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이야기] 저놈을 사형시켜라.
2024.10.30.
1857년, 독도 호박 17개!
무슨 이야기냐고? 우리가 호박을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잠깐 인류의 에너지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19세기, 즉 1800년대 검은 오일은 걸프만에 있지 않고 동해에 있었다. 고래다. 선사시대부터 한류와 난류가 겹치는 울릉도 주변에는 고래 천국이었다. 고래는 식용뿐만 아니라 등불, 향료, 비누, 양초, 가죽, 빗, 페인트 원료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종합 선물 세트였다.
1848년, 헌종 14년 4월, 조정은 “울산 앞바다에 이상하게 생긴 배가 왔다 갔다 하니, 경상좌병영은 이 사실을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지엄한 명령을 내리지만, 그들의 실력으로는 이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포경선이다. 전 세계 포경선 900척 가운데 대략 735척이 미국 소유였고, 그중 동해로 온 포경선이 54척이며, 프랑스, 독일까지 합하면 60척에 달했고, 이듬해(1849)에는 무려 130척이 왔다.
바글바글한 포경선 가운데 ‘플라리더’라는 포경선의 한 선원이 독도(Dagelet Rock)에 내려 호박 17개를 얻는다.
그때가 1857년 4월이었다. 도대체 누가 독도에 호박을 심었을까? 의심되는 바는 일본인과 거문도 초도에서 온 전라도 사람이다.
호박은 1492년 콜럼버스 교환으로 신대륙에서 온 작물이다.
일본은 일찍이 포르투갈로부터 호박을 받아들여 구황식품으로 애용하여 동지팥죽 대신 단호박죽을 먹을 정도였지만, 우리 민족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왜과(倭瓜, 왜놈 박), 호과(胡瓜, 오랑캐 박)로 천대하였고 특히 사대부들은 ‘슬기구멍’을 막는다고 먹지 않았다. 하지만 거문도 초도에서 올라온 뱃사람에게는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 울릉도는 호박 천국이었을 것이다. 울릉도는 나리 분지를 제외하고는 급격한 V자형 비탈면으로 부지깽이 나물이 제격이니, 식용이 가능한 호박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더구나 당분이 부족했던 시절, 달달한 호박엿은 단연 최고의 음식이었다. 울릉도 호박엿, 그야말로 넝쿨째 들어왔다.
아, 원시림을 걷고 싶다면 울릉도로 가라. 호박엿을 입에 물고 걸으면 만사 시름이 사라진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태곳적부터 존재해 왔던 그대로, 그 느낌을 원한다면 해담길 3코스를 걸어라. 나는 원시림이라 부르지만, 동행한 이 작가는 구태여 ‘처녀림’이라 우긴다. 그렇구나.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처녀림을 걷는다면 얼마나 홀황(惚恍)한 기분이 들까?
우리나라에 처녀림이 존재하기는 할까? 글쎄다. 가끔 지리산을 종주해 보지만, 빨치산 토벌 때 불태워진 이후 형성된 숲이다. 지리산이 그 모양이니 나머지 산은 논하기조차 쑥스럽다. 백두산 천문봉올라 초원을 따라 아래로 트레킹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언뜻 태곳적 냄새를 느꼈다. 바로 울릉도에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 있다. 성인봉에서 나리봉까지 이어지는 북쪽 사면, 천애의 단절로 인간의 화전을 피해 갈 수 있었으며, 벌목꾼들의 낫조차 비켜 가게 만들었다.
“보라~ 동해의 일출,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내수전일출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그래야 송창식의 노래를 실감한다. 막힘없는 동해의 수평선이 펼쳐지는 곳, 이곳에 오르면 백두산의 끝없은 지평선이 부럽지 않다. 땅만 땅인가? 바다도 땅이다.
흥에 겨운 우리가 내수전일출전망대의 황홀한 느낌을 어찌 그냥 허투루 보낼 수 있을쏜가? 바로 곁에 있는 ‘숙이네’ 집에서 눌러앉아 호박 막걸리에 미역무침을 곁들이는 사이에 이 작가는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리고 덤으로 막걸리 한 통을 더 얻는다.
벼랑길 아래를 쳐다보면 숲 사이로 새파란 바다가 보인다. 굴렀다 하면 언젠가는 ‘쿵’하고 떨어질 이곳에 길을 냈으니, 1883년 울릉도 개척민들은 얼마나 절박했겠는가?
어딘가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숨어서 나를 노려보는듯한 고비 숲을 지나다 보면 분명 백악기 어느 때를 통과 중인 듯 착각을 일으키고 걷는 내내 황홀한 이 느낌, 분명 처녀림에서 밀려드는 향일 게다. 아니야 햇살이 잎사귀를 뚫고 내리쬐는 부드러움일 게다. 그것도 아니라면, 눈을 들어 바라본 숲의 어슴푸레한 빛 때문일 게다. 그래, 폐부 깊숙이 훑고 지나는 가쁜 산소, 바윗돌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뿌리들, 길 없는 길 사이로 난 절벽, 그렇게 걷다 보면 안용복 기념관이 나온다.
저놈을 사형시켜라.
통영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울릉도에서는 안용복을 빼고서 이야기할 수 없다.
일본 막부(정부)에 ‘죽도도해금지령(竹島渡海禁止令)을 받아 낸 인물, 민간인 신분으로 일본을 건넜다 하여 사형당한 인물, 그 곁에는 독도를 지켜낸 의용수비대 기념관이 있고, 여기서 관음도까지 58분, 해안으로 이어지는 급 벼랑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라.
우리 팀, 울릉도 트레킹을 대변하는 슬로건이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저동항에 도착하니 촛대바위에 저녁 불빛이 휘황했다.
*이 기문은 10.24~10.27 울릉도 답사기이며, 내일은 제4부 "도대체 뭍사람들은 어디 갔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