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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500(20)상호~선지식~성관음
255. 상호 (相好) ☀불교에서 나온 말
온화한 모습이거나 밝은 표정일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부처님의 모습을 상호(相好)라 하던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 보통명사화 된 것으로 보여진다.
범어 ‘kaksana'와 ’anuvvanjana'가 합쳐진 용어로 32상(相), 80종호(種好)의 합성어이다.
256. 새해 풍습
새해의 불교 의식으로 ‘통알(通謁)’이 전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통알은 부처님을 비롯한 삼보와
호법신중, 인연 있는 일체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을 칭한다.
통알의식(通謁儀式)은 새해 첫날 예불을 마친 본말사(本末寺) 사부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엎드려 청하옵니다 일대교주 부처님이시여”를 세알(세 번 말함)삼배한다. 이어 법보에 세알(歲謁)
삼배하고 대중 가운데 큰 어른스님을 모시고 세알 삼배를 하고 명부시왕 호법신중께 세알 삼배를 올린 후 스승과 부모, 친척, 일체 고혼에 삼배를 한다.
이어 비구, 사미, 비구니, 사미니, 재가불자 순으로 서로 간에 삼배를 올린다.
통알(通謁)은 일반적인 세배와 달리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삼보(三寶)로부터 은혜를 입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통괄적으로 그 동안의 은덕에 감사드리고 모두에게 부처님의 자비광명(慈悲光明)이 함께
할 것을 기원하는 불교 고유의 의식이다.
257. 색즉시공 (色卽是空) ☀불교에서 나온 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다.
원제목<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란 10자까지 합해도 270자 밖에 안되는 짧은 경전이지만 그 속에
대승교리가 총괄되어 있다고 한다.
‘반야’의 원어는 프라즈냐(prajna)인데 지혜를 뜻한다. 그것이 자비의 보살인 관음의 행증(行證)으로써
개오(開悟)된 형태로 표현된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처음에 ‘오온개공(五蘊皆空)으로 조견(照見)’한다 했는데, 오온이란 것은 모든 존재와 그 인식을 색, 수, 상, 행, 식(色,受,想,行,識)의 순서로 ‘온(蘊:모인 것이라는 뜻)’ 한마디에 압축시킨 것이다.
즉 오온개공이란 것은 색(色:눈에 비치는 외계의 색경,色境)이라는 물질계와 ‘수(受)’에서 ‘식(識)’까지의
4단계의 정신계가 모두 다 ‘공(空)’이라는 말이다.
‘空’이란 단순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무(有無)의 그리고 근저(根底)의 부동(不動)한 것을
가리키며, 거기서 모든 것이 나타나고, 또한 반대로 거기로 모든 것이 흡수되는 바 그 원점, 원세계를
가리켜 ‘공(空)’이라 한다.
또한 온(蘊), 처(處:12處), 계(界:18界)라고 해서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작용)과 이에
대응하는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의 여섯 外界)을 12의 1류(類)로 한 것이 ‘처(處)’이다.
그 12에 육식(六識:六根과 같은 意識)을 가한 것이 18계(界)이다. 이런 온, 처, 계 세 가지에 의해 우리가
경험하는 사바세계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이상은 총론이고 ‘색즉시공’이하가 각론이다. ‘식(識)’을 ‘빛갈’이라고도 말해서 물체의 표면마다 나타나는 빛의 성질을 뜻하는 것은 곧 물체의 표면마다 다른 빛의 성질이 있기 때문이니까 일제제법(一切諸法)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즉시(卽是)’요, 곧 ‘공(空)’이다. 왜냐하면 색이 참으로 근거를 둔 곳을
눈뜨게 하기 때문이다.
색즉시공은 우리가 외계의 사물과 하나가 되는 지혜이고, 그 지혜의 힘으로 이제까지 바깥에 보이고 있던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보이고, 또 사랑(자비, 은혜)의 마음속에서 일체화된다. 그것이 색즉시공이다.
색으로 변하지는 않지만 불, 보살이 힘을 통해서 발현(發現)실증된 세계는 그 풍경이 새롭게 바뀌어 모든 사람에게 무한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다. 그러한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반야개공(般若皆空)의 심요(心要)를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즉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 사리불을 위해,
① 五蘊皆空의 뜻을 말했는데 ‘諸法의 空相은 不生, 不滅, 不垢, 不增, 不 減이고 그러한 生滅, 垢淨,
增減의 分別, 相對化를 떠나 있으므로 ‘空’ 속에는 色(受,想,行,識)의 五蘊도 없다.
그러므로 ‘色(蘊)卽是空’이다.
② 눈(귀,코,혀,몸,뜻)의 六根도 없고(眼根卽是空), 色(聲,香,味,觸,法)의 六 境도 없다(色境卽是空).
