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하본기 주석본>
黑水西河惟雍州 :弱水既西 ,涇屬渭汭 .漆 ﹑沮卽從 ,灃水所同.荊 ﹑ 岐已旅 ,終南 ﹑ 敦 物至于
鳥鼠 .原隰厎績 , 至于都野 .三危既度,三苗大序 . 其土黃壤 .田上上 , 賦中 下 .貢璆 ﹑
琳 ﹑ 琅玕.浮于積 石 , 至于龍門西河 ,會于渭汭 .織皮昆侖 ﹑ 析支 ﹑ 渠搜 ,西戎即序 .
**흑 수(黑水)가 서쪽에 있고 하(河)는 오직 옹주(雍州)에 있다. : 약수(弱水)는 곧 서쪽에 있고, 涇水는 위
예{(渭汭)위수의 물굽이}에 속한다고 되어있으며, 칠수(漆水). 저수(沮水)는 곧 그곳에 속한다. 풍수(豊
水)는 같은 곳에 있다. 형(荊) 기(岐)에서 잠시 머물다가 종남(終南), 돈물(敦物)에서 조서(鳥鼠)에 다다
른다. 원습지적(原隰厎績)에서 도야(都野)에 까지 다다른다.
삼 위(三危)를 바로 건너면 삼묘(三苗)가 있다. 그곳의 흙은 노랗고 곱다. 땅은 많은데 세금은 적다. 공
물로는 옥(璆), 푸른옥(琳), 낭간(琅玕)이 있다. 적석(積石)에 있으며 용문(龍門)의 서쪽 하(河)에 이르면
서 위수(渭水)의 물굽이에 모인다. 곤륜(崑崙), 석지(析支), 거수(渠搜)에서 가죽을 짠다. 서융(西戎)이 있다.
[一] 集解孔安國 曰 : 「 西距黑水 , 東據河. 龍門之河在冀州西 」 索隱地理志 益州 滇池有黑水
祠 . 鄭玄引地說云 「 三危山 ,黑水出其南 」 . 山海經 「 黑水出崑崙墟西北 隅 」也 .
집해 공안국(孔 安 國)왈: 서쪽에는 흑수(黑 水) , 동으로는 하수(河)에 의지하였으며, 용문하(龍 門河)가
기주(冀 州)의 서쪽에 있다. 색은 지리지에 익주진지(益州滇池) 에는 흑수사 (黑水祠)가 있다고 한다. 정
현(鄭玄)이 설문(說文)을 인용하여 말하길 삼위산(三危山)은 흑수(黑水)가 나와서 그 남쪽으로 흐른다.
산해경(山海經)에는 흑수(黑水)가 곤륜허(崑崙虛)의 서북 모퉁이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 산해경(山海經): 유사(流沙)는 종산(鐘山)을 나와 서남쪽으로 곤륜허를 지나 해(海)로 들어간다.(西南
行昆侖墟入海)
正義姚丞云:大荒西經云崑崙之丘,其外有炎火之山,投物輒然.括地志云:弱水有二原,俱出女國北
阿耨達山,南流會于國北,又南歷國北,東去一里,深丈餘,闊六十步,非乘舟不可濟,流入海.阿耨
達山一名崑崙山,其山為天柱,在雍州西南一萬五千三百七十里 又云:「弱水在甘州張掖縣南山下也.
(사기) 정의 요승 운:대황서경(大荒西經) 운(云) 곤륜지구는 (崑崙之丘)그 바깥에 염화지산(炎火之山)
이 있는데 물건을 던지면 타버린다.괄지지(括地志) 운(云):약수(弱水)는 2개의 근원이 있는데,여국
북쪽의 아누달산에서 함께 나와 남쪽으로 흘러 우국 북쪽에서 모이며,,또 남쪽으로 나라의 북쪽을 지
닌다 동쪽으로 1리의 거리며 깊이는 1장여,넓이는60보로 배를 타고 건너지 못할 정도는 아니며, 해
(海)로 흘러들어간다.아누달산은 일명 곤륜산(一名崑崙山)인데,그산은 천주(天柱)가 되고 옹주(雍州)
서남쪽 일만오천삼백칠십리에 있다.」또 운(云):「약수(弱水)는 감주 장액현 남산아래에 있다.
