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270만명 시대, 이재명 정부는 왜 이민정책 없나 [기고] / 8/19(화) / 한겨레 신문
임동진 | 한국이민정책학회 회장, 순천향대 교수
올해 6월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약 270만 명으로 인구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100명 중 5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과 123개 국정과제에는 이 270만 명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민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 파고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운데 이는 중대한 정책 공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72년 한국의 인구는 3600만 명까지 감소하고 65세 이상의 비율은 4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는 생산연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학령인구의 감소, 병력자원의 고갈, 폐교, 지역의 소멸로 직결된다. 이미 농촌은 계절 근로자 없이는 영농이 어렵고, 제조업이나 중소기업도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지방대도 외국인 유학생이 줄면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저출산은 모든 선진국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다. 출산율을 높이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최소 수십 년이 걸린다. 인구절벽을 완화하려면 인구정책과 이민정책을 전략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1980년대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이민을 인구정책의 한 축으로 삼아왔다. 한국도 우수한 외국 인재를 유치해 장기 정착을 촉진하는 전략적 이민정책을 국가 인구정책과 연계시켜야 한다.
지방소멸에 대한 대응은 국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특화형 비자제도가 성과를 거두고 있어 올해부터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시범사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제도화와 지자체의 전문조직 확충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운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 정책도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 있는 유학생은 약 20만 명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국에 비해 규모가 작고 정책 수준도 낮다. 정부가 내세우는 것은 기껏해야 유학생 30만 명 유치 목표 정도로 구체적인 유치 전략이나 정착 지원책은 미흡하다. 유학생을 단기체류자가 아닌 고급인력으로 장기정착 가능한 인재로 보고 유치 교육 취업 정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자체 대학 산업계의 협력 강화와 지역 정착을 지원하는 정교한 정책이라는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정책은 부처 간 벽을 허물고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 법무부의 한 부서(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만으로는 인구, 노동, 교육, 복지, 지역을 통합하는 종합적인 이민정책의 설계와 집행을 담당하기 어렵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정부는 법무부 밑에 이민청을 신설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사회적 정치적으로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한국이민정책학회, 한국이민법학회, 한국이민행정학회 등 이민분야 3개 대학회는 올해 5월 국회에 국무총리실 아래 이민처를 설치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국회에는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강일 의원이 대표가 돼 이민처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중장기 전략 수립과 부처 간 조율을 총괄하는 이민처 신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단순한 조직개편에 그치지 않고 국가 생존전략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저출산 고령화, 노동력 부족, 지방대 붕괴, 지역 소멸이 맞물려 악순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는 더 이상 이민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구정책과 이민정책의 전략적 병행, 지방분권형 이민정책, 외국인 유학생 활용, 전문기관 설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지금이 마지막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