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부에서는 지역의 문화와 관광을 담고 있는 세계의 재래시장을 탐방하고, 이를 통해 우리 재래시장의 문화·관광적 활성화를 점검·모색하는 ‘세계의 재래시장을 가다’를 이번 호부터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지역 가치 끌어내는 명품 농산품
남프랑스의 프로방스는 사시사철 화창한 햇살과 따뜻한 기후, 그리고 향기로운 라벤더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프로방스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 곳에서나 라벤더 포푸리, 에센스, 비누, 향수 등 다양한 라벤더 제품을 볼 수 있다. 라벤더의 고장이라 부르는 데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요즘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라벤더를 생산하고 있지만 프로방스의 라벤더는 순도가 높은 상위 10% 품질의 라벤더를 생산해내 그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 하나의 농산품이 어떤 지역의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또 이를 관광상품으로 연계해서 또 다른 가치를 생산해내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먼저 라벤더를 생산하는 곳으로 가보기로 한다. 프로방스에서 라벤더를 생산하는 곳은 꽤 많은데, 특히 우리에게는 중세에 교황의 유수로 잘 알려진 아비뇽 동쪽 부근이 그 주산지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보클뤼즈, 발랑솔 등이 특히 유명하다. 6월 말에서 7월 중순에 걸쳐 라벤더가 절정을 이룰 때 이곳을 방문하면 끝도 없이 펼쳐진 보라색의 바다를 볼 수 있다.
라벤더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키가 60㎝ 정도인데, 초여름에 꽃대가 올라온다. 라벤더 특유의 향기는 기름샘에서 나오고, 기름샘은 꽃과 잎, 줄기를 덮고 있는 별 모양의 조그만 털들 사이에 들어 있다. 이 기름샘 때문에 꽃과 잎뿐만 아니라 줄기에서도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이 라벤더 꽃을 증류하면 오일을 채취할 수 있는데, 이것이 향수와 약용, 화장품, 차, 아로마테라피 등으로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드라이플라워로 만들기도 한다. 이미 고대 로마에서는 목욕을 할 때 목욕물에 라벤더를 넣고 꽃을 말려 좋은 향기가 오래 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활용의 역사가 깊다.
라벤더와 조금 다른 품종으로 프로방스에서 라벤더와 함께 많이 재배하는 라반딘이 있다. 라반딘은 오일이 잘 나오는 스파이크 라벤더와 꽃이 아름답고 향이 좋은 잉글리시 라벤더를 교배하여 만든 개량품종으로, 비누나 샴푸에 들어가는 일반 향료로 주로 사용된다.
미각, 시각, 후각을 자극하는 라벤더 시장
라벤더를 여러 종류의 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프로방스의 재래시장은 상설시장이 있는가 하면 매주 요일을 정해서 여는 정기시장도 있다. 규모에 따라 대로변이나 좁은 길 주변에 있는 것, 큰 광장에 있는 것 등 상당히 다양한 형태가 있다. 또 일반적인 물품을 파는 시장,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그들의 물건을 파는 시장, 고가구나 오래된 물건을 파는 시장 등 종류도 여러 가지다.
프로방스의 재래시장은 세계 여러 나라의 재래시장과 같이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이 지역 특유의 빛깔과 정취를 가지고 있다. 각 마을이나 도시마다 입지조건이나 특산물이 달라서 저마다 특색이 있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어디나 라벤더 제품이 꼭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그야말로 프로방스 지방 대부분의 생산품들을 살 수 있다. 치즈와 소시지, 고기, 꽃, 라벤더를 비롯한 각종 허브 제품들이 한데 있어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라벤더뿐 아니라 각종 꽃에서 추출한 오일을 비롯하여 비누, 꽃에서 채취한 각종 꿀, 잼들이 미각을 자극한다. 한편에는 말린 꽃들을 담은 주머니들이 있어서 그 주위에서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난다. 그래서 라벤더를 찾으려면 눈보다 코가 먼저 반응을 한다.
누구나 함께 즐기는 축제
로 사람 모으다
한편 대부분 시장이 그 지역의 중심부에 있어서 여러 가지 행사들이 많이 열리며 사람들을 모은다. 이런 행사들은 시장이 열렸을 때도 펼쳐지지만, 큰 행사는 시장을 닫은 상태에서 열기도 한다. 시장이 열려 있을 때는 대부분 소규모 행사가 진행되는데, 길거리 예술가들이 음악, 인형, 댄스 공연을 시기에 관계없이 수시로 하고, 작은 음식축제도 자주 열린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시기나 축제가 열리는 때는 시장이 문을 닫고 그곳에서 대규모 행사를 치른다. 때로는 오래된 자동차를 전시하고 또 그 자동차로 거리를 한 바퀴 돌기도 하며, 민속의상을 입고 전통무용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밖에도 지역의 여러 동호회들이 나와서 회원들을 모으는 다채로운 행사도 벌이는 등 많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처럼 비교적 큰 행사가 열릴 때는 외국인들도 많이 참여해서 같이 축제를 즐긴다.
지역 특산품에서 세계적 관광 상품으로
마지막으로 라벤더가 산업이 되는 곳으로 찾아간다. ‘세계 향수의 수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프로방스의 그라스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소설과 영화 무대로 널리 알려진 그라스는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조향사들 대부분이 기술을 익히는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들을 만든 마을로도 유명하다
향수를 제조하는 전문가인 조향사는 여러 가지의 향료를 섞어 새로운 향을 만들거나 제품에 향을 덧입히고, 전문적으로 향료를 제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조향사에게는 여러 가지 향을 기억하고 구별해내는 능력이 특별히 요구된다. 그래서 조향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후각이다. 전 세계에서 조향사들의 후각을 교육시키는 기관은 그라스를 비롯해서 단 세 군데밖에 없다고 한다.
그라스에는 프라고나르, 몰리나르, 갈리마르 등의 향수공장이 있는데, 여기서는 라벤더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들여온 여러 꽃들에서 향기를 추출해서 향수, 에센스 오일, 미용 크림, 화장품 등 참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전 세계로 판매하고 있다.
그 중에서 프라고나르 공장은 그라스의 공장들 중에 가장 오래된 공장 중 하나로 1926년에 세워졌으며, 공장 견학이 가능하다. 견학에서는 영어, 불어로 무료 가이드를 해주는데, 향수의 원료, 생산 시설과 조향사, 포장실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특히 향수 원료들의 냄새를 직접 맡아보고 향기 테스트를 하는 코스도 있으며, 원하는 향기를 직접 조합해서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 수도 있어서 꽤 흥미롭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각종 향수와 여러 제품들을 공장도가격에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괜찮다.
이처럼 라벤더 하나가 한 지역의 이미지가 되고 훌륭한 관광상품이 되며, 한 지역의 특산품에서 전 세계적인 상품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노력에 새삼 감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