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한복판 사거리 이정표 아래서나
산마루 노을 질 때 걸리는 붉은 신호등
횡단보도를 지운 폭설 앞에서
함부로 펼쳐지는 사랑의 구간
어쩌면,이라는 비보호 좌회전
성급히 지나온 과속방지턱
멈칫거린 황색 경고등이나
그럼에도,라는 가로수
불안을 단속하는 구간 속도 측정 카메라와
부디,라는 유턴 표지판
어쩌자고 우리가 만났나 싶다가
어쩌자고 우리가 헤어졌나 싶다가
다시 페달을 밟는 초록 신호등
사랑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지 못한 마음엔
작살나고도 정신 못 차린
박살 내고도 지우지 못한
위험 구간이 있다
-『경향신문/詩想과 세상』2024.08.04. -
당신은 늘 달린다. 앉아서도 달리고, 자면서도 달린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달린다. 멈출 수 없어서 매일 달린다. 위험한 구간에 이르면 이탈하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달린다. 오로지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사람처럼.
당신은 이 세계를 가로지르다가 종종 “장마 한복판 사거리 이정표” “붉은 신호등” “횡단보도를 지운 폭설” 앞에 서게 된다. 그곳은 “함부로 펼쳐지는 사랑”이라는 구간이다. 당신이 “작살나고도 정신 못 차린”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만나면 위험한 사람이 있다. 만나지 말아야 했어,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 말은 당신에게 되돌려질 수도 있다. 절연구간을 지나가다 영혼마저 불이 나가 깜깜해지는 순간, 당신에게 더 위험한 사랑이 온다. 더 위험한 사람들, 병마들, 어찌할 것인가. 이 사랑이라는 반복 구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