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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환의 조언
삼상 9:6-10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삼상 9:6-10 / 그러나 종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 건너편에 보이는 성읍 라마에는 아주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이든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므로 우리의 암나귀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분을 찾아가 물어 봅시다! 그가 아마 우리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렇게 걱정하였다. 7) `무슨 예물이라도 들고가야 되지 않겠느냐? 우리가 주머니에 떡을 담아가지고 왔으나 이미 다 먹은 뒤라 뭘 가지고 갈 것이 없는데, 그분에게 예물로 드릴 남아 있는 물건이 있으면 좋으련만' 8) 종이 대답하였다. `마침 제 수중에 작은 은돈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이 돈을 그분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어디로 가야 암나귀들을 찾을 수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9-10) 사울이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좋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을 찾아가자!' 뜻이 모아진 그들은 성읍을 향하여 걸어갔는데, 그 성읍은 상당히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그들이 언덕으로 오르려 할 때 맞은편에서 처녀들이 물을 길으러 내려왔다. 사울이 처녀들에게 물었다. `이 성읍에 선견자가 계십니까?' 당시에는 예언자를 선견자라고 불렀다.
사울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사환을 데라고 암나귀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암나귀들을 찾는데 실패하고 사울은 사환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람에게 갑니다.
사환의 조언(6-8) 사울과 사환은 암나귀들을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암나귀들을 찾기를 포기하려는 사울에게 그와 동행한 사환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는 마치 문둥병으로 고생하던 나아만 장군이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여종을 통해 이스라엘 땅의 선지자를 소개받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왕하 5:3). 사환이 제안한 하나님의 사람이 특징은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7절의 말씀을 보면 사울은 자신들의 떡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에게 드릴 예물이 전혀 없다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 때 사환은 은 1/4세겔로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예물은 일종의 상담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4장 3절에서 여로보암의 아내가 아히야에게 준 예물과 성격이 같습니다. 사울은 사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출발합니다.
사울의 동의(9-10) 사울은 사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울의 됨됨이 중 하나는 비록 자신보다 신분과 지위가 낮은 사환의 제안이었지만 그 말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고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백성들이 하나님께 물으러 갈 때 “우리가 선견자에게로 가자”는 말을 사용했다는 것과 선견자가 선지자의 초기 이름이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30장 10절의 말씀을 볼 때 이 명칭은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울과 사환이 암나귀들의 행방을 묻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았다는 것은 그 시대의 영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 보다는 물질적인 문제와 당장 필요한 삶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적 용 : 신분과 지위가 낮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작은 자들을 통해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나누어 봅시다.
부름 받기 전 사울의 모습은 분명히 비천한 인품이었습니다. 그의 하인으로부터 여러 번 종용받고 난 후에야 잃어버린 암나귀에 대해 라마에 있는 선지자 사무엘의 충고를 구하게 된 것을 보면 그는 소심한 인간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사실은 그가 잃어버린 동물의 위치를 사무엘이 먼저 말 한 후였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통치자가 된다는 영광의 상징으로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호크마 주석
=====9:6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 여기서 '이 성'은 라마다임소빔(1 : 1), 곧 라마(1 :19)를 가리킨다(Smith, Fay).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사무엘이 그의 사사직과 제사장직을 수행 하던 근거지였다(7 :17). 한편 '하나님의 사람' 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직무를 담당하던 '선지자'에 대한 일반적 명칭이다(2 : 27; 삿 13:6; 왕상 12: 22;13:1, 14; 왕하 1:9, 13; 5:8).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 이 말은 사울의 사환이 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무엘이 그 당시 일반 백성들에 의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분명혀 보여 준다. 즉 이것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3:20) 라는 말씀이 실제적인 사실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반영해 주는 말이다.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 이것은 참선지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객관적 증거였다(신 13:1-3; 18:21, 22). 또한 이것은 3 : 8에서 본서 저자가 "여호와께서...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말한 바가 실제로 백성들에게 사실로서 인정되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그가...가르칠까 하나이다 - 사환의 이같은 말은 그가 사무엘의 선지자됨을 온전히 믿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사환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사사 로운 점(占)이나 치는 사람으로 잘못 이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상 생활에 관한 제반 문제들까지도 사무엘에게 문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F.R. Fay). 우리의 갈 길을 - 이것은 사울과 사환이 길을 잃어버렸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암나귀를 찾을 수 있는 방법과 장소를 알고 싶어한 것이다(Keil). 한편,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고찰할 사실은 사무엘에 관한 이야기를 사환이 먼저 꺼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당시 사울이 사무엘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런것 같지는 않다. 일개 사환이 알고 있었던 지식을 유력 한 집안의 아들인 사울이 전혀 몰랐을 리 없다. 다만 나귀를 정신없이 찾는 중 라마 성 근처에 이르자, 사울의 사환이 먼저 그 사실을 깨닫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이어지는 7절에서 사울이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의 풍습까지 알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확실하다.