集解孔安國曰:導之西流,至于合黎.鄭玄曰:「眾水皆東,此獨西流也.」
索隱按:水經云 : 弱水出張掖刪丹縣西北,至酒泉會水縣入合黎山腹.山海經云「弱水出崑崙墟西南
隅」也.
집해 공안국 왈:「서쪽으로 흘러 합려에 이른다
정현 왈:「중수(眾水)가 모두 동쪽인데 이것 하나만 서쪽으로 흐른다
색은 안(按):수경(水經) 운(云) : 약수(弱水)는 장액 산단현 서북쪽을 나와,주천 회수현에 이르러 합려
산 앞으로 들어간다.
산해경 운 약수는 곤륜허 서남쪽 구석을 나온다
약수는 곤륜허 서남쪽 구석을 나온다(弱水出崑崙墟西南隅)
내용의 핵심적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공안국이 말하길 산해경에 흑수가 곤륜허의 서북 모퉁이에 나온다 하였고, 약수는 2개의 발원이 있고
발원이 아누달산이라고 하는데 이 아누달산(阿耨達山)이 곤륜산이라 합니다. 또한 산해경에 약수는 곤
륜허의 서남쪽 구석에서 나온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흑수와 약수는 곤륜허, 즉 아누달산에서 나오는 두
개의 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은 한 대에 감숙성지역으로 옹주입니다. 한가지 이해하기 어려
운 사실은 아누달산(阿耨達山)은 일명 곤륜산(一名崑崙山)인데,그 산은 천주(天柱)가 되고 옹주(雍州)
서남쪽 일만 오천삼백 칠십리에 있다. 이 부분은 깊이 연구해야 할 부분이지만, 옹주가 지금의 천산일
대에 있는데 그 서남쪽이라 함은 흰두쿠시 산맥정도가 되야 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명을 옮기다가
실수한 부분이 그 다음 부분으로 보입니다.
★“약수(弱水)는 감주 장액현 남산아래에 있다.(甘州張掖縣南山下也)”
★“약수는 곤륜허 서남쪽 구석을 나온다(弱水出崑崙墟西南隅)”
이 약수는 유사가 따라다니는 강인데 사서에 엄청나게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유사의 서쪽에 大夏니 大宛이니 月支國/ 烏孫등의 서역지역이 있으며 서왕모(西王母)가 산
다고 하는 崑崙丘(곤륜구)가 있으며 그곳이 漢대에 甘肅이고, 流砂 즉 사막이 있는 지역입니다. 또한 산
해경에 대황경에 약수니, 흑수, 서왕모, 곤륜산의 지명이 보입니다. 이곳은 력사를 조작하려고 해도 빼
도박도 할 수 없는 파미르 고원과 천산, 곤륜산등이 있는 지금의 신강과, 키르키스탄, 우즈벡등 중앙아
시아 지역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산맥들을 동쪽으로 쭉 나열하여 기련산이니, 종남산, 진령산맥등을 이
식시켜 서안을 황도로 만들어 놓았다 봅니다. 앞서 언급한 기련산, 종남산, 진령 등등은 천산에서 설명
되어야 하는 지역입니다.
또한 이중환(靑華山人 李重煥·1690-1756 이 지은 택리지>(擇里志)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
다. “곤륜산(崑崙山)의 한 줄기가 대사막의 남쪽을 지나 동쪽에 이르러 의무려산(醫巫閭山)이 되고, 이곳
으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遼東)평야가 된다. 평야를 건너 다시 일어나 백두산(白頭山)이 되는데, 곧 <산
해경>(山海經)에서 말하는 불함산(不咸山)이 이것이다.”
마침 조선일보 월간산 기사에 이중환의 택리지에 대한 의문의 기사가 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출처: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04/03/22/2004032278012.html
또한 조선의 유명한 여 시인 허난설언의 시에 곤륜산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길지만 생략할 수 없어 그냥 실었습니다.)
망선요(望仙謠) [문집외 시]
출처 : http://kenji.cnu.ac.kr/chohee/writings/mangseonyo-other.htm
허난설헌의 시로 알려진 "망선요(望仙謠)"는 문집외(外) 시 중 하나이다. [문집에 같은 제목의 시가 하
나 있는데, 그것과 혼동하지 말 것.] "명시종(明時綜)"과 "역대여자시집"에 나와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그들 문헌을 찾아보았으나 주위에 없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장정룡 역 "난설헌 시선"에 "명시종" 출전으로 다음과 같은 본문과 해석이 나와있다.
