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풍운의 76년 이었다.
만나면 좋은친구인 엠비씨 문화방송이 정동에 있었던 그 시절이다.김일선수를 앞세워 건축한 '문화체육관'에서(훗날 도움이 안된다고 팔아 먹었다) 김일 선생 자신이 안토니오 이노끼에게 '실전'으로 이마가 깨지며 유혈을 흩날리며 사투를 벌이시던 75년 바로 다음해 였고, 그 이노끼가 '사상최초의 이종 격투기 대회' 의 서막을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열어 제꼈던 바로 그해!
우리의 문화체육관 에서도 '전국 무술대회'----그렇다, 드라곤볼에나 나오는 그 이름도 낯익은 "전국 무술대회"다!(전국 미술대회가 아니다! -,.-;;) 지금은 꿈도 못꿀 그런 한국식 이종격투기 대회가 열렸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표연과 실전격투를 함께 벌이는 세미오픈 토너먼트 형식이었는데, 한 삼년 하다가 호응이 없어서 때려 치웠다. -,.-;;
거기에 온갖 잡상인들이 들끓었었다.
이름도 다 못외울정도의 '잡무술'들이 대거 몰려들었었는데----왜 안그랬겠냐 상금이 당시돈으로 200만원이었는데(지금돈으로 환산 하자면 약3000만원쯤 된다)
거기에 어느분이 말하는 '격기도'는 물론, 자매품 '기격도', '수박도'(착각들 하는데 '수박'이라는건 "특정무술"의 명칭이나 의미가 아님에도 당시에는 모두 우리고유의 '古무도'쯤으로 여기고 있었다.....지금도 그런듯...-,.-;;;), '선무도', '궁중무술', '태수도', '기천도'(귀천도 아님 -,.-;;).......
가장 힛트는 "문무타격도"라는 글자 그대로 '文과武로 타격한다'는 참으로 상상력도 부족한 이름짓기의 무술이었다. 도복이 죽음이었는데, 도사 휠의 긴머리와(그냥 막 기른 기름끼 이빠이 낀 이외수 스타일이엇다) 수염과(요거 요즘엔 개멋으로 젊은놈들도 기른꼴들을 많이 본다만, 당시엔 '수염'하면 "영감" 아니면 "쪽발이"의 상징이었다, 특히 콧수염---그러니 보는사람으로써의 의미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음을 상상하자) 황금색의 칼라와 검은색의 본의상이 무척이나 상스러운(-,.-)조화를 이룬 도복이 압권이었다.
아이보리 칼라의(우리말로 누렇게 뜬)무명도복 차림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정도술'의 압승으로 대회는 끝났는데,
(...뭐시라? 문무타격도는 성적이 어땠냐고?
예선탈락 이었던걸로 기억된다. 역시 文이면文, 武면武 한우물만 파야한다는 교훈을 던져 주었었다.
아, 성적이 나쁘다고 무술자체가 후진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자꾸나.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그 '수많은 무술'들이 하나같이,
죄다, 몽땅, 한결같이 들고나온 캐치프레이즈가 바로 "우리고유의 무술xxx"와 "우리전통의 무술xxx" 이었다는 점이다.
그제껏 보도듣도 못했던 그 수많은 무술(인지 아닌지는 내사 모른다)들이 죄다 역사가 최소한 1500년은 된다고 했었다.
그나마 양심적(?)인 약 5%의 무술들은 역사가 500년 밖에 안돼니 전통이 짧고 미천해서 죄송하다며 조선시대나 고려말기의 탄생배경을 떠들어 댔고, 나머지 95% 이상은 죄다 '삼국시대'나 한술 더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곤 했었다.
하나같이 '고구려벽화'를 언급 했으며 한결같이 그게 바로 "자기들의 모습"이라고 했었다.
아, 생각났다, 그때 '도복'으로 먹어준건 '화랑도'였다.
세속오계의 그 화랑도를 '단체'나 '이념', '사상'등의 철학적 포괄의미로 본다면 아마 그 집단(혹은 그 사상의 추종자들의) 전용무술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김유신이 배웠던 무술이랫다,그거 배워 삼국통일 했대나 어쨌대나... 도복이 저렇듯 장삼을 휘날리며 좆나게 화셔너블 하니 맞는 말일수도 있겠다...고 생각 했었다...니미...
출전한 많은 "古무도"들은 특정 몇몇 무술을 제외 하고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어 보였다.
저마다 "우리전통의..."를 외쳐대는 모습과는 달리, 왠지 연상 되는것은 '차력'의 이미지 뿐이었다.
참고로 현역 '기공사'들 스스로가 "기공"이라는 용어는 물론 '기'의 올바른 개념조차 가지지 못한채,
그저 입으로만 "기"라던가 "내공"이라는 말을 줏어들어 되뇌일 뿐이던 그런 시절이다,
"기"로써 "하늘"을 이루리라는 식의 "기천도"나 "천무도"...등등의 온갖 형이상학적 고차원 사상을 세상이 어찌 알아 봤겠는가?
