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등재에서 베틀산으로
예년보다 벚꽃이 열흘 일찍 만개한 삼월 하순 월요일이다. 평일이면 진해 군항제 행사장 일원이나 낙동강 하구 둑길 벚꽃 터널을 거닐 수 있겠으나 거기로 갈 생각 없었다. 인적이 드문 임도를 걸으면서 봄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은 곳으로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배낭에는 도시락을 담고 스틱을 챙겨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 앞에 내려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갔다.
내가 열차 이용 승객도 아니면서, 그것도 창원역이나 창원중앙역이 아닌 마산역으로 자주 나감은 역 광장 모퉁이에서 구산이나 삼진 방면으로 떠나는 농어촌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이번엔 72번 버스를 탈 참이다. 시내를 관통해 댓거리를 지난 밤밭고개를 넘어 진동 환승장으로 가는 노선은 다른 70번 대와 운행 구간이 겹쳤다. 진동에서는 진북 산업단지를 거친 대현 종점으로 갔다.
언제나 그렇듯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내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현 종점은 납골탑 사찰로 알려진 용점사와 도자기 공방이 한 곳 있었다. 79번 국도가 진등재를 넘는 갓길을 따라 걸으니 반짝 찾아온 꽃샘추위에 볼에 스치는 바람은 차갑게 느껴졌다. 낙남정맥 봉화산이 광려산과 무학산으로 건너는 대티나 진고개로도 불리는 진등재에 이르러 산기슭 임도로 향해 올라섰다.
봉화산 가는 임도 길섶에는 아침 햇살에 꽃잎을 펼치려는 양지꽃이 무더기로 보였다, 자주색의 고깔제비꽃도 지천으로 피어났다. 제비꽃은 오랑캐꽃으로도 불리는데 그 이름이 재미있다. 제비꽃이 피는 봄이면 양곡이 귀해진 오랑캐가 우리나라 변방으로 쳐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오랑캐 병사들이 머리에 쓴 두건의 모습과 꽃잎이 유사해 그렇게 불린다는 얘기가 그럴듯했다.
아무도 다닐질 않는 임도인데 차량이 지난 바퀴 자국으로 미루러 산중 어디에선가 공사가 있는 듯했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개복숭나무에 피는 연분홍 꽃이 예뻤다. 도심 거리에 벚꽃이 필 때면 산기슭에서는 산벚꽃과 함께 피는 개복숭꽃은 그 역시 복사꽃이라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했다. 봉화산 등산로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가면 여항 버드내인데 왼쪽의 베틀산 방향으로 나아갔다.
해발고도를 높여 임도를 따가라니 몇몇 인부들이 대형 굴삭기로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어디선가 바위 더미를 실어와 임도 보강 사업으로 골짜기에 사방댐을 설치하는 공사였다. 공사 규모로 미루어 몇 달 걸려 여름이 되어야 마무리될 듯했다. 사방댐 공사 현장을 지나면서 길섶에 보이는 두릅나무에서 움이 트고 있어 몇 개 따다가 길바닥에서 배낭에 넣어간 도시락을 비웠다.
점심을 해결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베틀산으로 넘어가는 임도를 따라가니 바위 절벽에 핀 진달래가 무척 아름다웠다. 길섶을 따라가면서 보이는 두릅 순 가운데 손은 뻗쳐 닿는 것들은 따 모았다. 산등선을 넘어가는 곳에서 임도는 감재에서 대부산을 거쳐 베틀산으로 향해 연결되었다. 두릅나무를 따라 등산로를 벗어난 숲에서 노랑제비꽃 군락지를 만나 잠시 황홀경에 빠졌다.
노랑제비꽃을 살핀 후 감재에서 베틀산 기슭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면서 길섶에 전호나물이 보여 주섬주섬 캤더니 봉지가 불룩해져 갔다. 전호는 냇가에서도 자라나 거기는 산중인데도 자생지였다. 전호와 함께 나비나물도 보여 놓치지 않고 뜯어 모았고 일찍 돋은 취나물도 보여 캤더니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 하산이 늦어져 부산마을에 이르렀더니 서북동에서 나가는 버스를 놓쳤다.
다음 버스까지는 2시간이 남았기에 덕곡천 천변을 따라 진동까지 걸어 창원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도중에 집 근처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아파트단지로 들어 꽃밭을 돌보는 꽃대감에게 산나물을 나누고 다음 행선지가 기다렸다. 내가 교직 말년을 거제에서 보낼 때 카풀로 오간 이웃 동 지기를 만났는데 그는 올봄에 퇴직해 꽃대감과 백수 클럽 입회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2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