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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꿈이 소설가였는데, 지금은 교사를 하고 있구요,
소설가 꿈꿀때 버릇이었던 망상을 영상으로 표현해서 나름 성과를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영상 하기 전에 썻던 단편 중 하나인데,
그당시 주 서식지였던 루리웹에 올려서 나름 반응이 좋았고,
오늘의 유머 등등에도 좀 퍼져나갔던 글입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재밌게 보시길!
반응 좋으면 다른 것도 좀 올려볼게요.. 라고 해봤자 두세개 되려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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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헛소리나 지꺼리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과 기품과 여유가 함께 비치는 인상만 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로 관심이나 끌려는 시시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그 중년남자는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한다.
"분명히 이륙하다 터진다니까요. 어려워도 다음 비행기를 알아봐요. 왠만하면 빈자리가 있을겁니다."
그래, 그 빈자리가 값비싼 대한항공 비지니스석이라 해도 잡아타고 가야지. 이번 해외출장은 회사 입장에서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하는 계약을 따내는 중요한 출장이니까. 회사는 물론 내 미래가 걸린 중요한 출장이다. 그래도,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무슨 예언자라도 되시나 보네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꼬는 말인줄은 알겠지.
남자는 씩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듯 대답했다.
"예언자 맞다고 하죠 뭐."
기가막혀 헛웃음을 좀 치다 고개를 돌렸다.
"뭐 그럼 그냥 타는걸로 알겠습니다."
남자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원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아직 비행기 시간도 1시간이나 남았고, 무료하기도 하니, 말이나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제가 타려고 하는 비행기가 이륙 도중 추락한다 이거죠? 생존자는 거의 없구요?"
"그렇죠."
"그래서 내가 죽을꺼라, 이거죠?"
"잘 아시네."
"그걸 어떻게 알죠?"
"흐음..."
남자는 스마트폰을 양목 안주머니에 넣고 내쪽으로 고쳐앉았다. 그도 무료했던 참이었는지 표정이 좀 밝아진 느낌이었다.
뭐가 되었던간에, 돈얘기가 나오면 바로 자리를 옮겨야지.
"내가 곰곰해 생각해 봤는데, 이렇게 표현하는게 제일 맞는거 같아요. 단편영화씨디를 내 머리에 꽂은 느낌. 그러니까 갑자기 내가 뭔가를 기억하고 있다는걸 깨닫는거죠. 그래서 그 기억을 떠올리면 꿈처럼 몇가지 장면이 떠올라요. 보통은 가까운 시간 내에 그 장면이 실현되죠."
"그래서, 그 꿈에 제가 죽는 모습이라도 있던가요?"
"아니요. 당신 모습은 어디에도 없어요. 그냥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가 보일 뿐이죠."
"그게 다에요?"
"그게 다네요."
"뭐야.. 그럼 그 비행기가 내가 탄 비행기란걸 어떻게 알아요?"
"그게말이죠, 저기, 저 여자 보이나요?"
남자가 가리킨 사람은 붉은 땡땡이 원피스를 입은 늘씬한 미녀였다. 확실히 여기서 탑승을 기다리는 남자라면 한번쯤은 흘깃 쳐다봤을 정도로 인상적인 미인이었다.
"그 뉴스에서 저 여자가 구조되는걸 봤거든요. 슬쩍 물어보니 홍콩으로 간다 하더군요. 그리고, 방금 당신의 통화내용을 듣고 당신이 저 여자와 같은 비행기를 탄다는 것도 알았구요."
슬슬 기분이 나빠졌다. 이 남자는 왜 나에게 이런 장난을 거는 걸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럼 지금 당장 사람들에게 홍콩행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하지 그래요? 모든 사람을 다 구할 수 있잖아요?"
"흐음... 두가지 이유가 있어요. 내가 사람을 구하지 않는거. 들어볼래요?"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리지만, 흥미롭긴 했다. 어디까지 뻘소리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첫째. 사람들이 날 미친사람 취급할게 뻔하니까. 이건 설명할 필요 없죠?"
