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들이 판옥선 위로 올라와 개처럼 싸웠던 백병전은 실제로 없었다는 것을 아시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선 아다케와 세키부네를 작살냈는지 다들 궁금하실 것이다.
결론부터 설명해드리자면 좁은 골목길에 최홍만 13명이 버티고 서있고 우린 100명이 넘는데 죄다 중딩들이다.
자, 누가 이기겠는가?
한국모형범선클럽 카페의 이준관님이 만드신 판옥선, 세키부네, 가거도 한선 모형이다.
전부 1/65 스케일이며 판옥선이 얼마나 큰 전함이었는지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라 하겠다.
대장선이 먼저 고군분투할 때 왜선들이 개떼들처럼 달려 들었지만 판옥선 갑판에 올라가는 것은 꿈도 못꿀 정도로 어려웠다.
전투 이전에 1:1 맞장을 뜰 때도 키가 크고 덩치가 큰, 특히 팔과 다리가 긴 녀석들이 유리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실 듯
왜선들이 판옥선에 다가가기도 전에 판옥선 함포 사격에 당하는 피해가 1차,
설령 다가갔는데 두돈반 같은 판옥선이 몸빵으로 밀어붙여 지들 배가 작살나는 피해가 2차,
어찌어찌해서 판옥선에 붙었지만 저걸 언제 기어올라 죽어라고 매달렸다가 창에 찔리고 화살 맞는 피해가 3차
뭐 이런 모든 것을 이겨낼 슈퍼 왜군이 있었더라만 전세는 달라졌겠지만 그런 왜군은 없었다.
그러니 조선군 피해가 부상 3명, 사망 2명이었던데 반해 왜군은 셀 수 없는 전사자와 133척이 깨진 것이라 하겠다.

전북 부안 앞바다에 가면 판옥선, 거북선, 세키부네, 아다케 모형이 실제 전시되어 있는데
이걸 보면 왜 판옥선과 거북선이 평저선 모향을 하고 있는지 알게될 것이다.
우리 바다인 서해와 남해의 조력간만의 차가 굉장한데 물이 빠지면 몇 십리는 될 정도의 뻘이 드러나며
이런 상황에서도 거북선과 판옥선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잘 서 있는 반명 아다케와 세키부네는 기우뚱 하다.
조선의 군선들이 회전이 빠르고 연안 방어가 뛰어나네 어쩌네를 떠나
평소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하겠다.
달리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 전함을 가지고도 조선 수군 전체를 말아먹은 원균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했는지 반증한다 하겠다.
그에 비해 13척의 판옥선 만으로도 100여척이 넘는 왜선들을 박살내버린 조선 수군들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함이 우수하다 했더라도 전략과 전술이 없으면 승리를 보장할 수 없었으니
13척의 배로 133척과 대적해야 했던 조선 수군의 간절함과 성웅 이순신 장군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을까?
진도에서는 매년 10월 명량대첩이 벌여졌던 울돌목에서 이를 재현한 행사를 치러왔다.
당시처럼 제대로 된 군선이나 배가 아닌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어선들로 간단한 세트를 만들어 하기 때문에
영화보다 시시하고 재미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행사를 매년 열어 명량해전을 기념해온 전라남도에 감사드리고 싶다.
2014년 명량대첩축제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열린다고 하니 나들이겸 다녀와 보시는 것도 좋겠다.
카페지기야 거가 처가 식구들 고향이라서 간간히 다녀오곤 한다.
울돌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시다면 진도대교를 입력하고 가보시길 권해드리다.
참고: 2014 명량대첩축제 ( http://www.mldc.kr )
작례: 한국모형범선클럽 ( http://cafe.daum.net/sailingship/GcsZ/412?q=%C6%C7%BF%C1%BC%B1&re=1 )
첫댓글 평저선 자체는 연안용 배이고, 용두가 들어가는 세키마루 같은 형태는 대양용 배이긴 합니다.선회성을 중시하느냐, 주파성을 중시하느냐의 차이지요.