=====9:7
우리가...무엇을 드리겠느냐 - 일반적으로 중근동 지방에서는 존경하는 어른을 방문할 때 그의 신분에 걸맞는 예물을 지참해 가는 풍습이 있었다(Pulpit Commentary). 특히 이러한 관습은 성경에서 선지자에게 무엇을 물으러 가는 경우와 관런하여 많이 나타난다(왕상 14:3; 왕하 4 :42; 암 7:12; 미 3 :5).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 하였으니 - 이 말은 선지자에게 드릴 예물로서 음식이 절대적이거나 또는 제일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집에서 갖고 나온 것이 단지 음식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음식 조차도 바닥 난 상황에서 사울이 위와 같은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예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테수라'( )는 희귀한 단어로서, 곧 선지자(선견자)에게 무엇을 문의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사례'를 뜻한다(R. Payne Smith). 이런 점에서 공동 번역은 이 말을 '복채'(卜債)로 번역하고 있다.
=====9:8
은 한 세겔의 사분 일 - 이것은 주조(鑄造)된 은화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헬레니즘 시대까지는 은화 및 동전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Klein). 한편 은(銀) '한 세겔'은 약 11.5g에 해당되며, 따라서 사분 일(1/4) 세겔은 약2.9g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하겠나이다 - 이것은 선지자에게 반드시 예물을 바쳐야만 그에게 물어볼 수 있다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사환은 다만 그 당시의 풍습에 합당한 기본적 예의를 갖춘 후 선지자에게 물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9:9
옛적 이스라엘에 - 본서의 저자는 사무엘이 활동하던 당시를 이처럼 오래 전의 일로 봄으로써, 사무엘서가 사무엘이 활동했던 얼마 후에 성경으로 기록되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6:18). 한편 혹자는 9절 전체를 후대의 어떤 필사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11, 18, 19절) 주해(註解)하여 삽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R. Payne Smith). 하나님께...물으려 하면 - 이것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던 계시 수납의 방식이(출 28:30)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Westermann). 물론 이후 시대에도 우림과 둠밈이 간혹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는 여러 형편에 따라 우림과 둠밈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것은 그당시 제사장의 권위가 현저히 떨어졌고, 그 역할도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선견자 - '선견자'( , 로에)는 '보다'(see)라는 동사 '라아'( )에서 파생된 말로, 곧 '보는 자'(seer)라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선지자'( , 나비)라는 명칭이 아직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사용된 명칭으로서(Klein),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측면에 강조점을 둔 고대적 명칭이다. 아욜러 성경에는 '로에'(Roeh)와 더불어 '선견자'(先見者)로 번역되는 단어가 또 있는데, 곧 '호제'( )이다(삼하 24:11; 왕하 17:13; 대상 25:5; 대하 9:29; 사 29 :10;암 7:12; 미 3:7). 이 '호제'(Chozeh)는 정신적(영적)인 것을 '인지하다'(perceive)라는 뜻의 동사 '하자'( )에서 파생된 말로, 역시 '보는 자'(beholder)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명칭은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신령한환상'을 보는 측면에 강조점을 둔 시적(詩的) 명칭이다(R. Payne Smith, F.R. Fay). 한편 '선지자'( , 나비)라는 명칭은 '말하다' (speak), '선포하다'(declare)라는 뜻의 동사 '나바'( )에서 파생된 말로, 이 명칭은 주로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측면을 강조한 율법적 명칭이다. 그러므로 선견자('로에' 또는 '호제')와 선지자('나비')는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으로서(삼하 24:11;사 30:9, 10), 공히 '영감받은 하나님의 사람'을 가리키며, 따라서 선견자와 선지자는 일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사실을 꿈, 환상, 계시 등을 통해 '보고'(seeing), '파악하며'(perceiving), 나아가 그 보여진 것이나 파악된 것을 일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speaking forth) 자들을
=====9:10
네 말이 옳다 - 초기의 사울은 사환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만큼 진지하고 겸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의 자세는 왕으로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9:21 ;10:22). 그러나 이러한 초기 사울의 겸손의 모습은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주관적으로 행동한 망령된 제사 사건(13:8-14) 이후 점차 퇴색되고, 오히려 교만한 자로 바뀌어 갔다.