또한 眼識界도 없고 意識界의 六識도 없고 無 明에서 시작하여 老死에서 끝나는 十二因緣의 生도 없고
마찬가지로 그 無明盡이하의 十二因緣滅도 없다고 한다.
③ 또한 苦,集,滅,道의 사제도 없고 智(捨)도 없고 得(不捨)도 없다. 즉 無 所得이라고 한다.
④ 菩薩은 般若의 智慧 즉 空智에 의지하므로 顚倒夢想(無를 有로 보는 잘못)을 떠나서 涅槃(깨달음)을
다하고
⑤ 諸佛은 마찬가지로 空智에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를 얻 는다고 한다.
⑥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야말로 大神呪(眞言)라고 한다.
⑦ 마지막으로 그 呪文을 실제로 보이고 끝난다.
☀ 색즉시공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중심사상을 이루고 있어 널리 알려진 말이다.
색(色)이란 형태가 있는 것, 대상(對象)을 형성하는 물질적인 것, 넓게는 대상 전반을 가리킨다.
첫구(句)는 색이란 모두 공(空)에 불과하다 하였고, 대상을 우리들은 어느 특정한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실은 그것은 광범한 연계(連繫) 위에서 그때 그때 대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며,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이미 그것은 대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그 대상에 언제까지나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둘째 구(句)는 그와 같이 원래부터 집착할 수 없는 것을 우리들은 헛되이 대상으로 삼지만,
그것은 공이며 그 공은 고정성이 없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 인간의 현실(存在)이 있다고 설한다.
이것은 일체의 것, 즉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五蘊) 모두에 미치며, 대상(對象:色)뿐만 아니라
주관(主觀)의 여러 작용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258. 생전예수재 (生前豫修齋)
생전예수재는 일명 예수시왕생칠재(豫修十王生七齎)라고도 하며 간략하게 예수재(豫修齋)라 한다.
사후에 갚아야 할 빚과 과보를 미리(豫) 갚아(修) 살아서 사후(死後)의 복전(福田)을 일굼을 말한다.
현생의 삶 가운데 지은 무수한 업과 자신의 과보(果報)를 청정케 하여 죽은 후 49일간 중음계(中陰界)에 떠도는 고통을 면하게 한다는 뜻에서 예수재(豫修齋)는 49일간 베풀어진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루 밤낮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예수재를 행하는 하루는 중음계(中陰界)에서
겪는 고통의 하루가 되는데 업을 청정케 하는 의미로서 재(齋)를 행하며 중음계의 고통없이 재의 기간
동안 익힌 습성의 방향에 따라 또 다른 좋은 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地裝菩薩本願經)>에는 몸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빈궁(貧窮)의 고통이 찾아오지 않고, 선망부모가 왕생극락 할 것이며, 수명장수하고, 생사의 공포를 여의게 된다.
또한 건강하고 뛰어난 용모로 지혜와 재주가 뛰어나고 재산 또한 풍족하고 권속들이 창성한다고
되어있다.
즉 생전예수재의 실행에는 재(齋)를 통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인도를 받는다는 믿음이 담겨있다.
예수재(豫修齋)와 관련된 경전은 <지장보살본원경>을 비롯 <불성예수시왕생칠경> <불설수생경>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 등이 있으며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불설관정수원왕생시방정토경>이 있다.
259. 서건동진급아해동 (西乾東震及我海東) ☀불교에서 나온 말
서건(西乾)은 부처님께서 계셨던 인도를 가리킵니다. 중국인들은 인도를 ‘서천축국’ 또는
‘서건’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동진(東震)’은 중국을 가리킵니다. 이때의 ‘진(震)’은 중국을 뜻하는
‘진단(震旦)’의 줄인 말이며, 인도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진이라고 부릅니다.
‘아해동(我海東)’은 우리나라를 지칭합니다. 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바다 건너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하여 ‘해동(海東)’이라 불렀고, 우리나라 스님들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해동사문(海東沙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260. 서산대사 (西山大師)
휴정, 청허(休靜,淸虛 1520~1604)스님은 평남 안주 출신으로 호는 청허(淸虛)이고,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한다.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했다. 15세에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을 스승으로 모시고 10여 년 동안 수행했고,
영관의 법을 이어받은 후 금강산 · 묘향산에서 수행했다.
경술년(1550년) 가을에 나는 금강산 향로봉에 있었다. 어느 날 묘향산에서 왔다는 한 수행승이
부처와 중생은 무엇이 다르고, 번뇌는 왜 일어나는지를 몹시 간절하게 묻기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했다.
