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도착 외 1편
김미정
사과가 늦어지고 있다
맛있는 사과를 생각하는 사이
시들어 버린 용서가 떨어진다
과일 가게에 사과가 쌓여 있다
당신은 사과를 낱개로 팔지 않는다고 한다
사과는 사과나무를 심는다
손바닥이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
잎과 잎 사이 눈먼 귀들이 잠들고
그늘은 언제나 길을 삼켜버린다
둥글다는 것은 한때
빛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
우린 너무 벌어진 걸까
손끝으로 휘어진 밤이 자란다
별들은 언제부터 어둠을 물고 있었나
나뭇가지가 온통 세상을 찌르고 달아나고
사과는 아무렇지 않게 구르고 흩어지며
시간의 무늬를 놓쳐버린다
사과는 사과를 인내한다
사과를 기다린다
일인용 상자
이렇게 시작하는 상자도 있을까
던져졌다 발길로 차였다 움직이는 것들이 멈춰서 얼음이 되거나 녹아버릴 때가 있어 너무 고요해서 세상 소리들이 투명해질 때
숨을 뱉는 것을 잊어버린
숨을 쉬거나 다시 펴도 흉터만 남은
빈 상자들이 쌓여 간다
차인 데 또 차여 폭발하듯 풍경 속으로 사라지는
나는 가끔 상자였다
시끄럽고 캄캄한 이름을 불러봐 누군가의 눈빛이 바닥이 되는 순간 손을 맞잡은 모서리가 아프다 예고 없는 불안을 껴안고 나뒹구는 표정들
언제나 어둠은 단호했다
김미정
2002년 현대시 등단.
시집 하드와 아이스크림, 물고기 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