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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에서 안식
1966년부터 꼭 60년. 뉴질랜드에서 온 선교사로 한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았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안광훈 신부(본명 로버트 존 브레넌)가 3월 21일 선종했다.
24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한 장례 미사에는 평생 함께했던 동료 선교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참여해 그의 삶을 기억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미사를 주례한 정순택 대주교는 “한국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 가난한 이들 곁에서 당신의 사명을 충실히 살아온 안광훈 신부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린다”고 인사하며, 안식을 빌었다.
정 대주교는 과거 박해 시대에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목숨을 바치며 신앙을 증거한 일은 곧 안광훈 신부의 삶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안 신부는 원주교구 본당 사제로, 협동조합과 병원을 세우고, 철거민들의 사목자이자 활동가로 살았다. 사제관이 아닌 지역민들 속에서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온전히 헌신한 그를 기억하며, 정 대주교는 “사제, 선교사,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라는 쉽지 않은 세 가지 삶을 모두 살아 낸 참 사제였다”며 존경과 감사 인사를 전했다.
3월 24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안광훈 신부의 장례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많은 이가 안광훈 신부의 마지막 길을 눈물과 감사 인사로 배웅했다. ⓒ정현진 기자
“전기장판도 에어컨도 없이 살아가면서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가난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셔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당신이 첫 선교지 한국으로 떠날 때 어머님이 밤새 뜨개질해 만들어 준 60년 된 스웨터, 잘 간직할게요. 평생 즐겨 하시던 감자탕과 소주도 천국 가는 여행길에 도시락으로 넣어 뒀습니다. 안녕히, 잘 가세요.”
고별사를 전한 김종근 신부(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안광훈 신부의 모든 발자취 가운데 한국인 선교사제 양성을 특별히 언급했다.
한국 교회는 물론 성골롬반외방선교회 내부에서도 한국인 선교사제 양성은 중요한 일이 아니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안광훈 신부는 반대와 곱지 않은 시선에 호소하며 선교사를 양성했다.
김 신부는 “그 덕분으로 지금은 한국인 골롬반 선교 사제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고, 안광훈 신부가 우리에게 준 가르침 그대로 가난한 이들과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세오 신부(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장)는 “안광훈 신부님은 단순히 선교사를 넘어 우리 곁에서 복음의 기쁨을 몸소 실천한 분이었다”며, “이토록 훌륭한 선교사를 한국으로 파견해 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교회와 함께하며, 선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장례 미사 뒤, 안광훈 신부는 “내가 죽으면 최양업 신부님 옆에 묻어 달라”던 바람대로 배론성지천주교 묘원에서 영원한 쉼을 맞았다.
"안녕히, 잘 가십시오, 신부님." ⓒ정현진 기자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안광훈 신부(로베르토)는 11살 때, 어머니가 구독하던 골롬반회 잡지에서 자신의 이름 브레넌과 같은 골롬반선교회 사제가 한국전쟁 때 순교한 이야기를 읽었다.
그 이야기에서 감화받은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골롬반회에 입회했다. 1966년 만 24살, 서품받은 1년 차의 젊은 선교 사제는 밤새 어머니가 떠 준 스웨터를 안고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어 수업을 마친 뒤 그는 이제 막 생겨난 원주교구를 첫 임지로 선택했다. 협동조합과 병원을 만들면서 10년간 사목한 뒤 안식년을 가졌고, 1981년 7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교구 목동 성당에서 새로운 사목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철거민이었다. 정부에 의해 철거민들이 ‘버려진’ 곳에서 이른바 ‘목동철거사건’을 겪으며 철거민들의 싸움에 함께했다.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철거민들을 이주시키며 철거민 이주 공동체를 만들었다.
“개발은 지역민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가진 이들을 위한 재개발은 올바르지 않다”는 뜻과 철거 사태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갈등, 철거민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겪어 내며 그는 재개발과 도시 빈민, 빈민 사목, 공동체 재건에 투신했다.
2021년 자서전 "성자와 죄수"를 출간한 당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안광훈 신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1990년대를 미아동 선교 본당에서 보낸 뒤 초대 주임을 맡은 삼양동 선교 본당은 지역 사회 공동체를 위한 삼양주민연대가 만들어지면서 남은 평생의 자리가 됐다. “에어컨도 전기장판도 없이” 사제관이 아닌 지역 주민의 이웃으로 살면서 그는 저소득층을 위한 소액 대출 운동, 저소득층 자립, 노숙인 자활 등을 위한 일들을 이어 갔고, 활동가들에게는 큰 언덕이 됐다.
안광훈 신부는 지역 곳곳에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미아동 솔샘공동체, 금호1가동 샛마루공동체, 무악동 독립문공동체, 봉천3동 하늘자리공동체 등은 기존 빈민사목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서울의 동서남북에서 선교센터가 된 셈이다. 안 신부는 이 공동체에 대해 “선교 본당은 신자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공동체다. 지역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는 의미에서 선교 본당이며, 공동체”라고 밝힌 바 있다.
평생 사제로서 특권, 권위를 경계하고,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사랑을 살아간 안광훈 신부는 2012년 서울시 명예시민권을, 2020년 9월 특별공로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팔순을 맞은 2021년에는 그의 삶을 담은 자서전 “성자와 죄수”를 펴냈다. 2026년 3월 21일 선종한 그는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온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이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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