뻔한거지. 패스.
"두번째. 저 비행기의 사고 원인을 모른다는 거에요. 만약 기체결함 같은 이미 정해진 사고라면 내가 막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장의 방심이나, 새가 갑자기 날아들었거나, 관제탑의 실수 같은 거라면 실현이 안되겠죠. 그러니 내가 나설 수 없는거에요."
"실현이 안된다?"
"예를 들면 뭐랄까, 새가 날아들어서 그랬다고 칩시다. 비행기가 새에 부딫히는 순간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죠. 내가 뭔가 난리를 쳐서 누군가가 1초만, 예를 들면 승무원이 왠 승객이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말했다고 기장에게 말하면 기장이 코웃음을 치면서 부기장과 농담을 주고받겠죠. 그, 원래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1초의 변수를 주게 되는거에요. 그러면 새는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스쳐가고, 비행기는 추락하지 않겠죠. 뭐 그런거에요."
개소리가 맞네. 뭔소린지도 모르겠고.
이런 내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중년남자가 말을 더 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예언을 알려주면, 변수가 생기고, 실현되지 않는다구요. 내일 너희집에 도둑이 든다, 라고 말하면 그사람은 헛소리라고 말하면서도 창문을 잠근다던지, 큰소리로 아내에게 내 흉을 본다던지, 뭔가 변수를 만들게 되고, 이것들이 쌓이면 시간의 연속성이 무너져 일이 생기지 않게 된다 이거에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예언들을 일부러 말하고 다니면 안좋은 일들이 안생길꺼 아니에요?"
"그렇죠. 안좋은 일들은 안생겨요. 대신 난 미X놈이 되는거죠."
거기서 말이 막혔다. 그렇지. 안좋은 일을 말하고 다니는데, 그 안좋은 일은 일어나질 않는다..
그런 엉터리 예언가가 어디있단 말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예언능력이 철이 들고 나서 생겼어요. 처음 이게 예언능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때 직감했죠. 이건 말하고 다니면 안되겠다. 말하면 미X놈이 되는거고, 진짜로 맞춘다 해도 이득볼건 별로 없겠구나. 그래서 간간히 미래를 본걸로 주식이나 하면서 돈이나 벌었죠. 항상 대박은 아니지만, 어쨋건 남들보단 유리하니까."
왜 난 이쯤되서야 유치한 질문이 떠올랐을까.
"그럼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겠네요."
"그렇진 않나요. 내가 보는건 정말 딱 장면 하나에요. 언제, 어디서 일어나는건지 모르고, 모든 장면이 의미있는것도 아니에요. 방금도 하나 들어왔는데, 여름에 8살쯤 되는 남자아이가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보이네요. 어때요, 이게 의미가 있나요?"
"그럼 미래의 모습은? 한 100년뒤의 모습도 보이는거 아닌가요?"
"그정도로 현실과 떨어진 미래는 나도 확신이 안서요. 이게 정말 예언인가, 그냥 어제 꾼 꿈인가. 미래의 모습도 계속 바뀌죠. 핵전쟁으로 엉망이 된 것부터, 외계인과 같이 교류하는 모습까지 다양해요. 그 두 장면중 뭐가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근처에 신문이나 뉴스같은걸로 날짜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 날짜도 지금 날짜계산법하고 다른 경우가 많죠. 그런건 말해봤자 헛소리밖에 안되요."
"그럴듯 하네요."
아직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얘기하자, 남자는 씩 웃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보고면 나말고 예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있을 거에요. 순진하거나, 아니면 욕심이 많거나, 괜히 말하고 다녀서 미X놈 취급 아니면 사기꾼 취급을 받거나 하더라구요. 난 그러긴 싫어서."
"그러면, 다른 사람의 미래를 봐도 알려주지 않을건가요? 나처럼 한시간 뒤에 죽을지 모르는 사람도?"
