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영천 금호읍 신흥사를 찾아가다
금년 겨울은 다른 해보다 유난히 추웠다. 노인은 건강을 지키려면 추운 날에는 바깥 출입을 하지 말라하여, 나는 방안에서 웅크리고 지냈다.
지난 일요일부터 날씨가 조금씩 풀린다. 이번 일요일은 많이 풀렸지만 아직은 겨울날씨이다 싶어. 주저되었다. 이번 설날에는 아들이 차를 갖고 와서, 그 차를 이용하여 대중교통으로는 찾아가기 힘든 인각사를 다녀왔다. 오늘부터는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마음이다. 꼽아보니 영천 금호읍에 있다는 신흥사가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이번 겨울은 집에서 자주 쉬다 보니 절집 찾는 날인데도 움직이려니 게으름이 피어오른다. 집을 나서지 않을 핑계거리를 찾다가. ‘아니다.’라며 얼른 마음을 정했다. 집 사람더러 금호 신흥사가 찾아가기 쉬운 절이니 그 절을 다녀오자고 하니 ‘그러든지’하는 말소리가 가늘다. 선 듯 내키지 않는다는 어투다. 내가 점심 준비를 하지니까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한다. 집 밖에 나서니 날씨는 많이 부드러워져 있다.
나는 하는 일이 없는 노년이더라도 일상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생활해야한다고 믿는다. 아침, 저녘의 산책도 내 일상으로 만들었다. 일요일에 절집을 찾는 일도 일상으로 만들려 하였다. 겨울이 닥치기 전까지는 거의 일상화 하였다. 일요일인데 절집을 찾지 않으면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였다. 겨울 동안 푹 쉬었더니 이제는 절집 찾기가 귀찮게 느껴진다. 절집찾기를 빨리 일상으로 복원해야 한다. 그래서 아침에 아내를 다그쳤다. 집 사람도 집 밖을 나서는 일이 귀찮게 생각되었단다. 절집에 다다르더니 ‘사실은 아침에 집을 나서기기 싫었는데, 막상 여기에 오니 기분이 좋네, 나오기를 잘 했네.’ 한다.
내가 신흥사란른 절을 찾기로 한 것은 신흥사라는 절집 때문이 아니다. 답사를 열심히 다녔던 지난날에 신월리 삼층 석탑을 찾아갔던 기억 때문이다. 삼층 석탑이 있는 이곳에 조계종 소속 사찰인 신흥사를 건립하였다는 정보를 얻고, 신흥사를 나의 백팔사 순방 계획에 포함시켰다. 예전에 신월리 석탑을 찾았을 때의 기억에는 금호읍에서 수 백 미터쯤의 거리이었다. 집 사람이 ‘당신, 길은 알아’라고 했을 때, 금호읍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이니, 금호읍에가만 가면 조금만 걸어도 된다고 자신있게 말해주었다.
겨울을 넘기는 동안에 내 몸에 게으름이 덕지덕지 붙었다. 게을러빠진 몸을 움직이게 한 것은 나의 잘못된 기억 덕택이었다. ‘수 백 미터만 걸으면’ 하는 이 기억이 얼마나 강력하게 나를 사로잡았는지, 잘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지하철을 이용하여 안심역에 내렸다. 다시 555번 버스를 타고 금호까지 갔다. 금호읍은 영천가는 국도를 따라서 길게 늘어져 있다. 555번 버스가 금호읍을 지날 동안에 정류장이 여러 곳이었다. 금호읍만 생각하고 왔더니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버스는 금호읍 시가지를 벗어난다. ‘아차’ 싶어서 서둘러 하차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없다. 골목길에서 일을 하는 아저씨더러 절을 물었더니 너무 일찍 내렸다면서 ‘여기서는 멀어요. 세 정류소를 더 가야해요. 여기서 기다렸다가 다음 버스를 타고 가요.’ 한다.
아내와 나는 걷기로 했다. 우리가 걷기 운동을 하러 절을 찾아다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면서 호기까지 부렸다. 들녘쪽으로 난 포장된 길이 나온다. 신월리라고 적혀있고, 화살표까지 달아 놓았다. 이 길이네, 하면서 걸었다. 여기서 바라보니 들녘은 저 멀리 하양까지 펼쳐있고, 그 너머로는 하늘밖으로 사라진다. 아마 금호강을 뛰어넘어 경산까지 달려나가는지 모르겠다. 입춘을 지닌지도 몇몇 날이 지났으니, 들녘에는 농사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간간이 보인다.
