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라는 말씀...에서 보듯... 우리는... 흔히 천사가 야곱을 꺽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천사가 애초에 환도뼈를 쳐서 야곱을 이긴 것이 아니다. 천사가 환도뼈를 친 것은 뒤에 나오는 일이다. 처음에는 야곱이 이기고 있었고...승산이 없자 천사가 환도뼈를 친 것이다.
그러면 왜.... 천사는 야곱을 이기지 못했을까?
천사는 차차 정체가 밝혀지지만...뒤에 보면... 사실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문제가 이상해진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을 이기지 못할까?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물리력이나 기싸움의 문제인가? 어떤 경우에...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한 어떤이의 해석은... 야곱의 간절함(기도)이나...죽음을 각오한 몸부림을 주목하라 한다.
그러나...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아무리 절실한 야곱이라도... 실제로 하나님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었을 수가 없다.
야곱의 간절함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다는 식의 해석은... 나중에 환도뼈를 위골시켜서 야곱을 굴복시킨 명분에도 합당하지 않다.
오히려 이 씨름은 일종의 "상징적인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 이 씨름에서 야곱이 이겼다는 것은... 실은 야곱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항상 하나님을 이기는 "방식"이었다.
무슨말인가? 야곱은 평생을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껏 그가 살아온 방식이 무엇이었나?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하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을 하나님께 주입하면서 살아왔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왔다. 이것이 무엇인가?
"야곱은 하나님을 이기면서 살아온 것"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이런 야곱을 결코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았고... 이것이 야곱의 인생의 요약이요... 이 씨름의 내용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가 야곱에게 이기지 못함을 보고... 환도뼈를 치신다.
환도뼈는 원래... 넓적다리... 허벅지의 가장 크고 두꺼운 뼈를 말한다. 흔히 "대퇴골"이라 부른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이 환도뼈는... 대퇴골뿐 아니라... 성기...골반...고관절...까지 포함한다. "성기"로 표현된 점은..."생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환도뼈...곧 넓적다리는... "사람의 힘"을 나타내는 중요한 방식이다.
생식능력이 여기에 포함되는 이유도...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는 표식이기 때문이다.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에도... 넓적다리는 "힘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제사 때 제사장이 넓적다리를 취하는 것이나... 사무엘이 사울에게 넓적다리를 남겨뒀다가 주는 것이나... 여인이 간음했을 때 넓적다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저주나...
이 모든 성경의 넓적다리의 용례들이... 이것과 관련되어 있고...힘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곱과 씨름하던 하나님이...도저히 야곱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아시고... 넓적다리를 쳤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다는 것은... 야곱의 삶의 결정적 핵심에 해당하는... 그의 정체성의 본질에 해당하는...그 근원을 박살낸 것이다.
야곱이 끝까지 하나님께 순복하고 굴복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장 결정적인 본질이 되는 중추를 때리신 것이다.
그러면 그 때 야곱의 환도뼈가 무엇인가? 무너진 것이 무엇일까?
야곱의 "술수와 간교"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삶에 있어서... 핵심의 정체성을 때려 무너뜨리셨다.
그 밤에...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은... 결코 하나님께 지지 않고 제멋대로 해왔던... 야곱...즉 "술수의 사람"이었다.
그러면...여기에서... 이제 이 술수의 사람 야곱이 어떻게 "이스라엘"이 되는지를 보자!
야곱이...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여기에 나온다. 환도뼈를 쳤고...위골이 되었는데...그 다음의 야곱의 태도를 보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이 때 야곱의 태도를 표현한 책의 내용이있어 발췌해 본다.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재간이 없어 그대로 인용한다)
“그 순간 그는 낯선 사람에 의해 치명적인 일격을 당한다. 환도뼈가 탈골되는 일격을 당한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고꾸라져서 그 낯선 사람에게 매달려 간절하게 복을 구걸한다. 자신의 간교함의 힘이나 의지의 힘으로 소유하게 되는 복이 아니라 오직 선물로서만 주어지는 복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복을 구걸해 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복을 빼앗는 것이요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던 그였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일격을 당해 쓰러지는 순간 그는 비로소 그의 패배가 완벽한 패배인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완벽한 승리를 경험한 자만이 완벽한 패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런 사람만이 완벽한 패배 후에 주어지는 것이 "은혜" 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
아멘 아닌가!
평생을 하나님을 이겨 먹으며 살아왔던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일격을 당했을 때... 그래서 자기가 완전히 꺾여버렸을 때...
바로 그 때 무언가를 깨달은 야곱이... 하나님께 어떻게 한 것인가?
이 부분을 다시 호세아서로 이해해 보자.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
일격을 당한 야곱의 반응은... 화를 내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거나... 하나님과 맞대응한 것이 아니다.
야곱은... “울며 주님께 간구”하였다. “하나님! 내게 복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복이 필요합니다! 제가 꺾어지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술수를 버리겠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위대함을 다른데서 찾는 오류를 범하지 맙시다!
야곱의 위대함은 이것이다. 야곱은 간교한 술수로 세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극한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꺾으실 때 꺾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왜 야곱이 하나님을 이겼다 말하는가? 왜 이 일 후에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게 됐을까? 그가 "이러한 방법"으로 새롭게 하나님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까? 자녀는 아버지를 어떻게 이길까?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를 심판하고 벌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어떻게 이길까?
호세아서 12장 4절에서 마지막 부분에 주어를 “우리에게”라고 쓰고 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이야기를 하면서... 창세기의 야곱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한번도 “우리”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유독 이 마지막부분에서만 주어를 “우리에게”라고 쓰고있다. 왜일까?
야곱이 이렇게 하나님을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바로 "우리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자는 어떻게 이스라엘이 될까? 우리는 어떻게 이 야곱의 후손들이 될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이길까?
자녀에게 회초리를 때리려는 아버지의 손을 멈추는 것은... 울며 간구하는 자녀의 뉘우침과 회개 뿐이다.
아무도...................................
아버지가 되어서 울며 간구하는 자녀를 때리는 아버지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하고...잘못을 저지르고... 야곱처럼 간교와 술수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하나님을 이기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깨닫게 하셨을 때...
그래서 우리의 환도뼈가 되는... 내 정체성의 최후의 보루를 하나님께서 때리셨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께 무너지고... 하나님께 엎드리게 되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무너뜨리실 때에 감사해야 한다. 그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표시이고... 우리가 자식이라는 증거가 된다.
내가 너무 완고하고... 내가 너무 자존감이 높고... 내가 너무 하나님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쳐서 낮추시면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울며 매달리면 된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목적으로 넘어뜨리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넘어뜨리신다.
우리는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승리라고 하지 않는다. 신자에게 유일하고 참된 승리가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 일"이다. 그런데 이 승리는 정말로 기이하다. 하나님을 꺾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꺾여 이기는 것이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두고... “이것이 참된 기독교적 인본주의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서 복종하면서 씨름하였다.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애쓰는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사람이다.”
첫댓글 아멘
아멘
귀한 글을 통하여 야곱의 씨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말 중요한 교훈을 얻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심하며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정말 귀한 말씀이에요.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댓글 주신분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