가, 뜨끈한 온돌에서 한 시간 넘게 지지고 일어난 흥수에게 일찍 저녁을 먹자고 얘기하고 디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구운 훈제 오리를 안주로 빨갱이를 마시고, 그 기름에 밥을 볶았다. 상태가 좋지 않은 흥수가 많이 먹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남은 밥을 버려야 했다. 와중에 주행과 통화해 내일 일정이 유동적이니, 출발할 때 확인 전화하라는 걸 잊지 않았다.
18시경 방으로 들어와, 침낭 내피를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옆 사람의 코 고는 소리와 속속 도착하는 등산객의 소음에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잠을 깨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따뜻하다는 거다. 해서 내피에서 기어 나와 그걸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개인 난방시스템의 온도 유지 시간을 최대로 줄일 수 있는 한 시간으로 맞췄다. 어쨌든 자다 깨기를 반복하기는 했으나, 18시경부터 2시가 조금 지날 때까지 잤으니, 푹 잤다. 물론 빨갱이가 이바지한 것도 있다. 깨어 보니, 다시 잘 생각이 없어 보이는 흥수가 3시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출발하잖다. '응? 어디로?', '대원사로!', '괜찮냐?' 뜨끈한 온돌에 푹 지지고, 화장실 들락였더니, 몸 상태가 좋아져 충분히 갈 수 있단다. 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반할만한 명월이다. 물론 사진으로도 남겼으나, 눈으로 보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이로써 지리 10경 중 천왕일출과 반약낙조를 제외한 8경을 감상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며 본 벽소령 대피소 취사장은 이른 아침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등산객으로 분주하다. 그저 지금 뭘 먹을 수 있는 것에 감탄하며 자리로 돌아가, 배낭을 싸서 들고나왔다. 그리고 2시 40분경 대피소에 작별을 고하고, 천왕봉 아니, 대원사로 향했다. 그렇게 가다가 3시 6분 덕평봉을 통과하고, 3시 32분경 선비샘에 도착했다. 당연히 약수가 콸콸 나올 거로 생각지만, 졸졸 흘러 한 모금 받는 것도 하세월이라, 애초 물을 받아 가려는 생각에서 목만 축이는 거로 만족하고 떠났다. 밝게 빛나는 명월과 그 옆, 별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세석으로 가면서, 어제저녁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대피소의 매점이 7시나 8시에 시작하니, 세석에서 아침을 먹으려면, 벽소령에서 햇반을 사 들고 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생각은 있었으나, 깜빡했다. 고로 장터목까지 가야 한다.
애초 세석에서 1박하고 5시경 출발해 7시경 장터목 대피소에서 해장라면으로 아침을 먹을 계획이라,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비록 벽소령에서 1박하기는 했으나, 시간은 예정대로 흐르고 있다. 다만, 라면이 없을 뿐. 고로 장터목에서 햇반을 사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 문제는 준비된 반찬이 없다는 건데, 디팩에 비상용으로 넣어둔 건조 국과 라면 스프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조미 김도. 해서 그걸로 대충 국이나 찌개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이렇게 아침에 대한 고민을 떨치고 계속 가, 4시 23분 칠선봉을 통과하고, 5시 9분 낙남정맥의 분기점인 영신봉에 도착했다. 세석까지 남은 거리는 0.4km! 하지만 우리는 세석에 볼일이 없으니, 대피소에 들르지 않고 바로 장터목으로 향한다. 다만 어제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한 흥수가 견디지 못해, 한기가 돌 정도로 추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비상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둘이 그렇게 결정하고 촛대봉 방향으로 가는데, 그 길목에 금줄을 치고, 길에는 나무를 심어 통행을 막았다. 무조건 대피소를 거쳐 가라는 얘기다. 아니 왜 굳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하냐? 이게 다 야간 산행을 막기 위해서라는 건 얘기 안 해도 알지만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다. 해서 금줄을 넘어갈까, 하다가 그 과정이 번거로워 대피소로 내려갔다. 세석 대피소 또한 아침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등산객으로 정신이 없다. 해서 우리도 취사장으로 들어가 비상식으로 들고 다니는 에너지바를 꺼내 먹고, 볼 수 있으면 촛대봉 일출을 보기 위해 대피소를 떠났다. 그리고 5시 55분경 촉대봉에 도착했으나, 일출을 보기는 틀린 날씨에, 그걸 보자고 기다렸다가는 얼어 죽을 거 같아, 바로 장터목으로 향했다. 촛대봉에는 세석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온 등산객이 천왕봉 방향을 보고 있고, 저 멀리 천왕봉 쪽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등산객의 랜턴이 깜빡인다. 