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나선 트레킹
엊그제 춘분이 지난 삼월 하순 목요일이다. 간밤부터 산불 예방과 농사에 도움이 될 비가 촉촉이 내렸다. 나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아 기상 정보는 인터넷 검색이나 소 박사 유튜버에서 취하고 있다. 소 박사로부터 이틀 한 번 정도 날씨 상황을 제공받는데 이번 내리는 비는 남녘 해상 장마전선이 형성되었다는데 제주도에서는 고사리를 돋아나게 해주어 고사리 장마로 불린단다.
날이 밝아온 아침 문우들과 트레킹 일정이 잡혔는데 우중에도 길을 나서게 되었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이 가꾸는 꽃밭을 둘러보는 한 회원과 함께 인근 아파트단지 사는 분의 차로 팔룡동으로 갔다. 팔룡동에서 한 분이 더 늘어 그가 운전대를 잡아 내가 행선지를 정한 교외로 나갔다. 낙동강 건너 밀양 초동면의 내륙 들판에 소재한 신호 저수지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사는 생활권의 주남저수지는 익숙해 산책길 풍광에 변화를 주기 위함이었다. 빗속에 서행 안전 운전으로 북면 마금산 온천을 비켜 본포교를 건너 반월 생태습지로 가는 샛강 청도천의 반학교를 건넜다. 차창 밖 보이는 보리는 비를 맞아 한층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곡강 근처에서 방향을 꺾어 검암마을로 들어 밀양 박씨 재실 모선정에서 농로를 따라 신호지 둑길로 갔다.
나는 지난겨울에 본포에서 반월 생태습지를 거쳐 초동 신호지를 다녀간 적 있었다. 내륙 저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주남저수지만큼이나 규모가 컸다. 둑길 산책로로 오르니 정자에는 밤을 샌 태공 둘이 라면을 끓여 아침을 먹고 있었다. 신호지는 민물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태공들이 여럿 보였다. 이들이 던져둔 낚싯대는 한결같이 여남은 개 되었다.
시야가 탁 트여 드넓은 저수지와 들녘이 바라보였다. 바람이 세차지 않아 우산을 받쳐 쓰고 걸었더니 운치를 더했다. 둑길에는 비를 맞은 달팽이들이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 우리의 발길에 밟힐까 봐 발을 디디기가 조심이 되었다. 둘레길 북쪽의 작은 마을 어귀는 애향 시비 공원과 함께 정자가 있었다. 정자에 올라 우산을 접고 가져간 커피와 간식을 꺼내 먹으며 환담을 나누었다.
정자에서 내려와 마을을 지나 일직선 둑길을 따라 걸었다. 저수지 수면은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길섶에는 웃자란 쑥이 보였으나 우중이라 캘 여건이 못 되었다. 내가 본디 신호지 둑길로 트레킹 코스를 정했을 때는 쑥을 캐는 시간도 예상했는데 비가 와 진행하지 못했다. 신호지를 빙글 두르는 남쪽 가장자리는 갯버들은 연초록 잎이 돋아 싱그러움을 더했다.
두 시간 가량 걸려 둑길을 걸은 뒤 점심을 먹으려고 차를 몰아 밀양 시내로 갔다. 한 회원이 알고 있는 한식 뷔페를 찾았더니 가성비가 좋은 식단이었다. 식후에 내일동의 한 찻집으로 가서 전통 한방 쌍화차를 마시면 약재 향기를 느꼈다. 이후 일정은 부북면 위양지로 향했다. 경북 청도와 경계를 이룬 화악산은 작년에 큰 산불로 시커멓게 그슬린 상태로 봄을 맞고 있었다.
숲이 좋은 위양지는 연초록 잎이 돋는 즈음이라 오전의 신호지와 다른 풍광이었다. 우산을 받쳐 쓰고 둑길을 한 바퀴 걷고 저수지 안 인공섬의 안동 권씨 재실을 둘러봤다. 부북면 일대는 안동 권씨와 여주 이씨, 광주 안씨들이 오랜 세월 터 잡아 살았다. 위양지에서 무안을 거쳐 부곡 비봉리 선사유적 전시관을 둘러 세종과 남매간이 정선공주 무덤과 남이 장군 사당을 참배했다.
창원으로 복귀해 넷은 유튜버로 꽃대감 tv를 운영하는 초등 친구의 자제 식당으로 가서 삼겹살을 구워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도청에서 퇴직한 친구는 아파트단지 뜰에 꽃을 가꾸면서 빙상장으로 나가 스케이트를 타면서 건강을 지켰다. 다섯이 앉은 자리에 나와 젊은 날부터 오래도록 교류하는 한 지기가 합류해 집 근처 상가로 이동해 차수를 변경했더니 밤이 이슥했다. 23.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