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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jeangenie
#1. 펑크록
포스트록 그룹 <모과이Mogwai>가 세기말에 발표한 앨범 <Come On Die Young>(1999)에는
"펑크록Punk Rock"이라는 곡이 실려있어.
인스트루멘탈에 옛날 방송에서 따온 인터뷰를 집어넣은 곡.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바로 이기 팝!
1977년 3월 캐나다 CBC 방송국에서 진행된 토크쇼에서 따온 내용이야.
"평크록"이 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계속 딴짓만 하던 이기 팝은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펑크록'이란 호사가들이... 야비한 모사가들이 쓰는 말이죠. 젊은이들이 그들의 에너지와 몸과 마음과
영혼과 시간과 정신을 바친 음악,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음악에 대해서요...
그건 경멸에서 빚어진 조어, 패션, 스타일, 엘리트주의, 악마숭배, 등등 록큰롤에 관한
모든 썩어빠진 것들에 뿌리를 둔 말이라고요... (중략) 여러분한테는 쓰레기 같은 소음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 천재가 만든 대단한 음악이에요, 바로 나 말이에요.(객석 웃음)
그리고 그 음악은 너무도 강력해서 내 통제력을 넘어서버리죠... 음악에 사로잡혀있을 때
나는 쾌락도 고통도 느끼지 않아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에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라도 있나요?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고 무언가를 느끼기조차 원하지 않는 순간 말이에요.
내 말 이해해요? 선생님은 제가 하는 말 이해가 가시나요?"
* 인터뷰 영상은 여기에 & 모과이 "펑크록" 영상은 여기에
이 때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연륜 있는 방송인 피터 자와스키였어.
그가 이기 팝한테 무대에서 여러가지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계속 말을 돌리던 이기 팝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
인터뷰 내내 이기 팝은 자기 손톱에 때가 꼈다느니 하면서 딴짓을 하는데
방송이 끝나고 자와스키가 기자들에게 전한 말에 의하면, 그건 다 방송용 연기였을 거라고 함.
백스테이지에서는 그저 공손한 젊은이였다고^^
↑ 1977년, 베를린에서 이기 팝. 당시 여자친구였던 포토그래퍼 에스터 프리드만이 찍은 것.
#2. 문학
영화 <트레인스포팅>(1996)으로 유명해진 곡 "Lust For Life"는
사실 1977년에 발표된 동명의 앨범에 실렸던 곡. 이기 팝이 동갑내기 친구 데이빗 보위와
베를린에서 은거할 때 만들어진 곡이야! 미군방송 AFN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틀어주는
버디 형사물 <스타스키와 허치>를 보려고 같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다가
AFN의 스테이션 ID를 듣고 "Lust For Life"의 그 유명한 베이스 리프를 만들게 됐다고^^
(관련 내용은 이 포스트에도 실려있어~)
곡은 그렇다치고 가사는? 딱히 뚜렷한 플롯이 없이 여러 가지 이미지가 뒤섞여 있는 가사에는
당대 젊은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비트닉Beatnik 세대의 실험적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의 소설, 특히 <폭발한 티켓The Ticket That Exploded>에서
인용한 내용들이 들어있어. '조니 옌Johnny Yen'이라는 캐릭터와 '닭에게 최면 걸기hypnotizing chickens' 같은 게
그 소설에서 나온 거래. (버로스의 소설 중에서 국내 번역된 건 아직 <정키>, <퀴어>, <네이키드 런치>뿐이야.)
↑ 데이빗 보위가 최근에 내놓은 사진 속 액자에 걸린 사진은 1973년 <롤링스톤>지의 주선으로 윌리엄 버로스를 만났을 때
인터뷰하면서 찍은 사진이야. 오른쪽도 당시 촬영 컷.
그리고 <Lust For Life>와 같은 해에 그보다 먼저 발표된 앨범 <The Idiot>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해.
아래 왼쪽은 이기 팝의 <The Idiot> 앨범 커버, 오른쪽은 1985년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진행한 독서 캠페인에
모델로 참여한 데이빗 보위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를 손에 들고 찍은 사진!^^
그리고 문학은 아니지만, 1993년에 발표한 앨범 <American Caesar>의 바탕에는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있었고......