< 설 교 >
만남의 신앙
사무엘상 9:1-10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의 삶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과정에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모든 삶이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삭의 신붓감을 데려오라는 명을 받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서, 나홀의 성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아 노예로 팔린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을 만났고, 억울한 감옥 생활 중에 바로의 관리들을 만나서 꿈 해몽한 일로 바로를 만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아람 나라의 문둥병 장군인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어린 계집종을 만나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바울이 유럽 전도를 시작하면서 빌립보에 이르렀을 때,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서 그의 집이 복음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부산으로 출장 간 서울 청년이 일주일간 여관 근처 교회에서 새벽기도 하다가 맨 늦게까지 남아 기도하던 처녀와 결혼하게 된 만남도 있었습니다.
두메산골 교회에서 착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가난한 집 여자 아이가, ‘서울 가서 신앙 좋은 가정에서 식모살이라도 하며 야간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무렵, 서울의 강 권사님은 식모문제로 하도 속을 썩이다 못해, ‘잘 믿는 착한 시골처녀 하나 보내 주시면 딸처럼 사랑해 주겠다.’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강 권사님은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울역 대합실로 갔습니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자에 앉아 무릎 위 성경책을 두 손으로 붙잡고 기도 하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권사님이 다가가서 ‘혹시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소녀는 강 권사님 댁에서 야간 성경학교를 다니며 가족처럼 살다가, 독실한 총각 집사님과 결혼하여 성실한 교회봉사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일들을 사람들의 만남을 통하여 섭리하시며 역사하십니다.
특별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만남이 있습니다.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 등. 사람의 평생은 많은 만남들로 이루어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만남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바울이 된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으로 사울은 ‘바울’이 되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인생의 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만남들이 있습니다. 말씀 속의 주인공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입니다. 우리는 그가 인생의 실패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작은 참으로 아름답고 진실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선하시는 만남의 자리로 가 봅시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서 나 자신의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만남의 과정들을 봅시다.
사무엘상 9장과 10장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움 받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이 시간의 본문에는 사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떤 한 가정의 사소한 일로 시작됩니다.
사울이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사환과 함께 자기 집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나섰습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에브라임 산지,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지파 지역까지 두루 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숩’땅에까지 왔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이른 성에는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기 위하여 이 여행을 주선하셨습니다. 즉, 나귀를 잃어버린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장래의 큰 계획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일,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 이면에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만남의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해 봅시다.
1 사환과의 만남입니다.
본문 6-8절을 봅시다. 사환은 사울을 보좌하여 성실하게 따랐습니다. 어느 듯 암나귀를 찾아 떠난 지 오래되어, 사울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하여 돌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바로 그 때, 동행하던 사환이 중요한 제안을 합니다. “이 성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선뜻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도 사환은 자신에게 있었던 은 1/4 세겔을 선뜻 내놓아 선지자를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의 사환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안내자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아람의 장군이면서 문둥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에게도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와서 식모 노릇을 하는 이스라엘의 계집아이에게서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영접하지도 않는 엘리사에게 분노하여 돌아설 때에도 수행하던 종의 권유로 결국 병을 고침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도에게 있어서 성실한 동행자는 영적인 삶에 있어서 큰 가치를 지닙니다.