ㆍ불성을 보려거든
마음이 바로 불성인 줄 알고 3도(途, 지옥, 아귀, 축생의 생존)를 벗어나려거든
마음이 바로 3도인 줄 알라.
ㆍ정진이 바로 석가모니
청정한 본성이 바로 아미타불 밝은 마음이 문수보살 원만한 행위가 보현보살
자비가 관세음보살 희사(喜捨)가 대세지보살이니라.
ㆍ성내는 마음이 바로 지옥
탐욕이 바로 아귀 어리석은 마음이 축생 음욕과 살생 또한 그러하니라.
ㆍ일어나는 마음이 천마(天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음마(陰魔)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그것을 번뇌마(煩惱魔)라고 한다.
허나 우리의 바른 법 안에는본래 그런 것 없느니라.
ㆍ그대가 그런 줄 알았거든 속히 금강의 칼을 잡고 한 생각 속으로 빛을 돌리면
모든 현상이 다 환상이 될 것이다.
ㆍ환상 또한 병이 되니 모름지기 한 생각 놓아버려라.
놓아버리고 또 놓아버리면 본래의 청정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淸虛堂集 제4권, 禪敎偈語>
휴정은 33세 되던 해(1552년, 명종 7년)에 새로 부활된 승과에 합격하여 대선이 되었고, 3년 만에
선교양종판사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휴정은 4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에 이르는 동안 묘향산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는데,
그에게 1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73세 되던 해(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평안도 의주로 피난한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했다. 이에 휴정은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모집했다.
그리하여 평남 평원 법흥사(法興寺)에 1천5백여 명의 승군이 집결했고, 그의 제자 유정(惟政)도
1천여 명의 승군을 이끌고 관동 지방에서 와서 도총섭의 승군과 합세했다. 유정은 승군의 대장이 되어
일선에서 실전을 지휘하여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2년 후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85세 되던 해(1604년) 정월, 휴정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자신의 영정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승려 휴정의 영정 글귀
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80년 후에는 내가 그이구나.
그러고는 결가부좌한 채 입적했다. 저서에는 《선가귀감(禪家龜鑑)》 · 《청허당집(淸虛堂集)》등이 있다.《선가귀감》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 가장 요긴하고 간절한 부분을 가려 뽑은 선학(禪學) 입문서이다.
《청허당집》의 1권에는 시 600여 수, 2권에는 서(書)로서 누구누구에게 드리는 글 또는 답하는 글 32편,
3권에는 서(書)ㆍ기(記)ㆍ비명(碑銘)ㆍ행적(行蹟) 등이 있고, 4권에는 소(疏)ㆍ모연문(募緣文)ㆍ
〈선교게어(禪敎偈語)〉ㆍ잡저(雜著)ㆍ〈심법요초(心法要抄)〉ㆍ〈선교석(禪敎釋)〉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선교게어〉에 있는 ‘선교결(禪敎訣)’은 제자 유정에게 보낸 글인데, 선과 교의 차이점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이며, 선은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이고, 교는 말 있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는 것이라 정의한 다음,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면 누구도
그것을 무엇이라 할 수 없으므로 억지로 말하여 마음이라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배워서 알고 생각해서 얻는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고, 교를 배우는 이는 교 가운데도 선이 있다고 하나, 선은 교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선교게어〉에 있는 ‘염불문’은 그의 염불관이 잘
드러나 있다.
염불문
입으로 외우는 것을 송불(誦佛)이라 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염불(念佛)이라 한다.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부처님은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해서는 마음이 곧 부처요, 마음이 곧 정토이며, 자신의 청정한 성품이
아미타불이라 했으니, 이것은 이른바 서방정토가 멀지 않다는 뜻이다.
또 근기가 낮은 사람을 위해서는 10만 8천리나 된다고 했으니, 이는 이른바 서방정토가 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방정토의 멀고 가까움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만약에 누구나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과거와 미래가 끊어져 곧 자신의 아미타불의 정토가
드러날 것이다.
〈선교게어〉 중에서
〈선교석〉은 선을 중심으로 해서 선과 교의 특징과 차이점을 제시한 저술이다. 여러 어록과 논서에서
요긴한 글귀를 인용해서 선에 대해 밝히고, 마지막으로 50여 명의 학식 있는 불도(佛徒)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를 배우는 사람이 묻고 선을 닦는 사람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휴정의 스승 부용 영관(1485~1571)은 13세에 덕유산에 출가하여 3년 동안 수행하다가 삭발한 후,
덕유산에 초암을 짓고 9년 동안 좌선하고, 1521년부터 금강산 미륵봉 내원암(內院庵)에서 9년 동안
좌선했다.
