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430장(구 456장) / 요한계시록 7 : 1 - 8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30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요한계시록 7장 1절 부터 8절 말씀입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아멘!
정체성(正體性)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을 보니까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을 “자아 정체성” 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정체성에 혼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분명히 자기는 남자인데 여자인 줄 압니다. 아니 여자이고 싶어 합니다. 아예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합니다. 여자라고 우깁니다. 여자처럼 삽니다. 성 정체성이 혼돈된 것입니다. 잠시 잠깐은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또 전체적으로 보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 정체성 혼돈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인데 아닌 것처럼 숨기고 삽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아예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 깊은 속에 예수를 만났던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못 돌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인침을 받은 자” 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인침을 받은 자” 라는 표현이 4절에 두 번, 5절에 한 번, 8절에 또 한 번 나옵니다. 합이 네 번 나옵니다. 인침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스프라기스” - “도장 찍음”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비유적으로도 사용되어 “보증하다, 인정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노예제도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대개 진 쪽 사람들을 노예로 끌고 옵니다. 때로는 돈 주고 사람을 노예로 사기도 합니다. 이럴 때 그 사람이 자기 집 노예라는 표시를 합니다. 많은 경우 문서에 도장을 찍어서 자기 집의 노예임을 표시합니다. 그런데 몸에 낙인을 찍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시대입니다. 이 때 이마에 주인의 이름의 첫 자를 인두에 새겨 낙인을 찍었습니다. 로마 황제 씨저는 자기 노예의 이마 한 복판에 “V" 자를 새겼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산 뒤에 가슴에 낙인을 찍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뒤통수나 등에 찍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 2절, 3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를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영적인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우리 이마에 눈에 보이는 어떤 낙인이 찍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이는 영적인 낙인이 찍혀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치셨다고 강조하는 것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을 확인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치 노예의 주인이 인침 받은 자기 노예를 각별히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건강도 돌봐줍니다. 생활도 돌봐줍니다. 일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도 챙겨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더 각별하게 우리를 눈여겨보십니다. 그리고 손을 쓰셔서 철저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잊지 말고 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리를 인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 말씀을 보면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인 치심을 받은 사람들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보증이십니다. 비록 우리 이마에 인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인 치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성령이 확인시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이렇게 인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인침 받은 사람들 모두를 기억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14만 4천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 지파 각 지파마다 일만 이천 명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많은 이단 종파들은 이 숫자가 실체적 숫자라고 주장합니다. 구원 받을 사람은 정확하게 14만 4천 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 안에 들어와야 구원 받는 이 14만 4천명 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포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먼저 14만 4천의 앞에 세 자리 숫자인 144는 또 12x12를 뜻합니다. 신성한 완전수 12를 제곱했습니다. 또한 1000은 10x10x10을 의미합니다. 세속적인 완전수 10을 세제곱했습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와 신약시대를 총망라한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그 모든 시대, 그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들 그 모두를 인 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인침 받은 사람들을 배려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 6장에서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인데, 어린 양이 일곱 인을 차례로 떼시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쏟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징벌이 무자비하게 가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6장 마지막 절에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이제 이 무서운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재앙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헤아리시고 오늘 본문 7장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배려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세밀하게 돌보시고 살펴주십니다. 따뜻한 배려를 하고 계십니다.
셋째, 인 치심을 받은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14만 4천명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인 치심을 받을 때까지 심판을 유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인 치심을 받고 난 후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 십자가와 보혈의 은혜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영적으로 인 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기억하시고, 배려하시고 마지막에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