둘 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날씨라 유감이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는 없으나, 붉게 빛나는 바닷가의 모습은 볼 수 있어 그걸 감상하고 사진으로도 남기기도 하며 장터목으로 향하다가 앞에 보이는 절경 또한 놓치지 않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이 지리산에 올랐지만, 이번처럼 조망이 좋았던 적은 기억에 없을 정도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연하선경을 감상하며 길을 재촉해 7시 10분 연하봉에 도착했다. 장터목이 멀지 않았다. 연하봉을 떠나 조금 더 올라가자, 전면에 천왕봉과 제석봉 그 아래 장터목이 보인다. 화대종주의 끝이 보인다. 전면의 천왕봉을 감상하며 연하봉에서 동영상을 찍으며 내려가,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이 7시 28분이다.
장터목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오른쪽 남해 방향의 모습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거다. 그리고 취사장 방향으로 가는데, 흥수가 전화해 받으니, 대피소 매점에서 햇반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해서 취사장으로 가 취사도구를 꺼낸 후 코펠과 물통을 들고 40m 아래에 있는 식수장으로 가다가, 취사장 쪽을 보니, 취사장 옆에 큰 물통이 있고, 거기서 식수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놨다. 벽소령 대피소도 취사장 옆에 수도가 있더니, 장터목도 그렇다. 그럼, 모든 대피소가 이렇게 바뀌었나? 그런데 그게 산꾼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40m 아래의 식수장으로 내려가, 물통 두 개를 채우고, 코펠에 미역국을 끓일 수 있을 정도의 물을 떠 취사장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흥수가 햇반을 사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일단 버너에 불을 켜고, 건조황태미역국과 미역스프, 김 등을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그 뜨거운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었는데, 의외로 맛이 괜찮다. 거기다, 완벽한 해장국으로 추위에 떨며 세석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누적된 피로가 싹 가신다.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주행이 전화했다. 해서, 예정대로 대원사로 가기로 했으나, 도착 시간은 처음 계획인 4시가 아니라 2시라고 알려줬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순천에서 출발하는 주행의 시간이 애매하다는 걸 알았으나. 어쩔 수 없다. 통화를 끝내고 배를 채운 후 8시 9분경 장터목을 떠나 제석봉을 향해 올라갔다. 앞에 보이는 천왕봉뿐만 아니라, 가끔 뒤로 돌아 지금까지 지나온 능선의 모습도 감상하며 가, 8시 33분 제석봉에 도착해, 주변의 절경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제석봉을 떠나 앞에 보이는 천왕봉을 향해 가며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왼쪽의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유심히 관찰했다. 중봉에 오른 건 두 번으로 처음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 시절이고, 두 번째는 89년 3월 대학 동기들과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종주에 나섰다가, 장터목 산장에서 추위를 못 견뎌, 대원사로 하산할 때다. 그런데, 당시 갔다는 것만 기억나지 코스에 관한 건 지루했다는 것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관찰하며 천왕봉으로 향해, 8시 56분 통천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으며 그걸 통과한 후 위에서 통천문의 모습과 언젠가 다시 가야 할 칠선계곡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통천문을 떠나 암릉을 따라 아래만 보고 가다가 뭐가 머리에 부딪혀 고개를 들어보니, 갑판 계단의 난간이다. 정상적인 난간이라면 충격이 컸을 텐데 그렇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머리를 부딪히는 등산객이 많은지 충격을 줄이기 위해 난간 끝을 수건으로 감아놨다. 그 모습에 감탄한 후 뒤로 돌아 지나온 능선의 모습을 감상하는 중에 저 멀리 엉덩이 두 쪽과 엉덩이골이 선명하게 보인다. 와중에 오른쪽 엉덩이에는 노란 점까지 있다. 물론 반야봉과 중봉, 묘향암에 관한 얘기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며 흥수에게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때 우연히 여성 등산객이 능선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는 걸 발견하고 괜한 소리를 했나, 약간 후회가 됐다.
