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저수지를 둘러
삼월 하순 주중 수요일이다. 우리나라로 통과하는 기압골 영향으로 낮에는 제주도부터 강수가 시작되어 우리 지역은 밤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산불 예방과 농사에 도움이 될 봄비가 넉넉하게 내려야 좋을 듯한데 예상 강수량은 그에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에 격월로 얼굴을 보는 초등 친구들과 식사 자리가 예정되어 자연학교 등교는 점심나절 이후로 미루어 오후반이 되었다.
자연학교 등교를 늦추고 있는 사이 고향의 큰형님으로부터 집안 어른 한 분 돌아가신 부음이 왔다. 상주는 나하고 재종간으로 당숙모가 천수를 다해 작고하셨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사촌 간도 왕래가 뜸하지만 내가 어릴 적 5촌 아저씨와 6촌 형제들은 명절에 차례도 같이 지낸 집안 식구들이었다. 당숙은 내가 어릴 적 마산으로 이사가 재종들과 가끔 교류가 오가는 사이다.
음력으로 윤이월 초하루여서 집사람은 절로 나간 이후 나는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문상을 나서기 전 자연학교로 향했다. 아파트단지는 삼월 하순인데도 벚꽃이 화사해 열흘 이상 개화가 빨라진 듯해 사월이 오기 전 꽃이 지지 싶었다. 반송 소하천을 따라 원이대로로 나가 본포로 가는 31번 버스를 탔다. 내가 기고자 하는 행선지는 주남저수지 건너편에 해당하는 동읍 석산마을이다.
버스가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간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났다. 봉강으로 우회하는 지방도 공사는 마무리되어 차량 흐름이 혼잡하지 않았다. 주남삼거리를 지난 석산마을에서 내려 주남저수지 내수면 어로작업을 하는 고깃배가 머무는 계류장으로 나갔다. 내가 그곳으로 나감은 저수지 가장자리에 자라는 갯버들에서 돋는 연초록 잎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예년 같았으면 사월 초순에 수액이 오르는 갯버들의 잎이 연두색으로 물들었는데 열흘 이상 당겨진 삼월 하순부터 물감이 풀어지는 듯했다. 향기를 뿜어내는 꽃들도 볼만 하지만 연초록으로 물드는 갯버들의 싱그러움도 거기에 뒤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다니질 않는 탐방로를 따라가면서 잎이 돋는 갯버들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건너편 아득한 곳은 주남저수지 둑이 바라보였다.
산책로 곁 물웅덩이에는 차를 몰아와 낚시 삼매에 빠진 태공이 둘 있었다. 그들은 텐트를 쳐 놓고 며칠째 야영하며 세월을 낚는 듯했다. 텐트 곁에는 라면 봉지와 막걸리병도 널브러져 있었다. 연초록 잎이 돋는 갯버들을 완상하면서 걷는 탐방로에는 노란 민들레꽃이 점점이 피어났고 연한 보라색 제비꽃도 지천이었다. 도중에 쑥을 캐 봉지를 가득 채운 중년 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내가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냄에도 주남저수지로 나온 의도는 갯버들을 글감으로 시조를 한 수 남김이다. “찬 바람 윙윙 불 때 오지게 떨었다오 / 봄 햇살 기디리다 그리움 움이 되어 / 수액을 펌프질해서 / 연초록이 물든다 // 풀꽃만 예쁘더냐 나무도 볼만 하오 / 갯버들 잎이 피면 향기가 대수리오 / 이렇게 눈 시리도록 유록색이 번진다” 즉흥적으로 읊은 ‘갯버들 연가’ 전문이다.
내가 걷는 탐방로는 낙동강에서 퍼 올린 강물이 창원 시민들의 식수와 공업용수로 공급되는 송수관이 지나는 구역과 겹쳤다. 단감과수원을 지나니 현지 아낙들이 새움이 돋는 머위를 캐고 있었다. 배수문을 사이에 두고 산남저수지와 나뉘는 용산마을에 이르러 주남저수지 둑길을 따라 걸었다. 거기도 두 아낙이 쑥을 캐면서 민들레도 같이 캐고 있어 제대로 봄을 즐기는 이들이었다.
주천강으로 물길이 빠져나가는 배수문을 지난 가월마을로 나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신마산 도립 의료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모친상을 입은 재종 동생을 위로하고 집안 형제와 조카들을 만나 밀린 안부를 나누었다. 이후 울산에서 온 작은형님을 보내드리면서 나는 나대로 저녁 일정이 기다렸다. 댓거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친구 식당에서 초등학교 동기들 모임에 참석했다. 23.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