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金龍澤)-서쪽으로 가면 누가 있는지
내 날개에 떨어진 햇살을 보면
고향에 장다리꽃이 핀지 알지요.
봄바람이 살랑대면
장다리 꽃잎 네장이
두 마리 나비가 되어
강을 건너는 꿈을 꾼답니다.
봄이 되면 맨발이
흙 속에 묻히는 마을.
속날개에 바람을 싣고 날았답니다.
저 하늘 어느 별에선가
강물에 날개를 적시는 어머니의 날개 소리를 들었답니다.
보고 싶어요, 어머니.
내 날개를 쓰다듬어주는 아버지의 손가락 상처들을
만지고 싶어요.
이웃에는 살구꽃이 피었답니다.
살구나무 꽃그늘 내린 마루 끝에 앉아 환하게 웃는 여자
아이를 보고 싶어요.
그 아이에게 노란 살구를 따주고 싶었지요.
내 날개를 잡으러 다가오는 떨리는 눈빛을 보고 싶답니다.
보고 싶고, 그립고, 풀들이 돋는 마당가 장다리 꽃밭을
날고 싶어서
그리운 골목길을 지나 바람 부는 풀밭 위를 날고 싶어서
이렇게 날개를 접고 꽃을 들여다보고
속날개로는 바람을 부른답니다.
접었다 폈다, 날개는 내 마음입니다.
날개로 은하수 맑은 물을 닦아
날아가는 내 모습을 비추어보았답니다.
때로 나는 지상에 매인 끈을 자르고 싶었지요.
가문 땅에 풀들이 돋아나고
폭우 속으로 어린 새들이 날아가고
폈다가 도로 접는 불쌍한 날개들
막 돋아난 쑥잎 끝에 태어난 이슬방울들
지구를 떠도는 슬픈 눈동자, 나는 나비랍니다.
내 고향은
봄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런 강물을 가지고 있답니다.
봄바람 끝에 누가 사는지,
서쪽으로 날아가면 내 마음을 풀어다가 쌓아놓은
환한 달이 있을지.
내 날개가 된 장다리꽃,
지붕을 넘어 날아와
마루 끝 내 곁에 처음 내려앉던 행복한 그
꽃잎을
따라온 나는
나비랍니다.
*김용택[金龍澤, 1948. 9. 28.~.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장산리) 출생] 시인은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에 ‘섬진강1’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평생 자신이 태어난 부근의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부박한 모더니즘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아름다운 자연을 삶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여 절제된 언어로 직관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표현하여 김소월, 백석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인은 순창농고 출신이었는데, 어려서 소설책과 만화책을 즐겨 읽은 것이 정서적으로 자연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이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고, 시인의 시집으로는 “섬진강” “꽃산 가는 길” “맑은 날”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그래서 당신” “누이야 날이 저문다” “나무” “수양버들”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오래된 마을” “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 등이 있으며 “콩, 너는 죽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등의 동시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시인은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대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위 시는 김용택 시집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시선 360)”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