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때마다 앞자리에 앉으셔서 고개를 끄덕이며 때로 눈물을 찍어내시며 예배드리시던 조감심 할머니께서 몸이 더욱 안좋아지셨다. 평소에 늘 아프셔서 갑자기 심해지면 응급실로 모셔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진정하고 올 때도 있었다. 심장은 풍선처럼 부어있고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으며 속 전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도 했다. 손 한쪽도 못쓰시고 몸 전체가 불편해서 교회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부축할려고 하면 괜찮다고 하시며 혼자서 끙끙대는 일을 해내신다.
기대고 의지하는 모양새를 싫어하신다.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간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독립심이 강한 어린 양 같다고나 할까? 쓰러질 듯한 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꿋꿋한 표정에서 할머니를 붙잡고 있는 또다른 힘을 느끼곤 한다. 나이가 들어도, 어느날 몸져 누워도 저런 모습이었으면 싶다. 올 해로 여든이 되셨는데 언제 이 세상을 떠나실지 몰라 모두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산다.
엊그제는 녹두죽을 쑤어가지고 할머니댁으로 갔다. 날씨가 이제 제법 남도의 봄빛을 반사하고 있었고 원동마을의 황토밭에는 일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부쩍 늘어가는 때였다. 할머니는 하얀 띠를 이마에 두르고 누워 계셨다. 얼굴도 뚱뚱 붓고 푸석푸석한 채 홀로 병마와 씨름하고 있었다. 숨소리가 많이 거칠어지셨다.
"할머니, 좀 어떠세요? 오늘같이 따뜻한 날씨에는 마루에라도 나가시면 좋을텐데... "
"아이구, 사모님-- 왜 또 오셨어--애기들도 있는데..."
"지난번에 김순임 집사님께서 녹두 주신 거 있었거든요.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녹두죽을 쒀 봤다는 거 아니예요. ^^ 맛이 없더라도 좀 드셔보세요. "
"뭘 이런 걸 자꾸... 엊그제도 죽들 쒀다 줘서 먹었는디... 저 밥통 안에도 영삼이 어메가 쒀다 준 찹쌀 죽도 있고... 이러지 마시랑께... "
"할머니는 참 인기도 좋으시네요. 할머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다들 할머니가 좋아서 그러지요. 부담 가지실 것 없다니까요. 제가 죄송하네요. 아이들하고만 들볶이다가 매일 와보지도 못하고... 당기지 않으면 그냥 가져 갈까요? "
천천히 일어나 앉으시더니 웃목에 챙겨 놓으신 숟가락 하나를 집어드시고는 연거푸 대여섯 숟가락을 떠드셨다.
"조금 이따 또 먹을라우. 여기에다 놓으슈."
"할머니, 이렇게 혼자 누워계시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시지요? "
"... 야... 저- 짝 바다까지 낙지잡으러 몰려가서, 보따리는 모래밭에 팽개쳐 놓고서는--^^ 참 재미있었지라. 그 때는 낙지 잡는 사람이 엄청 많았지... "
가쁜 듯 숨을 헐떡헐떡 몰아내신다. 목구멍에서 가느다란 쇳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 하다. 말씀하기 힘드실까봐 더 이상 여쭤보지도 못하겠고, 가만 있자니 너무 공허하고, 오지 말라고 미안해 하시면서 한번 앉아있으면 가라는 소리는 안하시고... 어르신네 앞에서는 그냥 앉아있어야 할 때도 많은 법이다.
조금 이따 마루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어보니 이웃집 친구 할머니다. 그 좁은 마루도 간신히 기어기어서 방으로 들어오신다.
