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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생각했다.
[굿모닝! 잘 잤어? ^~^]
언제나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이다. 날씨는 맑았고 침대 위 이불 아래의 아늑한 공간은 따뜻했다. 창문 밖에서는 부지런한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넘어서 지아의 머리맡으로 내려앉는 중이었다. 지아가 창문의 새소리와 섞여서 밖에서 새만큼이나 부지런해서 벌써부터 일어나 닦달하는 상현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타이밍 좋게 선우에게 메시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신지아! 빨리 안 나올래?"
밖에서 들리는 상현의 재촉에 지아는 메시지를 확인만 하고 답장하려던 핸드폰을 그냥 덮어두고 방을 나와 버린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 나간다고 가.”
눈을 비비며 짜증내는 지아를 보며 상현은 태연하게 식탁에 앉아 빨리 와서 앉으라는 의미로 맞은편의 지아 자리를 수저로 두어번 탁탁 쳐 보인다.
"굼벵이냐? 벌써 열시야! 이제 너도 좀 부지런 해 질 순 없어?"
지아를 노려보며 마치 딸을 혼내는 잔소리쟁이 아버지처럼 말하는 상현. 그리고 지아는 아침이라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구시렁거렸다.
"아직 열시 밖에 안 됐구만 왜 벌써 깨우는데……. 나 어제 늦게 잤단 말이야"
"빨리 먹고 준비해. 오늘 토요일이잖아! 시립 도서관 가야지~"
상현은 매주 토요일이면 지아를 데리고 시립 도서관을 갔다. 아침잠이 많고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지아를 억지로라도 도서관이고, 산이고, 수영장이고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상현의 취미 중 하나였다. 그 중 가장 자주 가는 것이 도서관이었다. 방학 중에는 시간 날 때 마다 가고 학기 중에는 적어도 토요일만큼은 꼬박꼬박 지아를 데리고 시립도서관에 갔다.
"아..가기 싫은데..오늘은 안가면 안 돼?"
"그걸 뭘 질문이라고.. 당연히 안!돼!"
상현이 단호하게 웃으며 지아의 손에 숟가락을 억지로 쥐어준다. 그럼 지아는 긴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언제나처럼 체념한 체로 밥을 먹기 시작한다.
+++++
한편, 선우는 침대에 누운 체로 핸드폰만 보고 있다. 혹여 너무 이르게 보내면 알림 소리에 잠에서 깰까 느지막히 일어났을 법한 시간까지 생각해서 보냈건만 메시지엔 읽었다는 표시만 있고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씹힌 건가…….’ 생각하면서도 메시지를 보냈던 그 자세 그대로 누워있다.
사실, 선우가 지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다. 지아에게는 작년 2학기 강의실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지만, 선우가 지아를 처음 본 건 꽤 오래 전 일이었다.
선우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교 삼학년의 수험생 시절에, 건축 쪽 사업가이신 선우의 아버지 사업은 큰 위기를 맞았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업동료이셨던 분이 사업자금을 가지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셨기 때문이었다. 평화로웠던 가정은 점점 망가져 가고 있었다. 어린 동생은 사춘기를 맞아 가출을 일삼는 불량학생이 되어버렸고, 아버지는 술 없이는 잠에 드실 수 없었으며 어머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힘든 일에 몸을 혹사시키셨다.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모범생이었던 선우 역시,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쌓아두었던 기본기에 지금의 학교에 겨우 올 수 있었지만, 대학 입학 후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다. 친척들에게까지 손을 벌려 입학금을 겨우 마련했고, 가장 젊음을 즐길 수 있는 20살을 선우는 알바와 학점 공부로 쉴 틈 없이 보냈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생활비를 위해 알바를 두 세 탕씩 뛸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몸은 더 이상 힘든 일을 하기에 부적합하였고, 아버지는 마냥 그 친구 분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니기 바빴다. 신입생의 즐거움을 즐길 틈도 없이 친구 하나 없는 생활은 매일매일 계속되었다. 어느 정도의 우울증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 주위에 걱정 없이 노는 동기들을 보며 자괴감에 하루하루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는 체로 알바 아니면 도서관의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저기……. 제가 다이어리를 주웠는데……, 저기……도서관에서,…….’
그러던 중 모르는 번호로 앳된 목소리의 어린 여자애에게 전화가 걸려왔었다. 그 여자애는 마치 무언가를 잘못해서 엄마한테 야단맞을 일을 고백하는 꼬마 애처럼 상당히 더듬거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었다.
