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데미 콩제비꽃
봄비가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준 삼월 하순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와 창원대로 벚나무는 예년보다 벚꽃이 열흘 정도 일찍 만개해 꽃구름을 이루었다. 토요일은 인적 드문 미산령 고개를 넘으면서 봄기운을 받아보려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진전 둔덕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기 위해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노점에는 봄의 정취가 물씬한 여러 가지 푸성귀가 펼쳐졌다.
마산역 광장에는 주말 이틀은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 반짝 시장이 열린다.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머위나 쑥을 비롯해 어디서 구했는지 칡뿌리를 비롯한 버섯 건재들도 내다 팔았다. 그 가운데 도토리묵이나 손두부를 빚어와 파는 할머니도 있었다. 내가 눈길이 오래 머문 좌판은 쑥떡이었다. 요새도 쑥떡을 해 먹긴 하지만 쑥은 보릿고개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추억의 먹거리였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해 진전 둔덕으로 가는 76번 버스를 탔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두르면서 일시 혼잡해진 버스는 진동 환승장을 지나자 승객이 줄었다. 진전면 소재지 오서에서 양촌과 일암을 거친 대장에서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골옥방에 이르러 20여 분 쉬다가 기사는 다시 시동을 걸어 출발해 종점 둔덕에 내릴 때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오곡재로 오르는 아스팔트 지방도는 차량 통행이 아주 뜸했다. 어디서 기점을 정해 오는지 모를 젊은이 넷이 자전거를 타고 오곡재를 향해 페달을 힘차게 밟아가 응원을 보냈다. 오실골 당산나무 앞에서 예각을 크게 꺾어 오곡재로 오르는 자동찻길 비탈에 머위가 보여 배낭을 벗어두고 캐 모았다. 현지 할머니들은 경사가 급해 오를 수 없어 어시장 노점에 내다 팔 머위는 못 되었다.
캔 머위의 검불을 가려 배낭에 채워 고갯길로 오르다가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로 들었다. 길섶에는 비를 맞고 세력이 부쩍 좋아진 쑥이 무성했으나 그냥 스쳐 지났다. 우리 집에는 내가 캐 모은 쑥이 냉장고에 상당량 채워져 있어서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다 빗살서덜취가 잎줄기를 펼쳐 자라 몇 줌 뜯어 모았다. 취나물은 종류가 많은데 빗살서덜취는 다른 종보다 일찍 순이 돋아나왔다.
미산령 고갯마루로 오르기 전 등산로를 벗어나 내가 목표로 정해둔 산기슭으로 향했다.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가 복수초를 캐 와 달라기에 내가 그 청을 들어주어야 했다. 친구는 아파트 뜰에 다양한 꽃을 가꾸면서 유튜브에 특성과 재배 방법을 소개하고 때로는 구독자들에게 꽃씨나 모종을 나눔하고 있다. 그런데 복수초는 모종이나 꽃씨를 못 구한다기에 해결해 줄 참이었다.
풍란처럼 희귀 식물이라면 야산에서 채취가 마음에 걸리겠지만 거기는 복수초가 군락을 이룬 곳이라 예닐곱 포기를 캐도 죽 떠먹은 자리처럼 표시도 나질 않았다. 잎줄기가 굵어 씨앗을 맺어 자손을 퍼트릴 개체는 남겨두고 아기 모종을 뿌리에 부엽토를 붙여 캐 나왔다. 이후 미산령 고갯마루 정자로 올라 준비해 간 김밥을 비우면서 아득하게 바다로 멀어져가는 산골을 바라봤다.
정자에서 일어나 북향 비탈로 내려서니 산딸기나무 사이 내가 다음에 마련해 갈 산나물인 영아자와 까실쑥부쟁이 잎맥이 돋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자리를 좋아하는 들꽃도 있지만 산에서는 부엽토가 쌓인 그늘진 곳에 잘 자라는 야생화들이 더 많았다. 미산령 북사면 임도를 따라가면서 산괴불주머니꽃과 콩제비꽃, 남산제비꽃, 민둥뫼제비꽃 등과 함께 큰개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혼자서 지키기는 버거운 산마루라 / 무서움 덜어주려 여럿이 무리 지어 / 미산령 북향 비탈에 옹기종기 자란다 // 그늘진 숲 바닥에 점점이 꽃을 피워 / 송이는 콩 만해도 귀엽고 앙증맞아 / 여린 순 데쳐 무치면 비빔밥이 되는데” 골짜기를 빠져나가다 내가 읊조린 ‘상데미 콩제비꽃’ 전문이다. 미산령에서 가까운 상데미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치열한 교전을 치른 산봉우리다. 23.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