"좀 어떠우? "
"질부는 좀 어떤가? 아이구 빨리 죽어야 되는디 쉽게 죽어지지도 않고... "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들을 아무렇지 않게 서로 인정하며 주고 받는 인사말들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할머니, 이 세상에 오실 때 할머니 마음대로 오시고 싶어서 오신 것도 아닌데요 뭐. 가실 때도 하나님이 '이제 이 세상에서 누워 있을 일도 끝났으니 그만 이리 오너라' 하실 때 가시는 거지요. "
"... ^^, ^^.... 그러게 말요."
하나님 앞에서 어떤 특별한 상급을 소망하며 행하는 인간의 선행들이 얼마나 쓰잘데 없는 자기 욕심의 발상인가 하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아픈 할머니나 돈이 없는 사람이나 아무 재능도 없이 그냥 살아가기만 하는 사람이나, 남에게 유익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녹두죽을 쑤어가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똑같이 그 속에서 '예수믿는 믿음'만을 찾으시는 공평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참으로 없는 것이다.
"할머니도 혼자 사셔요?"
"누구시더라? 아... 교회 사모님이시구만? 야... 아들 딸이 서울 살지라."
"서방이 일찍 갔어. 갑자기 없어졌지. 행방불명 됐어. "
"몇살 쯤에 그렇게 되셨어요? "
"몰라. 한 스물 다섯 쯤 그랬지. "
"지금 80이신데... 너무 오랫동안 혼자 지내셨네요. 그때 새 사람 만났으면 좋았을텐데요. "
"너무 몰라서 그랬지. 이건지 저건지 아무것도 생각할 줄도 모르고 그저 시어미 시애비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농사 짓느라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우... "
"그냥 순진하셔서 그랬겠지요. "
" ^^ ^^ "
"뭘 좀 먹었는가? "
조감심 할머니께서 친구 분을 챙기신다.
"이 허리를 움직일 수가 없으니, 뭘 해먹을 수가 있어야지. "
"이거라도 먹어봐. "
끙끙대며 깨죽 한깡통을 집어들길래 얼른 나가 좀 데워다 드렸더니 숟가락 든 손이 바들바들거리면서 힘겹게 다 드신다.
"아들은 왔었다더니 왜 입원 안했어?"
"어제 가라고 했어. 입원하면 뭐혀. 자식은 다시 올라가야 허고, 나 혼자 병원에 있어봤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그냥 집에 있는게 제일 낫지... "
"그려, 그냥 이러다가 빨리 죽으면 제일 좋은 것인디... "
조금 있으니 또 한숨 몰아쉬는 소리와 함께 마룻바닥을 기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보았다. 어?
"혹시 지금 요 앞 양파 밭에서 풀 뽑다 오시는 거예요?"
"아-- 예, 예... "
사실 속으로 너무 놀라워서 여쭤본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이 할머니 맞나? 해서... 할머니네 들어오는 길목 양파밭에서 머리에 수건 받치고 모자를 눌러쓰고 풀을 뽑는 분이 '아주머니'려니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지금 막상 얼굴을 보니... 세상에! 양파밭에 꾸부리고 있기에는 너무 늙으신 얼굴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82세 되셨다고 했다. 손주를 데리고 있다고 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몸으로는 일해서는 안될 몸이었다. 80이상이 되도록 양파밭에서 풀을 뽑고 있어야 하다니... 건강하면 모르지만, 그 할머니도 병색이 완연하다. 살 점 하나 없이 깡마른 얼굴에 짙은 주름 살이 패여 있다. 골골이, 살아있어야 하는 생의 피곤함과 '약속'을 모르는 자의 기약없는 시간의 의미가 무색하게 배어 있다. 말씀하실 때마다 아래턱이 떨리고 손도 떨린다. 좀 앉아 있더니 금새 옆으로 쓰러질 듯 누우셨다. 자식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똑같이 육신의 아픔과 외로움에 실려 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제는 따질 이유도 없어진 혈육에 대한 섭섭함은 가슴 속 어느 구석에나 숨겨져 있는 듯 하다.