1531년에 지리산에 들어가 벽송 지엄(碧松智嚴, 1464~1534)을 만나 20년 동안의 의심을 녹이고 크게
깨달았다. 이로서 고려의 태고 보우에서 시작된 임제종의 법맥을 계승해서 휴정에게 전했다.
휴정의 제자 1천여 명 가운데 뛰어난 제자가 70여 명이었고, 그 중
사명유정(四溟惟政)ㆍ편양언기(鞭羊彦機)ㆍ소요태능(逍遙太能)ㆍ정관일선(靜觀一禪)은
4대파(四大派)를 형성했다. <사명유정은 사명대사:참조>
편양언기 (1588~1644)는 11세에 출가하여 현빈(玄賓)에게 배우고, 묘향산에 가서 휴정(서산대사)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금강산 천덕사(天德寺), 구룡산 대승사(大乘寺), 묘향산 천수암
(天授庵) 등에 머물면서 학인들을 지도했는데, 그의 문하에서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어 4대파 중에서
가장 번창했다.
저술에 《편양당집(鞭羊堂集)》이 있는데, 그의 시문이나 선교에 대한 법문은 매우 간결하고 쉬운 것이
특징이다. 선은 부처의 마음을 전한 것으로,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은 들어갈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임시로 교를 빌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교는 근기가 낮은 사람이 선에 들어갈 수 있는
문호라 했고, 모든 경전은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양하게 설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소승과 대승,
깊고 얕음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가르침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청정한 성품이라 했다.
이 성품을 깨닫는 방법에는 화두(話頭), 자신의 성품에 대한 관조, 그리고 염불이라고 했다. 이 셋은 비록 방법의 차이는 있으나 그 어느 방법으로 자신의 성품을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그 경지에는 차별이 없다고 했다. 소요 태능(1562~1649)은 13세에 장성 백양사(白羊寺)에 출가하여 선수(善修)에게 경전을 배운 후에 묘향산에 가서 휴정의 문하에서 20년 동안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휴정의 제자 가운데 편양 언기와 함께 양대 고승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문하가 소요파(逍遙派)를 형성했다.
정관 일선(1533~1608)은 15세에 출가하여 《법화경》에 심취했고, 휴정(서산대사)의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임진왜란 때 승려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고 개탄하고, 유정에게 글을 보내 ‘빨리 관복을 벗고 승려의 본분을 다하라’고 권했다.
휴정과 그 문하에 의해 조선불교는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했다. 교리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많은 종파들이 통합되었고, 산 속에서 하나의 선풍을 형성하여 그 법맥은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261. 석굴암 보살, 신중, 제자상 (石窟庵,菩薩,神衆,弟子相)
석굴암 석굴을 들어서면 본존상을 향해서 오른쪽 벽에 가루라, 건달바, 야차, 천(天)이 석굴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도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높다란 장식이 달린 투구를 쓰고 왼손에 삼지창 형의 짧은 창을 들고 서 있는 것이 ‘가루라’이고,
왼손에 정병을 들고 오른 손에 칼을 잡고 있는 것이 ‘건달바’이며, 머리에 불꽃 모양의 장식이 있고.
염주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 ‘야차’이고, 오른 쪽 어깨 위로 칼을 들고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있는 것이 ‘천’(天)이다.
가루라는 금시조, 묘시조라고 하는 신화 속의 새로서, 밀교에서는 대범천, 대자재천의 화현이라 한다.
건달바는 제석의 음악을 맡은 신으로, 향기만 먹고 산다는 신중이다.
야차는 나찰과 함께 북방을 수호하는 다문천왕의 권속이다. 그리고 천은 데바(Deva)로서, 광명, 자연,
청정, 자재, 최승 등의 뜻을 가진 신중이다.
왼쪽 벽에는 굴 입구에서부터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 용(龍)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왼쪽과 무릎아래가 훼손된 3면(面) 8비(臂)상이 ‘아수라’이고, 왼손에 긴 창을 잡고 오른 손에 경책을 잡고 있는 것이 ‘긴나라’이며, 머리 위에 사자 한 마리가 납작 엎드려 앞발로 목을 감싸고 있는 것이
‘마후라가’로 보이며, 머리에 용 한 마리를 이고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것이 용의 상이 확실하다.
아수라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고, 긴나라는 모습이 사람인지 짐승인지 또는 새인지 일정하지 않은 존재이다. 마후라가는 몸은 사람과 같고 머리는 뱀 모양으로 용의 무리에 딸린 악신(樂神)이다.
용은 본래 인도에 사는 용 종족들이 뱀을 숭배하는 신화에서 탄생하였다.