그냥 "보이는것만이 믿을수 있다'는 서양속담 처럼
신비한 그들의 무론武論과는 달리 툭탁툭탁 닭싸움 같은 공방끝에 이슬처럼 스러져 퇴장하던 그 모습들을 푸훗 비웃어 줄수밖에...! -,.-;;;
(특정무술을 폄하 하려는 뜻이 아니니 또 성급히 오해는 말자! -,.-)
무술의 춘추전국 시대!
바야흐로 그런 시대가 도래 하는듯 했다.
팬이라면 그저 즐겁기 그지없는 일 이겠으나 '선수들'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고조선 이전의 신화시대'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언급 해가며
'우리민족의 세계최우수성'만을 "주장"하기 정말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그리고 당시는 '태권도의 분열'시대다.
현재의 '월드 태권도'로 재 탄생 되기위해 수많은 희생과 출혈이 필요했던 시대 였다는 말이다.
이때를 놓칠소냐,
혼란의 배경을 뒤로하고 난립하기 시작한것이 그때의 그 "우리 고유무술 붐" 이다!
신비는 흔들리고 날조된 역사마저 공개되어 뿌리부터 위태로워진 작금의 태권도계...(요런건 그냥 모르고 넘어가도 된다 -,.-)
분명 이즈음을 틈타 뭔가 '기득권'을 선취하려는 사이비스런 움직임도 분명 진행되고 있으리라는 예상이다!
어쩌면 이런 어부지리를 노리는 전술은 비단 무술계 뿐만이 아니라도 모든분야에서 일어날수 있는 당연한 현상이자 흐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그때처럼 '폼'만을 잡으려 한다면 분명 '시대의 흐름'에 걷어 차일것은 틀림없다.
원체 '학문' 좋아하고 '권위' 쳐 주는 선비민족이라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간호원'은 쪽팔려서 언제부턴가 '의사'와 맞먹겠다는듯 '간호사'가 되고,
'보험외판원'도 우리도 질수없지,'생활설계사'가 되어야 속이 시원한 우리민족이다!
그러나 보라!
이젠 다들 K-1이니 프라이드니 발리투드 스타일을 떠들어 대지 않는가!
'본 실력'과 '실제의 깊이'가 없는 상태에서 그 시절 처럼 그저 입으로만 부르짖던 그런 '역사'와 '전통'의 신비를
스스로 멀리하지 않는한,
이제는 속아서 등록해줄 입문생 조차 얻기 힘든 시대 라는점을 벌써 이 게시판만 보아도 느낄수 있는 것이다.
으헛..얘기가 딴데로 샜다, 죄송스럽다.
아무튼 단언 하건대, 사실상 그때 그 무리들중(전국무술대회 참가자들중)의 약 80%는
실제로 전국을 돌며----혹은 한곳에 뿌리 내리며---- 약을 팔았던 '차력사' 집단 이었다는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바였다.
지금이라면 '무술계'와 '기공계'로 나누어 '변신' 할 수라도 있겠지만,
적어도 83년 무렵 까지의 한국은 '기공'이나 '기'라고 하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고 있지 못했던 시절이고 보면,
그들은 죽더라도 '무술'의 이름속에서만 죽을수 있던 운명이었으니 '고무도'를 표방할수 밖에 없었을 그들의 입장도 이해할수는 있다.
여기서 망하면 저기서 도복바꿔 총본관으로 재기하고, 저기서 망하면 일루와서 개명하여 창업하던 그 시대...!
그런 무술(?)계...!
실로 최홍희 선생의 "태권도 창업"과 김운용 회장의 "태권도 개업" 내력보다 100배는 더 신비로왔던 대한민국의 소오강호였다!
<계속>
노래처럼(소오강호) 은원을 다 잊고 강호를 떠났는지 삼년 뒤에는 그 많던 무리들이 소문조차 들리지 않았고,
이미 대회 개최의 배경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저 '미쓰코리아'나 '대학가요제' 처럼 대회 개최 이전에 이미 사실상 일등이 정해져 있던---나머지는 조연의 역할인---- 안일력 선생의 정도술만이 화려하게 씬에 데뷔를 했고...나머진 애초의 각본대로 화려하게 들러리의 역할을 마친후 은막뒤로 사라져 갔다!
소오강호라고 했나! 미련은 두어 무엇하리, 은원은 다 잊세나....
(씨발.....지방 내려가서 재기한후 분위기 잡히면 돌아온다-! -,.-;;)
훨씬 후인 80년말, 그러니까 이 나라에 칼라 테레비가 등장할 무렵엔 테레비 드라마 '암xx사' 라는 사극에 '정도술'이 등장하여 뭔가를 보여 주었는데 (크게 보여준건 없다 -,.-;;;), 아마 현재처럼 '무술액션'이 테레비 드라마에서 활약할수 있게된 데에는 이 '정도술'과 드라마 '암xx사'의 포문이 초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암xx사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사람은 정도술의 창시자 안일력 선생의 동생 되겠다. 안xx라고...