길을 꽤나 멀리 걸었다 싶은데도 절집을 가르키는 안내판이 없다. 아내가 들일을 하는 분에게 다가가서 길을 묻고 온다. 이 길로 쭈욱 가면 경주가는 국도 밑으로 난 굴이 있다. 그 굴길을 지나면 신월리 이란다. 마을 골목길을 걸어가면 작은 소나무 숲이 나오고, 숲을 지나면 저수지의 둑 아래에 절이 있다고 했다.
또 걸었다. 꽤 멀리 걸었다 싶지만 시골 마을의 굽은 골목길, 작은 소나무 숲, 그리고 가이없이 뻗어나가다 안개인지, 낮은 구름인지 그 속으로 사라지는 들녘의 끄트머리는 나의 어린 날을 떠올려준다. 들녘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야에서 흐릿하게 사라지는 곳이 왜 그렇게 신비롭게 보였을까. 숲을 지날 때는 숲속에 있는 정자가 보인다. 동네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저수지의 둑이 나왔다. 산책로를 잘 다듬어 두었지, 걸어가는 분들이 보인다. 젊은이가 아니고 모두가 우리같은 노인네이다.
절집을 찾아가고 있는 이 길은 내 기억의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길이 그때보다 많이 달라진 까닭도 있겠지만, 기억도 나처럼 늙어져서 주름살도 생기고, 새겨둔 것도 안개속처럼 흐릿해서 선명한 모습으로 떠올리지 못한 탓도 있을리라. 기억을 자꾸 나쁘게만 탓하지 말자. 낡은 기억 때문에 멋진 산책을 하고 있지 않는가.
예전에 답사팀을 따라서 신월리 삼층 석탑을 찾아갔다. 이 탑은 탑파사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하였다. 신라 삼층 석탑은 감은사와 고선사의 탑을 시발로 하여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 후로는 쇠퇴기로 접어든다. 탑은 자기의 몸에 온갖 조각으로 장식하여 늙어가는 자신을 꾸민다. 신월리의 삼층 석탑은 기단석에는 8부 신중을 조상하였다. 일층 탑신에는 문비를 나타내면서 자물쇠를 조각하였다. 탑 신석의 문조각은 일반적으로 한 쪽 면에만 한다. 건물의 문이 앞면 한쪽에 난 걸 보면 한면에만 조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 탑은 사면에 모두 조각하였다.
절 마당은 언 땅이 녹아서 물기로 축축하다. 대웅전을 위시하여 요사채며, 종각도 있다. 그러나 불이문이나, 누각은 보이지 않는다. 평지가람이라서 인가. 내가 절집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
절에는 스님도, 공양하는 중생도 보이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불경 소리만 절집의 정적을 깬다. 금속성 스피커 소리가 조금은 거슬리지만 분위기는 산골 절간처럼 고요롭다.
절집을 찾을 때마다 하였듯이, 아내는 법당으로 들어가고 나는 절 마당을 돌아다녔다. 나는 예전의 답사 때와는 너무 달라진 절의 분위기에 기분이 묘하다. 어쨌거나 신흥사에 닿을 때까지 금호읍의 들녘에서 봄이 스며드는 모습을 즐기지 않았든가.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는 크나큰 수확이다.
아내와 나는 다시 저수지의 둑으로 올라갔다. 들녘 끝에 금호강이 흐른다지만 봄기운이 만든 흐릿한 대기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의 답사 때에 금호강변의 어은리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동 유물이 발굴된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영천을 상징하는 양반 성씨로 북정남조라 하여, 남쪽인 금호읍에 창녕조씨 세거지가 있었다. 지금은 어디쯤인지 가늠도 안 된다. 잘 다듬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걸어나오니. ‘에게’ 바로 눈 앞에 대구에서 영천으로 가는 국도이다. 길을 잘못 접어들어서 봄이 오는 금호 들녘을 빙 둘러서 절에 닿았다. 차가 끊임없이 다닌다. 길의 저 멀리에 금호읍이 보인다. 아마 아침에 우리가 내렸던 정류소가 있는 곳인가 보다.
‘어떻게 할까 길을 건너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탈까?’ 아내가 니보고 한 말이다. 이왕 걷기를 하러 왔으니 저곳까지 걸어가자.‘ 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금호쪽으로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