望仙謠 망선요
王喬呼我遊 왕교호아유
期我崑崙墟 기아곤륜허
朝登玄圃峰 조등현포봉
望遙紫雲車 망요자운거
紫雲何煌煌 자운하황황
玉蒲正渺茫 옥포정묘망
숙忽凌天漢 숙홀능천한 [숙(攸 아래에 火) = 갑자기 숙 ]
飜飛向扶桑 번비향부상
扶桑幾千里 부상기천리
風波阻且長 풍파조차장
我慾舍此去 아욕사차거
佳期安可忘 가기안가망
君心知何許 군심지하허
賤妾徒悲傷 천첩도비상
신선 왕교*1가 함께 노닐자고,
곤륜산*2에서 나를 기다렸다네,
아침에 현포*3 봉우리에 올라서,
멀리 붉은 구름의 수레를 바라보네.
붉은 구름 어찌나 빛나는지,
옥포*4는 그저 아득하구나.
홀연히 은하수 넘어서,
해뜨는 부상*5을 향해 날아가니,
부상 몇 천리 되는 그곳,
풍파가 길을 막아 더욱 멀구나.
이처럼 어려운 길 버리고 싶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랴.
그대 마음 어디쯤 있는지 알기에,
내 몸은 더욱 슬프기만 하여라.
[정정룡 역]
이것을 편의상 "망선요 A"라 지칭한다.
반면에 허미자 저 "허난설헌연구"에는 출전은 명시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望仙謠 망선요
王喬"招"我遊 왕교초아유
期我崑崙墟 기아곤륜허
朝登玄圃峰 조등현포봉
望遙紫雲車 망요자운거
"雲車"何煌煌 운거하황황
"玄圃路茫茫" 현포로망망
"숙"忽凌天漢 숙홀능천한 [숙 = 갑자기 숙; 人 부]
飜飛向扶桑 번비향부상
扶桑幾千里 부상기천리
風波"路阻"長 풍파로조장
"吾"慾舍此去 아욕사차거
佳期安可忘 가기안가망
君心知何許 군심지하허
賤妾徒悲傷 천첩도비상
이것을 편의상 "망선요 B"라 지칭하겠다. 망선요 A와 비교해 보면 따옴표로 지적한 곳들이 다른데, 6행
이 크게 다르고 다른 부분은 같은 뜻이거나 뜻에 큰 차이가 없는 것들이다. 이 시는 1-4행은 운자(韻字)
가 墟, 車로서 魚(평성)韻이고 나머지 5-14행은 陽(평성)韻이다. 5언고풍 단편에 속하는 시이다.
이하에서는 망선요 A의 본문과 해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 주석은 내가 붙인 것인데, 논
의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1 왕교: 왕자교(王子喬),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선인. 중국 동백산(桐栢山)에서 선도를 수련하여 신
선이 되었고 한다. 이 사람은 적송자(赤松子)와 함께 신선의 대명사로 주로 사용되는데, 이 둘을 함께
"교송(喬松)"이라고 한다.
cf. 적송자: 전설상의 고대중국 선인. 신농씨 때 우사(雨師)라고도 하며, 제곡(帝?)의 스승이라도 하는
데, 금화산(金華山)에서 신선이 되어 노닐었다고 전해진다.
*2 곤륜산: 중국 서방에 있는 최대의 명산. 서방의 낙토로 서왕모(西王母)가 살며 미옥(美玉)이 난다고
함. 허(墟)는 기슭, 산기슭의 뜻.
*3 현포: 곤륜산에 있다고 하는, 선인이 사는 곳.
*4 옥포: 지명(?).