사정인 즉, 자기가 도서관 어느 자리에 앉았는데 그 밑에 선우의 다이어리가 떨어져 있었고 그것을 자기가 주워서 집까지 가져와버렸다는 것이었다. 선우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도서관의 분실물센터에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여자아이는 내일 아침에 꼭 맡겨드리겠다며 거듭 죄송하다고 하였고, 당시 선우는 이런 사소한 일에 쓸 심적 여유 따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무신경하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도서관에서 분실물센터로 향하던 선우는 그 안에서 직원에게 예의바른 인사를 하며 종종걸음으로 나오는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여학생은 선우가 고3때부터 종종 다니던 시립도서관에서 자주 보이던 얼굴이었다. 딱히 크게 와 닿는 인상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말이 많고 시끄러워서 선우가 못마땅하게 기억했었다. 평일엔 주로 교복을 입고 여자 친구들과, 주말엔 남자친군지 오빤지 모를 남자애와 종종 와서는 엎드려 자거나 떠들거나 하던 그런 평범하고 해맑은 여학생이었다.
‘이것도 다이어리 가지고 오신 학생이 두고 갔어요.’
분실물센터 직원은 다이어리와 함께 편지 봉투를 함께 건네주었다. 맡겨진 물건이 이것 밖에 없는 걸로 보아 방금 나간 그 소녀가 두고 간 것이 맞았다. 뜬금없는 편지봉투에 의아해하던 선우는 도서관 자리에서 그 편지 봉투 안에 빼곡히 쓰인 다섯 장의 편지를 보고서는 어제 여학생이 왜 그렇게 잘못한 꼬마처럼 말을 더듬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편지의 첫 문장은 역시 ‘죄송하다’였다. 자신이 읽으려고 읽은 건 아니라는 둥,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는 둥……. 그 다음 내용은 생뚱맞게도, 세상은 밝고 그리 험한 곳이 아니라며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와 힘내라는 격려의 메시지가 진심을 담겨 쓰여 있었다. 선우의 다이어리에는 선우가 아무렇게나 적어놓은 현재의 상황들에 대한 신세한탄, 자괴감, 우울함이 넘쳐났다. 사실 진짜로 자살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잠시 우울함에 마구 휘갈겨 쓴 유서와 비슷한 글도 적혀있었다. 이 해맑은 여학생은 이 글들을 읽어버리고는 선우에게 일종의 동정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단지 이런 동정뿐이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자애가 쓸데없는 동정을 갖은 것에 짜증이 났겠지만, 다음 페이지를 읽고 선우는 마음이 측은해졌다. 편지에서 그 여학생은 자신의 상황을 주르륵, 설명하였는데 가족을 한 순간에 잃고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이었고, 세상이 무서웠는지 진지하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도 살아가고 있음을, 그러니 그런 나쁜 생각은 하지 말라는 어린 여학생답지 않게 제법 진지한 위로였다. 고작 모르는 사람이 쓴 다이어리 때문에 이 해맑은 소녀가 얼마나 쩔쩔매며, 걱정했는지 와 닿았다. 당시 선우는 그저 ‘뭐야..’ 하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뒤로 종종 그 편지에 적혀있던 격려나 위로의 말들은 선우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마 그 당시 친구 한 명 만날 틈 없었던 선우를 유일하게 진심으로 걱정해주었기 때문일까.
선우는 1학기를 마치고서는 휴학하고 알바만 열심히 다녔고, 그 뒤로 복학 대신 바로 군입대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 뒤로 그 여학생을 도서관에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그 편지를 선우는 종종 꺼내서 읽었다. 그럼 신기하게도 어린 여학생의 어린 위로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차분해지곤 했다.
군 제대 후에는 아버지의 사업이 다시 일어섰다. 아버지의 사업자금을 가지고 자취를 감췄던 친구가 사업자금을 오히려 두 배로 불려와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했었다. 생활은 안정되었고, 선우는 평화로운 가족 안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왔다. 같은 과 예쁜 여자 친구도 사귀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 좋아하며 학점 공부 또한 늘 열심인 그런 평범한 대학생. 그렇게 그 편지의 존재를 잊어갈 무렵… 2학기 강의실에서 정말 우연히도,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그 여학생을 보게 되었다.
‘아, 죄송합니다!’
여학생이 뛰어서 강의실로 들어오다가 선우의 책을 떨어뜨렸고, 오래 전에도 그랬듯이 그 여학생이 선우에게 한 말은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전혀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학생을 본 순간 선우는 이상하게도 단 한 번에 기억 할 수 있었다. 신기하기도 했고, 무언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강의실에서 처음으로 그 여학생의 이름이 신지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수업시간마다 이상하게도 선우는 자꾸만 그 지아에게 시선이 갔다. 지아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자신도 모르게 즐거워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지고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고 왔을까, 자신도 모르게 지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지아에게 번호라도 따서 연락을 해볼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지만 지아 옆에는 3년 전에도 함께 있었던 그 남자애가 항상 함께 있었다. 누가 봐도 연인 같았고 선우 역시 오래 사귄 남자친구라고 단정해버렸다. 그 당시엔 자신이 지아를 좋아하고 있다는 확신도 아직 없었고, 남자친구까지 있는 지아와 연락할 방도도 없었기에 그저 강의시간마다 지아를 보는 걸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2학기 강의가 종료되고 더 이상 지아를 볼 길이 없자 오히려 역으로 지아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선우는 지아와 뭔가 신비한 인연의 끈 같은 것이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다지 주변 사람에 신경 쓰지 않는 선우가 3년 전 도서관에서 지아에겐 눈길을 주게 되었고, 그런 지아가 선우의 다이어리를 주워 선우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웠다. 그 뿐 아니라 그런 지아를 이제는 같은 대학교, 그 중 같은 강의실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우연이 세 번이면 운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벌써 우연이 두 번이나 겹쳤고, 왠지 모르게 세 번째 우연이 찾아올 것 이란 믿음도 있었다.