2009년에 발표한 재즈 앨범 <Preliminaires>는 악명 높은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의 소설 <어느 섬의 가능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야.
↑ "King Of The Dogs"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뮤직비디오 링크는 여기!
77년부터 한두 해 정도 베를린에서 같이 지냈던 이기 팝과 보위는 책도 같이 읽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좋아한 소설가 중에는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도 있었어.
아래 왼쪽은 직접 그린 미시마 유키오 초상화 아래 누운 보위, 오른쪽은 77, 78년경에 일본에 방문했을 때
지인의 집에서 다도를 배우는 이기 팝. 이기의 왼쪽에 앉은 여자는 다카하시 야스코, 일명 '야코'라는 스타일리스트야.
야코의 말에 따르면, 그 집 바로 옆이 미시마 유키오 소설 속 배경이 된 반야원이라는 곳이라고 알려주니까
이기 팝이 무척 감동하는 표정이었다고 해^^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 이셔우드는 영화화되기도 한 소설 <싱글맨>으로 유명하지.
이 영국 소설가는 미국 출신의 시인 W. H. 오든과 함께 1920년대 말에 베를린으로 이주해. 당시만 해도 베를린은
문화적으로 다른 어느 도시보다 자유로운 도시였는데, 30년대로 접어들며 나치즘이 힘을 얻게 되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도시가 아니게 된 베를린에 환멸을 느끼고 1933년에 결국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게 된당.
그 경험에서 나온 소설들이 <베를린이여 안녕>을 포함한 "베를린 삼부작"이야.
↑ 열차 앞에 선 이셔우드와 오든. 데이빗 보위는 1976년에 자기 공연에 이셔우드를 실제로 초대하기도 해.
#3.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이기 팝은 밴드 스투지스The Stooges와 함께 데이빗 보위의 프로듀싱으로 <Raw Power>(1973)를 녹음, 발표하고
그 이후 마약과 알코올 문제가 점점 심해져 인생의 나락에 떨어지게 돼. 그러다 결국 1975년에는 재활원에 입소하는데
로다주 얘기에서처럼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일부러 면회를 와주는 지인이 거의 없게 되지.
그런데 당시 자신 역시 코카인에 중독돼 피골이 상접해 있었던 보위가 이기 팝을 찾아가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6년, 보위는 북미에서 시작해 유럽을 도는 일정으로 계획한 Thin White Duke 투어
(일명 "아이솔라Isolar" 투어)에 이기 팝을 대동하게 돼. 보위+이기 팝 일행은 먼저 북미에서 공연을 펼치고
유라시아 대륙에 도착,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서유럽으로 향한당^^
↑ 투어에 나서기 직전 LA에서
↑ "Passenger"가 된 이기 팝.
차창으로 그는 내다보네/ 표지와 텅 빈 하늘을/ 오늘밤 모습을 드러낸 별들을/ 도시의 너절한 후방을/ 굽이치는 해안도로를/
그리고 이 모든 건 너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이 전부는 너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달리며 무엇이 내 것인지 구경하자
- 이기 팝, "The Passenger" 가사 중에서
↑ 러시아(당시에는 소련) 모스크바에서 29번째 생일을 맞이한 이기 팝. 왼쪽부터 투어 코디네이터 팻 기븐스, 이기 팝, 보위
(초를 스물아홉 개 다 꽂은 듯^^;)
↑ 모스크바 붉은 광장 크렘린 궁 앞에서 보위와 이기 팝
↑ 아마 독일에 도착한 이후의 사진일 듯?
보위+이기 팝 일행들: (왼쪽부터) 보위의 절친 운전기사 토니 마스치아, 비서 코코 슈왑, 보위, 이기 팝, 팻 기븐스
↑ 하우프트슈트라세 155번지 아파트에서 이기 팝
독일에 도착한 이기 팝과 보위는 베를린 하우프트슈트라세 155번지의 아파트에 자리를 잡게 돼.
70년대 중후반 베를린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고, 거기서는 마약을 구하기도 비교적 어려웠어.
록스타 대우 같은 것 없이,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길거리를 걸어다니고 아무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 수도 있었던
베를린에서 두 사람은 약물을 끊고 보위의 말에 따르면 정신적인 "청소"를 하기로 해.