하지만 이 안내자들은 의견을 존중받을 수 없는 비천한 계급의 사람들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선하시는 만남에는 우리가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겸손한 자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5:5절에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고, 이사야29:19절에서는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다.”고 하셨으며, 이사야57:15절에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2. 좋은 이웃과의 만남입니다.
삼상 9:11-13절을 봅시다. 사울은 사환의 독려를 힘입어 선지자가 사는 성으로 향했습니다. 사울은 성 입구에 있는 우물가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소녀들은 사울에게 선지자의 근황을 상세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차 은혜를 입게 합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주변의 애굽 사람들에게 물질을 요구할 때 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할 때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을 위하여 은혜를 예비하십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레 26:6 /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대하 14:14 /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3. 선지자와의 만남입니다.
삼상 9:14절을 봅시다. 사울은 소녀들 덕분에 머뭇거림도 없이 사무엘 선지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제 하나님께서 뜻하신 최종적인 목적지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임을 증거하십니다.
삼상 9:15-17절을 봅시다. 사울이 도착하기 하루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내일 이 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우연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만남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만남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다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자들을 대접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사람의 자세를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자그마한 일을 통하여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일의 배후에 계셔서 섭리하십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서까지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살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1. 지금의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울은 아버지로부터 집안의 가축을 잃어버렸다는 말과 함께 찾아오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살고 있는 ‘기브아’를 출발하여 주변 지역을 멀리까지 몇몇 일을 힘을 다해 찾아 다녔습니다. 사울이 나귀를 찾아다닌 지역은 직선거리로만 40Km가 넘는 길이었습니다. 만일 사울이 성실하지 못하게 주변을 대강만 훑어보았더라면 사무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일을 맡길 수 있는 자질을 시험하시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일을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25:21 /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고전 4:2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계 2:10 /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 열려진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동행하는 사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비록 신분도 차이가 나고,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견해였지만 들어줄 줄 아는 열린 마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많은 닫힌 마음의 소유자들과 소수의 열려진 마음의 소유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무리들이 닫힌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57에서는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무리들이 마음의 찔림을 받고 취한 행동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열려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무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하시면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유로 가르치시면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1:15, 13:9)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이 열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환을 통하여 사울이 하나님을 의지하는지의 여부를 보려 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묻기 위하여 선지자 사무엘이 사는 성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반드시 분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나아가는 일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인도하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는 화합과 일치, 성결, 사랑의 일들입니다. 만일 세상적 향락이나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거나 거룩함을 방해하며 거룩함과 사랑함을 거스른 것이라면 그것은 사람의 인도함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은 만남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이며, 이 만남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길은 우리의 삶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 매 순간마다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됨
김두옥목사 / 삼상 9:1-10
※ Hallelujah!
- 오늘은 고난주간 넷째 날 목요일을 하루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절교하는 기도를 드리시고 자신을 대속의 제물이 되어 고난의 십자가에 죽으신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 이제 하나님의 자녀 됨에 감사하고 내게 맡긴 십자가 사명을 재확인하고 묵묵히 순종으로 사명 감당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이해와 요약 ◑◑◑
◗ 9장에서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는 배경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이미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인생의 삶과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방법이 소상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 사울은 아버지 기스의 명령을 받들어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 그런데 아버지의 당부를 받은 사울은 그저 형식적으로 이 일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 그는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 그리고 베냐민 전 지역을 두루 다니며 한 마리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헤맸습니다.
- 이렇게 사울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되, 아주 철저하게 순종하는 신실한 아들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이런 자를 들어 이스라엘의 왕이요, 훌륭한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 사울은 사무엘을 찾아가던 도중 산당에서 나오던 사무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 이렇게 사울이 사무엘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발걸음을 사무엘에 게로 인도하사,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기름을 붓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 이렇게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울 작정을 하시고 사울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사무엘 앞으로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 이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 또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지시하였는데, 이는 곧 세상 모든 권세는 참 권세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교훈해 줍니다.
- 그러기에 세상의 지도자 된 자들은 참된 권세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통치권을 사용함이 마땅합니다.
