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셨다는 말
황유원
참 좋다
주위를 둘러보면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 천지이지만
돌아갈 곳 아무데도 없어도
집도 절도 없어도
돌아가고 나면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한다는 거
누구나 결국 돌아가고
누구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거
어디로 돌아갔는진 모르겠지만
흔히들 하는 말처럼 그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 사이에만 해도 정말 다들
돌아가셨다는 거
말은 가끔 씨가 되고
돌아가시다, 라는 말이 있어
우리 모두
돌아갈 곳 생긴다는 거
참 좋다
늦은 밤 장례식장 갔다 돌아와도 도무지
돌아온 것 같지 않은 기분인 그런 날
돌아가셨습니다, 라는 말의 씨에서 싹이 돋아나
흙을 뚫고 청청하게 솟아오르는 상상에 젖다보면
어느새 세상모르고 다들
잠들어 있다는 거
계간「상징학연구소」 2023. 봄호
밤의 벌레들
황유원
불을 켜자마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이 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이 담겨 있던 어둠은
얼마나 아늑하고 그윽한 것이었겠습니까?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벌레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아 사과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하며 자, 한번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은 얼마나 천천히
얼마나 우아하게 이 욕실 바닥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겠습니까?
그 바닥에 자신들을 해할 것은 아무래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하며
세상 편안한 마음으로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었을 거라
이 말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불을 켜자마자
갑자기 없던 혼이라도 생겼다 빠져나간 듯
그렇게 급조된 영혼이 황급히 빠져나가는 통에 미처 그 영혼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져버린 벌레들이
발발발 여기저기 흩어지는 걸 죄지은 마음으로 바라보며
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봅시다
당신이 불을 켜기 전 벌레들을 뒤에서
옆에서 앞에서
감싸고 있던 그
그윽한 고독과 어둠을
그 어둠의 우월함에 대해 한번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사방에서 당장 밀어닥칠 듯한
그 물샐틈없는 어둠 속 고독……
당신은 거실에서 혼자 눈감고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퇴근 시간이 훨씬 넘어서까지 밥도 못 먹고 일한 당신은
마침내 집에 도착해 깨끗한 빈속에 깨끗한 음악을 채워 넣고 있던 참인데
갑자기 유리창에 커다란 짱돌이 날아와 그 정적을 한순간에 모두
깨뜨려놓고
그 틈으로 찬바람이 숭숭 새어 들어오는 겁니다
완벽히 고여 있던 음악은 깨진 창 틈새로 술술
빠져나가고
당신은 갑자기 어쩔 줄 몰라하며
사라지는 음악을 두 손으로 움켜잡아보지만
그 음악은 이미 찬바람의 손에 잡혀 갈가리
찢겨진 후……
자,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깊이 공감해봅시다
당신에게는 깊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벌레 같은’이라는 관용구를 그 뜻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당신
자, 마침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당신
준비는 완벽합니다 준비라고 따로 할 게 없군요
그러니 한번 두 눈을 감고
이미 다 사라져버린 벌레들을 마음속으로 뒤쫓아가
그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봅시다
벌레가 되어
벌레의 절망감을 조금이나마 나눠 가져봅시다
벌레의 내장 깊은 곳에 아직 조금은 남아 있을 어둠을 찾아
그 속에 들어앉아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떨림 속에서
아까 듣던 그 음악을
계속
이어서 들어봅시다
계간 「상징학연구소」 2023. 봄호
황유원 시인
2013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 『초자연적 3D 프린팅』
제68회 현대문학상 시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