*5 부상: 해가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신성한 나무. 또는 그 나무가 있는 곳. 동쪽 바
다의 해가 뜨는 곳. [반대: 함지(咸池)]
우선 해석된 시의 지명들이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뒤에 설명한 맨 나중의 2행을 제외
하고) 다음과 같다:
"신선 왕자교는 멀리 곤륜산에 있고 ’나’를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기 위해 아침에 현포봉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
현포봉에서는 옥포라는 곳이 아주 멀다. 왕자교를 만나러 가기 위해
은하수를 넘어서 부상을 향해 가고 있다. 가는 길이 험하지만 만날 기약이
소중하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주석에서 언급했듯이 전통적으로 현포봉은 곤륜산에 있다고 여겨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곤륜
산은 서쪽에 있고, 부상은 그 반대인 동쪽에 있다고 상상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 해석에서는 ’나’는 현
포봉에 있고, 곤륜산은 그것과는 상관없이 마치 부상의 쪽, 즉 동쪽에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설정이다. 물론 이들 지명들이 모두 가상세계의 그것들이라 그저 어떤 지명들에 지나지 않
는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라고 받아드릴 수도 있을 것이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게다가 망선요 B의 6행
의 玄圃路茫茫은 더 이상하다. 일단은 "현포의 길은 멀고도 멀다"로 해석되는데, 지금 현포봉에 서 있으
면서 멀리 빛나는 붉은 구름수레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길이 멀다고 말한다면 어딘지 맞지 않는다. 이
구절은 어쩌면 "현포에서 보니 길이 멀고도 멀구나"와 같은 뜻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적어도 내게는)
불명확한 지명이지만 ’옥포’를 등장시킨 망선요 A가 더 나아 보인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곤륜허, 즉 곤륜산 기슭인 것이며, ’그대’ 왕자교가 있는 곳이 바로 부상인 것이다. 그래서 그 만날 기약
을 듣고 그 만남을 이루기 위해 현포봉에 올라 아침에 찬란한 구름수레를 타고 출발한 것이다. 그것이
밤이 되고 또 아침이 되고, 그래도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어려웠던 것이 마지막 2행의 해석이었다. 위의 역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君心知何許 군심지하허
賤妾徒悲傷 천첩도비상
그대 마음 어디쯤 있는지 알기에,
내 몸은 더욱 슬프기만 하여라.
바로 앞까지, 시인은 부름을 받고 아침에 봉우리에 올라 빛나는 붉은 구름수레를 타고 아득한 만날 그
곳을 향해 날아올라 은하수를 건너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고 있고, 그 가는 길이 풍파가 거세고 너무나
힘이 들지만, 시인은 만날 아름다운 약속(佳期)을 잊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가고야 말리라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이 해석하면, ["徒"에는 ’다만, 단지’라는 뜻이 있고, 위에 사용된 ’더
욱’이란 뉘앙스는 없다. 하여간 어쨌거나 ’다만’으로 봐도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마음 멀어진 님 때문에
슬퍼진 모습으로 떨어져 버린다. 어찌된 일일까?
여기서 君과 妾을 보면 남편과 아내처럼 그려져 있다. ’君心’(그대 마음)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그대’는
이 시에서는 ’왕자교’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왕자교에 대한 묘사라고는 ’함께 노닐자고 만남을 기약
한 것’뿐이다. 그러니 ’그대 마음’은 ’나’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여진다. 마지막 행에서는 徒를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나’는 ’悲傷’(슬프고 가슴아픔)의 상태에 있음은 확실하다. 그러면 이것들을 어떻게 연결
하면 의미가 통할까. 내 생각에는 "徒"를 그 중요한 뜻의 하나인 "까닭없음, 부질없음, 헛됨, 보람없
음"의 뜻으로 보아서, 마지막 구절은 ’지금 슬프고 가슴 아픈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는 의미인 것 같다. 아직 만남을 이루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것이고 또 당장 가는 길이 험
해서 슬픔과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만날 기약이 너무나 찬란하고 확실하기에 그런
느낌은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말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서쪽 멀리에 있는 신선이고, 내 님은 동쪽 멀리에 있는 신선이다.
지금은 헤어져 있지만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 님을 향해 해와 달의 세월을 거슬러 은하수를
건너서 가고 있다. 그 가는 길이 험하고 내 지금 이 세상에서 마음 슬프고 아파도 님과 만날 그 아름다
운 기약에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님에게 가련다... 우주적 수준의 사랑 노래가 아니랴.
이상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았다. 참조가 편하게 하려고 위에 보인 주석을 다시 붙였다.