합법적으로는 봄·가을 몇 개월 그것도 월요일만 천왕봉까지 올라올 수 있는 칠선계곡 탐방로 종점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언제쯤 여기로 올라올 수 있을지 계산해 봤으나, 예측이 안 된다. 국립공원공단 예약 시스템으로 몇 번 예약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남은 건 법 없이 사는 사람답게 구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천왕봉 방향을 보니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인증을 찍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정상으로 향해, 9시 17분 정상석이 있는 암봉에 도착했다. 흥수나 나나 인증 하나 남기자고 줄 서서 기다리는 짓은 하지 않는 인간이라, 정상석의 모습만 인증 대상이 바뀌는 틈을 타,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인증을 찍는 등산객에게 방해되지 않게 한쪽 구석에서 인증을 남겼으나, 역광으로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어쨌든 인증은 남겼으니 됐고, 그보다 중요한 게 정상주라, 정상 한쪽 구석에 자리를 펴고, 육포 안주에 빨갱이로 정상주를 마셨다.
천왕봉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고, 9시 32분경 중봉으로 향했다. 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그동안 많은 등산객이 다녔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등산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게 지리산 화대종주니, 길이 좋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봉으로 향하며 가끔 뒤로 돌아 천왕봉의 모습을 관찰했는데, 세 번째 방문임에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장관이다. 물론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장관도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뒤로 돌아 평소 보지 못했던 천왕봉의 뒷모습에 감탄하기도 하며, 중봉 정상을 향해 가는데, 거대한 바위가 버티고 있고, 등산로는 그걸 우회하고 있다. 그 우회로를 따라 돌아 위로 올라가니 그 바위 정상 방향으로 눈에 잘 띄지 않은 길이 보여 분명 전망대라 생각하며 그리로 들어갔다. 예상대로다. 최고의 전망대다.
저 멀리 무등산까지 보이는 전망대에서 속속 도착하는 등산객과 주변 산에 관해 몇 마디 얘기 나누고, 전망대를 떠나 중봉 정상으로 향해, 10시 8분에 도착했다. 대개 산은 높이에 따라, 상봉, 중봉, 하봉 등으로 부르는데, 지리산은 천왕봉 동쪽으로 중봉과 하봉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런데, 세상에 알려지기는 거의 서쪽 끝이나 다름없는 반야봉과 노고단이 더 유명하다. 어쨌든 중봉에 왔으니, 인증을 남겨야 한다. 우리가 천왕봉 인증에 별 관심이 없었던 건 거기서 남긴 인증은 많아 굳이 한 장 더 찍을 이유가 없었고, 이번 산행이 화대종주고 그럼 중봉에서 인증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서 중봉에서 쉬고 있던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대원사 방향으로 100여 미터를 내려가자 저 아래 능선 위로 건물이 보인다. 대원사 길목의 치발목 대피소다. 위에서 보기에는 대단히 가까워 보이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 닿을듯하면서도 닿지 않아 등산객을 더 초조하게 만드는 대피소다.