마치 이셔우드와 오든, 혹은 어찌 보면 스타스키와 허치 같은 사이가 된 두 사람은 2, 3년 정도 거기 머물면서
히트작들을 내놓게 된다. 이기 팝의 <The Idiot>, <Lust For Life>가 1977년에 나왔고
보위 역시 "베를린 삼부작"이라 불리는 석 장의 앨범을 내게 돼. 친구의 앨범에 프로듀싱을 맡았던 보위는
이제 거꾸로 이기 팝 투어 공연에 키보디스트로 따라 나서게 된당^^
#4. "Bang Bang"과 "China Girl"
체코 출신의 뮤지션이자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밴드 멤버로도 활동했던 이반 크랄Ivan Kral의 홈페이지에는
이기 팝이나 보위와 찍은 사진들이 올라와 있어(...그런데 전부 다... 하아......;)
↑ 이기 팝, 보위, 이반 크랄. 맨 오른쪽 사진 구석에 있는 흰 옷 입은 사람이 이반 크랄이야.
이반 크랄은 말한대로 체코 출신이야. 어릴 적부터 음악을 해서 십대 때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는데
UN 통역관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소련에 밉보일 발언을 해서, 결국 기회를 틈 타 가족 전부가 미국으로 망명을 하게 돼.
영어를 한 마디도 몰랐기 때문에 집에만 처박혀 만화책으로 영어를 독학한 이 소년은
결국 미국 음악씬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그러면서 알게 된 동료 뮤지션들의 무절제한(?) 생활방식에 식겁했다고 한다^^;
이기 팝의 1981년도 앨범 <Party>에 실린 "Bang Bang"이란 노래는 이반 크랄+이기 팝의 합작품이야.
어느 인터뷰에서 이기 팝은 그 노래가 딱 동유럽 사람이 만든 티가 난다고
같은 코드를 계속 반복하기만 한다고 반농담조로 말했는데, 정말 들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해^^
(1981년 독일 <바나나 TV 쇼>에서 방송된 "Bang Bang" 공연 영상은 여기로!)
중요한 건 이 노래를 보위가 1986년 자신의 앨범 <Never Let Me Down>에 커버해 실었고
그 전인 1983년에는 <Let's Dance>라는 히트 앨범에 이기 팝의 또 다른 곡 "China Girl"을 실었었다는 것!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였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인생의 하강곡선을 걷고 있던 친구를 돕기 위해, 이기 팝에게 저작권료를 벌어주기 위해서였어.
(* 수정: 이기 팝한테 재정적으로 도움이 된 커버곡은 "China Girl"하고
보위가 이듬해인 1984년에 커버한 "Tonight", "Neighborhood Threat"라고 하는 게 시기상으로 더 맞겠당!)
↑ 1983년 <Let's Dance>라는 앨범을 기점으로 언더그라운드의 괴짜 뮤지션에서 메인스트림 인기 가수로 떠오른 보위.
↑ 1983년 보위와 이기 팝
↑ 1986년 같이 공연하고 있는 보위와 이기 팝. 위 사진의 캡션에 쓰여 있듯이
보위가 커버한 곡 "China Girl"의 저작권료 덕분에 이기 팝은 다음 앨범을 낼 수 있게 돼.
82년에 나온 <Zombie Birdhouse> 이후 4년만에 <Blah Blah Blah>라는 앨범을 발표하는데
보위는 다시 그 앨범의 프로듀싱에 관여한당.
앨범은 이기 팝의 경력상 전에 없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이기 팝은 그 앨범이 완벽히 맘에 들지 않았어.
자기가 그저 목소리만 제공한, 사실상의 데이빗 보위 앨범이라고 생각한 거야......
↑ 이기 팝의 앨범 작업 중인 것 같애^^;
#5. Jean Genie라는 캐릭터
보위와 이기 팝은 1971년 뉴욕의 유명한 클럽 맥스캔자스시티Max's Kansas City에서 처음 만나.