望仙謠 망선요
王喬呼我遊 왕교호아유
期我崑崙墟 기아곤륜허
朝登玄圃峰 조등현포봉
望遙紫雲車 망요자운거
紫雲何煌煌 자운하황황
玉蒲正渺茫 옥포정묘망
숙忽凌天漢 숙홀능천한 [숙(攸 아래에 火) = 갑자기 숙 ]
飜飛向扶桑 번비향부상
扶桑幾千里 부상기천리
風波阻且長 풍파조차장
我慾舍此去 아욕사차거
佳期安可忘 가기안가망
君心知何許 군심지하허
賤妾徒悲傷 천첩도비상
왕자교*1가 나를 불러 유선(遊仙)차고
곤륜산*2 기슭에 있는 내게 기약했네.
아침에 현포 봉우리*3에 올라
멀리 자줏빛 구름수레를 바라보았네.
자줏빛 구름은 밝고도 밝은데
옥포*4는 정녕 멀고도 멀구나.
홀연히 은하수를 넘어서
부상*5을 향해 날아올랐어라.
저 부상은 몇 천리이던가,
풍파가 험하고도 끝이 없구나.
내 이 모든 것 떨쳐버리고 싶지만
아름다운 만날 기약 어찌 잊으리요.
그대 마음 어디에*6 있는지 알기에
내 이 슬픔과 아픔 부질없으리.
[류주환 역]
*1 왕교: 왕자교(王子喬),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선인. 중국 동백산(桐栢山)에서 선도를 수련하여 신
선이 되었고 한다. 이 사람은 적송자(赤松子)와 함께 신선의 대명사로 주로 사용되는데, 이 둘을 함께
"교송(喬松)"이라고 한다.
cf. 적송자: 전설상의 고대중국 선인. 신농씨 때 우사(雨師)라고도 하며, 제곡(帝?)의 스승이라도 하는
데, 금화산(金華山)에서 신선이 되어 노닐었다고 전해진다.
*2 곤륜산: 중국 서방에 있는 최대의 명산. 서방의 낙토로 서왕모(西王母)가 살며 미옥(美玉)이 난다고
함. 허(墟)는 기슭, 산기슭의 뜻.
*3 현포: 곤륜산에 있다고 하는, 선인이 사는 곳.
*4 옥포: 지명(?).
*5 부상: 해가 뜨는 동쪽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신성한 나무. 또는 그 나무가 있는 곳. 동쪽 바
다의 해가 뜨는 곳. [반대: 함지(咸池)]
*6 何許: ’何處’의 뜻이다. 하지만 ’許’를 허씨인 자신을 상징하려 일부러 넣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
다. 중의법인 셈이다. [이것은 좀 비극적이지만 훗날 허균을 탄핵하려 올린 기자헌의 상소에 "이번에
흉격을 쓴 사람이 비록 누구인지 모르겠으나"(今此兇檄之人, 雖不知何許人)라고 쓴 것을 생각나게 만든
다. "하허인"은 ’어디의 사람", "어느 곳의 사람", "어떤 사람"의 뜻을 갖긴 하지만 여기서는 넌지시 허균
이 범인이라는 것을 왕에게 암시하기 위해 일부러 許자가 들어간 구절을 쓴 것이다.]
출처 : http://kenji.cnu.ac.kr/chohee/writings/mangseonyo-other.htm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 본문 141쪽에는 태백산을 보시면
『太白山卽水經注之白石山也. 在陝西 眉縣縣南. 接洋縣界. 亦曰太一(太壹). 太白山. 去長安三百里. 不
知其高機何. 俗云武功太白. 去天三百. 山下軍行不得鼓角. 鼓角卽疾風雨至. 冬夏積雪. 望之晧然. 洞天記
以此爲第十一洞天. 山有大太白. 二太白. 三太白三池. 海天旱. 秦人多禱雨於此. 太白者四方神名也. 參看
太一山條. 在甘肅慶陽縣北一百五十里. 黑水原於此』
해석: 태백산은 수경주설에 의하면 白石山이다. 섬서성 미현 남쪽과 양현과의 접경지대이다. 太一이라
한다. 太一은 太白山이며, 長安 즉 西安에서 3백 리이다. 그 산 높이는 얼마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 행군한다면 언제 병을 얻을지 알 수 없다. 비바람 때문에 질병이 생기게 된다.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흰 눈이 쌓여 있다.