팔부중이 양쪽에 도열해 있는 전실 안쪽 ‘ᄀ’자로 꺾인 비도(扉道)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이 부조되어 있다. 금강역사는 인왕이라고도 하는데, 여래의 온갖 비밀 사적(事跡)을 알고 있으며, 5백 야차신을 시켜
현겁 천불의 법을 수호한다는 신이다. 상반신은 벗은 채 허리에 옷을 걸친 용맹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본존을 향해서 왼쪽 벽에서 입을 벌리고 바위에 서있는 것이 ‘아’금강상이고, 오른쪽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훔’금강상이다. 여기서 ‘아A', ’훔UM'은 곧 ‘옴OM'의 발성으로, 이것은 발생과 종극을 의미한다.
석굴암 금강역사상은 침범할 수 없는 표정이면서도 조금도 악기(惡氣)가 없는 얼굴, 날쌘 동작의 순간을 포착한 듯 사악한 자를 물리치는 무적의 위력이 근육과 자세에 드러나 있다. 두광은 금강역사가 단순히
힘 센 장수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위대한 마음을 지닌 부처님이 현현임을 암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비도(扉道) 양쪽 벽에는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사천왕은 욕계 6천의 제1인 사왕천의 주재자로서,
수미산 중턱 4층급을 주처로 하고 있는 신이다. 모두 도리천의 주재자인 제석천의 명을 받아 4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동작을 살펴 이를 제석천에게 보고한다.
비도(扉道) 오른쪽 벽에 있는 것이 동방 지국천과 북방 다문천이고, 왼쪽 벽에 있는 것이 남방 증장천과
서방 광목천이다. 지국천은 두 손으로 잡은 칼을 가슴 위에 올려놓은 자세로 전실 쪽을 바라보고 서있고, 다문천은 오른 손에 탑을 들고 주실 쪽을 바라보고 서있다.
그리고 증장천은 가슴 높이에서 칼을 두 손으로 비껴 잡고 전실 쪽을 바라보고 있고, 광목천은 다리를
꼰 자세로 서있다. 모두 턱이 길고 코가 우뚝한 서역풍의 얼굴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당당한 위풍과 발 밑 악귀의 당혹한 표정이 대조적으로 벽면에 약동하고 있다.
주실에는 제석천, 범천, 보살상, 제자상 등이 원형의 벽면에 조각되어, 벽 위 감실에는 환조 형태의
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주실 중앙의 본존여래를 기준으로 할 때 입구 쪽 좌측면에 있는 것이 ‘제석천’이고, 우측면에 있는 것이 ‘범천’이다. 제석천은 왼손에 금강저, 오른 손에 불자(拂子)를 들고 있으며, 범천은 왼손에 정병을,
오른 손에 불자를 잡고 있다.
범천은 대범천왕이라고도 하는데, 색계 초선천의 주재자로 색계 대범천의 높은 누각에 거주한다.
불교에서는 제석천과 함께 정법을 옹호하는 신이라 하여, 부처님이 세상에 나올 적마다 반드시 제일 먼저 설법하기를 청한다고 한다. 또 항상 부처님을 오른 편에 모시면서 손에는 흰 불자를 들고 있다.
한편 제석천은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의 임금으로, 선견성 안의 수승전에 살면서 4천왕과 32천을
통솔하고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수승전에 걸려 있는 그물이 제망(帝網)인데, 예불문에 ‘제망찰해’라고 하는 ‘제망’이 바로 제석천의
그물이다. 제석천은 보배병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것이든 원하기만 하면 이 병에서 모두 나온다고 한다.
제석천, 범천 옆에 보살이 서있는데, 제석천에 인접해 있는 것이 ‘문수보살’, 범천에 인접해 있는 것이
‘보현보살’이다. 홀 중앙에 앉아 있는 여래의 입장에서 볼 때 문수보살이 좌협시, 보현보살이 우협시가
되는 셈인데, 이것은 석가삼존불 형식과 같은 것이다.
문수보살상은 전신에 호화로운 장식을 하고 오른 손에 잔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이 보살은 여래의 여러
가지 덕 중에서 지식과 지혜와 깨달음을 관장한다. 보현보살상은 천으로 된 모자를 쓰고 왼손에 경책을
잡고 있는 모습인데, 선정(禪定)과 실천을 관장한다.
두 보살상에 이어 좌우 세 번째 상부터 다섯 명씩 모두 열 명의 부처님 제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제자들 각자가 뚜렷한 도상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어떤 상이 어느 제자상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수보살상 오른쪽에 도열해 있는 상이 사리불, 마하목건련, 마하가섭, 수보리, 부루나의 상으로, 보현보살 왼쪽에 도열해 있는 상이 가전연, 아나율, 우바리, 라후라, 아난의 상으로 알려져 있다.