급경사 등산로로 치발목으로 향하는 길목에 갑자기 건물이 나타나 이건 뭔가 살펴보니, 중봉안전쉼터로 사고가 많은 지역이라, 대피소와는 별개로 갑작스러운 기상변화에 대비한 쉼터로 보인다. 비상 상황에서 전화하면,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시스템인 거 같은데, 통신은 잘 되는 지역인가? 미처 그걸 확인 안 해봤다. 잘 되겠지?! 다시 길을 재촉해 급경사를 내려가며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된 이정표에 있는 고도를 유심히 봤는데, 아직 1,600m가 넘는다. 그리고 저 앞으로는 얼핏얼핏 대피소의 모습이 보이는 게 희망 고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내려가며 뒤를 돌아보니, 천왕봉과 중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그런데, 중봉에서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써리봉인데, 중간중간 저게 써리봉인가 하는 암봉도 있었으나, 등산로가 그걸 우회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몇 개를 지나니, 이건 틀림없이 써리봉이라 생각되는 암봉이 나타났다.
그 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자세히 보면, 철 계단 또는 갑판 계단으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게 이름을 가진 봉우리라는 걸 알 수 있다, 해서 재빨리 계단으로 정상에 올라 좀 전까지 있었던 암봉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또한 최고의 전망대다. 그 절경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정상에서 내려와 이정표를 보니, 예상대로 써리봉이다. 대원사까지 남은 거리는 9.5km. 그 시각이 10시 47분으로 정상 도착은 그보다 빠른 10시 44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등산 앱이 반응하지 않아,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던 차에 앱의 기능 중 주변 인증산 확인이라는 게 있어 그걸 클릭했더니 반응을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는 순간이다. 문제는 내가 매번 그걸 클릭해줘야 한다는 거로 이런 앱을 어디다 쓰나, 어쨌든 써리봉은 확인됐다.
볼 것도 다 봤고, 이제는 빨리 내려가 점심을 먹는 게 중요해,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치발목 대피소로 향해, 11시 30분에 도착했다. 대피소에는 대여섯 팀이 외부 식탁에 모여 식사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해서 그중 빈 식탁에 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담장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흥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는데, 특이한 건 찾지 못했다. 굳이 찾자면 다른 대피소라면 특실 위치라 생각되는 2층의 별도 건물이 화장실이라는 거 정도. 주변 탐색이 끝나고, 버너와 코펠을 꺼낸 후, 가져온 모든 먹거리를 꺼냈다. 점심은 남은 음식 모두를 때려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생각이었다. 해서 내려오는 와중에 빨갱이도 특별히 준비했다. 흥수가 도착해, 예정대로 모든 걸 때려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빨갱이와 같이 먹었다. 그리고 우리 뒤의 식탁에 앉아 있던 등산객이 준 커피믹스로 입가심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등산객과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화대종주에는 전문가로 보였다. 다만, 집을 통째로 메고 다니는 수준의 배낭이라 왜 이럴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해서 그 등산객 기준으로는 국립공원의 소요 시간이 문제가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거다.
그와 얘기를 나누고, 더 궁금한 건 대피소 요원에게 물어, 흥수와 둘이 여기까지 오면서 가졌던 대부분의 궁금증을 해소한 건 큰 수확이다. 우리가 점심을 먹고 하산 준비를 하는 동안, 오늘 저녁 치발목에서 묵을 거로 보이는 부부 팀을 제외한 다른 팀은 다 대원사로 내려간 후라, 12시 30분 치발목 대피소를 떠날 때는 우리가 제일 뒤에 대원사로 떠난 팀이 됐다. 치발목 대피소의 고도가 1,400m가 넘어 당연히 급경사 등산로다. 그 급경사를 내려가, 12시 58분 무제치기교에 도착해, 계곡 상·하류를 돌아다니며 폭포를 찾았으나, 없다. 아니, 우리만 폭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쨌든 무제치기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런 물줄기는 찾지 못했다. 폭포에 실망하고, 하산을 계속해 1시 13분 새재 갈림길에 도착했다. 좌회전해 능선을 넘어 3km를 가면 새재로, 택시를 불러 타고 대원사로 갈 수 있는 마을이다.
