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성경묵상 본문을 적으세요
[삼하6:1-19]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6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2. (하나님)본문을 통해 어떤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선한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한 신령과 진정으로 올려드리는 예배를 받는 것을 기뻐받으시는 하나님
3. (만남)주님께서 어떤 음성을 들려주셨습니까?
선한 목적을 위해서는 과정도 선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 가오를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람들 또한 절대 가오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결함을 유지하고 거룩성을 유지하라.
4. (분별)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를 구분해 보세요.
마귀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광을 취하기 위하여 산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못한 영광을 마저 올려드리기 위함인 것임을 늘 인지한다. 게다가 목적이 옳다며 과정을 무시하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고 가치롭게 여기시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과 뜻에 따라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익숙하다.
5. (인식)본문을 통해 바라본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다시’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다시라는 말을 강조했다. 과연 언약궤를 되찾기 위한 삼만명을 재소집 한 것일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못한 영광을 마저 돌려드리기 위함인 것인지 나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한다.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숲의성읍’이란 뜻.기브온과그비라와브에롯과 함께 기브온 족속의 네 성읍 가운데 하나(수 9:17).예루살렘서쪽 11㎞ 지점으로 ‘바알라’(수 15:9), ‘기럇 바알’(수 15:60), ‘바알레유다’(삼하 6:2), ‘기럇’(수 18:28) 등 바알관련 지명을 여럿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바알 숭배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가나안 정복 당시 기브온 족속과 맺은 동맹 때문에민족은 보존되었으나(수 9장) 그 땅은유다 지파가 차지하였고, 나중에는베냐민 지파에게 재분배되어 남서쪽 변방이 되었다(수 18:14-15, 28).
사사 시대말기전쟁에서언약궤를 빼앗았던블레셋사람들은 언약궤로 인해 오히려 블레셋에재앙이 발생하자 언약궤를이스라엘로 돌려보냈고, 이 언약궤는 20년 간 기럇 여아림에 보관되었다(삼상 6:21; 7:1-2). 그리고 왕이 된다윗은 기럇 여아림에 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왔다(삼하 6:1-3; 대상 13:5-8).
언약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당연히 메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상식중의 상식이었다.
언약궤가 있는 곳이 바알숭배를 일컫던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던 바알레유다라는 것에 너무나 많이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
오래 기다리고 참아주신 하나님께 감탄하고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나를 이처럼 기다리고 계셨던 주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후에 지명이 기럇 여아림으로 바뀌었다.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다윗이 아닌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새 수레를 몰았다.
어느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 집에 언약궤가 있으므로 언약궤에 대한 금기사항, 주의사항을 잘 알고 있어야 마땅한 자들이다.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웃사와 아효는 제사장이었다.
다윗이 의논하는 자리에는 없었지만 궤를 옮기는 현장에는 있었다. [레10:11][신17:11][신33:10]
분명 하나님의 궤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나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고 안일했다.
옮겨야 한다는 마음만 있었을뿐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목적도 선해야 하지만 과정도 선해야 한다. 목적이 옳다고 과정이 무시되어져서는 안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이다. 결과는 하나님이 창출하시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 결단은 도울뿐이다. 하나님을 시원케할 뿐이다.
나의 의가 발동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촛대가 옮겨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눅19:38]가로되 찬송히라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초라한 모습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찬송하는 부분이다. 저 제자들을 잠잠케 하라 바리새인들이 말을 하니 만일 내 제자들이 저 말을 하지 않으면 돌들이 말을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정상 시간이 없다면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도 사용 하신다.
시간이 급박함에도 예님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신다.
나를 사용하시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촛대를 옮겨 사용을 하니 하나님께 내가 귀하게 쓰임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아무리 앞에 사람이 먼저 가면서 위험한 상황을 대비하거나 수비를 해도 하나님보다 앞서가는 행위임.
