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상고사_신채호
제12편 백제百濟의 강성强盛과 신라新羅의 음모
제 1장 부여성충扶餘成忠의 위대한 계략과 백제의 탁야拓也
부여성충의 건의
부여성충은 백제의 왕족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모智謀가 뛰어나서 일찍이 예濊의 군사가 침략해오자 고향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가 산보山堡에 웅거하여 지키는데 늘 기묘한 계교로 많은 적을 죽이니 예의 장수가 사자를 보내 “그대들의 나라를 위하는 충절을 흠모하여 약간의 음식을 올리오.”하고 궤 하나를 바쳤다. 사람들이 모두 궤를 열어보려고 하였으나 성충이 이를 굳이 못 하게 말리고서 불 속에다 넣게 하였다. 그 속에 든 것은 벌과 땡삐 따위였다. 이튿날 또 예의 장수가 궤 하나를 바쳤다. 모두 이것을 불에 넣으려 하니까 성충은 그것을 열어보게 하였다. 그 속에는 화약과 염초焰硝 따위가 들어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적은 또 궤 하나를 보내왔는데, 성충은 그것을 톱으로 켜게 하였다. 그러니까 피가 흘러나왔다. 칼을 품은 용사가 허리가 끊어져 죽었다.
이때는 기원 645년 무왕武王은 죽고 의자왕義慈王이 즉위해 있었는데 의자왕은 그 말을 듣고 성충을 불러 물었다. “내가 덕이 없어 대위大位를 이어 감당치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오. 신라가 백제와 풀 수 없는 큰 원수가 되어 백제가 신라를 멸망시키지 못하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것이니 이는 더욱 내가 염려하는 바요, 옛날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범려范蠡를 얻어 10년을 생취生聚하고 10년을 교육하여 오吾를 멸망시켰으니 그대가 범려가 되어 나를 도워 구천이 되게 해주지 않겠소?”
성충이 대답하였다. “구천은 오왕 부차夫差가 교만하여 월에 대한 근심을 잊었으므로 20년 동안 생취 교육하여 오를 멸망시켰지마는 이제 우리 나라는 북으로 고구려, 남으로 신라의 침략이 쉬는 날이 없어서 전쟁의 승패가 순간에 달려 있고 국가의 흥망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으니 어찌 한가롭게 20년 생취 교육할 여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구려는 서부대인西部大人 연개소문이 바야흐로 불측한 뜻을 품고 있어 오래지 않아서 내란이 있을 것이라, 한참 동안 외국에 대한 일을 경영하지 못할 것이니 아직은 우리나라가 근심할 바가 아니지마는, 신라는 본래 조그만 나라로서 진흥왕眞興王 이래로 문득 강한 나라가 되어 우리 나라와 원한을 맺어 근자에 와서는 더욱 심하여 내성사신內省私臣 용춘龍春이 선대왕백제의 武王과 혈전을 벌이다가 죽고, 그의 아들 춘추春秋[다음장 참고]가 항상 우리 나라의 틈을 엿보았으나 다만 선대왕의 영무英武하심이 두려워서 얼른 움직이지 못하였는데, 이제 선대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저네가 반드시 대왕을 전쟁에 익숙하지 못한 소년으로 업신여기고, 또한 우리 나라의 상사喪事[武王의 죽음]있음을 기회하여 오래지 않아서 침략해올 것이므로 이제 반격의 대책을 연구함이 옳을까 합니다.”
왕이 물었다. “신라가 우리 나라를 침범하면 어디로 해서 오겠소?” “선대왕께서 성열성省熱城[지금의 淸風] 서쪽 가잠성椵岑城[지금의 槐山] 동쪽을 차지하시니 신라가 이를 원통해한 지 오래이므로 반드시 가잠성을 공격해올 것입니다.”하고 성충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가잠성의 수비를 증강시켜야 하지 않겠소?”하고 왕이 다시 물으니 성충은 “가잠성주 계백階伯은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여 비록 신라가 전국의 군사로 포위 공격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깨뜨리지 못할 것이라 염려할 것이 없고, 갑자기 나가서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이 병가의 상책이니 신라의 정병이 가잠성을 공격해오거든 우리는 가잠성을 구원한다 일컫고 군사를 내어 다른 곳을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왕이 다시 “그러면 어느 곳을 치는 것이 좋겠소?”하고 물었다.
성충이 대답하였다. “신이 들으니 대야주大耶州[지금의 陜川] 도독都督 김품석金品釋이 김춘추의 사랑하는 딸 소랑炤娘의 남편이 되어 권세를 믿고 부하와 군사와 백성을 학대하고 음탕과 사치를 일삼아서 원한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데, 이제 우리 나라에 국상國喪 있다는 말을 들으면 수비가 더욱 소홀해질 것이고, 또 신라의 정병이 가잠성을 포위 공격하는 때이면 대야성이 위급해지더라도 갑자기 이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가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그 이긴 여세를 몰아 공격하면 신라 전국이 크게 소란해질 것이니 이를 쳐 말망시키기는 아주 쉬울 것입니다.”
왕은 “그대의 지략은 고금에 짝이 드물겠소.”하고 성충을 상좌평上佐平에 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