-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시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기 위한 세심한 배려와 섭리가 섬세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 사울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발견하게 됩니다.
◗ 결론적으로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우신 이유는 사울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해서가 아니라 블레셋 지배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 때문이었습니다.
- 우리는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백성들에게 평안과 생명을 주시는 이유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특히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서 행한 일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백성들의 존경받는 자가 될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 유력한 자 30여 명이 모인 자리의 상좌에 그를 앉힘으로써 사울이 왕 될 자임을 암시하였으며, 사울을 산당의 지붕으로 불러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구체적으로 전달했습니다.
- 이렇게 세상 만물과 인간 역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경륜이나 섭리와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이런 섭리자요, 경륜 자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절대 주권을 찬양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고난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삼상9장 3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성도는 크고 작은 시험 앞에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 3절을 살펴보면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스의 가정에서 소중히 여기던 암나귀들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나귀는 부유한 가정의 사람들이 자신의 위엄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즐겨 타던 것입니다.
- 이렇게 소중한 나귀를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볼 때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갈라디아서6장 9-10절에서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아버지 기스와 아들 사울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나귀보다 훨씬 더 귀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 사울이 나귀들을 찾아 헤매며 겪어야 할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고통을 감수하시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며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친히 이 땅에 보내셔서 잃어버린 나귀보다 더 귀한 영혼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 물론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기 위해 높은 산과 들판을 밤낮으로 찾느라고 곤비한 사울과 그의 사환처럼 말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어떠한 위험과 시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저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 무엇보다 사울이 그의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다보니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암나귀들을 찾는 은혜를 입었고 사무엘을 만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잃거나 자신이 귀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어떤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야고보서1장 2-3절에서“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어떤 계획이 내포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 37편 5-6절에서 “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 요셉의 삶을 생각 해 본다면, 순전히 인간적인 시각에서만 본다면 그처럼 재수 없고 일이 풀리지 않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 그는 형들에 의해 느닷없이 미디안의 상인에게 팔려버렸습니다.
-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성실하게 일했던 요셉은 보디발에게 인정받아 가정 총무까지 되었지만, 그것도 잠깐 보디발의 아내의 음해로 말미암아 그만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묵묵히 참고 인내하는 것이 성숙한 인격이 되었던 요셉은 거기서도 성실했던 결과 전옥에게 인정을 받았고 나중에는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을 잘해 주어 억울한 옥살이를 모면할 기회까지 얻었습니다.
- 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의 배은망덕으로 영원히 감옥에서 나올 소망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이 정도면 참으로 하나님을 원망할 만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성경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 오히려 요셉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은혜로 꿈 해몽을 통하여 그 자신이 가장 낮은 곳에서 애굽의 국무총리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 비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행이 찾아왔지만,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축복의 순간을 맞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고난의 과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가 일거에 애굽의 국무총리에 발탁 될 수 있었겠습니까?
- 애굽의 백성과 인근 백성, 그리고 그의 아비와 형제들을 어떻게 기근에서 구원할 수 있었겠습니까?
- 지난 후일에 그가 형들에게 고백하고 있는 대로 그가 겪은 모든 고난과 불행은 그 자신을 높이고 형제들과 당대의 수많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 나름대로 요셉은 이러한 인내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극한 역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릇 된 길로 나아가지 않고 묵묵히 인내함으로 고난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믿음으로 살지만, 현실에 좌절과 낙심되는 일들 앞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그래서 해결 방법이 없다고 포기하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삶은 아닌지? 또한 하나님보다 사람을 찾고 인간적인 해결책에 구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해 봅시다. 사방이 막힘에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습니다.
- 그래서 나 역시도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는 불행이나 역경이 닥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맙시다.
-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행을 얼마든지 행복으로 바꾸기도 하십니다.
-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음 같이 지금 당하고 있는 역경과 고난이 해석이 안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주님께 붙어 있어 인내함으로 버티는 신앙이 됩시다.
- 그리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과 율례를 가르치기도 하시고, 볼 품 없는 사람을 큰 인물로 연단하여 정금같이 사용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