보위는 1967년에 결성된 이기 팝과 스투지스라는 그룹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앤디 워홀이나 엘튼 존도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재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어. 그래서 당시 아직 길게 기른 머리에 '남성용' 드레스를 입고
통기타 들고 포크송을 부르던 보위는 배짱도 좋게 이기 팝을 (그리고 <벨벳언더그라운드>에서 탈퇴한 루 리드Lou Reed를)
영국으로 초대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가 두 사람의 새 앨범 프로듀싱을 맡고 싶다고 하지. 그리고 재밌는 건
이기 팝과 루 리드 모두 그렇게 하기로 하고 런던행을 택했다는 거야!
(* 수정: 보위가 이기를 만난 건 1971년이었지만, 런던행을 권유한 건
지기 스타더스트 앨범으로 유명세를 얻은 직후인 1972년이었다고 함!!)
↑ 이기 팝과 스투지스 초기 공연 모습
↑ 1972년 런던 도체스터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가 된 보위, 이기 팝, 루 리드
↑ 역시 도체스터 호텔에서. 잡지 삼매경에 빠진 이기 팝, 숏컷에 민소매를 입은 여자는 당시 보위의 아내였던 앤지,
신기한 구렛나룻을 기른 사람은 보위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트레버 볼더,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는 루 리드.
언젠가 보위를 '아폴론'에, 이기 팝을 '디오니소스'에 비유한 글을 본 적이 있어. 다소 조야한 비유이긴 하지만
어쨌든 보위는 이기 팝한테서 남을 의식하지 않는 야성적인 창조력의 결정체(?) 같은 걸 봤던 것 같아.
보위의 앨범 <Aladdin Sane>(1973)에 실린 곡 "The Jean Genie"의 가사 속 주인공은
모델이 바로 이기 팝이었어. 난폭하고 막무가내로 생활하고 "파충류처럼 웃는". 그리고 "Jean Genie"라는 이름은
프랑스 작가 장 주네Jean Genet의 이름을 사용한 말장난이야. 주네는 자전 소설 <도둑일기>로 유명하지!
↑ 1967년 디트로이트 폭동 당시의 사진들.
보위는 이기 팝에게서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Panic In Detroit"(1973)라는 노래를 만들게 돼.
↑ "TVC15"(1976)라는 노래 역시 이기 팝에게서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만든 곡이야.
한참 마약에 빠져 있던 시절, 이기 팝은 텔레비전이 자기 여자친구를 삼켜버리는 환각을 보게 된당;
보위의 <Station To Station> 앨범에 실린 "TVC15"은 바로 그 경험담에 기초한 노래야.
아.... 여기까지 써야겠당;
지금까지 할 일 많은 여시의 현실도피용 포스트였엉ㅠㅠ
재밌게 읽었길 바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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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컴으로정독) 핸펀 눈아파서 중도읽다 포기ㅠㅠ 이런글 넘져아ㅠㅠㅠㅠㅠ또써줘ㅠㅠㅠㅠㅠ ♥
헐..흥미돋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글 넘 조타
이기팝 팬으로써 영광스런글 ㅜㅜ 고마워여 여시야 ㅋㅋㅋ 재밌게읽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오오 로다주 보인다 ㅋㅋㅋㅋ
여시 닉 보자마자 바로 클릭!!!ㅋㅋㅋ진짜 재밌당 그나저나 보위는 존잘러....
난 이기 팝하고 보위 우정을 보면 막 짠해. 나락 구덩이빠진 친구 건져서 같이 디톡스하고 도와주고 근데 또 같이 retox도 하고 ㅋㅋㅋㅋㅋ
이기팝은 작년에 케샤랑 피쳐링도 했든데 ㅎㅎ 암튼 다들 잘먹고 살 사는듯ㅋㅋㅋㅋㅋㅋㅋㅋ
이기팝 보니까 트레인스포팅 생각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본 영환데...ㅠㅠㅠㅠ
와 진짜 언니 글 완전 잘읽엇어ㅠㅠ보위랑 이기팝 괴조아하는데!! 짱짱
조아조아 요런 글!!! 벨벳골드마인 영화보고 관심가졋엇는데 ㅎㅎ
오 루리드
이기팝 완전좋아 ㅠㅠㅠㅠ 록스타들이 다그렇지만 원오브어카인드야 진짜로..
ㅠㅠㅠㅠㅠㅠ이런 정성 가득한 글이라니ㅠㅠㅠㅠ삭제안하고 있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