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내 야구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형평성 잃은 징계가 조용하던 야구계를 들쑤셔 놓았습니다. KBO는 지난 13일 야구인들의 품위를 떨어뜨린 삼성 임창용은 놔두고 심판에게 판정 불만을 품고 시위한 현대 마이크 프랭클린에게 무거운 벌을 내리는 등 앞뒤가 뒤바뀐 행정으로 원성을 샀습니다. 또 그 와중에 삼성 김응룡 감독은 간통죄가 없는 미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가 하면 여자와 술을 비교하는 여성 비하적인 말로 설화를 겪었습니다. 뒷얘기는 없는지 우선 그에 관련한 얘기부터 해보죠.
●코끼리 야구는 9단, 숨바꼭질은 10단?
한국시리즈 우승을 10번이나 차지한 김응룡 감독의 술래잡기 실력이 화제가 됐습니다.
간통 피소를 당한 임창용을 계속 선발로 내보내 도덕성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기자나 외부인사, 심지어 팀내 프런트와의 접촉도 삼가고 있는데요. 16일부터 17일까지 대구에서 열린 SK전에서는 아예 경기시간 외에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어요.
구장에서 만난 야구 관계자들이 서로 “김 감독이 어디 숨었는지 아느냐”고 묻는 게 인사말이 될 정도였습니다. 코끼리라는 별명답게 0.1t이 넘는 육중한 몸을 어디가 어딘지 뻔한 야구장 내에 완벽하게 숨기는 솜씨가 신기에 가깝다고 입을 모을 정도였죠.
김 감독은 성적이 안 좋거나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잘 숨고는 했는데요. 지난해 LG와의 한국시리즈 때도 이미 세계 수준의 포복 실력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반면 선수들은 SK와의 3연전 기간에 새벽까지 대구 시내 곳곳에서 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눈에 띄어 대조적이었습니다.
감독이 좁은 야구장에서 꼭꼭 잘 숨는 것과는 딴판으로 선수들은 그 넓은 대구 시내에서 깜깜한 심야에도 눈에 아주 잘 띄어 “술이 여자보다 더 해롭다”는 스승의 말의 어원을 알려주더군요.
●못된 송아지에서 순한 양으로…
‘엉덩이에 뿔 난 못된 송아지’ 프랭클린이 ‘순한 양’이 됐습니다. 한국 야구를 비하하는 돌출행동 때문에 구단과 KBO로부터 잇달은 징계를 받은 뒤 마침내 몸을 낮췄습니다. 구단자체 벌금 100만원과 KBO 벌금 300만원 등 총 400만원의 벌금에 5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프랭클린은 최근 반성의 빛이 역력합니다.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을 만나면 “그때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마 정신이 나갔나 보다”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답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돼 자칫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나 보죠. 현대 김재박 감독도 비록 당장의 전력손실은 불가피했지만 그의 못된 버릇을 단단히 고쳐 다행이라더군요. 이제 국내 구단도 더 이상 외국인선수에게 질질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현대가 본때있게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군요.
●끝내 지켜지지 않은 약속
지난주 잠실구장에서는 한화와 두산의 3연전이 있었어요.
첫 날인 13일 한화의 유승안 감독이 두산의 덕아웃으로 가서 김인식 감독에게 인사하자 김 감독은 그를 반갑게 맞으면서 경기가 끝나면 이기든 지든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제안했어요. 두 감독 모두 곤두박질치는 성적 때문에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차라 서로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고 있었지요.
그러나 통닭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 아픔을 토닥이겠다는 두 감독의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어요. 이날 한화가 6-1로 이기자 두산은 7연패의 수렁으로 굴러떨어졌고 김인식 감독은 술맛이 뚝 떨어진 거지요. 유 감독도 선배인 김 감독의 눈치를 보느라 연락을 못했지요. 그래서 한화가 지는 날 연락해서 만날 생각이었지만 3연전을 모두 이기는 바람에 아예 포기하고 말았죠.
유 감독은 나중에 대전에서 두산과 경기가 있는 날 꼭 한잔 사드려야겠다며 아쉬워하더군요. 1승과 1패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감독들입니다. 두 사람의 약속이 언제 지켜질 수 있을까요.
●기록원의 판단으로 날아간 사이클링 히트
지난 15일 LG 박용택은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더블헤더 제1경기에서 1회 우전안타, 3회 우월홈런, 5회 우익선상 2루타를 기록한 뒤 7회 좌중간을 꿰뚫는 타구를 날렸어요. 타구는 좌익수 양준혁의 글러브에 스치지도 않고 빠져나갔고 중견수 박한이가 뒤늦게 잡아 3루로 던졌지만 송구가 빗나가 박용택은 3루에서 살았죠.
그런데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김제원·최성용 공식기록원은 2루타에 좌익수 실책이 겹친 것으로 기록했어요. 하지만 LG뿐 아니라 삼성선수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KBO가 발행한, 정확히 말하면 기록원들이 펴낸 ‘야구기록법 & 야구기록규칙’을 보면 ‘선수의 지명도나 인지도 등을 의식하지 말라. 상황판단에 대한 결정적 오류 발생의 지름길이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날 기록원은 “양준혁이 좌중간으로 달려가다 멈춘 상태에서 타구를 뒤로 흘려 실책을 줬다. 그걸 어떻게 빠뜨리느냐”고 말했어요. 한심하다는 얘기죠. ‘양준혁은 원래 수비를 못하는 선수’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작용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수비를 잘했으면 걷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능력이 안돼 잡지 못한 것을 굳이 실책으로 잡을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튼 사이클링 히트를 놓친 박용택은 땅을 칠 노릇이었습니다.
●이런 기록은 없나요?
LG 전승남이 지난 15일 대구 삼성전에서 3실점하며 36.1연속이닝 무실점 행진을 마감했습니다. 팀이 대패하는 바람에 이날 전승남의 기분은 우울했는데요. 기록행진이 멈춰 부담을 덜기는 했지만 섭섭한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연속이닝 무실점 최고기록은 지난 86년 8월 27일부터 87년 4월 12일까지 해태 선동열이 달성한 49.2연속 이닝입니다. 이것은 두 시즌에 걸친 기록이죠. 아쉽게도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는 90년 이후 기록만 전산화해 단일 시즌 또는 개막 이후 연속이닝 무실점 신기록은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 90년 이전 기록들을 일일이 찾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전승남은 “개막 이후 연속이닝 무실점 신기록은 왜 없느냐”며 섭섭해했지만 이내 “올 시즌 50연속이닝 무실점에 도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