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휴가철이 다가올 즈음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더욱 강해진다. ‘벗어났다’는 느낌은 호락호락 들지 않는다.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한다. 물 건너 이국적 풍물은 당연하고도 적절한 예가 된다. 수정같이 투명한 바다, 길이나 폭이 100m를 넘는 폭포, 전혀 통하지 않는 언어의 사람들, 지평선 끝으로 떨어지는 해, 배를 타고 몇 시간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시베리아 횡단철도. 이름이 아늑한 전남 담양군. 그 느낌대로 향기와 여유, 낭만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캐나다의 숲을 연상시키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조선의 대표적 정원 소쇄원, 영남의 들녘과는 다른 호남들판. 이국적이라 할 수 없지만 영남 땅과는 또 다른 담양의 소재들은 마산·창원을 기준으로 불과 두 시간 거리에 있다.
담양읍까지 이어지는 길 중간 중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선을 뵌다. 이 나무는 흔히 담양의 상징으로 소개되지만 본래 나무를 심은 뜻은 ‘관문’을 표시함이다. ‘살아있는 문’이 되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담양읍 객사리에서 순창군 경계인 금성면까지 15㎞ 구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장맛비 속의 메타세쿼이아에서는 녹음이 실루엣처럼 피어오른다. “빨리 자라고, 녹음이 뛰어나 1992년까지 군에서 가로수로 심었죠. 일종의 담양 관문이에요. 지금은 심지 않아요. 가로수도 다양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늘이 많이 생겨 농작물에 피해도 주고요. 지금은 배롱나무나 왕벚나무를 심지요.” 군청 관계자가 또박또박 전했다. 호남들판의 풍만한 생산의 기운을 담았을까. 면앙정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각각의 정자에서 만들어졌다 하니, 소쇄원 바로 아래 가사문학관에서 자신의 식탐을 시험해볼 수 있다. 흔히 조선 제일의 정원을 겸한 숲(원림)으로 소개되지만 한편으로 권력에서 소외된 조선조 사림문학의 원류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소쇄원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작은 계곡을 건너고 아담한 돌담을 돌아서 걷게 된다. 마을 한 가운데 제월당, 광풍각 마루에서 벽에 걸린 글을 읽으며 소쇄원의 사연을 들어보라. 사림의 처사들이 어떻게 마음 속 광풍을 잠재웠는지 상상하게 된다.
△담양의 이름난 먹을거리 기자가 들른 곳은 담양읍 객사리 군청 근처 민속식당(061-381-2515)으로, 3명 이상이 각각 1만원짜리 정식을 시키면 죽순을 데쳐 초장에 버무린 회가 나왔다. 죽순회 별도로는 1만5000원. 튀김, 장아찌, 정과 등 죽순요리가 많았다. 역시 군청 근처 덕인관(061-381-2194)에서는 떡갈비 요리와 1인당 2만원이 넘는 대통밥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
테마별 일상탈출(2)울산 방어진 | |||||||||||||||||||||||||||||||||||||||||||||||||||||||||||
바람 타고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 | |||||||||||||||||||||||||||||||||||||||||||||||||||||||||||
| |||||||||||||||||||||||||||||||||||||||||||||||||||||||||||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 |||||||||||||||||||||||||||||||||||||||||||||||||||||||||||
| |||||||||||||||||||||||||||||||||||||||||||||||||||||||||||
| |||||||||||||||||||||||||||||||||||||||||||||||||||||||||||
폭염 속에서는 여행 가는 길에 운전하는 일도 힘들다. 마산·창원 지역을 기준으로 두 시간 거리의 여행지 울산 방어진은 운전 부담을 떨칠 수 있는 곳이다. 하룻밤 묵을 계획이 아니라면 가방 하나씩 들고 가뿐하게 버스에 타면 그만이다. 더구나 방어진의 대왕암 공원에서는 해수욕 삼림욕에 해녀가 직접 따다주는 멍게·해삼 맛을 탁 트인 동해와 함께 맛볼 수 있다.
홀랑 벗어던지고 동해를 수영으로 한번 휘저어 보겠다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무슨 바닷물이 그렇게 차가운지…. 발이 시려 계곡에서 뛰어나온 적은 있어도 바닷물에서는 대왕암의 해수욕장이 처음이었다. 계곡물은 눈 꾹 감고 1분 만 견디면 감각이 무뎌졌는데, 이건 들어갈 때마다 30초도 못 버티고 뛰어나왔다. 어떤가? 두 시간의 버스 여행으로 동해도 보고, 얼음물에 몸 한번 담그는 것이. 지난 1일 오전 8시25분 마산 합성동 버스터미널에서 울산행 직통 버스를 탔다. 도내 대부분 도시에 울산행 직통 버스가 있지만 마산에서 운행하는 횟수가 가장 많다. 막히지 않을 경우 한 시간 30분 걸린다. 요즘은 버스터미널에만 가도 간단한 피서가 된다. 모두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지 않는다면.