여호와의 손이 짧음이 아니라는 말씀
5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여호와를 모셔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끌고가는 모양새가 연상이 되었다.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여호와를 나의 앞에 모셔두고가 아니라 하나님은 소의 등에 어떤 모양새로 오든지 말든지 나의 감정에 잔뜩 취한 다윗왕이 연상된 구절이다.
소집된 군사3만명, 다섯 개의 악기 오케스트라, 베옷을 입지않고 있는 다윗. 다시 왕이 된 이후에 성대한 법궤 반환식을 거행하는 것.
6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타작 :도리꺠라는 도구로 곡식을 탈곡하는 것, 매타작을 당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속에 출애굽 당시에 소로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다.
궤는 메어 모셔오는 것이다. 소가 끌고 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사람의 손이 닿아서도 안되는 것을 소가 끌었다.
애굽땅에서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은 소 트라우마와 소 알러지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뇌가 없는... 생각이 없는 행동이다.
7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진노’-뜨거운 콧바람이 나오다 정도로 해석
8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의 ‘분함’은 살기에 가까운 격노함을 표현한 단어가 쓰였다.
9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자신이 무언가 잘못을 한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고 두렵긴 한데 뭔가 찌찝하고 찔리긴 한데 그 찔림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확연하게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님께 더 나아가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찾고 구하고 물어야 한다.
율법을 모르는 블레셋 사람들이 수레를 사용해 법궤를 옮겼을 때는 하나님께서 벌하시지 않으셨지만 다윗과 이스라엘이 규례대로 하지 않음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던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정성을 다해 준비한 행사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하지 않는 부분을 간과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그 의도가 선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말씀대로 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심을 알아야 한다.
11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과연 오벧에돔에게 그냥 복을 주셨을까요? 내가 하나님의 궤인 언약궤를 천개를 거지고 있다해도 복을 받을 께끗한 그릇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불가능 하다.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감격하고 감사하며 기뻐했을지...
예정되지 않은 축복이라 감사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두며 지극정성을 다하였기에 그 복이 그 집과 모든 소유에 임했을 것이다.
12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언약궤는 낮은 곳에 두고 자신은 높은 곳에 올라가 있을 때 다윗은 편안했을까? 다윗의 3개월의 여정이 어떠했을까?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우리를 기다리고 사랑하심은 여기에서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3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6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수, 짐승의 수, 불완전의 수이다.
창조는 6일까지 마쳤지만 7일 안식을 취함으로 완전해 졌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세창조의 머리가 살아난 것이다. 몸은 언제 살아났는냐? 7번의 안식이 지난 후 50일째 되는 오순절이다. 안식일은 율법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돌맞아 죽으니까 그래서 안식이 없다. 주님이 오신건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은 완전케 하러 오셨다.
완전수 7을 7번 거치면서 율법은 완전케 하신 것이다.
율법을 완전케 하셨기에 우리가 온전하게 안식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네가 안식일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네가 내 안에 들어오면 안식하는 것이고 그것이 온전하게 안식일을 지킨 것이다.
완전한 안식과 화해를 한 것이다.
14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드디어 정결과 거룩한 예배를 위한 베 에봇으로 갈아입습니다.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나팔을 불어야 할 때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를 알리는 역할:전쟁과 경고[민10:9], 심판이 임박했을 때[요엘2:1],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절기[레23:4]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역대상15:28]
승리과 기쁨:여리고성 함락[수6:4-5], 다윗이 언약궤를 운반할 때[삼하6:15]
나팔을 불지말아야 할 때
신앙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팔 소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참된 신앙의 표현이어야 함
6. (적용)본문을 통해 내 삶에 적용해야 할 사항은?
이미지메이킹의 T.P.O가 떠올랐다.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이미지 구축을 하는 것이 성공적인 이미지메이킹 전력이라는 말이다.
믿음에도 TPO와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져야 한다.
물리적인 부분이 아닌 영적인 부분으로 적용이 되어져야 한다.
