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임도를 따라
봄의 문턱 삼월 하순에 이르렀다. 연일 볕이 화창하고 미세먼지가 없어 야외활동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올봄 들어 두어 차례 비가 내렸지만 오래도록 지속된 가뭄 해갈에는 미치지 못해 앞으로 더 내려주길 기대해 본다. 내가 지난해 이월 퇴직 후 틈을 내 도서관도 나가면서 산행이나 산책으로 유유자적하게 지내다 사월 한 달은 살던 아파트가 낡아 리모델링 하느라 마음이 쓰였다.
이후 늦은 봄 사파동 시청 공한지에 텃밭을 가꾸던 노인으로부터 나에게 경작 의뢰가 와 갑자기 바빠졌다. 파종에 늦은 감이 있었지만 잡초를 뽑아내고 검불을 치우고 몇 가지 열매채소 모종을 사 심었다. 내가 경작을 허여받은 터가 꽤 되어 여러 이랑의 고구마 순을 심었다. 언덕에는 호박도 심어 넝쿨이 나간 호박잎도 따 찬거리로 삼았다. 가을채소까지 가꾸어 이웃과 나누었다.
이 씨 노인이 경작했던 그 텃밭은 시청에서 에어돔 축구장 건설이 예정된 부지였는데 올해 초 공사가 착공되어 다수의 텃밭 경작자들은 모두 철수했다. 나는 퇴직 첫해 얼떨결 텃밭 농사에 동참에 한 해를 그럭저럭 보냈다. 텃밭이 공사 시공으로 사라지게 됨에는 아쉬움보다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이제 진정으로 얽매임이 없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산천을 주유해도 되는가 싶다.
예년보다 벚꽃이 일찍 피었고 나무들을 연초록 잎이 돋는 즈음이다. 나는 그새 몇 차례 들녘이나 산자락으로 올라 자연에서 구한 재료들로 식탁에서 봄내음을 맡고 있다. 봄 한 철은 굳이 텃밭 농사를 짓지 않아도 마트에서 푸성귀를 살 일은 없다. 집을 나서 산천을 누비다 귀로에는 일용할 찬거리를 채워왔다. 어제와 그제는 봉화산과 여항산 임도를 걸으면서 야생화들도 완상했다.
수요일은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는 지기 둘이 나의 야생화 탐방과 산나물 채집에 동행하길 청해 와 마산역 광장으로 나오십사 했다. 셋은 인적 드문 골짜기로 들어 임도를 걸으려고 진전 둔덕으로 가는 76번 버스를 탔다. 나는 삼진 방면으로 나가는 교외의 지형지물이 익숙했으나 대중교통을 타볼 기회가 적은 두 지기는 생소한 풍경인 듯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차창 밖을 바라봤다.
우리가 내린 곳은 종점 둔덕을 앞둔 대량마을에서 내렸다. 나는 작년에 벗과 함께 두 차례 다녀왔던 고사리 임도를 걸으면서 산나물을 채집하고 제철에 핀 야생화들을 완상하기 위해서다.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를 지나자 개복숭아가 연분홍 꽃을 피워 무릉도원을 연상하게 했다. 저수지 둑에서 임도로 드니 사유지 구간에서 무슨 용도일지 모를 집을 짓는 작업을 진행하다 멈춰 놓았다.
예전에 한 농가가 살다 떠난 폐가를 지나다가 보드랍게 자란 머위가 있어 셋은 배낭을 벗어놓고 뜯어 모았다. 청정지역에서 구하는 좋은 찬거리였다. 이후 임도를 따라가면서 보이는 산나물을 뜯었다. 바디나물, 어수리, 까실쑥부쟁이, 나비나물, 멧미나리 등이 새순으로 돋고 있어 허리를 굽혀 뜯었다. 두 지기는 식용 가능 여부를 몰라, 내가 산나물이 되는 것을 짚어주어 뜯게 했다.
진주를 거쳐온 낙남정맥 발산재가 오곡재로 향하는 산등선 임도에 만발한 진달래꽃과 조팝꽃의 열병을 받으며 걸었다. 내가 작년에 캐다 남겨두었던 더덕 자생지는 멧돼지가 주둥이로 파헤쳐 놓아 캐질 못했다. 동행한 두 지기는 평범한 풍광임에도 청청한 숲길을 걸으면서 산나물을 마련함에 흡족해했다. 길바닥에 피어난 구슬붕이와 솜나물꽃을 찾아낸 야생화 탐방 성과도 거두었다.
도중에 김밥으로 간단한 점심 요기를 때우고 하산한 지점은 노인요양원이 있는 원산마을이었다. 운행 간격이 뜸한 둔덕에서 나오는 농어촌버스를 타고 진동으로 나갔다. 셋은 5일장을 맞은 진동 저잣거리로 나가 횟집에 들어 생선회를 앞에 놓고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혼자 다닌 산행인 경우가 많았는데 모처럼 동행한 두 지기와 세상 돌아가는 사정들도 알게 된 시간을 가졌다. 23.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