제자상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왼손에 잔과 자루 달린 향로를 들고, 오른 손을 가슴에 대고 있는 이가 지혜제일 ‘사리불’이고, 두 손을 얼굴에 대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이가 신통제일 ‘마하목건련’이며,
오른 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 이가 두타제일 ‘마하가섭’이며, 경권으로 턱을 괴고 서있는 이가 해공제일
‘수보리’이며,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으로 가사를 잡고 있는 이가 설법제일 ‘부루나’이다.
보현보살 왼쪽의 다섯 제자상 중에서 자루 달린 향로에 향을 넣고 있는 이가 논의제일 ‘마하가전연’이고, 두 손을 주먹으로 맞잡아 턱을 괴고 있는 이가 천안제일 ‘아나율’이고, 오른 손을 가슴에 들어 엄지와
검지로 둘째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표시하고 있는 이가 지계제일 ‘우바리’이고, 왼손으로 발우를 들고
있는 이가 밀행제일 ‘라후라’이고, 두 손을 가슴 높이에서 깍지 끼고 있는 이가 다문제일 ‘아난’이다.
대부분 노안이나 그 표정 속에는 고행을 참고 이겨낸 경건한 침묵이 흐르고,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성스러운 모습이 나타나 있다.
본존의 뒷면 벽 중앙에 ‘십일면관음보살상’이 부조되어 있는데 이 상에 대해서는 본문 11면 관
세음보살상을 참조한다.
원형 벽과 궁륭 천장이 접하는 곳에 10개의 작은 감실이 마련되어 있고,
그 속에 8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존상의 명칭은 연구자에 따라 다른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을 보면, 오른 손으로 경책을 들고,
왼손은 내려서 무릎 위에 살짝 놓고 있는 이가 ‘보현보살’, 왼쪽 무릎을 세워 팔꿈치를 대고 고개를 숙여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이가 ‘허공장보살’ 또는 대세지보살, 높은 보관을 쓰고, 손바닥에 용화수화
꽃봉오리를 올려놓고 있는 이가 ‘미륵보살’, 왼손 손가락을 구부리고 오른 손 엄지와 장지를 편 설법
자세를 보이는 이가 ‘문수보살’, 금강저 수인의 설법 자세를 보이는 이가 ‘금강장보살’, 왼손에 정병을
들고 화불입상을 새긴 보관을 쓰고 있는 이가 ‘관음보살’, 민머리에 보주를 들고 있는 이가 ‘지장보살’,
팔걸이 탁자에 기대고 웅크리고 앉아 오른손으로 주미(麈尾:큰사슴,주)를 들고 있는 이가 ‘유마거사’이다.
석굴암 석굴 내의 벽면과 감실에 조각되어 있는 보살, 제자, 신중 등 여러 존상들은 각기 석굴 중앙의
본존상을 중심으로 한 만다라 체계상의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석굴 내부 전체 공간을 장엄하고
있다. 이들 존상들이 신성한 것은 여래의 위신력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 여래는 이들 존상들에 의해
더욱 숭엄해지는 것이다.
<사찰100美100選 下卷133쪽, 허균 글, 불교신문사>
262. 석장 (錫杖) ☀불교에서 나온 말
스님들이 갖는 고리가 달린 지팡이로서 원래 인도의 승려가 산야를 유행(遊行)할 때,
흔들어 울려서 독사나 해충을 쫓았던 것을 말한다. 유성장(有聲杖)ㆍ성장(聲杖)ㆍ지장(智杖)ㆍ
덕장(德杖)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지팡이의 일종으로 머리 부분의 석(錫)과 나무자루와 금속의촉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 부분에는 보통 6개의 고리가 달려 있으므로 육환장(六環杖)이라고 한다. 드물게는 12개의 고리가
달려 있는 것도 있다. 이 고리는 석장이 흔들릴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하기 위하여 단 것이다.
263. 석조 (石槽)
큰 돌의 내부를 파서 상수(上水)를 담아 두거나 기물을 씻는데 사용된 석조물이다.
석조는 하나의 돌을 원형, 방형, 장방형으로 내부를 파내어 수량조절과 맑은 물을 담아두기 위하여
유수구(流水口)가 있고 바닥에는 배수구(排水口)가 뚫어져 있다.
264. 선, 선문답 (禪,禪問答)
선(禪)이란 범어(梵語) dhyana의 음략. 선나(禪那)등으로 음역되고 정려(靜慮)ㆍ사유수(思惟修)ㆍ
기악(棄惡) 등으로 번역한다. 진정한 이치를 사유하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이니,
즉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조용히 앉아 선(善)과 악(惡)을 생각지 않고, 그리고 시(是)와 비(非)에도 관계하지 않고 유(有)와
무(無)에 간섭하지 않아서 마음을 안락 자재한 경지에 노니는 것이다.