내가 먼저 갈 것인지 뒤로 갈 것인지,
어떤 것을 입을 것인지 벗을 것인지
풍악을 울릴 때인지 나팔을 불 때인지 등등
복잡해 보이지만 주님께서 정해주고 말씀해주시고 일러주신 것들을 토대로 원칙을 잘 지켜나간다면 주님의 유일한 거룩성에 스크래치를 내어 주님의 가오를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실수로 인하여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없게 된다.
아주 작고 하찮은 것에도 주님은 잘 했다. 내 딸아, 내 종아 하며 연신 칭찬하시며 기뻐하시기 바쁘다.
사랑받기 위해 합당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우리라고 하지만 사랑에도 수위가 있다.
이왕 받는 사랑 더 듬뿍 집중적으로 영적 채색옷을 겹겹히 입혀주고 싶어 안달이 난 주님의 시선 중앙에 내가 늘 주인공이 되어 주님의 하트가 넘쳐 흐르는 그 눈동자의 중앙에 내가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일은 없을 것이다.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은 주님이 정하신 모든 것 안에서 주님의 시선안에 나를 가두는 것이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행복한 그 안에서 절대적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중력따위에도 영향받지 않는 오로지 주님나라의 법칙에만 적용받는 그 강력한 보호막 안에 오늘도 나를 가둔다.
7. (기도)말씀을 가지고서 기도문을 만들어 기도해 봅시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께서 흘리신 생명의 보혈로 회개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하늘문을 열어주시고 보혈의 제단에 보혈의 피를 뿌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합니다.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회개의 불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 내 속사람에게 뿌려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시고 주의 보혈로 나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이 임하는 회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서 교만했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기도하지 않아서 순종하지 못한 죄를 지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죄는 영적인 교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죄는 가장 고집스러운 완악한 죄입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 피우는 것은 우상숭배가 됩니다.
거역과 고집을 용서해 주시고 순종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육의 생각으로 기도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혼으로 기도하고 감정으로 기도하여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든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정욕으로 쓰려고 내 방식대로 잘못 구한 죄도 있습니다.
사람의 정욕을 따르며 살았고 육체의 남은 때를 죄 가운데 살아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내 감정과 경험을 의존하며 산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동안 생기는 자기의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였어도 마음으로는 인정받으려고 한 자기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나좀 알아줬으면 하는 숨겨진 자기의가 내 안에 있습니다.
사람의식하며 살아온 죄를 용서햐 주옵소서.
죄 앞에 항상 넘어지며 해도헤도 안 되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끝났다고 생각할 때 그 때가 주님이 가장 가까이 계실 때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넘어진 그 장소에서 주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넘어진 그 자리가 겸손의 자리가 되고 거룩을 이루는 장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휘두른 혈기가 죄의 채찍이 되어 남에게 상처를 준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땅 위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을 추구하며 산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죄의 정욕이 나에게 역사하여 스스로 사망의 열매를 맺고 살았습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보혈로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아무리 좋아보여도 죄이면 다 갖다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없이 내 자신을 믿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 영적인 교만과 육적인 교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믿음없이 보고 듣고 생각하며 행동한 모든 죄를 용서햐 주시옵소서.
기도로 시작하지 않고 기도로 마치지 않은 방종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나의 거룩하지 못한 행동과 말 때문에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죄인을 용서하소서.
이 곤고한 죄인을 보혈의 빛으로 비춰주소서.
온전하게 회개할 때마다 내 영이 찬잔한 빛의 옷을 입게 하여 주싱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더 많은 받은 자로서 순종하며 살지 못한 죄를 보혈의 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회개하오니 신실하지 못한 자가 받는 벌을 면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옥 갈 인생을 구해 주신 예수님께 빚진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묭이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됨을 믿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여 생명의 부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주시고 모든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씼어 주시옵소서.
나의 성품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되게 하여 주시고 나의 인격이 하나님의 깨끗한 인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 손을 잡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신 성령님꼐 감사드립니다.
주홍빛 같은 저의 죄를 보혈의 피로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8. (배움)본문의 말씀을 더욱 구체적으로 자세히 원어를 참조해서 배워봅시다.