산을 바라보면 정말 호연지기가 있는 기상이다. 깊은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깊고 깊은 제11 동굴에
서 바라보는 하늘같다. 산이 커서 太白이다. 그곳은 세 곳의 못이 있어 하늘이 항상 가물다. 진(秦)나라
의 많은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太白은 四方에 있으며, 神의 이름이다. 太一山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太白山은 감숙성(甘肅省) 경양현(慶陽縣) 북쪽 1백5십 리이다. 이곳은 흑수(黑水)가 처음으로 발원하는 곳
이다.
★결론
이 지역은 요사 동경요양부에 나오는 지역이며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였을시의 백석산이며, 수양
제가 고구려를 침공하다가 대패했다는 지역입니다. 이지역이 감숙성에 있는데 흑수가 발원한다고 하
며 산이 커서 태백이라든지, 태일산의 명칭이라든지 (참고로 태일산은 종남산의 다른 이름입니다.)마치
설산이나 웅대한 산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군대가 행군할시에 고산증과 유사
한 증상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증상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알 수 없으나
유명한 고산지대인 멕시코 시티의 해발고도 2240m 인 것을 보면 최소한 이 높이 이상의 지역이 태백
산이 있는 지역이라고 볼 수있습니다. 또한 일년내내 설산인 즉 만년설이 덮어있는 산이어야 합니다.
더 많은 내용을 올리고 싶습니다만, 글이 너무 길면 지루하기에 오늘은 여기서 끝낼까 합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고려/조선사에서 흑수(黑水)와 약수(弱水)는 매우 중요한 지명으로서 양 강이 모두 곤륜허(崑崙虛)에서
발원한다는 것과, 그 지역을 지나기 전에 流沙, 즉 대막지대가 있습니다. 또한 산해경/ 대황경의 지역
으로 력대의 제왕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舊都이며, 이 지역은 지금의 파미르 고원일대의 현 신강성 카슈
카르/객십 일대로 보고 있으며, 원 인류가 여기에서 홍수를 피해 여기서 살다가 인구가 많아져서 사막
지대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세계의 각지로 이동하였다고 봅니다.
또한 대황경은 멀고 황막한 뜻이 아니라 높은 고산지역이고 구도(舊都)이고, 해내(海內)와 매우 가까운
지역에 있으며, 매우 광범위한 지역이어서 산해경의 산경(山徑)을 포괄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산해경의 목차를 보면 거꾸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명명백백히 조선을 동쪽으로 옮기기 위해 바꾼
것이며, 중국과 조선이라는 허구의 현대국가를 만드는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편찬한 행위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지명을 포함한 력대의 지명들을 지명대사전이나, 25사에서도 한 대의 어디, 당대의 어디, 명대
의, 청대의 무슨 무슨 연호를 들어가면서 어디로 치소를 옮겼다고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서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설명하면서 어디로 그 수도를 만리, 오천리 이상을 옮겼다는 기록이 없습니
다. 간혹 흑수 말갈, 백제가 경사의 수천리나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가지고 노는 장난같
은 수법입니다. 경사가 고려, 키타이의 수도이며, 말갈 / 숙신이 대황에 있고 경사는 바로 그 옆지역에
있는데 무슨 오천리, 육천리 떨어져 있다고 할 수가 있는지... <아마도 최외곽지역을 중심지역으로 설
명한듯)
이것은 현 서안을 장안/호경으로 만들어 놓고, 고려/조선을 반도로 이식시켜 놓고 백두산, 즉 천산을
지금의 백두산으로 옮기고 말갈을 신만주, 현 동북삼성으로 옮기고, 몽골을 지금의 몽고와 내몽고, 중
국과 한국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서세동점이라는 서양의 불순세력들의 세계장
악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 추신: 구이넷의 이대진님이 쓰신글을 보시면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인 또한 참고하였음을 밝힘니다.
첫댓글 파이어 폭스 상태에서 글을 올리니 호환이 안되나 봅니다. 이점 사과드립니다.
갑자기 숙자 역시 올릴 수 있습니다. 워드로 작성한 다음 올리면 됩니다. 글꼴을 바탕체 등으로 해야 확장한자가 뜹니다.
아누달산은 범어로 "아누타라"이고, 반야심경에 나오는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의 "아뇩다라"와 같은 것으로 無上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높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아누달산은 한텡그리봉을 포함하는 천산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그 당시 이대진님의 글을 보고 곤륜산 역시 천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수는 나르윈강, 흑수는 카라강(천산서쪽)이라고 보입니다. 서왕모가 나오면 천산이고, 천산이 곤륜산입니다. 곤륜산은 약강의 남산입니다. 즉 저강족의 남산은 현재의 곤륜산입니다. 호딴의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鳥鼠(오서)는 쿠차 서쪽에도 있고 페르가나에도 있다. 위 내용을 보면 오서는 페르가나의 오쉬인 것 같다. 현 지도에 "오쉬"라는 지명이 페르가나에 있다.