선문답(禪問答)이란 본래 선가(禪家)에서 깨달음의 내용이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수행자들의 문답을
이르는 말이 선문답이다. 때문에 중생들의 근기로 수행자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범부(凡夫)들에게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본래 불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선사들이 나눈 상근기(上根機) 대화를 의미하는 선문답은 세속으로
내려오면서 ‘알기 어려운 이야기’ 또는 ‘둘만이 아는 대화’ 등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일반매체나 일반인들이 ‘금새 이해가 어려운 대화’를 선문답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
265. 선종 (禪宗)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불리는 부처님의 질문과 마하가섭의 미소가 바로 선종의 기원이다.
이것을 중국 선종의 초조로 불리는 보리달마가 오도(悟道)를 구하는 종을 전수한 이래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선종의 모태인 것이다.
가섭은 아난에게 아난으로부터 상나화수ㆍ우바국다ㆍ제다가ㆍ미차가ㆍ바수밀ㆍ불타난제ㆍ복타밀다ㆍ협존자ㆍ부나야사ㆍ마명ㆍ가비마라ㆍ용수ㆍ가나제바ㆍ라후라다ㆍ승가난제ㆍ가야사다ㆍ구마라다ㆍ
사야다ㆍ바사반두ㆍ마나라ㆍ학륵나ㆍ사자ㆍ바사사다ㆍ불여밀다ㆍ반야다라ㆍ보리달마까지가
인도선의 28대다.
이어 중국에 건너온 보리달마는 중국선의 1조가 되며 혜가, 승찬, 도신, 홍인, 6조 혜능까지 내려온다.
6조 혜능에게서 꽃이 핀 선종은 남악회향ㆍ영가현각ㆍ백장회해ㆍ남전보원ㆍ위산영우ㆍ약산유엄ㆍ
임제의현 등 걸출한 선장들이 탄생 5가 7종이라 불릴 만큼 선(禪)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에는 북종선을 이어받는 희양산파, 남종선을 이어받은 가지산파, 남돈법을 이어받든 실상산파 뿐만 아니라 동리산파, 사굴산파, 성주산파등 선종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선종의 맥을 이어받은 선종종단이다.
지금에 이르러 전통선을 간직한 선종의 형태는 우리나라에만 그 맥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선종오가(禪宗五家)
위앙종: 혜능 - 남악 - 마조 - 백장 - 위산 - 앙산
임제종: 혜능 - 남악 - 마조 - 백장 - 황벽 - 임제
조동종: 혜능 - 청원 - 석두 - 유엄 - 운암 - 동산 - 조산
운문종: 혜능 - 청원 - 석두 - 장황 - 용담 - 덕산 - 설봉 - 운문
법안종: 혜능 - 청원 - 석두 - 장황 - 용담 - 덕산 - 설봉 - 사비 - 나한 - 법안(885~958)
송나라 때 법안종(선사들)은 공안염롱집단(公案拈弄集團:공안으로 공부하는 단체)이라고 불리면서
조당집(祖堂集:南唐의 靜과 筠이 編纂)과 전등록(傳燈錄:宋의 道原이 編纂)등을 만들어 냈으니
오늘날 우리가 화두(話頭:공안이라고 함)를 접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들의 덕분이다.
266. 선종조사 (禪宗祖師)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종조사로는
신라말기 도의선사(道義禪師)를 비롯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개산창주,
고려중기 조계종을 연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
고려말기에 중국의 임제종을 들여온 보우국사(普愚國師),
고려말기 나옹선사(懶翁禪師),
조선중기 불교를 중흥시켰던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休靜)스님
☀ 교종(敎宗)에서는
고구려의 보덕화의 열반종(涅槃宗),
신라의 자장율사의 계율종(慈裝律師,戒律宗),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의 법상종(法相宗),
의상대사의 화엄종(義湘大師,華嚴宗),
진표율사의 법상종(法相宗),
고려시대의 대각국사의 천태종(天台宗).
⌾<황악산 직지사(直指寺 넘어 물한리(勿罕理)에 숨어있던 벽계정심선사(碧溪淨心禪師) →
벽송지엄선사(碧松智嚴禪師) → 영관선사(靈觀禪師) → 서산대사(西山大師)>
267. 선지식 (善知識)
줄여서 ‘지식(知識)’ 이라고도 말한다. 박식한 석학 이상으로 고덕(高德)한 현자(賢者)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흔히 선지식을 선우(善友), 승우(勝友), 친우(親友), 선친우(善親友)라고도 한다.
특히 선종(禪宗)에서는 참선자(參禪者)가 스승(師家)을 선지식이라고 부른다.
