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의 참된 힘과 권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울을 죽이자는 부하들의 제안을 다윗이 금하고 있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아마 당시 지도자는 다윗이었기 때문에 그의 권위에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이때 사울을 죽인다면 어떻습니까? 다윗은 물론이거니와 부하들까지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다윗과 함께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위험에 처해야 했습니까? 그런데 이제 그 고생을 끝내고 잘하면 왕권까지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하늘이 주신 기회를 물리치고 사울을 살려준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다시 끝을 알 수 없는 고생길을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다윗의 부하들이 여기에 수긍하고 동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이들이라고 다윗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무골 호인은 아닙니다. 나중에 다윗을 돌로 쳐죽이려 한 사실을 볼 때 이들이 다윗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그런이들만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30:6), 문제는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 이들이 다윗의 뜻에 순순히 순복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답은 바로 ‘이 말로’라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하는 ‘이 말로’ 는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6절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뜻이나 고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세움으로써 다윗은 부하들의 뜻을 꺾고 설득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 즉 사람들을 설복시키는 성도의 힘과 권위는 성도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든지 성도의 권위는 자연인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지위, 그의 신분, 그의 경험, 그의 지식, 연륜, 그 무엇도 실제로 사람들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돈과 권세를 쥐고 있는데도 사맘들을 제어하고 설득하는 일에 실패하는지 아십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회적 지위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아보십시오.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보십시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존중하고 높이 받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사회적 조건이 좋아서 왕이나 백성들로부터 존중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 중에는 목자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볼 때 그들은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단지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생명을 다해 받들고 그것을 전파하며 그 실현을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때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를 주도해 나갈 수 있었고,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역시 사회에서든 교회에서든 이러한 권위를 갖기를 원하십니까? 이러한 힘을 갖기를 원 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받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앞세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7:24)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