가장 큰 차이는. 일본에는 해전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해군은 병력 수송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유명한 해전도 몇 개 없고, 있어도 거의 접현 백병전이었지요. (배 위를 날라다니는 장수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조선함은 말하자면 판옥선 자체는 높은 곳에서 활을 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거기에 장갑을 덧대고 크기의 여유가 되어서 대포 탑제가 가능했습니다. 아마 그 크기로 볼 때, 포탄도 충분한 숫자를 실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 군요.
조선 뿐만 아니라 명나라도 배를 저렇게 만들었는데 멀리 아랍과 유럽에 종종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고려 때에도 우리 배들은 평저선 모양이었지만 동남아는 물론 아랍과 자주 왕래가 있었습니다.
평저선을 연안용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튜닝 김두영(카페지기) 평저선이라 해서 해양에 못나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연안 활동에 더욱 적합하다는 거죠.
물건을 수송하는 배라면야 짐 무게에 의해 자연스럽게 홀수선이 내려갈터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평저선을 연안용으로 보는 이유는 '종파성(파도를 뚫고가는 힘)'의 차이이고, 범선의 경우에 그 강한 바람의 힘을 배가 버티게 한다는 것에서 중요한거죠. 전함이란 측면에서는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세키마루가 범선급이 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죠. (중띄다고 할까요?)
@볼커스텀(김신각) 재미난 얘기가 있는데 세종대왕께서 맘만 먹었으면 동북아 정복도 가능했다는 말이 있어요.
판옥선이나 거북선의 개념, 천지현황자 총통, 대중소 신기전이 이때 만들어졌으니 그럴만도 하죠.
명나라의 군함과 비교해도 절대 밀리지 않았던 배가 판옥선이었으니 일찍 눈을 바다 밖으로 돌렸더라면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은 겪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튜닝 김두영(카페지기) 예. 그저 재미난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제 전쟁이나 정복이 '슈퍼로봇대전' 같은 거였다면, 고레벨 병기의 힘으로 세계정복도 가능했을 겁니다. 똑같은 판옥선 거북선으로도 원균은 칠천량에서 대패하였고, 이순신은 12척만 가지고도 (그것도 전부가 전투 초반부터 동원된 것이 아님에도) 승리를 하였다는 것, 배트남 전쟁서 결국 미국이 패배했다는 점. 등은 단순히 고성능 병기가 전쟁의 모든 것이 아님을 밝히는 중요한 결과들입니다.
현대와 같은 총력전의 개념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전쟁은 결국, 상대방의 주요 전력을 어떻게 꺽을 것인가의 문제이고, 이때 고성능 병기는 큰 도움을 주지만, 그보다는 훈련 정도와 보급, 전투 지역에의
@튜닝 김두영(카페지기) 적응도(물갈이나 전염병등) 등이 좌우해왔습니다.
결과란 싸워봐야 아는 것이니 왈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당시 조선에서 운용 가능한 병력의 양을 생각하면, 그 한계란 명확합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동이족 최강설이 나오는거죠.
준비성이 강한 일본애들이 조선의 많은 정보와 상황을 알고 시작한 것일 터인데,
해전이라는 것은 거의 개념 및 염두에 두지 않았던 터라,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한 것이라고 봅니다.
완전한 복병의 문제가 생기게 됨으로써 새 된 거겠지요.
왜장들의 무능함이 그대로 드러난거죠.
맞춤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고 구태를 따르다 몰살 당한 거라고 봅니다.
마치 월드컵 본선에서 알제리에게 4:2로 털렸던 것과 너무도 닮았더군요.
무릇 우두머리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자만심에 취해 게을리한 것도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이거랑 다른 이야기지만...고려시대 때 몽골이 일본도 침략하려다가 강한 바람(흔히들 카미카제라고 불리우는....)에 의해 실패했었다고 하던데 그나마 고려의 배들은 적지만 상륙하는데 성공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이유중에 하나가 평평한 바닥때문이라고 들었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조선기술이 매우 뛰어났었던 것도 있었구요. 요새는 바닥이 평평한 배들은 거의 안 만들더군요. 기술이 발달했고 항구가 발달해서 필요없어서 일까요?
당시의 배들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함께 공존하는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바닥이 평평한 배들은 요즘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용도에 따라 다양해졌을 뿐이지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