우리도 새재로 가서 주행이를 부를까도 생각해 봤으나, 명색이 화대종주, 즉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달리는 산행인데, 대원사까지 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합의에 따라 직진해 유평으로 향했다. 그런데 새재 갈림길을 지나자 집을 메고 다니는 등산객의 말대로 너덜 지대의 연속이다. 그것도 말이 계곡 옆으로 난 등산로지, 거의 7부 능선의 위치로 기복도 심하다. 거기로 오르내리며 내가 왜 89년도 이 구간 산행을 기억하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코스여서 아예 기억에서 삭제한 거다. 그나마 다행은 곳곳에 갑판 계단이 있어 힘든 걸 줄여준다는 거. 힘들게 계곡 위 7부 능선을 달리든 등산로는 어느 순간 능선으로 올라섰다. 그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면 예상했던 대로다. 새재에서 대원사까지 도로로 이어지고 그 중간에 유평이 있다면, 도로가 능선을 넘든가, 아니면 등산로가 능선을 넘어야 한다. 그럼 당연히 등산로가 능선을 넘어 도로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어쨌든 능선을 넘자 다시 급경사로 나무를 땅에 박아 만든 계단이다. 거기를 내려가 2시 7분 유평마을 2km 지점의 이정표를 통과하고, 2시 36분 산행 가능 시간 경고문 서 있는 곳을 통과했다. 산행 가능 시간 경고문이 외롭게 서 있다는 건 탐방 센터가 없는 들머리란 얘기다. 다시 말해 유평이 멀지 않다는 거라, 동영상을 찍으며 내려가, 2시 37분 마을에 도착했다. 그렇다고 산행이 끝난 건 아니고, 대원사까지 1.6km를 더 가야 한다. 여수 향일암에 들려 오느라 조금 늦겠다고 한 주행 부부 덕에 원래 2시 약속에서 조금 늦어진 게 다행이나, 그렇다고 마냥 늦을 수는 없어 3시까지는 대원사에 도착하겠다는 목표로 치발목에서 내려왔다. 남을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면 가능하다. 해서 서둘러 대원사로 향했다.
와중에 등산 앱이 반응을 보여 뭔가 하고 보니, 벌 쏘임 사고 다발 지역이라고 주의하라는 경고다. 주변에 벌이 많이 보이기는 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페이스를 유지하며 급경사의 아스팔트를 내려가, 2시 41분 새재와 대원사를 연결하는 도로에 도착했다. 옆이 그 유명한 대원사계곡이다. 그 계곡을 구경하며 대원사를 향해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이 계곡이 눈에 익다는 걸 깨달았다. 중봉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말끔히 사라졌던 산행 기억이 계곡을 보자 되살아난 거다. 그 계곡을 감상하며 대원사로 향하는데, 저 앞 도로 위에 뱀으로 보이는 게 있다. 처음에는 로드킬 당한 뱀이라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상태가 너무 멀쩡해, 그 앞에서 발을 굴렀더니, 깜짝 놀라, 도로변으로 도망간다. 광합성 하러 나온 새끼 뱀이다.
그러다 로드킬 당한다는 게 문제다. 해서, 도로에서 벗어나게 계속 위협했으나, 도로 턱을 넘지 못한다. 비록 어린 시절 뱀을 잡기는 했으나, 하다못해 나뭇가지를 이용했지, 맨손으로는 잡아본 적이 없어, 불쌍하지만 그놈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왼쪽의 대원사계곡을 감상하며 3시 전 대원사 도착을 목표로 내려가며 보니, 좌우가 다 식당이다. 주행 부부가 한 시간만 늦게 왔으면, 흥수와 둘이 막걸리 잔을 기울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워하며, 내려가 3시 정각 탐방센터에 도착하는 거로 1박 2일 화대종주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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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에 도착해, 절 구경을 할까? 하다가 그건 다음으로 미루고, 인증을 위해 계단 위의 건물을 기록으로 남기며 현판을 보니, 방장산 대원사(方丈山 大源寺)다. 지리산이 아니고 방장산? 해서 구글링해 봤다. 방장산이 지리산의 이칭이란다. 치발목 대피소에서 들은 것과는 달리, 대원사 주변에 주차한 차량이 꽤 있어, 그중에 주행의 차가 있는지 찾아보니, 차는 있는데, 사람이 없는 게 절 구경하러 올라간 거 같다. 해서 위로 올라가지는 않고, 주변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건물 사이로 주행과 그의 처 모습이 나타나고, 4분 뒤에는 흥수가 도착해, 3시 4분경 일행 넷이 모두 모였다. 10월 1일 3시경 헤어져, 10월 2일 15시경 만났으니, 36시간 만인가?