선생님 사서의 鳥鼠(조서)같습니다. 산해경의 서차 사경에 있는 조서동혈산(鳥西同穴山입니다. 저도 오서로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서산경의 위치가 지금의 천산과 파미르 일대인것을 보면 조서동혈산은 그 지역내에 존재하여야 할 것입니다.
조서가 맞군요. 번역방법: 한문 단어에 "한차"키를 누르면 자동으로 괄호한자로 변환됩니다. 그러면 착오가 없습니다. 새조는 새 "됴"입니다. "됴서"로 발음되는 곳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기련산은 아프가니스탄을 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뻗어가는 산맥인 것 같은데, 참으로 헷갈립니다. 돈황은 천산과 기련사이에 있다고 했으며, 돈황은 토화라족의 땅을 가리킵니다. 토화라의 위치는 아프가니스탄 발흐입니다. 그래서 기련산의 위치를 발흐 남쪽의 산맥으로 추정하는 것입니다.
新校本晉書/紀/卷一 帝紀第一/高祖宣帝懿 : 正 始 元 年 春 正 月 ,東 倭 重 譯 納 貢 , 焉 耆 、 危 須 諸 國 , 弱 水 以 南 , 鮮 卑 名 王 , 皆 遣 使 來 獻 . 天 子 歸 美 宰 輔 , 又 增 帝 封 邑 .
동왜와 , 언기, 위수제국이 조공하였고, 약수이남에 선비왕이 있다고 하니 이지역은 신강을 벋어날수 없습니다. 선비는 약수의 남쪽에 있다 하였으므로 지금의 우즈벡부근에 위치한것으로 보입니다.
新校本明史/志/卷四十二 志第十八 地理三/陝西/陝西行都指揮使司
西 南 有 祁 連 山 . 西 北 有 合 黎 山 . 東 北 有 人 祖 山 , 山 口 有 關 , 曰 山 南 , 嘉 靖 二 十 七 年 置 . 又 東 北 有 居 延 海
西 有 弱 水 , 出 西 南 山 谷 中 , 下 流 入 焉 . 又 有 張 掖 河 , 流 合 弱 水 , 其 支 流 曰 黑 水 河 , 仍 合 於 張 掖 河 . 又 東 南 有 盧 水 , 亦 曰 沮 渠 川 .
신교본 명사 지 권 사십이 제 십팔 지리지 섬서부분입니다. 섬서의 서남에는 기련산이 있고 서북에는 합려산, 동북에는 조산, 산입구에는 관문이 있고, 남산이라고 하며 가정 이십칠년에 설치하였으며 동으로 거연해가 있다고 하며
서쪽으로 약수가 있고 서남산의 계곡에서 나와 흘러 들어간다. 또한 장액하가 있는데 약수에 합하여 흐르며 그것의 지류를 흑수하라 부른다. 장액하와 합한다. 또한 동안에 로수가 있고 일명 저거천이라 한다.
명사에도 같은 지명과 같은 위치고 장액하, 흑수, 약수 , 기련산, 거연해가 나옵니다. 이지역은 중앙아시아 지역이며, 특히 천산을 중심으로 설명되어야 하며 지금의 서안은 얼핏 맞는듯하지만 산이나 강의 위치가 맞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곤륜구, 곤륜산이 지금의 서안에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집해"니, '정의"니, "색은"이니 하는 말은 단지 참고만 해야 합니다. 원문이 아니잖아요. 그들의 해석일 따름인데... 이 또한 취사선택을 잘 해야 겠군요.
그렇습니다. 옥석을 가리는 일이 키포인트인데 참 어렵습니다.
사기,중국지고금지명대사전 역시 왜곡된 책 아니였나여?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멘스라~
하실 말이 있으시거든 글로서 사료 어디 어디가 잘못된 부분이라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현재 있는 사료를 있는 그대로 철썩같이 밑는 것은 아니라 봅니다. 그리고 카페의 어른으로써 체통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