피서는 취향에 맞추는 것. 일산해수욕장 끝 대왕암 입구를 알리는 무성한 소나무 숲은 해수욕장과는 다른 바람을 느끼게 한다. ‘살랑살랑’, 이 표현에 딱 맞는 바람을 쐬며 아저씨 아줌마들 팔운동이 한창이다. 땡볕에 끈적거리는 바닷물이 싫다면 당장 이곳으로 가로지르면 그만이다. 군데군데 나무그늘 밑에 평상을 차려놓은 백숙집 국숫집 횟집에서 역시 취향에 따라 식사를 할 수 있다. 하나 둘 이어지던 식당들이 나중에는 아예 숲 속에서 상가를 이루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숲의 끝은 ‘울기 등대’다. 1905년부터 ‘울산의 기이한 지형 방어진’으로 선박을 유도했던 등대다. 한때 포경선을 포함해 600~700척의 어선이 항으로 들어섰다니 9m 높이의 등대가 힘을 줄만 했다. 아하, 여기서부턴 바람이 또 다르다. 대왕암 입구 수평선만 보이는 바다에 가릴 것 없이 노출된 사람은 ‘쏴아’ 하는 바람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 큰 이름의 대왕암에 발을 디딘다. 울산의 기이한 지형이라는 뜻의 ‘울기’라는 말은 바로 이곳 기암괴석의 대왕암에서 유래했다. 기암의 본체는 본체대로, 돌출된 부리는 부리대로 어떻게 그렇게 비틀어지고 날을 세웠는지 표현하기 어렵다. 경주시 양북면 감포 바다의 수중릉에 묻혀 호국룡이 됐다는 신라 문무왕의 왕비가 남편을 따라 이 바위 밑에 뼈를 묻었다. 대왕암을 걷는 길은 1995년 현대중공업이 쇠로 만들어 기증했다. 그 뜻에 비해 쇠 구조물은 대왕암의 기상을 반감시키는 존재다. 그 모양도 색깔도 바위와 어울리지 못한다. 여행의 절정을 가로막는 게 아쉽다.
그렇다고 대왕암의 쇠 구조물을 따라가라는 법은 없다. 오늘 짧은 여행의 절정을 구조물에 갇힌 대왕암 정상에서 맞으라는 법도 없다. 잠깐 벗어나면 되는 것이다. 곳곳의 너른 바위에 앉으면 아주 넓게 볼록렌즈를 만들며 다가오는 동해의 수평선을 눈 속에 담을 수 있다. 적어도 30분 정도 멍청하게 앉아 있으면 눈이 맑아진다. 아하, 그래서 사람들은 낚시를 좋아하나 보다. 대왕암에서 공원의 솔숲으로 이어지는 해변 곳곳에는 이곳의 명물이 있다. 몽돌밭 해안과 해녀들이다. 정경을 묘사한 시가 있다. ‘방어진 몽돌밭에 앉아 술안주로 멍게를 청했다.… 아낙 하나가 바다를 향해 손나팔을 분다. 멍기 있나, 멍기- … 하마터면 정신 나간 여자인가 했더니 … 하아, 하아 파도를 끌고 손 흔들며 숨차게 헤엄쳐 나오는 해녀 … 멍기 있나, 멍기-수평선 너머 가슴에 멍이 든 이름 하나 소리쳐 불러보고 싶다.’ - 손택수의 <방어진 해녀> 이곳 해녀들은 해물을 따자마자 상인이 된다. 아침 아홉 시에 들어가 두 시간 하고 나와서 장사하고, 또 들어가고 하는 식이다. 멍게 해삼 소라 등이 담긴 작은 접시는 1만원, 큰 접시는 2만원에 판다. 출출한 속을 채우는 곳이 아니라 맘 놓고 바다를 마시는 곳이다. 바로 옆 몽돌밭에는 텐트쳐놓고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해수욕장에 비해 깨끗하다. 식사를 하려면 공원 입구 숲 속으로 연결된 식당가에서 입맛대로 고르면 되지만 횟집은 값이 비싼 편이다. | |||||||||||||||||||||||||||||||||||||||||||||||||||||||||||
|
|||||||||||||||||||||||||||||||||||||||||||||||||||||||||||
2006년 08월 04일 이일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