또한 진종(眞宗)에서는 신도가 법주(法主)를 그렇게 부르며 공경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어 “칼리아나미트라 (kalyanamitra)"는 ‘좋은 친구’라는 말이다.
그래서 선친우(善親友), 승우(勝友)라고도 번역되어 왔다.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을 선지식으로 삼아 55개소를 돌아 53선지식을 만난다.
이들 53분 중에는 보살, 비구, 비구니뿐만 아니라 장자, 바라문, 외도(外道), 야신(夜神)도 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도 등장하며, 심지어는 몸을 파는 창녀까지 도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선재동자는 자신도 보살이 된다. ‘53’은 인간이 성불하기까지의 단계이다.
그리고 선지식은 몸을 굽혀 예배(拜禮)할 만한 사람 아닌, 배례(拜禮)하는 마음 자체가 이미 부처님이고 보면 인간은 누구나 선지식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
다만 악한 친우는 본래 우리의 동료로 삼을 수 없다. 하지만 불교는 그런 악한 친우의 근본에도
선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가능한 한 끌어내려고 한다.
268. 설판재자 (設判齋者) ☀불교에서 나온 말
설(設)이라 ‘법회나 불사의 모임’ 판(判)은 ‘맡는다.’는 뜻으로 설판재자란 어떤 법회나 불사(佛事)의
중요하고도 큰 부분을 신심으로 맡아 감당하는 기도자(祈禱者)를 말한다.
즉 기도의 핵심적인 주체자를 의미한다.
269. 성관음 (聖觀音)
성관음은 관세음보살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후세에 성립된 다른 변화 관음과
구별하기 위해 ‘성(聖)’이라는 글자를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때에나 32응신 등의 몸을 자유자재로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분으로,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널리 믿고 받드는 관음신앙의 대상이 바로 이 성관음보살이며, 그냥 ‘관세음보살’이라고 할 때는
이 성관음보살을 뜻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자연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중국, 일본과는 달리 성관음보살상을 특별히 많이 모시게 되었고,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성관음보살상과 성관음탱화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성관음보살상의 지물은 왼손에는 봉오리로 상태의 연꽃을, 오른손에는 감로병(甘露甁)을 들고 계십니다. 왼손에 든 연꽃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상징합니다.
그 꽃이 활짝 피어 있다면 불성이 온전하게 드러나 성불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봉오리 상태의 연꽃은 우리 중생들 모두가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의 불성을 그냥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른손의 감로병에는 감로수(甘露水)가 들어 있습니다, 감로는 원래 신들이 상용하는 음료로,
불사(不死)의 영약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 채택하여, 모든 고뇌를 해소시키고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하는 영약으로 감로수를 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관음보살님은 머리에 금빛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보관 중앙에는 부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 부처님은 아미타불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근본 스승(本師)으로 삼아 항상 받들어 모신다고 하였으므로,
이를 조형화(造形化)하여 아미타불을 보관(寶冠)의 중앙에 새겨놓은 것입니다.
성관음탱화를 살펴보면 관음탱화는 관세음보살에 관한 신앙을 그림으로 묘사한 신앙도(信仰圖)이며,
현존하는 관음탱화 중에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이 40여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일본의 소장가나 사찰에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탱화 대부분은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입니다.
고려의 관음탱화를 일반적으로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라고 칭하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름을 붙이면 성관음도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근거하여 묘사한 성관음탱화는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관음경’으로 독립된 ‘관세음보살보문품’이나 ‘능엄경’ 만이 아니라,
‘화엄경’과 화엄사상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됩니다.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인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의 맑고
깨끗한 연못가 금강보석(金剛寶石)위에 관세음보살님께서 결가부좌 또는 한 발을 내리 유희좌(遊戱坐)를 취하고 앉아 법을 묻는 선재동자(善財童子)및 중생을 위해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전경을 묘사한 것이 현재 학계에서 수월관음도라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는
성관음탱화입니다. 하지만 ‘입법계품’ 어디에도 수월(水月), 꽃 물속의 달에 대한 표현이나
‘달’에 관한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관음탱화의 중앙에는 보타락가산에 계신 관세음보살님이 좌정하고 있고, 그 아래쪽에 53선지식중
제 27번째로 관세음보살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 선재동자(南巡童子,남순동자)가 합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관음탱화에는 선재동자, 감로병 외에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것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주위에 등장하는 동해용왕과 염주ㆍ공양자(供養者)ㆍ청조(靑鳥:파랑새)ㆍ
한 쌍의 청죽(靑竹)등의 표현은 다른 나라 탱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표현의 연원은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 중 동해 낙산사(落山寺)를 세운 신라 화엄종의
초조 의상(義湘:625~702) 대사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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