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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장 상앙(商鞅)의 말로 (5)
전국시대 최고의 개혁가인 상앙(商鞅)은 죽었다.
진(秦)나라 수도인 함양성은 축제 분위기였다.
거리마다 백성들이 쏟아져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숨통을 조이는 듯한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서로 기뻐하고 축하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정치(政治)란 참으로 묘하다.
상앙의 개혁으로 뒷전에 밀렸던 보수 세력이 권력을 잡고 모든 국정을 휘두르게 되자 그들 스스로가 가장 먼저 상앙(商鞅)의 법을 앞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 상앙은 죽었지만, 상앙의 법은 유효하다.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이렇게 선포했다.
칼자루를 쥔 자만이 바뀌었을 뿐 서슬퍼런 칼날은 여전히 백성들의 숨통을 조였다.
상앙의 죽음 후에도 진(秦)나라가 변함없는 초강대국의 면모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만일 전국(戰國)의 상황이 이대로만 진행되었다면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더 빨리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 당시의 진(秦)나라는 안정된 내정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이제 천하로 눈을 돌릴 때다.
그러나 시대는 진나라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았다.
진(秦)나라가 본격적으로 중원 패업의 일보(一步)를 내디디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한 사내가 나타나 진나라에 대항하는 연합 세력을 형성한 것이었다.
이른바 '합종(合縱)'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듯 홀연 출현하여 전국칠웅 중 진(秦)나라를 제외한 위ㆍ한ㆍ조ㆍ제ㆍ초ㆍ연나라 등 6개국을 하나로 뭉친 사나이의 이름은 소진(蘇秦)이었다.
여기서 잠시 그가 역사 무대 위로 등장하기 전까지의 내력을 살펴보자.
<사기(史記)>의 <소진열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소진(蘇秦)은 손빈과 방연의 스승이었던 귀곡 선생의 제자였다.
손빈과 방연이 귀곡을 떠난 이후 입문하였거나 그 말기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소진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또 한 사나이가 귀곡 선생의 학숙을 찾았다.
장의(張儀)라고 하는 사나이였다.
뒤에 거론하겠지만 장의라고 하는 이 사내는 진나라 편에 서서 "연횡책(連衡策)'을 냄으로써 소진의 '합종책(合縱策)'을 파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그들은 정반대의 노선을 걸으면서 전국시대를 누비는 당대의 라이벌이었지만, 원래는 한 스승 밑에서 배운 동문수학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손빈(孫賓)과 방연(龐涓)도 그러했듯, 귀곡 선생의 제자들은 모두 이상한 운명을 타고 났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귀곡 선생에게서 약 3년간 학문을 배웠다.
두 사람 다 말재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들이 귀곡 선생으로부터 배운 학문은 병법이 아니라 유세술(遊說術)이었다.
유세술은 춘추시대에도 있긴 했으나 그다지 성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춘추시대 말기부터 퍼지기 시작한 유세술(遊說術)은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급속도로 유행했다.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손쉽게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것을 배우기 위해 유명하다는 스승을 찾아다니는 것이 열풍처럼 번졌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 입신양명(立身揚名).
귀곡(鬼谷)에 들어온 지 3년쯤 지난 어느날,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귀곡 선생에게 말했다.
"저희들도 이제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선생의 곁을 떠나 세상에 나가 공명을 이뤄볼까 합니다."
그러나 귀곡(鬼谷) 선생은 손빈과 방연의 불행한 운명에 자극을 받았음인지 초기와 달리 도가(道家)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조용히 그들을 타일렀다
"천하에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총명한 사람이다. 내가 보건대 너희 두 사람은 자질이 뛰어나 성심껏 도(道)를 배운다면 가히 신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티끌 많은 세상에 나가 허무한 명리(名利)를 좇으려 하는 것이냐?"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동시에 대답했다.
"대저 훌륭한 재목은 바위 밑에서 썩지 않으며, 보검은 칼집 속에만 들어 있지 않는 법입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동안 저희들은 선생의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것을 어찌 썩힐 수 있겠습니까. 대세의 흐름에 따라 공업(功業)을 성취하고 후세에 길이 이름을 남길까 합니다."
귀곡(鬼谷) 선생은 탄식했다.
"도(道)를 이룰 만한 인재를 얻기가 이렇듯 어려울 줄이야!"
그는 손빈과 방연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 두 제자의 앞날을 위해 점을 쳐주었다.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점괘를 보건대 너희 두 사람은 차례로 출세할 것이다. 그러나 손빈과 방연의 관계처럼 될까 두렵도다. 너희들은 부디 그들처럼 싸우지 말고 협력하여 함께 공명(功名)을 이루어라. 부모와 스승 다음으로 가까운 것이 동학(同學)임을 명심하여라."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하산의 허락이 내린 것만 기뻐서 대답했다.
"선생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떠나는 날, 귀곡 선생은 서재에서 두 권의 책을 꺼내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에게 각각 주었다.
소진이 책을 살펴보고 나서 물었다.
"이 책은 저희들이 이미 익힌 <음부경(陰符經)>이 아닙니까? 선생께서는 무슨 뜻으로 이 책을 또 저희에게 주시는 겁니까?"
<음부경>은 삼황오제 이후의 고대 병법을 기록한 책으로 <황제음부(黃帝陰符)>, 혹은 <태공음부(太公陰符)>라고도 불린다.
주서(周書)의 한 편(篇)이다.
병법서라고는 했지만, 도가 사상이 짙게 배어 있는 책이다.
"너희들이 다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 깊은 뜻을 알려면 아직 멀었다. 그 책을 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으면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책을 품속에 넣고 두 번 절을 올린 후 귀곡 선생의 문하를 떠나 세상 속으로 나왔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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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