[오빠! 영화로 보는 세계사 들어봤어요?]
그리고 그 믿음은 머지않아 실현되었다. 작년에 교양 팀플로 인연이 되어 알고 지내던 윤진이의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으로 지아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딱히 오고가는 연락이 없었던 윤진이여서 여차하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날따라 윤진이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었다. 다음 학기 교양에 대한 정말 시답잖은 얘기였는데, 선우는 그 사건을 계기로 지아와의 인연을 확신했다.
“카톡카톡”
가만히 누워 여전히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던 선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죄송해요ㅠㅠ 답장하는 걸 깜박했어요ㅠㅠ 뭐하고 계세요?]
이번에 잡은 우연은 절대로 놓치지 않으리라, 선우는 다짐했다.
+++++
사람들이 바짝 열기를 뿜어내며 공부를 하고 있는 조용한 도서관 안에서, 지아와 상현은 나란히 옆자리에 앉았다. 상현은 곧 다가올 토익시험을 위해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반면, 지아는 책만 펴놓고 핸드폰만 계속해서 만지작거리고 있다. 도서관에 온 뒤로 계속해서 선우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중이다. 별 시답잖은 얘기만을 주고받고 있지만, 딱히 공부에 집중도 안돼서 지아는 계속해서 선우에게 오는 메시지에 답하고 있었다.
“공부 좀 해라!”
갑작스레 상현은 지아의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고는 작게 속삭이며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그럼 지아는 딴 짓하다 걸린 어린애마냥 입을 삐죽이며 핸드폰에서 손을 떼며 다시 책에 집중하는척한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곧 핸드폰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뜨자 지아는 슬쩍슬쩍 눈치를 봐가며 당연히 선우가 보냈을 거라 생각한 메시지를 확인한다.
[지아야, 어디야? 상현이랑 같이 있어?]
선우가 아니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윤진이었다. 아마 선우가 공부하느라 자신의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으니 지아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둘 사이를 의심할까봐 단 둘이 도서관에 있다는 걸 알리지 않으려고 태연하게 거짓말 했을 텐데……. 윤진이가 상현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고서 둘이 있음을 숨기려니 죄책감이 지아를 감쌌다. 결국, 잠시 망설이던 지아는 윤진에게 답장을 보낸다.
[웅! 나 지금 상현이랑 시립도서관이야, 너도 올래?]
[꺅, 진짜? 알았오 나 지금 바루 갈게! 고마웡♥]
잠깐 씁쓸한 기분을 느끼던 지아는 이내 고개를 휘저으며 어제 다짐했던 것, 윤진이와 상현사이를 신경쓰지 않겠다는 다짐, 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윤진이 도서관까지 오는 시간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아의 어깨와 상현의 어깨를 동시에 살짝 치면서 자신이 왔음을 알리며 윤진이는 이내, 상현의 옆자리에 당연한 듯 앉았다. 윤진이의 옷차림은 도서관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샤랄라한 공주풍의 원피스였고, 화사하게 화장까지 하고 와 어여쁜 봄처녀의 기운이 물씬 났다.
윤진이 도서관에 온지 1시간가량 흐른 후, 윤진이는 지아와 상현에게 각기 다른 쪽지를 보내왔다.
[상현아, 우리 날씨도 좋은데 셋이서 놀러가자~]
[지아야, 이번에도 나 좀 도와주라! 너는 공부 좀 더 하고 온다고 해주면 안될까?ㅠ0ㅠ]
결국, 상현과 윤진은 나란히 도서관을 빠져나갔고, 지아는 홀로 자리를 지키며 멍 때리고 있을 수밖에…….
지아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읽히지도 않는 책을 펴놓고서는 억지로 읽어보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상현과 윤진이가 도서관을 다 빠져나갈 까지만 버티다가 금세 도서관에서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늘 상현과 함께 돌아가던 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으려니 엄청난 허전함이 밀려왔다. 매주 토요일이면 함께 도서관에 가고 함께 돌아왔는데……. 이제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둘이서 나란히 도서관에 있을 날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자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가기 싫었던 도서관, 안가면 나야 좋지!”
지아가 자신을 위로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까짓 박상현 없이도 난 충분히 씩씩하게 생활 할 수 있다! 굳은 결심을 하는 독립운동가처럼 지아의 얼굴이 결의에 가득 차있는 표정을 그렸다. 그리고 축 쳐졌던 어깨를 바짝 피고, 괜스레 씩씩하게 걸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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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가쥬세여 ♥
첫댓글 씩씩하게 걷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