질병, 칙칙함, 죽음의 그림자들을 뚫고 이웃 사람들이 들락거린 흔적이 여기저기 엿보인다. 빨래는 널려있고, 부엌에는 깔끔하게 설거지가 되어 있고, 방청소, 마루청소가 되어있다. 웃목 구석에 시루떡, 과일 들도 보인다. 할머니가 갑자기 그걸 한 손으로 끌어다가 내 앞에 놓으신다.
"이것 좀 갖다가 애기들 좀 줘. 내가 갖고가고 싶어도 도저히 못하겠당께. 나는 그런 거 먹지도 못해... "
오래되어서 시들해진 사과, 배 그리고 팥시루떡이 한꾸러미였다. 주고 싶은 할머니 마음이 전해져서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뿌듯해 하시고 좋아하신다.
"예, 아이들 맛있게 먹일께요. 고맙습니다."
2월 하순께 오후의 햇살이 어찌 이리도 따순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고 했던가... 방금 나온 할머니네 방 안과 이 곳 바깥의 색깔이 어찌 이리도 다를 수 있는지... 이 땅에서의 생명의 꺼져감과 피어남의 주관이 하나님께 있고,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예수를 위하여 죽어가게 하시고 예수를 위하여 새롭게 피어나게 하신다. 지든지 피든지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지는 것을 보면서 그와 같이 지고 말 이 땅에서의 안개같은 존재를 보여주신다. 새로 피는 것을 보면서 생명의 잉태가 생명을 거두시는 자에게서 똑같이 발생됨을 보여주신다.
지금 내가 살아있음이 무슨 의미인가. 조감심 할머니가 내게 무슨 의미인가. 내 쪽에서 내세울 삶의 존재이유와 그 끝이 하나도 안보인다. 저 풀이 내게 무엇이며 저 빛난 햇살이 내게 무엇인가. 내 영광이 하나도 안보인다. 인간의 영광이 하나도 안보인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조감심 할머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알 뿐이다. 그래도 무엇인가 열매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 예수님이 애쓰셔서 다 해놓은 것 뿐이라는 것을 성도는 말할 뿐이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기 때문에 포도나무라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어디서 내가 전도왕이라는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며 어디서 내가 낙타무릎 되도록 기도했다는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며 어디서 내가 사람들을 섬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남편이 있으나 없는 자같이 살라고, 자식이 있으나 없는 자같이 살라고, 젊은 생이 펼쳐져 있으나, 안개같이 사라지는 것임을 알라고, 건강한 것 같으나 그 끝이 죽음인 죄인의 연약함을 알고 살라고, 이 땅에 영원히 살 것 같으나 오늘 밤 내 영혼을 취할 자가 있음을 알고 겸비히 살라고, 우리들 앞에 조감심 할머니를 두셨다. 이웃 노인 분들을 두셨다. 풍부하고 윤택한 삶의 성장을 꿈꾸는 우리에게 오늘도 우리 주님은 땅에 속한 가난을 알라고, 가난한 심령을 허락하신다. 하루하루 예수 믿을 것 밖에는 다른 소망이 없게 만드시는 주님의 능력! 그래서 진실로 예수 믿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다.
살 날이 '오늘 하루' 남은 것처럼 이번 주 내내 아침마다 조감심 할머니 집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오늘 아침도 오목사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6-17) "
"아멘."
"---할머니가 내일까지 살다 가시던지 모레까지 살다 가시든지, 아니면 오늘 하루 살다 가시든지 예수님께서 주신 믿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끝까지 할머니를 끌고 가시는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
"아멘."
"죽으나 사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영생의 복을 이미 다 받으신 할머니, 오늘 하루도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의 진정한 이웃, 예수님이 지나간 십자가의 흔적 속에서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지는 조감심 할머니를 보고 싶다(*).
* 조감심 할머니는 3월 3일 주일 오전 9시 20분 경, 이땅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성도의 생명이 이땅에 있지 않음을 마지막까지 증거 하면서(롬 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