"보통은 안알려줘요. 잠시 뒤에 교통사고가 날 거라고 말해줘봤자 피곤하지요. 그냥 그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게 나아요. 내 질문에 답하느라 10초만 써도 그 사람은 교통사고를 피할 수 있죠. 교통사고가 난다고 하면? 나랑 실갱이를 하느라 교통사고는 나지 않고, 그사람은 날 미X놈 취급하겠죠. 당신같으면 어쩔꺼요? 그래도 그사람에게 말해줄거요?"
"그래도.. 전쟁이 난다던가, 지진이 난다던가 같은건 미리 말해줄 수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지진이 난다면 내 생각 보겠지만, 내가 왜 다른나라 지진 나는걸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녀야 하나요? 난 그러지 않아요. 그냥, 일본이랑 관련된 주식을 찾아보고 살건 사고 팔건 팔면서 내 이익만 챙기는거지. 그리고, 나 말고도 전쟁이 난다, 지진이 난다 하면서 떠벌리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래도.."
"전쟁같은 큰 이슈도 마찬가지죠. 내가 말해봐야 주변 몇사람만 아는거니 의미가 없고, 인터넷 같은데 올려서 이슈가 되면 그건 그것대로 영향을 끼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요. 전쟁 관련 이슈가 커져서 전쟁이 안일어나는 경우가 내가 보기엔 꽤 많던데. 금리 떨어진다 떨어진다 하면서 안떨어지죠? 이슈가 되면 여론에 영향을 미쳐요. 내가 한 예언은 여론의 한 조각으로 묻히는거고. 그러니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그러고보니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왜 나한테는 알려주는거죠? 그 예언을?"
"첫째. 심심하니까. 이런건 꽤 재미있는 대화거리가 되거든요. 둘째, 단순히 당신과 대화하는 것으로는 비행기 자체에 내가 영향력을 끼칠 수 없으니까. 결국 당신이 비행기를 타지 않는 방법 뿐이에요. 셋째, 간만에 사람을 구하고 싶어진다는 변덕이 생겨서라 해 두죠."
"저여자는? 저여자에게도 알려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글쎄요. 내가 말을 걸어봤자 미X놈 취급하지 않을까요? 중년남자가 젊은 여자한테 비행기 떨어지니 타지 말라고 말린다? 내가 봐도 미X놈이지. 대신..."
"대신?"
"당신은 젊으니까, 당신한테 기회를 넘기죠."
무슨 소리인지 알아채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남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쯤 합시다. 더 있으면 좀 민망해 질 것 같네. 비행기를 탈지 안탈지는 알아서 결정하시구랴. 난 저기 가서 요기나 해야겠네요."
벙찐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뒤로하고 걸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 돌아섰다.
"아, 하나만 더 말해주죠. 앞으로 5년 뒤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거에요. 미리 준비하는게 좋을거요."
"그런말 해봤자 미X놈 된다면서요?"
"그러게. 나도 이것만큼은 그냥 미X놈 되었으면 좋겠네."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는 돌아갔다.
30분 뒤면 비행기가 출발한다.
슬슬 사람들이 입구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남자의 말을 털어버리려고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 나도 짐을 챙겼다.
그때, 그 붉은 땡땡이 원피스의 그녀가 앞을 지나갔다.
부지런히 걸으니 그녀의 바로 뒤에 줄을 설 수 있었다.
이제 20분.
난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난 왜 그런 미X놈의 말에 고민하고 있는거지?
그냥 미X놈 아니야?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여행에 들뜬 표정인것 같았다.
"왜그러시죠?"
한번쯤은, 나도 미쳐보는것도 좋겠지?
"저기, 이 홍콩행 비행기, 하나만 걸러볼래요? 제가 다음 비행기표 사드릴게요."
첫댓글 예전에 본 글이었는데 회원님 작품이군요 ㅎ
원저작자를 통해 다시 보니 반갑네요^^
이거 예전에도 봤는데 님 자작글이군요~ 대단하세요 뒷편이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합니다^^
글 참 잘 쓰십니다.
잘 봤습니다. 다음편으로 이어겠네요.
괴담게에 있던게 우리 카페분 자작글이었군요.
오 재밌어요!
다음편도 부탁드립니다~너무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