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중국은 거대한 용으로 변화하고 있다. 위대한 중국, 중화민족의 부흥을 다짐하는 그의 야심은 새로운 냉전시대를 만들고 있다. 지금의 냉전은 미소간의 냉전과는 다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윌리엄 번스는 중국을 “이번 세기의 유일한 주요 지정학적 도전자”로 지목하며, 중국을 겨냥한 ‘중국미션센터’ 신설을 발표했다.(2021.10) 중국 첩보 수집을 목적하는 이 조직은 냉전 시절 구소련를 상대로 CIA가 벌였던 활동을 연상시킨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정학적 위협이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조치였다.
그렇다면 중국의 신냉전은 지난 냉전과 무엇이 다를까? 중국은 옛 소련보다 더 부유하고 세계경제에 더 깊숙이 얽혀 읽다. 진영 간의 경쟁이 더 넓고 깊을뿐더러 앞으로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에 통합된 덕분에 중국은 주변국과 약소국에 강압과 영향력을 더욱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은 평화의 시기 동안 군비증강에도 몰두해왔다. 과거 냉전 때는 어느 정도 안정을 뒷받침했던 규약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없을 뿐 아니라 상대의 역량과 의도를 파악할 깊이 있는 상호 지식도 거의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핵 핫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중국은 군비통제 대화를 줄기차게 거부해오고 있다.
중국의 신냉전은 기술, 경제, 전략 차원에서 그리고, 남중국해부터 아프가니스탄 사막, 북극, 히말라야산맥, 사이버공간에서 국제적으로 펼쳐진다. 과거 냉전에서 나타난 뚜렷한 이념적 분열은 없지만, 신냉전도 근본적인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신장에서 위구르족과 모슬렘 소수민족 150만 명을 ‘재교육 수용소’에 가두고 홍콩에서 자유를 짓밟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중국 굴기 자체가 아니라, 굴기의 본질과 중국이 새로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말한다. 책 전반에 걸쳐 중국의 일대일로가 강조하는 교역과 발전이라는 사탕발림이 실은 ‘안보의 지정학’이라는 사실을 가리는 화려한 허울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강합과 통제적인 방식으로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상세히 조사하면서, 그 바탕에 깔려있는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민족주의적인 세계관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중국의 위협은 더욱 은밀해지고 거대해졌다. 중국공산당은 걸핏하면 비판자들을 향해 ‘냉전 시대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저자는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서방 민주국가, 또 생각이 비슷한 동맹국이 시진핑의 중국에 맞설 때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이 세계 곳곳에서 행사하는 위협과 영유권 주장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가 처한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에 눈 뜨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장부터 7장까지는 신냉전으로 나타난 여러 전선과 화약고, 중국공산당이 사용한 다양한 도구를 살펴본다.
예를 들어 중국은 주로 경제적 수단을 이용해 동남아시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때로는 동남아 국가들을 속국처럼 취급해 무역과 투자, 중국 시장 접근을 대가로 충성을 요구한다. 중국은 동남아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주요 대상이 철도, 가스 송유관, 항구처럼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기반시설이다. 이제 동남아시아는 중국이 미국 및 그 동맹국들과 맞부딪히는 최전선이 되었다.
중국이 추구하는 디지털 실크로드는 5세대 통신망, 클라우드 컴퓨팅을 포함한 데이터 저장,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같은 인터넷 기반시설들을 아우르는 첨단기술 생태계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중국공산당이 자국에 건설한 감시 국가를 본떠 디지털 권위주의를 퍼트리는 수단이다. 화웨이는 첨단 감시체계인 ‘안전도시 솔루션’을 많은 독재국가에 제공하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디지털 실크로드를 이용해 힘과 영향력의 또 다른 원천인 엄청난 데이터 풀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부문인 8장부터 11장까지는 타이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타이완은 중국공산당에 가장 지독한 위협을 받는 곳이자, 세계 평화를 위협할 잠재성이 큰 곳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타이완이 발붙일 곳을 없애고 타이완과 거래하는 국가를 위협한다. 심지어 타이완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지 못하게 방해하기까지 했다. 군사 충돌이 벌어진다면 어떤 모습일지도 살펴본다.
한편 타이완은 제3자가 치러야 할 도덕적, 전략적, 경제적 잠재 비용이 가장 큰 곳이기도 하다. 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 칩 생산을 지배하는 타이완이 국제경제, 특히 첨단기술에서 얼마나 중요한 필수 요소인지 살펴본다. 만약 타이완이 무너진다면 세계경제가 그야말로 엄청난 손실을 치를 것이다. 타이완의 가장 중요한 방어책이 민주주의인 이유도 알아본다.
마지막 부분인 12장부터 15장은 서방 민주국가의 반발로 늘어나는 맞불작전과 지정학적 책략을 살펴본다. 중국이 세운 세계 전략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한 가운데, 이제 중국의 힘이 정점에 다다랐는지도 따져본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발원지를 독립적으로 조사하자고 요구한 뒤로, 리투아니아는 수도 빌뉴스에 타이완 대표처를 개설하게 승인한 뒤로 중국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두 나라 모두 이런 괴롭힘에 꿋꿋이 맞섰다. 따라서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 중국에 맞설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도 따져본다. 국내의 경제적 역풍과 국제적 반발에 직면한 중국을 피크 차이나(Peak China) 즉 정점에 오른, 내리막길만 남은 국가로 봐야 하느냐는 물음도 던진다. 그렇다는 증거는 상당히 많다. 그런데 피크 차이나는 더 위험한 중국을 뜻하기도 한다. 마지막 뒷이야기에서는 우크라이나전쟁이 미칠 영향을 더 깊이 들여다본다.
물론,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가늠해볼 수 있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는 중요한 국제 교역로다. 세계 교역량 20%~33%가 남중국해를 지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 교역량 가운데 원유는 거의 3분의 1이, 액화천연가스(LNG)는 절반 넘는 물량이 해마다 이곳을 지난다. 그런 만큼 남중국해는 일본, 남한, 타이완에 무척 중요한 에너지 공급로다. 또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나토 사이버방위센터에 가입해 중국의 분노를 샀을 때, 싸움꾼으로 유명한 중국 평론가 후시진은 “남한이 이웃 나라에 적의를 드러내는 길을 택한다면 그 길의 끝은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다.”고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신냉전은 이미 현실이다. 저자의 분석대로라면 전쟁의 위기 역시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새로운 냉전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국제관계를 읽는 냉철한 관점을 얻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미국의 시각이 너무 강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