(안익태 선생은 아니다. 그 분은 후에 남산파를 창시해서 달밝은밤 소나무에 철갑마저 입히신 백두산파의 교조이시다 -,.-;;;)
암튼, 정도술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과격했던' 실전주의(다른말로는 '막싸움 주의' -,.-;;)를 표방 했었는데, 당연히 일본 극진회의 영향과 한국 태권도 문파들의 사분오열, 그리고 비리...등등 에서 영감을 얻어 창시 되엇던 것이었다.(앞서도 말했지만 요런건 그냥 모르고 넘어가도 된다 -,.-;;;)
합기도의 낙법, 관절기, 던지기등의 기술 위에, 당시 "십팔기" 라고 불리웠던 '마구리 & 쌈마이'였지만, 삽질도 십년하면 도가 튼다고, 나름대로 무술체계와 실전적 기술을 확실히 다지고 있었던 '한국식 중국무술'----언제부턴가 이 '십팔기'조차 "우리 고유의 무술"이라고 구라를 펼치고들 있는 정도니 이 나라의 개도 웃고 갈 "우리민족 고유병"은 약도 없다고 하겠다 ----의 혼합형을 베이스로, 그위에 다시 '차력'(봐라 또 나왔다 차력!! 우리는 이 '차력' 빼면 시체인 거시다!! -,.-;;)의 필살기들을 흡수하여, 비록 '은창자후'나 '철포삼'의 내공까지는 못되더라도 '몽둥이로 줘맞고도 어느정돈 멀쩡하기' 랄지, '살짝 들어 받침대에 짱돌깨기(요건 오오야마 대선생의 특기이기도 했다 -,.-;;;)'나 '마빡위에 두부 놓고 닙뽄도로 두부만 베기', 부록으로 '가끔 피가 나도 안아픈척 하기'등의 심후한 차력무술을 표연하던 그런 '한국형 종합무술'이었다. ---참고로 여러분이 테레비서 보았을법한 '무쇠로 만든 솥뚜껑 깨기'는 훨씬 나중에야 완성된 초식임을 알아두자,
(무쇠가 무척 귀했던 시절이었다. -,.-;;)
자신들이 발표한 내력이야 죄다 뻥이었지만(뭐시? 증거를 대라고라? 아 글쎄 교조 -,.- 안일력 선생의 출신성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니까 그러네...-,.-;;;) 그 도장안의 트레이닝 과정은 전성기 때의 극진회 보다 조금 못한 정도로 하드한 것이어서, 정말 초심자가 들어갔다가는 사흘만에 골병들어 퇴관한다는(물론 그래도 선금으로 낸 입회비는 돌려주지 않았었던걸로 안다 -,.-;;) 공포의 종합무술로 소문이 파다 했었다. 그리고 내 기억으론 그'위력'은 굉장히 '실질적'이었다
당시의 이 무술붐은 언제나 그래왔듯 한국인의 근성을 살려 미처 이,삼년을 못넘긴채 사라져 갔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울'에서의 일이고,(그타, 난 서울 토박이였던 것이다!) 그후 지방에서의 일일랑 내는 모른다. -,.-;;
'정무도', '기격도', '기천도', '격기도', '태수도', '문무타격도', '정도술', '화랑도', '궁중무술', '선무도', '포박술', '십팔기', '십팔계', '흑무도', '매화당랑', '칠성당랑', 그냥'당랑'(-,.-;;;), '소림쿵후', 그냥 '쿵후'(이건 또 뭔 "쿵후"이더냐! -,.-;;)...... 실로 이름마저도 다 기억못할 수많은 분량의 "우리고유와 전통의 무예"들과
문파는 한,둘인데 '총본관'만은 수백이었던 미스터리한 '비정통 중국무술(-,.-;;)'계가 군웅할거하던 시절!
(참고로 당시에 출장했던 수많은 '검도계열'은 모두 다 생략 했음을 밝힌다---이쪽이 또 장난 아니게 혼란 스러우므로 ^ ^;;)
"고유"라는 말은 "孤有"
분명 '홀로 하나밖에 없다'는 뜻 임에도 어찌 우리의 '고유'는 이리도 많으며, 우리의 전통은 이리도 수십 갈래일까!
이런 거짓과 활란의 다양성 이야말로 우리의 "고유",
즉, "古有"...옛부터 있어왔던 '유구한 우리의 전통이었을까?
그렇다면 슬프다!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그립고,
지금 보다는 어쩌면 더 낭만과 청춘의 "무술시대"였던것 같기는 하다....!
때는 바야흐로 풍운의 1976년!
알리와 이노끼가 사상최초의 세기적 이종격투를 벌이고
저 공전절후의 종합무술 37단 송재철 관장의 초절내공이(그는 비행기도 끈다, 닝기미! -,.-;;;)
브라운관에서 매주 빛을 발하던 시절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