1. 좌정하신 יָשַׁב H3427 yâshab 야샤브
1. 앉다, 자리잡다, 창27:19.
2. 남다, 잔류하다, 머무르다, 묵다, 창24:55 창25:27 창29:19.
3. 서식하다, 거주하다, 살다, 체재하다, 창4:20 창13:6,7,12; 19:29 레25:18 신17:14.
2. 앞에서 פָּנִים H6440 pânîym 파님
1. 얼굴, 창38:15 창50:1 출3:6.
2. 인간, 현존, 인격, 출33:14 삼하17:11 애4:16.
3. 표면.
4. 앞부분, 선발대, 첫 부분.
3. 곁에서 עִם H5973 ʽîm 임
1. [부사]: 함께, 동시에, 더욱, 삼상16:12 삼상17:42.2. [전치사]: 어미활용 עִמָּם ,עִמָּכֶם ,עִמָּנוּ ,עִמּוֹ ,עִמָּךְ ,עִמְּךָ ,עִמִּי1) 함께, 창13:1 창18:16 삼상9:24.
2. [바로 가까이 있을 때 사용] 창23:4 창25:11 창29:25,30; 35:4 삼상2:21 욥1:12.
a. 어떤 사람의 집에, 창24:25 대상13:14.
b. 어떤 사람의 몸에, 욥6:4.
c. 어떤 사람의 마음에, 민14:24 신8:5 수14:7 대하6:7,8; 22:7; 24:4 대상28:2 대상29:9 대하1:11 욥9:35 욥10:13 욥15:9 욥23:14 욥27:11(10), 시50:11 시77:7(6), 전1:16.
언약궤 안에 좌정하셨다는 표현에 사용된 단어는 '야샤브'로 앉다, 자리잡다, 머무르다, 묵다, 거줒하다 살다. 체재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언약궤 안제 좌정하신 하나님의 상태를 위에 나열한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언약궤는 눈에 보이는 그저 상자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이며 우리가 인식하는 그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궤를 뛰어넘어 하나님 그 자체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언약궤 앞에서 라는 표현에서 앞에서에 쓰인 단어는 '파님'으로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인격, 바로 하나님 앞이라는 의미들의 단어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얼굴과도 같은 언약궤를 대했던 성경구절 속 주인공들의 태도와는 참으로 대조적인 표현이다.
또한 언역궤 곁에서 웃사가 죽게 된 구절에 사용된 곁에서는 '임'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언약궤의 곁은 말 그대로 언약궤와 거의 함께하는 그 위치에서, 언약궤에 바로 딱 붙어있는 상황, 언약궤의 곁에, 언약궤라는 영역에 완전히 밀착되어있는 근접한 상황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사용되었다.
웃사는 하나님의 곁에서 죽임을 당했다. 불기둥,구름기둥으로 그 불만투성이였던 애굽땅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랜시간 지켜주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모습과는 상대적이고 대조적이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하나님이 하나님됨을 유지하고 지키지 못할 정도로 과하게 수위를 넘었기에 자초한 일이다.
언약궤는 이처럼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언약궤는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말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주님의 임재를 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고 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언역궤가 있다는 것을 믿지도 않을 뿐더러 구하여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불신이 가득한 시대이다.
그렇기에 정작 내가 언약궤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비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은 하나님의 거룩성마저 위협을 낄칠 정도로 우리는 거침없는 죄악의 대로에 들어서곤 한다.
주님이 정말 늘 나와 함께 하시고 주님이 늘 내 안에 계시고 나의 영이 주님으로 충문하다는 것을 원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체감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으며 실수하지도 않고 정결과 거룩을 유지하며 하나님 나라의 사랑과 가치를 누리며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이 모든것들을 주님께 간절히 회개하여 나를 번제단에 올려드리고 물두멍에서 보혈의 피로 죄악을 씻어내서 주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여 언약궤 곁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크고 은밀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내가 되길 자축하며 내 주위의 많은 영혼들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냐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