모두 모인 기념으로 대원사 건물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긴 후, 예상보다 산행을 일찍 마감해 진안 마이산의 탑사에 들렀다 가기로 하고, 차에 타고 마이산으로 향했다. 4시 50분이 조금 넘어 마이산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고, 두 부부는 탑사로 향하고, 흥수와 나는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의 메뉴를 훑어보고 그중 제일 나아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산행 동안 오리만 먹어서 그런지 무언간 얼큰한 걸 먹고 싶어, 청국장과 김치찌개, 마이산 생막걸리를 주문해, 부부가 도착하기 전까지 두 병을 마셨다. 물론 밥도 먹고. 5시 50분경 탑사 구경을 끝내고, 부부가 도착해 역시 같은 걸 주문해 밥을 먹는 동안, 우리는 이슬이와 안주로 우렁회무침을 주문해 마셨다.
운전기사를 뺀 셋이 우렁회무침을 안주로 이슬이 두 병을 마시고, 아니 세 병인가? 어쨌든 많이 마시고, 몇 시인지 기억이 안 나는 시간에 식당을 나와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귀경 차량으로 밀리는 고속도로를 달린 후 지하철을 타야 하는 날 양재역에 11시 5분경 내렸다. 그리고 23시 11분 열차를 녹번역으로 향해, 녹번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00시 10분경이다. 그나마 열차가 다니는 시간에 서울에 도착해 번거로움을 줄였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하며 '화엄사 → 연기암 → 중재 → 코재 → 무넹기 → 노고단 대피소 → 노고단 고개 → 왕시루봉 갈림길 → 돼지령 → 피아골 삼거리 → 임걸령 → 날라리봉 → 노루목 삼거리 → 묘향암 갈림길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 대피소 → 삼각고지 → 형제봉 → 벽소령 대피소(1박) → 덕평봉 → 선비샘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 대피소 → 촛대봉 → 연하봉 → 장터목 대피소 → 제석봉 → 통천문 → 천왕봉 → 중봉 → 써리봉 → 치발목 대피소 → 무제치기폭포 → 새재 삼거리 → 유평 → 대원사'의 58km(램블러) 구간을 1박 2일, 35시간 44분동안 달렸다. 이동 21시간 7분, 휴식 14시간 37분!
맑고 화창해 조망은 탁월했으나, 찬 바람이 강하게 불어 새벽에는 한기를 느낄 정도의 날씨였다.
예정과 달리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 한. 덕분에 화대종주와 지리 10경 중 하나인 벽소명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지리산행의 최종목표를 달성했으니, 앞으로는 대피소를 중심으로 한 1박 2일 야유회 산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첫댓글 산행기 어딘가에 트랭글이 기록한 시간 거리 고도 그래프가 있음직한데 안보이네.
트랭글이 핸드폰을 차별해서 버리고, 램블러를 사용하는 중, 끝에서 조금 위에 있는 지도가 램블러 기록임.
그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트랭글에서 보지 못했던 신세계 발견!
21시간의 이동시간에 58km를 달렸구만
그 평균 속도가 2.8km/h, 내가 지리산 종주할 때 2.5km/h 이상으로 달린 적이 없는데, 대단히 빠른 거지,
그런데 16시간에 무박 화대 종주를 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